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1500리 걷기 평화순례단 참가기
몰래 묻은 고엽제 사죄하고 책임져라! 불평등한 소파 평등하게 개정하라!
이엠비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민주 운동 진영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애강아지 똥싸놓듯 한 패악들이 차고 넘치기에. 부산 영도로, 제주 강정으로, 사대강(死大江) 현장으로. 요즘엔 하늘로 떠받들던 미국과 원래 하늘까지 한 수 더 거드는 형국이다. 고엽제 폐기물 쓰레기 파묻어 감춘 미군기지로, 물난리 아수라 현장까지.
"고엽제 매립 사죄하고 불평등 소파 개정하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미 2사단 레드 크라우드 정문앞, 아침 7시 10분, 출근 차량들이 윙윙거리는 소음을 뜷고 뚜렷이 퍼지는 외침.
평화도보순례단 김홍렬(민주노동당 양주시위원회 위원장) 단장의 선창으로 걷기 행진을 시작한다. 비 온다던 날씨, 오늘은 좀 참아주려는지 하늘이 멀겋다. 지난달 14일 시작해 8월 13일까지 한 달을 예정한 미국기지 1500리 걷기다.
고엽제! 이는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독극물의 대명사. 파렴치한 미국의 베트남 침략 전쟁 때 비인도를 넘어 비생물, 비만물적 야만행위로 만들어 뿌린, 농약 아닌 화학 무기다. 민주 수호 성전이라 분칠한 부도덕한 베트남 전쟁에 미군 방패막이로 동원됐던 많은 한국군들이 단순한 농약인줄 알고 마구 뿌려댔다가 엄청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마저도 제대로 피해를 인정 못 받아 참혹함이 더 드러나는 바로 그 고엽제.
지난 5월 16일 미국 애리조나주 언론 'KPHO'가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 기지인 캐럴 캠프 뒷산에 고엽제를 몰래 파묻었다는 미군(스티브 하우스 등)들의 증언을 보도하자 이례적으로 한국과 미군 당국이 호들갑을 떨며 공동조사위원회를 꾸리네, 조사를 합네 했지만, 한미 소파의 불평등 유명무실 엉터리 조항 때문에 흐지부지 돼 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난달인 7월 24일, 고엽제 후유증 앓느라 불편한데도 증언을 하러 한국에 온 하우스씨는 다음날 '전 주한미군 고엽제 피해자 국회 증언대회'에서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진상 규명을 위한 빠른 조사를 위해 한국에 왔다"며 주한 미군 근무 때 고엽제를 몰래 묻은 사실을 증언했다.
이 사건 한미 당국이 어떻게 해결할까? 정답을 골라보시라. 사지선다형 객관식에 능한 한국인들이니.
① 미군이 책임을 통감하고 관련 문서와 사실을 조사, 공개, 사죄한 뒤 처리를 도맡고 배상한다.
② 미군이 소극 대응해 미적거리지만 한국 정부가 자주성을 내세워 미국정부를 압박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문책과 사죄, 피해 배상을 요구해 관철한다.
③ 미군은 소파 규정을 내세워 자체 조사하는 시늉한 뒤 별 증거 없다며 사건 종결한다. 한국 정부 역시 소파 규정에 의거 합동 조사했으나 큰 문제점 없다며 미군 의견에 동조한다.
④ ③의 결과에 대해 조사 결과를 부실로 규정, 한국 시민사회가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소파 개정을 쟁취한다.
어느 것을 정답으로 골랐는가로 민주 사회 시민 자격을 가졌는지를 재볼 수 있겠다.
2002년 미선․효순 사건으로 온 국민들이 그렇게 평등한 소파를 요구했건만 전혀 개정하지 않았다. 달라진 거라면 구저 무심한 세월만 흘렀을 뿐.
동두천 물난리 전까지는 의정부의 2사단 본부에서 동두천 캠프 케이시까지 20.1km를 걸었는데 수해 뒤에는 지역분위기를 고려해 동두천 캠프 호비로 바꿔서 22km를 걷는다.
의정부 북부 녹양역 앞에 닿자 기다리던 세 분이 합류했다. 덤프 트럭 등 국도 3호선을 내달리는 차들은 무섭고 내뿜는 매연에 코끝이 맵다.
