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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의 물놀이 3시간만에 끝나다

엉덩이가 무거운 남편이자 아빠, 드디어 엉덩이를 들다

등록|2011.07.31 16:46 수정|2011.07.31 16:46
조금 쑥쓰러운 고백이지만 제 엉덩이는 굉장히 무겁습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한번 의자에 앉으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결혼한지 14년이 되도록 여름휴가 한번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디를 가던 함께 다니기 때문에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이 붙은 우리 가족을 데리고 물가 한번 가지 않았습니다.

엉덩이가 무거운 남편이자 아빠 14년만에 엉덩이를 들다

이런 남편과 아빠를 둔 아내와 아이들은 답답하고 불만입니다. 맏이는 입이 무거워 가만히 있지만 둘째와 막둥이는 여름만 되면 소원입니다. 특히 우리 집은 지은지 30년 넘은 2층짜리 건물이고 하루 종일 해님께서 자연 찜질방을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실내 온도가 낮에는 35~37도를 오르내립니다. 밤에는 방에서 자지 못하고 교회에서 잡니다. 그런데 14년 동안 물놀이 한번 가지 않았으니 남편과 아빠로 대접 받는 자체가 놀랍습니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와 엄마와 함께 물놀이를 간 아이들은 물장구치며 놀았습니다 ⓒ 김동수


하지만 21일 여름방학을 하자 자나깨나 물놀이 타령에 결국 그 무거웠던 엉덩이가 움직였습니다. 좋아라 날띄는 모습을 보면서 엉덩이가 부끄러웠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떠나는 물놀이지만 주전부리에  '금'겹살까지 샀습니다. 차로 30분 거리에 아이들 물놀이 하기 아주 좋은 작은 강이었습니다. 깊어도 어른 허리춤 밖에 오지 않아 물놀이 사고 염려도 없습니다. 물을 보자 아이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막둥이는 자기가 잠수함이라고 합니다.

▲ 막둥이 자신을 '잠수함'에 비유했습니다. 하지만 잠수함은 바로 가라앉았습니다. ⓒ 김동수


잠수함은 가라앉고, 아내는 물장구치고

"아빠 나 잠수함이예요. 한번 보세요."
"그래 막둥이 잠수함이다. 잠수함. 그런데 잠수함이 금방 가라앉네?"
"내가 헤엄을 치지 못하니까 그렇잖아요. 아빠가 좀 가르쳐주세요."
"아빠 물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놀아요."
"아빠는 그냥 여기 있을래."
"물놀이 와서 그냥 있으면 어떻게해요. 빨리 들어오세요."

▲ 딸은 뒤에서 목을, 큰 아이는 무릎 위에, 막둥이는 옆에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 김동수


아이들은 끝내 저를 물속으로 끌어 드렸습니다. 아빠와 처음으로 하는 물놀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딸 아이는 목을 잡고, 큰 아이는 안기고 막둥이는 옆에서 물장구 치고 이렇게 시원한데 왜 지금까지 오지 않았는지 후회 막급이었습니다. 얕은데도 물이 정말 깨끗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만난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물놀이를 왔으니 속으로는 '웬수'처럼 여겼을 것이지만 어릴 적 냇가에서 멱감던 실력을 뽐내려다가 물이 얕아 아이들과 물장구로 대신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된 아내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여보 우리 매주 물놀이 오면 안 돼요?"
"…"
"아니 먹을거리만 조금 사면 되는데 매주는 힘들어도 자주 오면 안 돼요."
"그러지 뭐. 힘들 것 있나요. 나도 와보니까.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도 깨끗하고."
"물도 얕으니까. 안전하고, 부대시절도 잘 되어 있어요. 약속 지키세요."

▲ 어릴 적 냇가에서 물놀이 했던 아내. 엉덩이 무거운 남편 만나 14년 만에 첫 물놀이 아이들과 물장구쳤습다. ⓒ 김동수


▲ 어릴 적 냇가에서 물놀이 했던 아내. 엉덩이 무거운 남편 만나 14년 만에 첫 물놀이 아이들과 물장구쳤습다. ⓒ 김동수


컵라면 맛은 최고

어릴 적 멱감고, 물놀이를 하면 금방 배가 고픕니다. 들어간지 30분도 안 되었는데 배가 고프다며 컵라면을 먹자가 난리입니다. 때마침 하늘에 먹구름도 끼어 조금 추웠는데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습니다. 라면을 워낙 싫어해 네 사람은 컵라면 하나씩을 준비했지만 내가 먹을 컵라면이 없습니다.

