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룡기업들이 '경제 쓰나미' 불렀다
[분석] 금융회사 불신에서 국가 불신으로 전이된 위기
▲ 코스피 시장에 올해 첫 '사이드카'가 발동하는 등 코스피 지수가 전일 거래일(1943.75)보다 74.30포인트(3.82%) 내린 1869.45로 장을 마감한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다. ⓒ 유성호
세계경제가 2008년 이후 다시 공포 분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8월 첫 주 내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주가가 6~10%씩 빠지면서 대폭락을 시작한 것이다. 자본시장이 100%개방되어 있고 코스피 기준으로 외국인 비중이 33.3%가 넘는 한국 증시 역시 8월 첫 주 동안 2조 원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간 탓에 10.5%나 폭락했다. 미국 -6.2%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등보다도 훨씬 많이 떨어진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8월 위기라고 할 만하다.
위기 촉발은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터졌다. 미국은 어렵게 의회에서 채무한도 협상을 타결했지만, 증세 등의 별도 대책 없이 향후 10년 동안 2조 4천억 달러의 부채를 감축해야 하는 등 재정 긴축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우려가 높아졌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쏟아 부은 경기부양 자금과 비슷한 규모인 2400억 달러를 매년 더 지출하기는 고사하고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스나 아일랜드와 달리 EU의 주요 경제 대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가부도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채 조달 금리가 6%를 넘어서자 유럽 전체에서 위기가 확산되었다. 현재 그리스나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비교적 작은 국가들에 구제 금융을 해오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4400억 유로 가지고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지원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8월 5일 미국 증시가 문을 닫은 직후, 최대 신용평가 회사인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현재로서는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일지 아무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파장은 8월 둘째 주 아시아에서부터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특히, 증시에 이어 석유와 원자재 등 국제 상품시장이 추락할 가능성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 주말 석유가격과 각종 상품가격, 특히 금 가격마저 추락했다. 금융 시스템의 위험 뿐 아니라 실물경기의 현실적 침체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두 달간 미국과 유럽에서 석유수요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브렌트유는 8월 5일 금요일 올해 최고 가격이었던 125달러와 비교하여 105달러로 떨어졌으며 곡물가격과 구리 가격도 지난해보다는 여전히 높지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품가격 거품마저 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3년 동안 경기부양 실적이 없었다
▲ 그림1미국 고용률 지표의 장기 시계열 변화 추이(월별) ⓒ 새사연
8월 위기를 몰고 온 것은 단지 부실한 미국 부채한도 협상결과에 실망했거나 유럽 재정위기가 주변국가에서 중심 국가 군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수 년 동안 나름대로 각 국가에서 경기부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기가 크게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실물경제 성적표다.
특히 한때 파산까지 갔었던 세계적인 공룡기업들인 AIG, 씨티, GM 등이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을 갚고 실적을 회복하는 등 기업들은 점차 부실을 털어내고 있지만 국민들의 고용과 소득개선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소비지출도 증가하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 7월 29일 미국 상무부가 수정 발표한 미국경제 성장률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부터 미국경기의 하강세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2011년 1분기는 불과 0.4%성장, 2분기는 약간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1.3%에 불과하여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성장률이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당연히 임금 노동자 소득, 소매판매지수, 제조업 지수, 주택판매 지수 등이 모조리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실업과 고용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8년 이후 심각한 추락을 경험한 고용지표가 지난 3년 동안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 크루그먼은 미국경제가 아예 회복된 적이 없기 때문에 더블딥이라는 용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실업률이 오바마 정부 임기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 8%로 떨어지려면 매월 신규 일자리가 20만개씩 생겨야 한다. 그러나 8월 5일 발표한 비농업 신규 취업자는 12만 명을 밑돌았다. 고용률을 기준으로 보면 2008년 이후 추락하기 시작하여 한 번도 제대로 개선된 적이 없다. 지난 7월 고용률은 58.1%를 기록하여 1983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 그림2금융위기 이후 주요 사건과 대책 변화(2008년 8월 2011년 8월) ⓒ 새사연
2007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09년 1분기까지 자유낙하를 계속하다가 2009년 2분기~2010년 2분기까지 회복 국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경기상승을 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다시 하락국면으로 가고 있다. 결국 위기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온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적 금융회사의 부실이 국가로 이전되면서 국가 재정의 부실이 문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금융회사들에 구제 금융을 하고 경영이 악화된 기업과 쏟아져 나온 실업자들을 살리기 위해 경기부양정책에 집중하면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한 결과가 현재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도 할 수 있고, 사적 기업의 부채가 정부의 부채로 이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결과 경제 여건이 취약한 나라들부터 국가재정위기가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위기의 중심에는 재정위기가 있다.
'알려진 위기'이므로 확산 가능성이 적다?