2003년 2월이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추운 겨울밤 바람을 가르며 양주시 효촌리 미선 효순 사고 현장에서 범죄자 마크 워커와 페르디난도 니노의 무죄평결이 난 동두천 캠프 케이시까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의정부 미 2사단앞까지 횃불 들고 걸었던 기억이. 그 길을 다시 되짚어 걸어 올라가고 있다.
광사리 캠프 앞에서 잠시 구호를 외치며 다짐한다.
"기지 오염 복구하고 사죄하고 배상하라!!"
지나는 길 버스 정류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반갑게 가벼이 인사한다. 첨 보는 분들이지만 맘속의 응원을 느낄 수 있었다. 해방과 한국 전쟁 때의 수혜 의식을 넘어 미국과 미군에 대한 바른 인식을 이제 시작했다는 한다는 감이 든다.
동두천 들머리 전철 다리밑에서 간식을 먹고 좀 쉰다. 단장님이 준비한 인절미 맛이 꿀맛이다. 멀리 걷지 않다 걸으니 허벅다리가 뻐근해 온다. 22km를 5시간 남짓에 걸으니 시속 4.4km다. 한창 때는 우스운 속도였는데 오십대중반이라선가 장난이 아니다. 근데 저기 김윤조 옹(?)께서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당차게 걸으시니 난 뭐 지친 내색 어림없다.
동두천 시내로 접어드니 물난리 상처가 깊다. 경기북부의 주요 도시들을 보면 물난리 필연 지점이다. 예전 마을 입지는 물가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포천의 읍내리가 그렇고 의정부 본둔야가 그렇다. 의정부, 포천, 동두천 다 큰 내를 끼고 있는데 이 내 주변은 원래 주거지가 아니라 농경지였다. 천변 낮은 땅은 물을 대기 쉬우니 농경지로 제격이요, 아깝기도 해 주거지는 대개 산비탈 쪽으로 정해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주요 도로를 천변으로 내면서 길따라 집들을 지었으니 가뜩이나 수방대책도 부실한데 물난리를 겪는 게다.
남자들은 근육이 있고 군대서 100키로 행군도 했으니 그렇다 치는데 다리 약한 여성 세분 뚜벅뚜벅 잘 걷는다. 그래도 힘드는 듯해 배려 차원에서 동두천 들머리 들어가면서는 여성들을 앞세웠다.
고엽제 매립 한미 합동 조사란 게 그렇다. 이건 실숟 h아니고 일부러 몰래 묻은 사건이다. 게다가 한 두 번, 한 두 개도 아니고 미군 사령관의 결재와 명령에 따라 조직 체계로 묻은 사건이다. 달리 말하면 미군은 이번 범죄의 주요 피의자이다. 그런데 상식으로 생각하자. 경찰이 범죄 수사하는 데 그 범죄의 피의자와 공동으로 조사한다고? 게다가 피이자의 집안 일과 행적은 그가 혼자 조사하고 발표하면 그 결과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게 원 세상에 말이여! 논리여! 한미 소파는 이처럼 황당한 규정, 불평등의 모범 사례만 모아놓은 듯한 부끄런, 다리 잘린 소파다.
오후 1시 마침내 동두천 캠프 호비 후문 앞에 이르렀다. 정문은 접근도 못한단다. 철조망 사이로 뵈는 드넓은 기지 안은 음산하다못해 기괴하다. 각 종 중무장 살상 무기들로 그득하다. 얼룩 무늬와 사막 모래색으로 위장한 탱크, 장갑차, 트럭, 대포들, 위병이 사진찍지 말라며 눈을 부라린다.
"고엽제 매립 규명하고 소파 평등 개정하자!"
"자주! 자립! 평화 통일!"
"우리가 바로 서 외국군대 내보내야 우리 주권 바로 선다!"
"지배, 계급, 억압, 착취, 군대, 다툼 없는 세상을 위해!"
한마디씩 소감과 의지를 외쳐 다짐하며 걷기를 마쳤다. 결기에 찬 외침이 홍수 자취 드러난 시내를 건너 정렬한 탱크와 장갑차 위로 퍼졌다.
