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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만 기다릴 필요 있나요? 9일 명동으로 오세요

[사회적 변태들] 장기농성 노동자들과 '희망걷기' 준비하는 사람들

등록|2011.08.07 14:38 수정|2011.08.08 16:56
몇몇 동물들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변태'를 하곤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태'를 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변태'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좇아 보고자 합니다. - 기자의 말

▲ 당신의 발걸음으로 희망을 보여주세요 ⓒ 비정규직 없는 세상


"지금도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희망걷기'를 제안합니다."

큰따옴표 안의 사람들은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의 해고 노동자도, 부산 영도의 김진숙 지도위원도 아니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명동 철거민들', 머리엔 서리가 내렸지만 폭력과 인권말살에 맞서는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 성희롱을 당한 것도 모자라 징계 해고를 당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 1300여 일 동안 길거리에서 농성 중인 '재능교육 학습지교사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오는 8월 9일 늦은 3시부터 10시까지. 이들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에 시민사회의 연대와 지지의 손을 내미는 집회 희망걷기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릴 예정이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네 군데의 농성현장을 잇는 희망걷기는 농성현장들을 차례로 들르며 문제의 부당함을 알리고 투쟁 노동자들 간에, 아직 이 사안을 모르는 시민들 간에 연대를 모색하는 집회다. 이 집회를 조직하고 있는 서부비정규센터 류한승(38)씨를 만나 희망걷기가 그리는 '변화'는 무엇인지, 그리고 희망걷기를 준비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시민들의 관심과 연대가 작은 투쟁의 현장으로 퍼졌으면

"희망걷기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고, 시민·노동자들의 연대를 다지기 위한 집회입니다. 희망걷기로 하여금 올해초 홍익대 청소노동자 해고, 1·2·3차 희망버스 당시 시민들이 보여줬던 관심들이 작은 투쟁의 현장에도 옮겨지는 변화가 생기면 좋겠어요."

▲ 지난 7월 18일 명동 3구역 강제철거 저지 투쟁 당시 ⓒ 서부비정규센터

그의 목소리에서 비장함 따위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저 시민사회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묵묵히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노동자들의 현장에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득했다.

류한승씨는 이번 희망걷기가 '서울 한복판에 희망의 지도를 새기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 노동자, 명동 철거민들 그리고 참가 시민들이 새길 희망의 지도는 대체 무엇일까.

"사실 앞서 언급된 노동자들의 싸움은 장기간 지속돼온 것들입니다. 아마 서울 명동을 지나는 버스를 타시는 분들은 이 노동자들의 농성현장 혹은 문화제를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광경은 쉽게 지나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번 희망걷기로 하여금 참가 시민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희망의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장 노동자·철거민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도 희망의 지도라고 할 수 있겠고요."

부조리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 나아가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 네 군데의 농성현장은 얼마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기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을 이용(전국종합일간지 기준, 2010년 8월부터 2011년 8월에 한정)해 검색해본 결과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 관련 기사는 4건,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문제 5건, 명동 철거민 문제 5건, 재능교육 특수고용 학습지교사 문제 9건에 그쳤다.

▲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 ⓒ 서부비정규센터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은 올해 초 홍익대 청소노동자 노조 결성과 비슷한 때부터 싸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아직까지 나지 않고 있고 시민사회의 연대와 지지 또한 미약합니다. 사측(휴콥)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치졸한 행위를 일삼았지만 공론화되질 않았습니다. (관련 기사 : "노조 탈퇴하니 10만원 상품권을 주는 거라").

그분들은 워낙 낮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빌딩에서 나오는 폐지를 팔아 식료품을 구입하거든요. 근데 노조 결성 이후 용역 직원들이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며 '그 폐지를 부당하게 파니 절도죄로 신고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습니다. 사측은 사규에 '청소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불허한다'는 조항을 새겨놓고서 말이죠."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보다 사규가 위에 있는 셈.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의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농성현장 노동자들의 사례도 기본적인 권리가 유린되는 건 매한가지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시민사회의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 희망걷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집회에서 어떻게 목적하는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 궁금했다.

9일 늦은 3시 명동에서부터...자신만의 방법으로 연대를 표시해주길

▲ 희망걷기 집회 이동경로. 일정이 변경돼 위의 순서와 시간대 대로 진행한다고 한다 ⓒ 구글지도


"일단 9일 늦은 3시에 명동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모여 명동 철거민 문제부터 함께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이후에 남대문 롯데손해보험 빌딩 앞,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 시청 맞은 편 재능교육 농성장 순으로 걸어서 이동하게 됩니다. 각 농성 현장에서 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각기 장소에서 문화공연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계획이에요. 직장 다니시는 분들은 퇴근하고 오셔도 좋고요.

마지막 재능교육 농성장에서는 인디밴드 등이 참여하는 미니 콘서트를 열려고 합니다. 참가하시는 분들은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연대와 지지를 표시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분장을 해도 좋고 춤을 춰도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 문화방송 앞에서 '삼보일퍽'을 날린 탁현민 교수의 방법도 괜찮을 것 같네요. 하하."

