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에서 괴력을 발휘한 칭기즈칸 보드카
[몽골·러시아 여행②] 세계 8위 자원부국이지만 빈곤한 몽골
▲ 몽골 축제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열린 18부족 축제에 참석한 몽골 가족. ⓒ 한성희
몽골은 풍부한 광산물로 세계 8위 자원국이며 해마다 7~10%가 넘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있을 만큼 의욕이 넘치는 활기 찬 국가다. 반면 한반도의 7배가 넘는 넓은 국토에 인구 280만 명에 불과하며 120만 명이 수도 울란바토르에 거주하고 있고, 국민연평균소득 2,400불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이기도 하다.
1990년 우리나라와 국교를 맺은 몽골 정부는 우리나라의 선진 기술 전수와 투자를 원하고 있고 2004년 '고용허가제 인력송출 MOU'를 맺은 이후 3만1천명(2010년 몽골 노동복지부 발표)의 몽골인이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급성장하는 경제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반시설과 실업문제, 인구부족, 열악한 기술과 사회 인프라 부족, 국민복지 문제는 몽골 정부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6월 29일 몽골 울란바토르 퓨마엠파이어호텔 세미나실에서 한국·몽골·러시아 브리야트공화국이 참가한 가운데 '사회보장 분야에 직면하는 문제와 해결방안 국제학술회' 가 열렸다. 이번 국제학술회는 몽골 노동복지부/노동복지서비스청/울란바토르 대학교가 주최했다.
국제학술회에는 테 간디 몽골 노동복지부 장관, 데 바야르새홍 몽골 노동복지서비스청 청장, 최기호 울란바토르 대학교 총장, 김종구 한·몽 사회정책학회 회장, 3개국 학자, 공직자 등 1백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의 이호근(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사회법)교수, 조흥식(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교수, 김문각(한국고용노동연수원)교수, 몽골의 데 강치멕 노동복지서비스청 복지국 과장, 엠 어뎅체첵 노동복지서비스청 인구·가족발달지원국 사무관, 데 바트뭉크 노동복지서비스청 노동국 국장이 주제발제문을 발표했다.
또 브리야트 공화국의 레센커 발렌티노 치레놉나 브리야트공화국 가족·아동센터 센터장, 아세바 타탸냐 지너웹나 브리야트고용청 인구고용지원지술과 과장이 학술발표를 했다.
지난 해 서울에서 열린 한·몽 사회정책학회 세미나에 이어 몽골에서 개최한 국제학술회는 최초로 러시아 브리야트 공화국이 참가해 폭넓은 국제 학술 교류의 장이 됐다는 평가다.
▲ 국제학술회(좌부터) 테 간디 몽골 노동복지부 장관, 데 바야르새홍 노동복지서비스청 청장, 데 조이질수렝 노동복지서비스청 국장. ⓒ 한성희
테 간디 몽골 노동복지부 장관은 "대한민국 대표와 브리야트 대표가 오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학술회는 수년 간 우리의 노력 일부이며 세 나라의 협력의 시작"이라며 "사회복지, 노동은 개인, 가족, 국가 발전의 핵심이며 정책을 정확하게 정의하여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에 세 국가 간의 정보를 공유하여 배우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데 바야르새홍 노동복지서비스청 청장도 "우리 노동복지청은 사회복지와 인구-가족 발달지원 국가서비스를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폭넓은 서비스를 시행해왔으며 여러분의 협력과 정보 및 지식교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최기호 울란바토르 대학 총장은 "각국 청년실업은 심각하며 노인과 장애인의 실업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가장 훌륭한 복지는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했다.
김종구 한·몽 사회정책학회 회장은 "이번 세미나에서 복지서비스 전달, 사회서비스, 복지수혜자 자립, 가족/아동 문제, 가족문제, 일자리 창출, 고용지원복지프로그램 등의 논의를 통해 3국 간 이해증진과 분야별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몽골 국영방송몽골 노동복지부의 깊은 관심을 보여주듯 국영방송에서 국제학술회를 촬영했으며 이날 저녁 텔레비전으로 방영됐다. ⓒ 한성희
몽골은 2만 명 원하는 데 한국은 2천 명만
아침 10시부터 시작한 학술회는 3부로 나뉘어 주제 발표가 끝난 후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후 6시가 넘도록 진행된 세미나는 열기를 띠었고 참석한 몽골의 학자, 공무원들이 끝날 때까지 큰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데 바트뭉크 국장은 "올해 몽골은 2만 명이 한국에서 일하기를 원했으나 한국 정부는 2천명밖에 허가하지 않았다"며 "몽골 실업률이 8.6%이고 전체 실업자 중 22~44세가 82.3%이며 이를 위해 2011년을 '고용지원의 해'로 정했다"고 말했다.
▲ 아버지와 아들이들 부자는 관광객들에게 말을 태워주고 돈을 벌고 있다. ⓒ 한성희
김문각 교수는 "현재 경제성장 속도로 보면 향후 5년 뒤에는 몽골 임금이 2배로 늘 것이고 그에 따른 물가는 더 높아질 것이며 광공업이 고용유발력이 낮은 이유는 제조업의 비중이 낮고 노동집약적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바트뭉크 국장은 "몽골의 평균 임금은 월 24만원"이라고 말하고 "몽골은 지하자원이 많지만 기술 인력이 부족해 20t 트럭을 몰 몽골 운전기사가 한 명도 없는 형편"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비싼 인건비를 주고 한국 인력을 들여올 형편도 안 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한국에 들어간 몽골인의 평균임금은 1백만 원이며 월 80만 원을 송금한다. 몽골의 젊은이들이 한국 등 외국에서 일하고 있어 노동인력이 부족해 중국인들을 쓰고 있으며 올해 북한에서 1천명이 월 30만원을 받고 몽골에 들어와 일한다"고 밝혔다.