남에게 의지하는 한 그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는 필연의 현장, 겉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 안하련다는 속담 있다. 남성 우월의식 있는 속담이지만 비자주의 설움 묻어난다. 종살이 안락함보다 고단하나 홀로 살이가 내 삶이고 우리 삶이어야 한다.
"고엽제 매립 사죄하고 불평등 소파 개정하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미 2사단 레드 크라우드 정문앞, 아침 7시 10분, 출근 차량들이 윙윙거리는 소음을 뜷고 뚜렷이 퍼지는 외침.
평화도보순례단 김홍렬(민주노동당 양주시위원회 위원장) 단장의 선창으로 걷기 행진을 시작한다. 비 온다던 날씨, 오늘은 좀 참아주려는지 하늘이 멀겋다. 지난달 14일 시작해 8월 13일까지 한 달을 예정한 미국기지 1500리 걷기다.
고엽제! 이는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독극물의 대명사. 파렴치한 미국의 베트남 침략 전쟁 때 비인도를 넘어 비생물, 비만물적 야만행위로 만들어 뿌린, 농약 아닌 화학 무기다. 민주 수호 성전이라 분칠한 부도덕한 베트남 전쟁에 미군 방패막이로 동원됐던 많은 한국군들이 단순한 농약인줄 알고 마구 뿌려댔다가 엄청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그마저도 제대로 피해를 인정 못 받아 참혹함이 더 드러나는 바로 그 고엽제.
지난 5월 16일 미국 애리조나주 언론 'KPHO'가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 기지인 캐럴 캠프 뒷산에 고엽제를 몰래 파묻었다는 미군(스티브 하우스 등)들의 증언을 보도하자 이례적으로 한국과 미군 당국이 호들갑을 떨며 공동조사위원회를 꾸리네, 조사를 합네 했지만, 한미 소파의 불평등 유명무실 엉터리 조항 때문에 흐지부지 돼 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지난달인 7월 24일, 고엽제 후유증 앓느라 불편한데도 증언을 하러 한국에 온 하우스씨는 다음날 '전 주한미군 고엽제 피해자 국회 증언대회'에서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진상 규명을 위한 빠른 조사를 위해 한국에 왔다"며 주한 미군 근무 때 고엽제를 몰래 묻은 사실을 증언했다.
이 사건 한미 당국이 어떻게 해결할까? 정답을 골라보시라. 사지선다형 객관식에 능한 한국인들이니.
① 미군이 책임을 통감하고 관련 문서와 사실을 조사, 공개, 사죄한 뒤 처리를 도맡고 배상한다.
② 미군이 소극 대응해 미적거리지만 한국 정부가 자주성을 내세워 미국정부를 압박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 문책과 사죄, 피해 배상을 요구해 관철한다.
③ 미군은 소파 규정을 내세워 자체 조사하는 시늉한 뒤 별 증거 없다며 사건 종결한다. 한국 정부 역시 소파 규정에 의거 합동 조사했으나 큰 문제점 없다며 미군 의견에 동조한다.
④ ③의 결과에 대해 조사 결과를 부실로 규정, 한국 시민사회가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소파 개정을 쟁취한다.
어느 것을 정답으로 골랐는가로 민주 사회 시민 자격을 가졌는지를 재볼 수 있겠다.
2002년 미선․효순 사건으로 온 국민들이 그렇게 평등한 소파를 요구했건만 전혀 개정하지 않았다. 달라진 거라면 구저 무심한 세월만 흘렀을 뿐.
동두천 물난리 전까지는 의정부의 2사단 본부에서 동두천 캠프 케이시까지 20.1km를 걸었는데 수해 뒤에는 지역분위기를 고려해 동두천 캠프 호비로 바꿔서 22km를 걷는다.
의정부 북부 녹양역 앞에 닿자 기다리던 세 분이 합류했다. 덤프 트럭 등 국도 3호선을 내달리는 차들은 무섭고 내뿜는 매연에 코끝이 맵다.
2003년 2월이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추운 겨울밤 바람을 가르며 양주시 효촌리 미선 효순 사고 현장에서 범죄자 마크 워커와 페르디난도 니노의 무죄평결이 난 동두천 캠프 케이시까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의정부 미 2사단앞까지 횃불 들고 걸었던 기억이. 그 길을 다시 되짚어 걸어 올라가고 있다.