네 군데 농성현장의 사람들은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쟁점으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 현장에서 주요 쟁점으로 이야기될 내용은 무엇일지 물어봤다.

"명동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는 개발논리에 짓밟힌 명동 철거지역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장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올 것 같아요. 또한 사적 폭력인 용역 깡패들의 만행들도 고발될 거고요. 롯데손해보험 빌딩 앞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인정을, 재능교육 농성장에서는 '위장 자영업자'로 불리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 실현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피해 노동자는 텐트 하나에 의존해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서부비정규센터


그중에서도 현대차 사내 성희롱 피해 노동자의 농성현장은 자꾸 눈에 밟혀요. 성희롱 당한 것도 모자라서 하청업체(구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금양물류, 현 형진기업)가 폐업을 해 피해자가 돌아갈 직장마저 없에 버렸거든요. 하지만 사실 금양물류는 기업 이름만 바꿔 하던 사업은 계속 했습니다. 피해자를 제외한 나머지 노동자들은 고용승계가 이뤄졌고요.

뿐만 아니라 현대차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사내하청의 불법성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요. 지금 그 피해 노동자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홀로 노숙투쟁을 하고 있어요. 적어도 '여성가족부는 이 사안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에서 말이죠.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시민들의,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가 절실한 상황인 거죠."

연대, 먼저 버려지는 사람들을 좌시하지 않는 것

사실 노동현안에 관련해서 '연대'라는 말은 대안점으로 익히 듣는 말 중에 하나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지만 상당히 추상적인 말맛이 없지 않다. 류한승씨를 비롯한 네 군데 농성현장의 노동자·철거민들이 정의 내리는 연대는 무엇일까.

"대개 '어려운 사람들을 우리가 지원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것이 연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스스로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삶의 조건 속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거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싸움에 함께하는 것. '이런 부조리함을 좌시할 수는 없다'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연대가 아닐까요."

지난 8월 3일 새벽 5시, 명동3구역의 까페 마리가 재개발 시행 업체 측 철거 용역 직원들에게 '점거'당한 일이 있었다. (관련기사 : "소화기에 파스 섞어 얼굴에 바로 뿌려"). 이 일이 터지고 나서 현장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도 있었다. 이번 희망걷기 준비를 통해 서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됐기 때문이란다.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들은 '우리도 용역에게 시달리지만 여기도 똑같다. 꼭 힘내시고 승리하라. 마리 파이팅!'이라며 투쟁기금 10만 원을 기부했다. 한 달에 75만 원 받는 그들이 돈이 많아서 기금을 전달한 게 아니다. 외로운 사람들 간의 연대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발걸음이 모여 생기는 변화, 그 이름은 '희망'

▲ 1300여 일이 넘어도 제자리인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농성현장 ⓒ 김지현


이렇게 힘없고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나아가 시민사회에 연대를 호소하는 자리가 바로 희망걷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희망걷기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희망'이 대체 무엇인지 물어봤다.

"언제나 길이 없는 곳을 처음 걸어가는 사람들은 외로울 수밖에 없고 그 길에서 가시덤불에 긁히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통과 눈물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도 그것을 감내하고 묵묵히 걸어갔을 때 비로소 길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절박하고 막막한 사람들이 그 상황 속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를 외치는 것. 그것이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희망은 35m 크레인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죽여 고통 받는 소수의 싸움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그 희망을 소수의 범위에서 한정시키지 않고 시민들과,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 네 농성현장 노동자들의 바람이다.

"지난번 3차 희망버스 때 서울에서만 약 3000여 명이 부산 영도로 향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 중에 절반만이라도 명동에, 롯데손해보험 빌딩에, 청계광장에, 재능교육 농성장에 관심을 가져도 충분히 이곳의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류한승씨를 비롯해 서부비정규센터와 재능교육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 롯데손해보험 청소노동자투쟁 지지연대 시민모임,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명동해방전선 등은 시민의 관심, 지지와 연대에 함께 발 맞춰 '희망으로 걸어 갈' 준비가 돼 있다.

지금도 농성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철거민들은 대단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보장받을 것은 보장받고, 참을 수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이런 절박한 목소리에 힘이 되고,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소외된 노동자·철거민들에게도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우리의 관심과 연대. 그 발걸음이 모이고 모여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희망걷기에 참가하고 싶으시다면
1. 위 지도에 나와 있는 시간, 장소에 맞춰 오세요! 항상 열려 있습니다. 퇴근하고 오셔도 되고요.
2. 문의사항이 있다면 링크를 따라 들어가세요 -> 비정규직없는 세상
   아니면 류한승 씨에게 손전화를! (010 5573 1968)
3. 어머! 참석은 못 하시지만 후원을 원하신다고요? 그럼 여기로 후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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