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빠지면 사형, 그 시절 좋아할 수 있나
[서평] 금태섭 변호사의 <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가 8월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신의 함정> 출간 기념 금태섭 변호사와 함께하는 국민참여재판 아카데미에서 판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호영
사람들은 누구나 모든 일에 대해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크든 작든 자신의 선입견이 들어간다. 선입견은 점점 확신으로 굳어지고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한다. 금태섭 변호사의 <확신의 함정>이 바로 이 문제를 다뤘다.
금 변호사는 2007년 공격수 노릇을 하는 검사 생활을 그만두고 변호인을 수비하는 변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그러면서 법 전문가인 검사·변호사·판사가 때론 얼마든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가 비상한 그들도 실수할 때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확신의 함정>을 읽으면서 내가 직업 기자 생활을 하며 겪은 지난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법조인과 기자는 집요하게 사실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았다. 그들은 사실을 찾아내는 일이 그다지 간단치 않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법조인과 기자는 결론을 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늘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기사는 입체적으로 써야 한다."
"네가 믿는 사실은 진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현직 기자 시절, 선배들에게 들었던 이 두 마디의 말은 사실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려준다. 한 가지 일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들어 보고 충분히 반영해 보도해야 공정하고 올바른 보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밝힌 사실도 완벽한 사실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확신의 함정>의 머리말에는 지은이 금 변호사가 초임 검사 시절 겪었던 일이 담겨 있다. 금 변호사는 당시 특이한 피의자를 조사했다. 10대 후반 교도소에 들어가 12년을 복역하고 나와 다시 죄를 저지른 30대 자동차 절도범이었다. 과거의 죄는 그다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금 변호사는 하염없이 우는 그에게 3년형을 구형했고 보호감호 청구까지는 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금 변호사는 신문을 보다 깜짝 놀라게 된다. 남녀를 상대로 한 납치강도범의 명단에 그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알고 보니 판사도 비슷한 이유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그는 바로 풀려났다. 풀려난 그는 곧 죄를 저질렀다. 금 변호사는 황급히 과거의 수사 기록을 낱낱이 파헤쳤다. 폭행, 절도로만 생각했던 일은 알고 보니 데이트하는 남녀를 폭행해 돈을 빼앗은 아주 질이 나쁜 죄였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나는 판단을 그르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선입견, 오만, 그리고 불성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7년간 보호감호를 받게 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 척 보면 사건의 전말을 안다는 오만, 그리고 당연히 확인해야 할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게으름이 판단착오를 불러온 것이다." (<확신의 함정>, 14쪽)
원인 없는 범죄 없다
▲ <확신의 함정> 표지 ⓒ 한겨레 출판
"체벌은 때리는 사람에게나 맞는 사람에게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몸에 새겨진 폭력성은 절대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자라면서 맞은 매 중에서 한 번이라도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 매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그 모든 매는 예외 없이 감정이 섞인 매였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위의 책, 84쪽)
강한 처벌이 범죄 빈도를 줄여주진 않는다. <확신의 함정>에서 금 변호사는 학교나 가정에서의 체벌이 폭력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봤다. 최근 화제가 된 적이 있는 한 재벌가 출신 사업가의 노동자 폭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성매매 문제는 금 변호사의 시각을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으로 꼽힌다. 금 변호사는 8월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신의 함정> 출간 기념 금태섭 변호사와 함께하는 국민참여재판 아카데미에서도 관련 질문에 주저없이 답변했다.
"성매매 합법화, 참 어려운 문제죠. 노동의 연장이라는 논리가 더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노예를 절대로 시켜선 안 되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인정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매매를 단속하는 성매매특별법은 유지돼야 한다고 봐요. 물론 다른 의견도 얼마든지 들을 용의는 있고요."
지금의 판단, 달라질 수 있다
▲ 금태섭 변호사가 8월 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신의 함정> 출간 기념 금태섭 변호사와 함께하는 국민참여재판 아카데미에서 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호영
<확신의 함정>은 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법의 테두리에서 재단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과거의 음란물, 금지 서적이 현대에 와서는 문학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금 변호사는 예술을 법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유신시대의 추억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한다. 독재 시절의 향수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시절의 법조문과 사법절차를 보면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금 변호사의 생각이다.
"시간이 흘러 아직도 일부 매체가 신화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상당수 사람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민의 자유를 일부 제한했지만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지도자'가 이끌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는 박정희의 유신시대는, 그러나 수업을 빼먹는 학생을 사형시킬 수 있다는 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암흑의 시간이었다." (위의 책, 220쪽)
<확신의 함정>은 우리가 자연스레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의 예를 들기 위해 등장하는 소설은 또 다른 볼거리다. 소설가가 꿈이라는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확신의 함정> / 금태섭 지음 / 한겨레 출판 펴냄 / 값 1만 2000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