이에 조흥식 교수는 "한국도 70년대 고도성장기에 기술 인력이 부족해 중·고등학교에서 기능 인력을 키워 경제 성장에 큰 몫을 해냈다. 몽골도 청소년들에게 산업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하자 바트뭉크 국장은 "몽골은 기술을 가르칠 학교도 전문 교사도 없다. 한국에서 그런 인력 지원과 자문을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바트뭉크 국장은 "오늘 세미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큰 도움이 됐다. 한국 학자들의 학술자료를 연구하고 분석해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과 몽골의 더 큰 유대관계와 협력을 바란다"고 마지막 인사를 끝냈다.
▲ 징기스칸 보드카저녁 만찬이 열린 식당. 남질(울란바타르대학교) 석좌교수(좌)와 초이질 국장 앞에 있는 투명한 병이 징기스칸 보드카다. ⓒ 한성희
칭기즈칸 보드카의 위력
8시간에 걸친 세미나를 끝내고 호텔을 나와 근처에 있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도순이와 세미나 소감을 주고받았다.
"하루 종일 꼬박 세미나를 듣자니 엉덩이가 쑤시고 허리가 아프네. 안 하던 공부 하느라 그런가? 브리야트 발제문에 대한 네 질문은 나도 듣다가 의문을 갖고 있었거든."
"그러게. 그래도 언니, 재미있고 흥미 있더라."
"몽골 노동복지청과 노동복지부가 처음으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윤 박사님 말씀대로 발제문도 참 잘 만들었고 많이 준비한 노력이 다 보이네. 몽골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무척 젊고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를 보니 몽골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해."
"응. 우리나라가 정말 대단하다는 자부심이 생겨."
▲ 수흐바타르 광장 이번 세미나 발제자 이호근 교수(좌)와 조흥식 교수가 축제에 참가한 몽골 어린이들과 어울렸다. ⓒ 한성희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내몽골을 빼앗은 중국을 매우 싫어하며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국의 뛰어난 기술과 사회시스템을 지원받고 싶어 한다. 자원이 필요한 한국은 몽골에 학교와 컴퓨터, 의료진, 몽골사막 나무심기 등을 지원하고 있고 기업 진출도 활발하지만 몽골의 입장에서는 국가 경제발전에 보탬이 될 근본적인 도움을 바라고 있다.
몽골이 사회주의 국가였을 시절에는 주로 러시아에 유학을 갔지만 60년대 이후 영국을 선호하게 됐고 현재는 거의 모든 유학생이 한국으로 올만큼 몽골의 한류열풍은 매우 뜨겁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한국 음식점만 수십 개가 있을 정도다.
▲ 축제 국제 학술회가 끝나고 몽골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열린 18부족 축제를 구경했다. ⓒ 한성희
한국에서 몽골인력을 적게 배정한 이유를 김영문(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몽골사람들이 일도 잘하고 기운도 좋은데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술을 많이 먹은 다음 날이면 무단결근을 하기 일쑤라 고용주들이 싫어해요. 또 싸움도 자주 벌이니 고용주 입장에선 기피할 수밖에요. 몽골정부가 더 많은 고용 인력을 보내기를 원한다면 한국에 오기 전에 직업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서 보내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해요."
수흐바타르 광장은 화려한 민속 복장으로 단장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었고 나라 교수는 "참, 운이 좋네요. 몽골의 18부족 축제인데 이런 건 우리도 1년에 한번 보기 힘들다"며 구경하기를 권했다.
▲ 몽골 축제수흐바타르 몽골 축제 ⓒ 한성희
몽골인들은 '칭기즈칸 보드카'를 즐겨 마신다. 칭기즈칸은 몽골의 긍지이자 영웅이며 몽골인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다. 울란바토르 산에 보이는 칭기즈칸 초상화, 칭기즈칸 동상, 칭기즈칸 대학 등등.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상표는 최고의 품질이라는 뜻이다.
몽골 노동복지청에서 마련한 저녁 만찬에는 데 바야르새홍 노동복지청장, 초이질 국장을 비롯한 공직자들과 브리야트·한국 참석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 예쁜 몽골 소녀들예쁘게 전통 부족의상을 차려입은 소녀들이 입장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분홍색 건물이 러시아가 지어줬다는 오페라하우스다. ⓒ 한성희
칭기즈칸 얼굴이 그려진 투명한 병에 든 칭기즈칸 보드카는 호기심을 당겼고 맛있었지만 나중에 속이 뒤집히는 바람에 이틀 동안 구토와 두통에 시달렸다. 그날 김영문 교수가 그랬다.
"울란바토르는 고도 1500m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주량으로 마시면 큰일 나요."
진작 좀 가르쳐주지. 과연 칭기즈칸 보드카의 위력은 대단했고 며칠 동안 본 몽골인들의 술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구토에 시달리는 나에게 똑순이가 말했다.
"언니, 세미나 한 거 저녁 먹을 때 텔레비전에 나오더라. 꽤 오랫동안 나오는데 언니에게 보라고 찾으니까 없더라."
난 그때 밖에 나가서 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칭기즈칸 보드카가 내 위장 속에서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 할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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