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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물 들이고 대수술, 마취 잘 됐느냐고요?

서른두 살 과년한 딸 위해 엄마는 봉숭아 꽃을 따 오셨다

등록|2011.08.10 19:59 수정|2011.08.10 20:02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일 계절이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장마도 길고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기 때문에 봉숭아꽃 심을 여유도, 꽃핀 것 찾아볼 여유도, 핀 꽃 따서 손톱을 물들일 여유도 없었던 듯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봉숭아꽃 물들인 손톱들은 안 보인다. 비싸거나 어렵게만 보이는 네일아트한 손톱들은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수 년 전부터 동네 사방을 돌아다녀 보아도, 시내 곳곳을 다녀도 봉숭아꽃 피어있는 걸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 기자의 눈만 어두워서일까? 어쨌든 며칠 동안 동네 산책을 나설 때마다 구석구석 풀이든 꽃이든 심어진 곳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실패였다.

▲ 색이 고운 봉숭아꽃과 이파리들. 꽃잎만이 아니라 이파리도 가득 섞어주어야 한다. ⓒ 전은옥


서른두 살이나 먹은 과년한 딸은 엄마라면 반드시 봉숭아꽃 피어있는 곳을 알 것 같아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노동하는 여성이다. 평생 그러했다. 한참 일하고 계실 엄마에게 "엄마, 그 동네에는 봉숭아꽃 피어 있어요? 이 동네는 없네요. 봉숭아물 들이고 싶은데"라고 찍어 보냈다. 네다섯 시간은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봉송아 땃다."

귀여운 오타를 적절하게 버무려서 말이다. 엄마는 웃을 일 없을 때, 이렇게 웃겨주시는구나. 역시 엄마구나. 엄마는 해결사다. 봉숭아꽃과 잎 더미를 한 웅큼 가지고 집에 돌아올 어머니의 모습에 앞서, 딸에게 줄 봉숭아꽃잎을 따겠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발견한 그 꽃잎들을 욕심껏 한가득 따고는 본인 손톱에 물들일 것도 아닌데 기뻐했을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아차 싶었다. 마침 몸에 안 좋은 곳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에게 강력한 수술 권고를 받고서, 망설임 끝에 우선은 약물 처방만 해달라 하고 좀 더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사방으로 알아보고 수술을 고려하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사랑스러운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다음 주에 마취하고 수술할지도 모르는데." 하필!

인터넷을 통해 의학정보를 꼼꼼히 살펴보니 봉숭아 꽃물을 손톱에 물들인다고 해서 마취가 안 듣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병원에도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를 한 것은 한참 뒤였지만. 어쨌든 병원 측에서도 괜찮다고 했다.

그럼 왜 봉숭아 물을 들이면 마취가 안 들어 수술 못한다는 괴소문이 떠돌았을까. 그 비밀은 손톱에 있다. 마취와 봉숭아물은 관계가 없다. 다만, 마취를 하고 수술을 실시하는 경우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려면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천연상태의 손톱 색깔이나 변화를 통해 파악해야 할 경우가 있는데, 손톱에 무엇이든 방해물이 있으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 전에는 손톱에 매니큐어나 봉숭아물 등의 방해물은 금한다는 에티켓이 생겼다는 것이다.

▲ 이른 아침부터 봉숭아꽃잎을 빻아놓고 봉숭아물들이자며 기다리시던 어머니. ⓒ 전은옥


조금 늦은 시간에 귀가하신 엄마는 돌아오자마자 딸의 방으로 들어와 봉지 한가득 따온 봉숭아 꽃과 이파리들을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꽃잎을 빻으라고 마늘 찧는 통과 작은 방망이까지 세트로 준비해서 베란다에 내다 놓으셨다. 엄마는 곧장 봉숭아 꽃물을 들여 주고 싶어 하셨으나, 아직까지 수술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한 딸은 망설였다.

엄마는 다음날 꼭두새벽부터 봉숭아 꽃과 이파리를 전부 곱게 빻아두고 비닐과 가위, 실까지 준비해두고 다 큰 딸에게 밥을 먹인 뒤, 손톱 위를 곱게 물들여 주셨다. 그 위에 투명 매니큐어를 덧발라 봉숭아물이 빨리 빠지는 것도 방지하고, 손톱이 더 반짝거리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수술을 했다. 수술하는 데 척수마취를 해 허리부터 아래쪽으로는 다섯 시간 동안 마비 상태였다. 봉숭아 물을 그대로 예쁘게 손톱 위에 있었고, 의사도 간호사도 아무 말 없었고, 수술도 잘 끝나고 퇴원하였다. 날이 덥다. 여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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