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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도 잘 사는 사람 우선이더라"

우면산 전원마을 비 피해 현장.... 공룡뼈 잔해처럼 널브러진 비닐하우스 촌

등록|2011.07.30 16:13 수정|2011.07.31 13:46
29일 오후 남태령 전원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비로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최대 피해를 입은 곳 중 한 곳입니다. 특히 한눈에도 고급스럽게 뵈는 주택가보다 마을 안쪽 무허가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피해가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마을 초입에서 만난 노원의용소방대 대원들. ⓒ 이명주

남태령역(지하철 4호선 2번 출구)을 나와 전원마을로 들어서자 천막 아래서 더위와 허기를 달래고 있는 노원의용소방대원들이 보였다. 그 와중에 온몸에 진흙을 잔뜩 묻힌 중년 남성이 "예쁘게 찍어주세요" 하며 '브이'자를 그린다. 고단함 속에 여유가 느껴졌다.

▲ 수혜복구작업 지원을 위해 출동한 도봉서 경찰들. ⓒ 이명주

이날 처음 수해복구작업을 위해 현장에 왔다는 도봉경찰서 대원들. 하지만 마을 안에서 만난 주민들은 "(산사태 발생)사흘 만에 오늘 처음 지원인력이 왔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 두 가구가 살고 있던 한 지하주택. ⓒ 이명주

두 가구가 살고 있던 한 지하주택 안이다. 반나절 넘는 복구작업에도 산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온 흙탕물이 가득하다. 지층에 살고 있는 집주인 이모(69)씨에 따르면 세입자 중 한 사람이 "(방에 갇힌) 어린 아이를 데리러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다 팔을 다쳤다"고 했다.

▲ 사라진 도로. ⓒ 이명주

길모퉁이를 돌자 난데없는 흙길이 펼쳐졌다. 비교적 산과 거리가 있는 주택가 도로임에도 밀려온 흙의 양이 엄청나다. 산사태의 위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케 한다. 

▲ 주택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복구작업 ⓒ 이명주



이날 처음 시작된 복구작업은 주로 주택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잠시 후 만난 비닐하우스촌 주민 몇몇은 "여긴 이렇게 다 무너졌는데도 이제야 (복구작업을) 하는데 아래 (국회)의원집은 벌써 끝났다더라", "수해복구도 잘 사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 흙탕물에 몸을 씻고 있는 한 봉사자. ⓒ 이명주

'ㅎ' 식물원의 원예 수강생이라는 백발의 남성이 흙탕물로 얼굴과 발을 씻고 있었다. 제일 시급한 게 무엇이냐 물었더니 "삽과 양동이"라고 했다. "사람이 많이 와도 장비가 없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 흙더미에 깔려 흔적만 남은 한 비닐하우스 건물. ⓒ 이명주



노인을 만난 식물원 바로 뒤쪽. 흙더미에 깔린 비닐하우스 건물이 사막 한 가운데 공룡뼈 잔해처럼 보였다.

▲ 무너진 비닐하우스 건물 내부 ⓒ 이명주




무너진 비닐하우스 내부. 점심 무렵부터 동원된 인력들이 부산하게 작업 중이었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듯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허가 비닐하우스 촌인 이유로 집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것. 이 경우 임의로 구조변경을 할 수 없어 기존 골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복구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 가운데 안쪽 창으로 토사가 치고 들어오면서 산쪽 벽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 이명주



이곳 비닐하우스에 살던 친구의 울음섞인 목소리를 듣고 달려왔다는 김모(33·인테리어)씨는 "집안 기둥을 다 살린 상태에서 복구작업을 하는 게 가장 힘들다"며 "이곳 사는 사람들도 다 세금 내고 주민등록도 돼 있는데 왜 이렇게 홀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덧붙여 "사람 힘으로 흙과 쓰레기를 옮기기 역부족"이라 "포클레인이 동원되면 좋겠다"고 했다. 

▲ 이번 수마(水魔)로 목숨을 잃은 비닐하우스촌 주민 이순애(72. 실제나이)씨 가족이 살던 곳. ⓒ 이명주



이번 비 피해로 목숨을 잃은 비닐하우스촌 주민 이순애(72·실제나이)씨가 살던 곳. 산사태가 발생한 나흘 전 아침(27일 8시 15분경), 갑작스레 집 안으로 들어온 물을 퍼내던 남편이 먼저 유수(流水)에 떠내려 갔고 곧바로 이씨도 변을 당했다.   하지만 떠밀려와 있던 자동차를 딛고 나무뿌리를 잡은 남편은 간신히 목숨을 구했고 아들 또한 큰 부상을 입었으나 구사일생했다. 이씨 시신은 어제 오후 4시경, 집에서는 한참 떨어진 아랫동네 어느집 지하실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 비닐하우스주민촌 권기현 마을회장 ⓒ 이명주

비닐하우스촌주민연합의 권기현 마을회장에 따르면, 이번 비로 비닐하우스촌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명 부상, 세 집이 완파됐으며 반파된 집은 "거의 다"라고 했다. 사망한 이씨네 바로 아랫집에 살던 그 역시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 길 안내를 돕던 그가 휴대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바삐 갔다. 도착한 곳은 또다른 비닐하우스촌. 촌 옆 공터에서 포클레인 두 채가 열심히 흙을 다지고 한 여성 주민이 위험스레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원인인 즉 수해복구를 위해 나온 서초구청 측에서 쓰레기와 함께 수거된 흙더미를 비닐하우스촌 바로 옆에 쌓고 있었기 때문. 이 경우 다시 비가 오면 간신히 피해를 면한 비닐하우스촌마저 추가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이날 권 회장과 주민들은 서초구청 측에 여러 번 민원을 넣었으나 작업은 계속됐다. 실제로 기상청은 31일 밤부터 서울, 경기, 충청 등에 다시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으며 9호 태풍 '무이파'가 북상 중이다.

▲ 서초구청 측에서 쓰레기와 함께 수거한 토사들을 비닐하우스촌 지척에 쌓고 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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