어쨌든 현재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국면에 돌입한 것만은 틀림없고,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금융위기 자체를 수습하면서 누적된 국가의 재정위기와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은 실물경기 침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 등은 올해 안에 더블딥이 올 가능성을 50%이상으로 보고 있기도 하며 "더블딥을 피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의 현명한 정책과 행운이 동시에 따라주어야"한다는 기대하기 어려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승기조로 갈 것이라는 전망과는 판이하다.
그런데 이번 위기는 원인과 구조가 대체로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라는 것 때문에 2008년처럼 위험하지는 않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에는 실체를 알기도 어려운 각종 금융파생상품들이 금융회사 사이에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규모도, 전달 경로도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서 발생했다는 것과 비교하는 것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조만간 혼란이 수습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반대로 더 위험한 요인일 수도 있다. 우선 첫째, 알려진 위기이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된 정책 수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08년에는 위기가 터지자 곧바로 주요 국가들이 공조하여 금리인하나 구제 금융, 경기부양대책을 동시에 쏟아내면서 경제의 추가 하락을 방어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현재는 원인을 다 알면서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거나 알고 있는 정책 수단들이 시효를 다했다. 금융위기에 대처했던 정책 수단들, 중앙은행의 금리인하와 지불준비금 인하, 양적완화, 그리고 정부의 경기부양(재정지출) 가운데 대부분은 이미 쓸 수 있는 한도까지 썼거나 더 사용하기가 어려워졌다. 오바마 정부가 기업의 신규고용 촉진을 위한 세제 개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을 펴겠다고 하지만 어떤 정책수단을 사용할지는 미지수다.
둘째로, 2008년 위기가 유동성 위기로부터 폭발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정부와 국가의 '지불 능력 위기'라는 측면이 더 강하다는 데서 폭발성은 약할 수 있으나 장기 지속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2009년 가을부터 수차례 구제 금융을 받고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까지 위기가 계속 확산된 것은 현실적인 채무상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채시한만 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내놓는 답이 유일하게 '긴축'이라는 모호한 해법뿐이었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1년 넘게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셋째, 미국과 각국 정부의 미흡한 대책이 '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가운데 국민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고통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현재의 정치 역학구조가 근본적인 대책을 지연시키면서 위기의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공화당과의 역학관계에서 '증세'는 고사하고 감세 쪽이 오히려 보강되는 가운데 긴축 재정안을 합의한 상황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남유럽 국가의 채무위기에 대해 주요 채권자들인 독일과 프랑스 은행 등 사적 금융회사들이 고통을 일부 분담하는 '채무조정'을 하지 않은 채, 국민들의 고통 전담을 의미하는 복지지출 삭감 등으로 재정적자와 채무 축소를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과 금융회사의 고통분담 없이 국민들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현재의 정책 방향들이 문제를 어렵게 몰고 가는 것이다. 반면 사적 금융회사들에 대한 금융규제 방안은 G20 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논의는 되었으나 강력한 반발에 밀려 BIS기준 건전성 강화나 은행세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합의된 규제 방안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계속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일부에서는 남유럽을 비롯한 주요 채무국의 부채가 과도한 복지지출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줄여야 한다지만, 현재 재정위기는 명백히 2008년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재정수지와 국가부채는 2008년 이후 급격히 팽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장이 기대하는 거의 유일한 해법인 '3차 양적완화(QE3)'가 위기를 해소시켜 줄 것인가. 지난 6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차 양적완화를 공식 종료시켰을 때만 해도 3차 양적완화 조치 가능성은 잘해야 연말쯤 검토될 수 있다고 간주했다. 그런데 이미 양적완화 카드까지 정책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상태다.
그러나 지난 1,2차 양적완화 시행 결과를 보건대 전체적으로 2조 3천억 달러 이상을 국채매입을 통해 시장에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대했던 실물경기 회복은 미미했다는 평가다. 풀린 돈이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파급된 것이 아니라 다시 중앙은행으로 되돌아오거나 아시아 신흥국으로 유입되어 자산시장 거품만 부추겼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양적완화를 기대하지만 양적완화로 거둘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점점 회의적인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코스피 급락, 1869.45 마감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추고서 처음으로 맞는 8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코스피가 74.30p 내린 1,869.45에 장을 마감한 가운데 여의도 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 마감지수가 나타나고 있다. ⓒ 연합뉴스
주가 대폭락의 혼란 와중에 향후를 예측불허의 안개 국면으로 만든 것이 미국의 최대 신용평가 회사인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시킨 것이다. 강등당한 미국이나 홀로 강등을 강행한 S&P나 엄청난 모험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미국 정부가 앞으로 지불하는 이자 부담이 추가적으로 늘어난다거나, 모기지 금리 등 국채와 연동된 시중 금리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줌으로써 발생하는 경기둔화 효과 등 기술적 효과는 부차적이다. 신용평가를 시작한 1941년 이래 70년 만에 최초로 강등된 미국 신용등급은 기술적 의미 이상의 상징적 파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성 채권(국채)과 '무위험(risk free)'은 거의 같은 말일 정도로 세계 금융시스템은 미국 신용등급이 AAA라는 최고 등급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움직여왔다.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은 다른 모든 금융자산 평가의 기준이 되는 동시에, 마치 부동산처럼 수많은 여타 금융상품거래의 담보물이기도 하다.