광사리 캠프 앞에서 잠시 구호를 외치며 다짐한다.
"기지 오염 복구하고 사죄하고 배상하라!!"
지나는 길 버스 정류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반갑게 가벼이 인사한다. 첨 보는 분들이지만 맘속의 응원을 느낄 수 있었다. 해방과 한국 전쟁 때의 수혜 의식을 넘어 미국과 미군에 대한 바른 인식을 이제 시작했다는 한다는 감이 든다.
동두천 들머리 전철 다리밑에서 간식을 먹고 좀 쉰다. 단장님이 준비한 인절미 맛이 꿀맛이다. 멀리 걷지 않다 걸으니 허벅다리가 뻐근해 온다. 22km를 5시간 남짓에 걸으니 시속 4.4km다. 한창 때는 우스운 속도였는데 오십대중반이라선가 장난이 아니다. 근데 저기 김윤조 옹(?)께서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당차게 걸으시니 난 뭐 지친 내색 어림없다.
동두천 시내로 접어드니 물난리 상처가 깊다. 경기북부의 주요 도시들을 보면 물난리 필연 지점이다. 예전 마을 입지는 물가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포천의 읍내리가 그렇고 의정부 본둔야가 그렇다. 의정부, 포천, 동두천 다 큰 내를 끼고 있는데 이 내 주변은 원래 주거지가 아니라 농경지였다. 천변 낮은 땅은 물을 대기 쉬우니 농경지로 제격이요, 아깝기도 해 주거지는 대개 산비탈 쪽으로 정해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 주요 도로를 천변으로 내면서 길따라 집들을 지었으니 가뜩이나 수방대책도 부실한데 물난리를 겪는 게다.
남자들은 근육이 있고 군대서 100키로 행군도 했으니 그렇다 치는데 다리 약한 여성 세분 뚜벅뚜벅 잘 걷는다. 그래도 힘드는 듯해 배려 차원에서 동두천 들머리 들어가면서는 여성들을 앞세웠다.
고엽제 매립 한미 합동 조사란 게 그렇다. 이건 실숟 h아니고 일부러 몰래 묻은 사건이다. 게다가 한 두 번, 한 두 개도 아니고 미군 사령관의 결재와 명령에 따라 조직 체계로 묻은 사건이다. 달리 말하면 미군은 이번 범죄의 주요 피의자이다. 그런데 상식으로 생각하자. 경찰이 범죄 수사하는 데 그 범죄의 피의자와 공동으로 조사한다고? 게다가 피이자의 집안 일과 행적은 그가 혼자 조사하고 발표하면 그 결과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게 원 세상에 말이여! 논리여! 한미 소파는 이처럼 황당한 규정, 불평등의 모범 사례만 모아놓은 듯한 부끄런, 다리 잘린 소파다.
오후 1시 마침내 동두천 캠프 호비 후문 앞에 이르렀다. 정문은 접근도 못한단다. 철조망 사이로 뵈는 드넓은 기지 안은 음산하다못해 기괴하다. 각 종 중무장 살상 무기들로 그득하다. 얼룩 무늬와 사막 모래색으로 위장한 탱크, 장갑차, 트럭, 대포들, 위병이 사진찍지 말라며 눈을 부라린다.
"고엽제 매립 규명하고 소파 평등 개정하자!"
"자주! 자립! 평화 통일!"
"우리가 바로 서 외국군대 내보내야 우리 주권 바로 선다!"
"지배, 계급, 억압, 착취, 군대, 다툼 없는 세상을 위해!"
한마디씩 소감과 의지를 외쳐 다짐하며 걷기를 마쳤다. 결기에 찬 외침이 홍수 자취 드러난 시내를 건너 정렬한 탱크와 장갑차 위로 퍼졌다.
남에게 의지하는 한 그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는 필연의 현장, 겉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 안하련다는 속담 있다. 남성 우월의식 있는 속담이지만 비자주의 설움 묻어난다. 종살이 안락함보다 고단하나 홀로 살이가 내 삶이고 우리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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