"아빠 꺼는 없네"
"아빠가 안 먹는다고 해잖아요. 우리는 어제 다 샀어요."
"아빠도 좀 다오. 해님이 구름속으로 들어가서 좀 춥다.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네."
"아빠가 안 먹는다고 해놓고서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내것 좀 드세요."

▲ 물놀이 하다가 먹는 컵라면. 꿀맛입니다. 막둥이 젓가락질은 일품입니다. ⓒ 김동수


딸 아이와 막둥이는 먹던 컵라면을 내밉니다. 라면을 정말 좋아하는 큰 아이는 눈치를 봅니다. 혹시 아빠가 빼앗아 먹을까 봐.

물놀이 후 먹는 것이라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컵라면을 부리나케 먹던 막둥이는 바로 물에 들어가지 않고 앉아 있어 궁금해 물었더니 선생님이 물 속에 들어갈 때는 밥먹고나서 30분 후에 들어가라고 하셨다며 앉아 있습니다. 참 기특합니다. 컵라면은 괜찮으니 그냥 들어가도 된다고 했지만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이제는 물속에서 돌담쌓기 놀이를 합니다.

돌담쌓아 공부를

"아빠 돌담쌓기 놀이해요."
"돌담쌓기 놀이라. 그래 우리 멋진 돌담집 한번 만들어볼까."
"아빠는 큰돌을 가져오세요. 우리는 작은 돌로 쌓을게요."
"아빠, 우리 물속에서 공부할게요. 공부하는 모습 어때요."
"여기와서까지 공부한다고? 막둥이 너 공부하는 것 제일 싫어하잖아."
"집에서 공부하는 것과 여기서 공부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 물속에서 돌담쌓기 놀이. 태어나서 처음 쌓았는데 아주 튼튼하게 쌓았습니다. ⓒ 김동수


▲ 물속에서 돌담쌓기 놀이 후 돌담공부방을 만들었습니다. 물놀이 와서 공부하겠다는 아이들. 그럼 학교 공부는 잘할까요. 상상에 맞깁니다 ⓒ 김동수


14년만의 물놀이 3시간만에 끝나다

14년만에 '독수리 5형제'가 멱감고, 잠수함되고, 물장구치고, 돌담까지 쌓고 잠시 밖에 나오 쉬고 있는데 딸 아이가 놀란 얼굴로 오빠가 다쳤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큰 아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눈에는 눈물을 글썽입니다. 오빠와 여동생이 18개월 차인데, 다른 집도 비슷하겠지만 꼭 누나 같습니다. 오빠가 동생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여동생이 오빠를 챙깁니다. 다치기 전에는 토하는 오빠를 세면장에 데려가 씻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다쳐서 우는 오빠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빠! 엄마! 오빠가 다쳤어요. 어떤 아주머니와 부딪혀 넘어졌는데 돌에 무릎이 찍혔어요."
"얼마 다쳤다고 조금 있다가 다시 들어가서 놀아라."
"여보 아니예요. 처음에는 피부만 조금 벗겨진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요."
"병원 문을 열었나. 오늘 토요일인데."
"빨리 가면 치료 받을 수 있어요."
"14년 만에 나왔는데 결국 3시간만 하고 가네."

▲ 14년만에 물놀이는 3시간만에 끝났습니다. 큰 아이가 돌에 부딪혀 상처가 났기 때문입니다. ⓒ 김동수


정말 상처가 깊었습니다. 아내는 깨끗한 물로 상처 부위를 씻어내고 거기에 화장을 덧대고 수건으로 묶었습니다. 부리나케 달렸습니다. 다행히 병원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아내가 급한 마음에 화장지를 덧댄 것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화장지가 말라 붙어 버린 것입니다. 소독을 통해 겨우 떼어냈지만 의사가 말하기를 화장지를 덧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소독과 처방을 받았습니다. 상처가 깊어 꿰매면 좋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14년만에 나섰던 물놀이는 3시간 만에 영광스러운 무릎 상처를 남기며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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