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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직원도 칭찬한 가방, 알고보니 핸드 메이드

[인터뷰] 영등포동 퀼트 공방 '꿈꾸는 나무' 지미숙씨

등록|2011.08.05 13:43 수정|2011.08.05 13:43

▲ 영등포동 경찰서 뒷골목 '꿈꾸는 나무' 공방 주인 지미숙씨 ⓒ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Let it be'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눈 앞에 현현한 것 같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동 퀼트 공방 '꿈꾸는 나무'에서 지미숙(51)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누구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러나 실현하기는 어려웠던 어떤 삶의 태도를 '목격'했음에 행복했다. 지씨는 그러기 위해 "내 것 안 가지고, 주면서" 살았고 또 "귀 막고 살았다"고도 말했다. 인생의 굴곡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머니를 털어서 내놓으면 결국 그 주머니도 채워지고 사람이 남는다"고 말하는 지씨에게선 어떤 아우라마저 보이는 듯했다.

퀼트 공방 '꿈꾸는 나무'

영등포 경찰서 옆 골목에 위치한 퀼트 공방 '꿈꾸는 나무'는 지씨가 지역문화센터에서 취미로 배운 퀼트를 바탕으로 1년 전에 문을 연 영등포동 아주머니들의 아지트다. 반찬가게를 하던 어머니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은 지씨는 "아이들 학교 보내고 주부들 모여서, 수다 떨 수 있는 공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동네 아줌마들이 이 공간이 여기 생겨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한 번 오면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영등포 경찰서 뒷골목에 화사하게 위치한 '동네 아줌마'들의 '아지트'. ⓒ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지씨는 "주로 기본은 핸드 메이드"라며 "가방 등을 파는 잡화점"이라고 공방을 소개했다. 거기에다 장식으로 해놓았던 야생화를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조금씩 팔기 시작하고, 부수입을 만들어 볼까 해서 시장에서 옷을 떼어다가 한쪽에 진열해 놓기도 했다고. "먹고 살 정도는 아니고 애들 용돈 주고, 반찬 값 정도는 된다"며 "돈 벌려고 만든 거라기 보단, 지금 내 나이에 아직도 내 일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행복하다"고 지씨는 말했다.

파스텔 빛 삶을 한 가득

여고생 시절 국어선생님이 너무 좋아 작가를 하고 싶었다던 지씨는 "그 때는 내가 이 나이에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전구를 설계해 납품하는 중소기업에서 경리 일을 시작했다.

▲ 꿈꾸는 나무 전경. 핸드메이드 소품들과 동네 시장에서 '떼어다 논' 옷들이 보인다 ⓒ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그렇게 6년,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야간대학에 가겠다고 사장에게 말했다"는 지씨는 "직업과 관련된 기계설비과를 가는 조건으로 회사에서 대학 진학을 허락해 줘서" 늦은 나이에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남자들만 득실득실하던 기계설비과에서 유일하게 여자였다"며 "저녁에 학교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남자들이랑 만나고" "그래서 이렇게 이런 (털털한) 성격이 되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건축학과인 남편과 선을 보고는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남편이 키 작고 볼품 하나도 없어서 안 만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불러준 거, 거기에 반해" "학교도 직장도 그만두고 남편과 바로 결혼했다".

"얼마나 낭만적이야, 기자님도 기타치고 노래부르는 거 배우러 다니세요!"

▲ 가게 앞 그늘에 자리잡고 있는 야생화들 ⓒ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자식을 위해 귀 막은 '긍정'

결혼 후 '엄마로서의 삶'도 지씨는 조금 특별해 보였다. 지씨는 "나는 귀막고 살았다"며 "다른 엄마들 영어시키고 뭐 시킨다 그럴 때" "우리 애들 학원 안보내고 그냥,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 해라!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렇게 큰 아이는 재즈 피아노를 전공하고, 작은 아이는 자기 혼자 공부해서 전문대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그녀는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때 너무 하고 싶어해서 비보이 춤을 가르치는 학원에 보냈다"며 "주위에서 나 보고 미쳤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 당당하고 행복에 찬 표정이란. "나도 늦게 공부한 사람이었기에" 지씨는 연연하지 않는다. "자식이 서울대 가면 엄마 위신이야 좋겠지만" "결국은 아이들이 자기 인생 사는 거지 않냐"고 말했다.

그 덕에 지씨는 "애들하고는 너무 소통이 잘 된다"며 "담 쌓고 지내는 거 하나도 없이 여자친구 남자친구 모두 다 이야기한다"고 했다. 사업에 실패한 적도 있고, 식당일 하면서 바쁠 때도 있었지만 굳건히 '긍정의 힘'으로 그 긴 시간을 버텨온 셈이다.

▲ 건축일을 하고 있는 남편 분이 직접 지 씨 가게의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삶으로 이룬 '아줌마들의 로망'

그렇게 자리잡은 지미숙씨의 '꿈꾸는 나무'. 사업이라 생각하고 돈을 모은 것도 아니었고, 수익을 내겠다 골몰해 오랜 기간 준비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 매력적인 퀼트공방은 지씨의 이런 삶의 태도가 그대로 녹아있는 20여 년 동안의 성과다.

지씨는 "초등학교 애들 어머니들이 가끔 놀러와서 너무 나를 부러워한다"며 "본인들도 이 나이 때가 되면 이런 걸 차리고 싶다고 한다"고 행복해했다. 옷감이며, 천들을 고르러 시장을 가는 까닭에 조금 번거롭고 고될 때도 있지만 "같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바느질도 가르치며 수다 떨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남편은 영등포에서 가게를 연 지씨를 위해 가게 인테리어를 직접 해주고, 다른 곳에 있던 집을 영등포로 이사하기까지 했다. 지씨는 "우리 남편은 완전 외조형"이라며 "아내에 대한 배려가 있다"고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을 고마워했다. 이보다 더한 아줌마들의 로망이 그 어디 있는가. 그녀는 기나긴 현실을 관통해 진정한 '동화'를 만들고 있었다.

넘치는 에너지 이전에 지속적인 긍정. 그리고 현실을 쌓아올려 삶 속에서 진정한 동화를 만들어나가는 지씨가 궁금하다면 평일 한가로운 때 퀼트공방 '꿈꾸는 나무'를 방문해 보라. 처음 가도 친근하고 편안한 그 공간을 천천히 관조하고, 손 때 묻은 퀼트 제품 사이사이에서, 묵직한 삶의 맛깔을 찾아내는 것. 그 색다른 빛깔을 누군가 느껴볼 수 있다면 좋겠다.

▲ 지 씨가 가장 아낀다는 가방. 백화점에 들고 놀러갔다가 가방 매장 점원에게 '찬사'를 들었다고. ⓒ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


덧붙이는 글 하자센터 달시장 블로그(http://dalsijang.tistory.com)에서 발행한 지역 주민 인터뷰입니다. 달시장 블로그는 정기적인 공유를 통해 오마이뉴스의 많은 독자들과도 예술가, 지역주민, 사회적기업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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