또한 국채의 등급은 곧 미국 국채거래의 통화이자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주요 국가들은 외환보유고를 달러 자산으로 비축해 두고 있는데 , 그 자산이 바로 달러 표시 채권, 그 가운데 미국 재무성 채권인 것이다. 때문에 미국 국채 신용 등급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그렇지 않아도 약세에 빠진 달러 가치가 다시 한 번 근저에서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 국채 향배는 미국보다는 다른 국가들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사실 1999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72%였던 데 비해 2011년 3월 기준으로는 60.7%로 떨어질 만큼 장기적으로 달러 신뢰도는 약화되었다. 또한 미국의 시장성 국채 가운데 24%는 중국, 19%를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등 48.7%가 해외 보유자이다. 2011년 5월 말 현재 미국 재무부가 밝힌 자본 유출입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은 1조 1600억 달러, 일본이 9100억 달러, 영국이 35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채권자인 중국 등이 여전히 미국 국채 투자 비중을 유지하거나 늘릴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8월 4일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이 책임 있는 화폐정책을 펴 나감으로써 달러화 자산의 안전성을 보장해 주기 바란다"고 발언하는 등 벌써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향후 중국이 국채와 같은 금융자산이 아니라 원자재 같은 실물자산 쪽으로 투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일부에서는 미국 국채가 위기 국면에서 유일한 안전자산이고 달리 대책이 없기 때문에 미국 국채 선호경향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에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도 한다. 향후 미국 국채를 매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추가 매수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미국 국채가격은 추락하고 미국 정부는 국채로 자본 조달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것이다.
당장 미국 정부로서는 2010년 국채 이자 비용으로 414억 달러를 지불해야 할 만큼 부담이 큰 것도 문제다. 국채 보유자가 모두 미국 국민들이라면 간접적인 경기부양효과라도 있으련만 실제로는 연준 금고(Fed)에 있거나 중국, 일본 등 해외에 있는 채무가 대부분이므로 이자 비용의 절반은 해외로 유출된다. 한국의 채권 시장은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도 관심사다. 지난주까지 금융시장 혼란은 아직 주식시장에 그쳤고 채권시장에서는 여전히 외국자금의 유입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세계 주식시장과 함께 채권 시장에도 판도 변화가 올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정말 통화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
▲ 코스피 시장에 올해 첫 '사이드카'가 발동하는 등 코스피 지수가 전일 거래일(1943.75)보다 74.30포인트(3.82%) 내린 1869.45로 장을 마감한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고개를 숙이고 시황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가 현재의 재정위기를 거쳐 통화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8월 위기로 이런 우려가 점점 더 실제로 접근해 가고 있을까. 정확히 통화위기가 어떤 것인지는 애매하지만, 국제적으로는 달러가치 하락으로 인한 달러 기축통화체제가 흔들리면서 혼란에 빠지고 환율전쟁이 확산되는 것이 그 현상의 하나일 것이다.
이런 조짐은 이미 1년 전인 2010년 8월 말에 미국 연준(Fed)이 2차 양적완화를 발표하면서 한 때 가시화된 바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는 달러 가치를 하락시킴과 동시에 타국의 통화가치를 절상시키면서 환율전쟁을 촉발시켰는데 2010년 11월 서울 G20정상회의에서 겨우 봉합했다. 이런 조짐은 지금도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일본이 지난 8월 4일 4조 5천억 엔에 달하는 외환시장 개입을 했다.
환율전쟁 초기였던 2010년 9월 2조 엔 규모로 환율 개입을 했던 것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당시에는 달러 당 80엔을 저지하기 위해서였지만 올해에는 이미 7월 중순부터 80엔 선은 무너졌고 달러 당 77엔 전후를 오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일본으로서는 더욱 절박하다. 일본 기업들은 82엔을 무역수지를 위한 최저선으로 잡고 있다.
만약 미국이 3차 양적 완화를 시행한다면 이는 곧 바로 환율전쟁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3차 양적 완화로 경기침체를 막음과 동시에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하여 수출을 늘리려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내 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수출을 통해 경기회복을 도모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도 앞으로 긴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 결과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려는 미국의 행보는 중국과 브라질 등 BRICs(브릭스) 국가들과 충돌할 수 있으며 심지어 수출 대국들인 일본, 독일과도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지난 2010년 10월에 이미 나타난 것이다. 2008년과 달리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국제 공조가 지금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경제는 총체적으로 불안한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1차 위기를 불러일으킨 금융회사와 보수 세력의 여전한 기세로 인해 보다 과감한 대책은 지연되고 있고, 그럴수록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는 줄어들고 부채는 늘어나고 있다. 거의 유일한 희망인 중국경제와 신흥국 경제가 이번에도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새사연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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