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인터넷' 중독된 아이들 마음을 이발하다
정종연 첫 동시집, <이발하는 나무들> 펴내
▲ 시인 정종연시인 정종연이 첫 동시집 <이발하는 나무>(바보새)를 펴냈다 ⓒ 이종찬
내가 이발하거든요
너저분한 머리, 뻣뻣한 수염도 깎고
일 년에 한 번
새 옷으로 갈아입거든요
봄바람 부는 그 소식에
싹
둑 싹둑
해마다 이맘때면
또 싹둑
두 손 번쩍 들고
파란 하늘 뻗어 나가고 싶지만
요렇게 깔끔하게 다듬어진 내 모습
누구나 좋아하거든요
-'이발하는 나무들' 모두
아이들 마음과 하나 되기 위해 스스로 '어른 같은 아이'라 여기는 시인이 있다. 그는 네 계절이 지나는 동안 하늘과 별, 바다와 강, 바람과 비, 꽃과 나무, 풀벌레 등은 어떻게 바뀌는가를 아이들 마음에 심는다. 그는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서도 "길가에 꽃송이는 피곤하대요 / 가만히 내버려두면 / 되는 걸"(꽃송이의 바람)이라며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어른들을, 꽃을 만지고 꺾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빗댄다.
시인 정종연이 그다. 그는 이번 첫 동시집 <이발하는 나무들>을 펴내게 된 까닭을 동시를 쓴 초등학교 4학년 막내딸 윤지에게서 찾는다. 시인 막내딸 윤지는 '우리 가족'이란 동시에서 "우리 가족은 / 늘 아름다운 꽃을 피워요 // 즐거울 때는 웃음꽃 / 기쁠 때는 미소꽃 / 화날 때는 사랑꽃 피우는 // 아빠꽃 엄마꽃 언니오빠꽃"이라 쓴다.
정종연 시인은 막내딸이 쓴 이 동시를 보면서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는 눈, 시가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깨친다. 그는 동시야말로 아이들 마음을 살찌우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밑거름이라 여긴다. 따라서 그가 쓰는 동시는 막내딸 윤지에게 보내는 애틋한 사랑이자 이 땅 곳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더 큰 사랑이다.
시의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쳐 보세요
▲ 정종연 첫 동시집 <이발하는 나무들> 이 동시집이 지닌 특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우주 삼라만상이 변하는 모습을 아이들 눈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 이종찬
시인 정종연이 첫 동시집 <이발하는 나무>(바보새)를 펴냈다. 이 동시집이 지닌 특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는 동안 우주 삼라만상이 변하는 모습을 아이들 눈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네 계절이 지닌 독특한 모습과 그 속내를 동시란 거울에 환하게 비추며 아이들 마음속에도 대자연이 지닌 네 계절이 그대로 웅크려 있음을 노래한다.
이 동시집에는 모두 4부에 51편에 이르는 동시들이 백지에 첫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마음으로 다가온다. '산이 오라 하네' '담쟁이덩굴' '산골 여름 하늘' '꽃송이의 바람' '놀부 동네 흥부 동네' '귤 따기 체험' '별님 사는 하늘' '삼남매의 하루' '대보름 달맞이' '호숫가에서' '비 갠 어느 여름날' '별난 더위 사냥' '고추잠자리' '눈 내린 아침' 등이 그 시편들.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는
연인처럼 별을 사랑했다
별을 노래하고
별을 부러워하고
그리워 밤새우며 하나 둘 세면서
별을 우러러
별을 보면서
속삭이던 달콤한 사랑
-'별' 몇 토막
정종연 시인은 '별'을 바라본다. 그 '별'은 '지금의 나'가 아니라 시인이 어릴 때 바라보고 느꼈던 그 '별'이다. 그에게 있어 '별'은 어머니이자 누이이자 사랑하는 그 사람이자 꿈이다. 그가 어릴 때 노래하고, 부러워하고, 그리워 밤새 하나 둘 센 것은 '별'이기도 하지만 그 '별'은 이웃집 소꿉동무 순이 혹은 '지금의 나'일 수도 있다.
서울하늘에 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다
서울 하늘에는
왜 별이 없나요?
사람들이
다 따 버려서 없대요
왜 시골하늘에만
예쁜 별님이 살아요?
날마다 할머니가
닦아 놓아 그렇대요
-'별님 사는 마을' 모두
사실, 서울하늘에 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 하늘에 별이 없는 까닭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성냥갑처럼 빼곡히 살면서 고된 세상살이에 부대끼다가 아름다운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골하늘에만 / 예쁜 별님"이 사는 까닭은 도심으로 나간 자식을 행여나 행여나 기다리는 할머니, 그 반질반질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정종연 시인이 펴낸 이번 첫 동시집에서는 유난히 '별'과 '하늘'이 많이 나온다. "밤하늘이 깔리면"(담쟁이덩굴)이라거나 "서산 마루에 만두 하나"(초승달), "누가 저 하늘의 창을"(파란 하늘), "은하가 꿈틀거리는 / 눈동자에"(은하수), "높은 산 오르는 / 눈동자들"(대보름 달맞이), "비 갠 뒤 하늘은"(비 갠 어느 여름날) 등이 그러하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별은 아이들 '반짝이는 꿈'이요, 하늘은 아이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세상, 곧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있는 삼라만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산이 오라 하네" "대나무숲" "괴천 곰돌이" "귤 따기 체험" "가을 산" "뜨개질" "텃밭" "호숫가에서" "고추잠자리" 등에서는 이 세상에 있는 물상이, 그 세상살이가 아이들 마음에 어떻게 담기는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아이들 마음 곱게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마음놀림
"비 갠 뒤 하늘은 / 아까 내린 장대비를 다시 담은 호수 / 검은 눈동자로 콕 찌르면 / 방울방울 쏟아질 듯 // 뭔 일일까 벌써 가을이 / 나는 초여름 창을 닫고 / 풀숲이 두꺼워진 벌판에 벌러덩 누워 / 콧노래 부르네" -'비 갠 어느 여름날' 모두
정종연 첫 동시집 <이발하는 나무들>은 길거리에 선 나무들이 말끔하게 이발을 하는 모습을 통해 게임과 비디오, 과외에 멍든 아이들 마음을 이발시킨다. 그는 아이들 눈으로 대자연을 느끼고, 아이들 마음으로 대자연을 받아들이고 노래한다. 그 노래는 아이들 마음을 곱게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놀림이자 아름다운 마음놀림이다.
시인 임동확은 해설 ''고향의 말, 대지의 노래'에서 "정종연은 '글과 사람이 다르지 않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시인이 아니다"고 못 박는다. 그는 "그의 동시는 나 자신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 그려진 것"이라며 "그는 자신 밖에 일어난 일들을 그저 무심히 지켜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 밖에 일어난 일들과 자신의 마음의 변화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글로 표현되고 있다"고 평했다.
동화작가 고정욱은 "게임, 비디오, 컴퓨터, 학원, 과외... 어린이들을 병들게 하는 가슴 아픈 현실"이라며 "<이발하는 나무들>은 자연을 담아 동심을 치유하는, 작지만 강한 힘이 있다. 꽃과 나무, 새와 바람, 달과 하늘을 노래한 동시들이 따스한 햇살처럼 우리를 감싸주니까"라고 적었다.
시인 정종연은 196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2007년 계간 <만다라문학> 시인상과 2009년 <한국평화문학> 5집에 '홍매화', '매화꽃 피는', '보리밭'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지갑 속의 달>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데도>가 있다. 그린이 김민은 광주에서 태어나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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