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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문구, 김동리+고은 등 유명문인 속내 발가벗기다

<이문구의 문인기행-글로써 벗을 모으다> 나와

등록|2011.08.11 17:26 수정|2011.08.11 17:26

고 작가 이문구 <관촌수필>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 이문구(1941~2003). 그가 살아생전 한국문학을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었던 문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나왔다. ⓒ 에르디아

"문인들은 사상의 옷을 공상의 옷을 입고 산다. 문인들의 에피소드는 상상을 초월한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행은 더욱 그렇다. 그 에피소드나 기행이 즐거운 것은 우리 삶의 저편의 일들이며 우리 마음속에서 한번쯤은 저질러 보고 싶은 일을 그들이 대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추천의 말'

<관촌수필>로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 이문구(1941~2003). 그가 살아생전 한국문학을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었던 문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나왔다. 우리 현대문학을 이끌고 있는 탁월한 문인 21명에 대한 세상 이야기를 담은 <이문구의 문인기행- 글로써 벗을 모으다>(도서출판 에르디아)가 그 책.

이 책에 실린 문인들은 순수문학계 큰 어른 김동리와 서정주에서부터 진보문학계 어른들까지 여러 가지다. 지역 문인 임강빈, 박용래부터 문단 한복판 문인들까지, 우리나라 문학동네 속내를 꼼꼼히 파헤치고 있다 해도 빈 말이 아니다.

이문구는 '이문구 문체'라는 새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개성이 톡톡 튀는 뛰어난 작가였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나온 이 책은 문인들 무도회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안긴다. 이들 21명에 이르는 작가들이 남긴 에피소드나 기행은 우리를 얽매고 있는 그 어떤 사회 금기로부터 우리들 마음 깊숙이 해방, 무한자유를 던진다.

문인 이야기 재미있게 쓸 작가는 이문구뿐이다

"선생은 제자와 후배를 가이 없이 사랑하셨다. 습작기에는... 심지어 제목 다는 요령까지 무엇 하나 소홀함이 없으셨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일단 등단하여 기성 작가 대우를 받기 시작하면 어디에 무슨 글을 어떻게 쓰든지 참견을 하지 않으셨다." -10쪽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몇 토막

작가 이문구는 <무녀도> <등신불> 등을 쓴 소설가 김동리(1913~1995)가 생전에 제자를 만나는 태도를 이렇게 쓴다. 김동리는 습작기에 있는 예비문인들에게는 토씨 하나 빈틈없이 날카롭게 지적했지만 일단 문인이 되고 나면 그 어떤 글이든 상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긴, 이미 프로 글쟁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이문구는 서라벌 예술대학 스승이던 김동리를 1961년부터 95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가 설날 세배를 올린 것으로도 이름 높다. 그는 "선생과 나는 처음부터 오사바사하게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라며 "따라서 선생을 기리는 이 자리에서도 이렇다 하게 늘어놓을 만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적었다.

<이문구의 문인기행-글로써 벗을 모으다>는 모두 4부로 짜여 있다. 제1부는 인물평(김동리, 신경림, 고은, 한승원, 염재만)이다. 제2부는 단행본 발문(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제3부는 문예지에 연재한 작가탐방(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조선작, 박용수, 이정환)이다. 제4부는 실명소설 추도사(이호철, 윤흥길, 박태순, 성기조, 서정주)다. 

에르디아 편집주간이자 시인 이흔복은 "이문구 선생은 살아생전 또래 문인에 대해 피붙이나 살붙이처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며 "우리나라 문인에 대해 그만큼 잘 알고 있고, 또 그만큼 그 이야기를 신명나게 쓸 작가는 이문구 선생 외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선생님 포복절도할 만한 입담이 귀에 쟁쟁하다"고 귀띔했다.

호호야로 통하는 것도 옳고, 젊은 아저씨로 부르는 것도 옳고

<이문구의 문인기행>이문구는 ‘이문구 문체’라는 새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개성이 톡톡 튀는 뛰어난 작가였다. ⓒ 에르디아

"용둔마을의 신동은 6세부터 10세까지 서당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논어> <맹자>를 읽었다. 이 신동은 상상력도 수준이 높았다... 하늘에 총총한 별마저 먹을 것으로 보여 별을 따달라고 울어 보챈 기억도 있다."-73쪽 '5세 신동의 50년' 몇 토막.

시인 고은(78)에 대한 이야기다. 이문구는 이 글에서 "가짜 고은이 팔도에 성명을 떨치며 득세할수록 진짜 고은은 죽을 지경이 되어갔다. 정말 고역의 고은이었다"라며 "그가 가짜 고은 하나를 잡은 것은 청진동 시대의 초기였다... 이튿날 가짜 고은에 대한 진짜 고은의 증언 요구가 있어서 경찰서에 가보니 웬 여자 하나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진짜 고은은 노총각인데 가짜 고은은 처자가 있었다."(77쪽 '5세 신동의 50년')고 썼다.

시인 신경림에 대해서도 "선생은 엄격할 데서 엄격하고 단호할 데서 단호하여 문득 서슬이 퍼렇지만 보통 때에는 부드럽기가 봄바람 같아서 아무에게나 호호야(好好爺)로 통한다"고 적었다.

그는 "미아리 너머 길음시장의 기름집 아줌마는 젊은 아저씨라고 불렀지만 국어책에서 '가난한 사랑의 노래'에 감동한 소녀들은 늙은 오빠 정도로 짐작할는지도 모른다. 어떠랴. 호호야로 통하는 것도 옳고, 젊은 아저씨로 부르는 것도 옳고, 늙은 오빠쯤으로 어림하는 것도 옳을 것이다."(39쪽 '가난한 사랑 노래')라고 되짚었다.

문학으로 녹아내린 문인들 자화상이자 현주소

"그는 조상 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 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의 행간에 마련해두고 살았다."-91쪽 '내가 왜 울어야 하나' 몇 토막.

시인 박용래 이야기다.

문학평론가 이경철은 "토정(土亭) 이지함과 이산해를 배출한 명문 한산 이씨 후손인 그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한 문장으로 유명했다. 걸쭉한 입담과 풍자로 버무려진 그의 문장들은 문단에서 일찍부터 행장기의 독보로 꼽혀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문구의 이런 행장기 쓰기는 문예지 뒤에 실리는 짧은 글에서부터 기자로 나선 취재의 본격 집필, 그리고 문집 앞뒤의 발문 혹은 평문, 가신 분에 대한 조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길이와 형식으로 표현되었다"며 "그래서 '명천 붓 끝에 한번 놀림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인이 아니다'는 농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을 섭렵했다"고 적었다.

<이문구의 문인기행-글로써 벗을 모으다>는 우리 문단에서 일어난, 그야말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에피소드와 유명 문인들 삶을 속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문인들 삶이 문학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문인들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삶과 문학 속에 녹여내는가에 대한 문인들 자화상이자 현주소다. 

작가 이문구는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를 마쳤으며 1966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살찐 토속어를 통해 우리 사회 산업화, 도시화가 몰고 온 잘못된 모습들에 대해 열띤 비판을 하면서도 전통적인 우리 삶, 그 아름다움을 새롭게 일구면서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다졌다.

작품집으로는 <이 풍진 세상을> <해벽> <우리 동네>가 있으며, 연작소설집 <관촌수필>, 장편소설 <장한몽> <산 너머 남촌>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요산문학상, 신동엽창작기금, 춘강문예창작기금 받음. 2003년 2월 예순둘에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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