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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들 가방 들게하고 툭하면 야근...월급은 100만 원"

열악한 국회 인턴, 월급 낮고 근무시간 길어... 정규직 전환도 안돼

등록|2011.08.04 17:48 수정|2011.08.04 19:37
"우리는 워낙 일이 많아서 보통 밤 10시에 일이 끝나는데, 괜찮죠? 급여는 100만 원이에요."

기자가 지난해 8월 야당 P 의원실 국회 인턴 면접 때 들었던 얘기다. 면접은 통과했지만, 출근은 하지 않았다. 월 100만 원을 받으면서 하루 13시간씩 일 할 자신이 없었다. 앉을 책상 하나 없는 열악한 근무 환경 또한 출근하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 전에 사회를 경험하고 싶어 마음을 바꿨다. 바로 S 의원실에서 낸 인턴 모집 공고에 다시 지원했다. 운 좋게 합격해 일을 시작했다. 실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 잡무가 더 많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인턴의 뜻을 "회사나 기관 따위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생각하는 인턴의 뜻은 '비정규 사무직'일 뿐이다. 1일 국회 인턴들을 만나봤다. 이들의 생각도 같았다.

국회 인턴사원도 비정규직 "우리도 서럽다"

한아무개(28)씨는 "우리 방(사무실)은 정말 양반"이라고 했다. K 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한 그는 "지역구 업무 때문에 다른 보좌진들은 지역 사무실에서 상근하다시피 했고, 나랑 비서관만 남아서 의원회관에서 이뤄지는 업무를 전부 다 처리했다"고 말했다.

K 의원은 상임위원회 말고도 활동하는 위원회가 많아 야근은 기본이었다. 한씨는 "그 의원은 돈이 많아, 택시비는 줬다"며 씁쓸해했다. 한씨의 친구도 국회 인턴이었다. 그의 친구는 정규 보좌진이 해야 하는 회계업무까지 도맡았다. 이후 과다한 업무량 탓에 인턴을 그만뒀다.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의원 뒤에서 가방 여러 개를 들고 낑낑거리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의 목에는 인턴용 출입증이 걸려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의 한 의원은 상임위 회의가 있을 때면, 인턴을 대동해 가방을 들게 하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시킨다"고 귀띔했다.

의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맞추지 못해 계약해지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유기농 도시락만 먹는다는 K의원의 경우, 의원실 인턴이 자주 바뀐다. 계약 기간 내에 계약해지를 요구받아도 인턴은 아무 말 못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인턴이 먼저 그만 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회 인턴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국정감사가 다가올 때면 야근은 기본이다. 의원의 정규 보좌진들은 야근을 할 경우 수당을 받는다. 야당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진은 "의원회관 직원들은 일괄적으로 받지만, 인턴은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턴은 출장비용을 받지 못한다. 출장이 두려운 이유다.

의원 세비는 올라도 국회 인턴 월급은 제자리

▲ 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 이주영


국회 인턴사원제도는 1999년 도입됐다. 고학력자 실업난 해소와 국회의원 보좌가 목적이다. 의원실마다 2명의 인턴을 고용할 수 있다. 의원실은 최대 20개월 치의 인턴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인턴 1명당 계약기간이 10개월이라는 뜻이다. 인턴의 급여는 국회사무처가 지급한다.

그러나 인턴은 국회사무처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다. 각 의원실이 인턴사원의 약정의뢰서를 사무처와 체결하는 형태로 고용된다. 일반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다. 의원실은 언제든지 인턴과의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인턴의 월급을 120만 원에서 130만 원으로 올리고, 채용 기간을 10개월에서 11개월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같은 해 12월 2011년도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면서, 인턴 관련 내용이 빠졌다. 반면, 국회의원 세비 인상안은 통과됐다. 의원 세비는 꼼꼼히 챙기면서 인턴의 실정은 외면한 셈이다.

국회 인턴의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다른 인턴과 다르게 국회의 인턴 계약기간은 긴 편이고, 계속 계약을 갱신해 1~2년 동안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장기간 근무했다고 정규직 채용이 보장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국회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야당 소속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은 "보좌관이든 인턴이든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면 똑같이 끝이 난다"며 "국회 인턴은 다른 업종의 인턴과 다르게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덧붙이는 글 이주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인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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