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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주스 팔던 '동네다방'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동네까지 '점령'한 커피전문점...커피 안 마시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등록|2011.08.24 16:30 수정|2011.08.30 14:42

할리스 커피 신촌점신촌역에서 연대가는 길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한 건물 전체를 매장으로 쓰고 있다. ⓒ 강혜란


서울 지하철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와 연세대학교로 향했다. 투썸플레이스를 시작해 스타벅스, 엔젤리너스 등 수많은 커피전문점들이 길거리 가로수만큼이나 정렬되어 있다. 세어봤다. 신촌역에서 연세대 정문까지 500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는 15개의 카페 중 10개가 대형 커피전문점이다. 개중에는 '동네다방'의 규모가 아닌 기업체처럼 웅장한 모습을 지닌, 3층 이상의 것들도 있다.

나는 이른바 '카페브러리족'이다. 갑갑한 도서관 열람실을 떠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카페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 처음엔 거슬렸던, 매장 안에서 울려퍼지는 이름 모를 팝송에도 익숙해졌다. 옆자리의 왁자지껄한 수다에도 개의치 않는다. 딱 한 가지, 커피만 빼고.

언제부턴가 커피전문점들이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커피빈 등이 '별다방', '콩다방'이란 애칭을 가지고 번화가를 중심으로 동네 구석구석에까지 생겨났다. 요즘은 그 번식력(?) 때문에 '바퀴베네'란 별명까지 생긴 카페베네가 무서운 속도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커피전문점들이 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아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입맛이 씁쓸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주 찾던 카페들이 어느덧 커피전문점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남자친구와 함께하던 추억도, 커피 아닌 주스를 마시던 추억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커피전문점이 장악한 거리...싫어도 마셔야 한다?

내가 자주 가던 '토미(tommy)'라는 카페에선 오렌지/포도주스와 함께 살구주스를 팔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던 나는 살구주스를 즐겨마셨다. 때론 미숫가루쉐이크를 마시기도 했다.

딱 한 번 커피를 시켜 마셔본 적이 있었다. 주사위 만한 잔에 새 모이만큼 나오는 에스프레소가 신기해보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맛본 첫 커피의 추억은 처참했다. 도대체 한약보다도 더 입에 쓴 이것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동네카페들이 없어질 때까지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카페 가이아신촌역에서 연대로 가는 길에 위치한 카페.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주변의 커피전문점과 달리 문을 닫았다. ⓒ 강혜란


커피전문점이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커피가 내 몸에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그날 나는 늦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배가 아팠다. 그 뒤로도 커피를 마실 때면 배가 아파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엔 생각보다 카페인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페인은 그것이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두통과 불면증, 심장떨림, 신경과민 등을 유발한다. 카페인을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 위산의 과다분비로 위식도역류질환가 발병할 수 있다. 특히 임신부에게도 카페인은 위험하다. 카페인은 철분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빈혈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임신부 자신뿐만 아니라 태아까지도 빈혈에 걸리게 된다.

5천 원이나 주고 수입 병음료를 마실 수도 없고...

이런 의학적인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냥 '맛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미 거리를 장악한 커피전문점들 사이에서 일개 소비자인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공부하기 좋은 카페에서, 친구들과 놀기 좋은 카페에서 제대로 마실 수 있는 것이라곤 커피밖에 없었다.

스타벅스를 가보라. 메뉴판을 도배하고 있는 것은 온통 커피뿐이다. 물론 병음료로 나오는 음료수들이 있긴 하다. 생과일주스, 탄산수 등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진열장에 보이는 미국 골드메달의 탄산 애플주스와 무탄산애플주스는 무려 5000원에 육박한다. 영국 필굿드링크의 '크랜베리+라임주스' 또한 마찬가지다.

생과일주스도 아닌 수입 병음료를 5000원이나 주고 마시자니 도저히 지갑에서 돈이 꺼내지질 않는다. 옛날 동네카페에서 아주머니가 직접 갈아주시던, 혹은 타주시던 과일주스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심지어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된장녀 논란까지 떠오른다. 커피도 아닌 주스를, 그것도 수입산 병음료를 이렇게 비싼 값을 주고 마신다면 이것이야말로 된장녀가 아닐까?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거리엔 하나같이 커피전문점 일색이었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커피전문점에서 약속을 잡았다. 나에겐 대세를 거스를 능력이 없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물론 시럽을 듬뿍 담아.

스타벅스 신촌점매장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공부를 하는 학생, 담소를 나누는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커피전문점을 이용한다. ⓒ 강혜란


살구주스 만들어주던 아주머니...동네다방이 그리워

더 걱정되는 건 골목상권까지 점령한 커피전문점의 기세다. 어째서 우리는 골목골목 침입하는 대형슈퍼마켓은 염려하면서 커피전문점은 받아들이는 것인가. 커피전문점은 대부분이 대기업 혹은 다국적기업 소유다. <시사인> 180호 <카페베네의 습격, 골목을 점령하다>를 보니 이미 브랜드 커피전문점의 수가 20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동네 어딘가에선 커피전문점 개업을 위한 디자인공사가 진행 중일 것이다.

전통시장의 할머니들만, 치킨가게의 사장아저씨만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살구주스를 타주시던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도 카페 문을 닫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도 서민들, 영세업자였을 것이다. 커피전문점에 온 나라를 잠식한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쌍화차에 계란 동동~"까진 아니더라도 예전 동네에 한두 개씩 자리 잡고 있던 카페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테이크아웃이 아닌,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커피를 가져다주며 "맛있게 드세요" 인사하던 동네카페 아니 동네다방이 그립다.

다음 주엔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을 찾아가볼 생각이다. 그곳에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옛 카페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싶다. 사람들이 즐겨마신다는 미숫가루셰이크는 커피와 또 다른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강혜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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