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맞춤형 복지'라더니... 서민은 죽어간다

[주장] 늙어가는 대한민국, 복지를 성장 동력 최우선에 둬라

등록|2011.08.19 11:03 수정|2011.08.19 11:03

▲ 보건복지부장관인 진수희 국회의원 후원회 사무소 앞에 내걸린 전면 무상급식 반대 플래카드 ⓒ 안호덕


"복지는 소비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 복지서비스산업을 개발하고...(중략) '복지가 곧 투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지킬 공약만 하는 자신의 지지를 호소한 한나라당 대통령 예비후보가 경선을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내가 여성이라도 아이를 안 낳을 것 같다. 가난의 대를 끊으려면 국가가 돈을 들여서라도 제대로 된 보육을 시켜야한다. 보육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까지 국가가 보장을 해야 한다."

이 말은 2007년 10월 9일 한나라당 진수희 국회의원실 주최로 열린 육아선진화포럼 비전선포식에서 당시 대통령 후보이자, 현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이 한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고, 행사를 주최했던 한나라당 진수희 국회의원은 보건복지의 최고결정권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됐다.

지난 15일 이 대통령은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 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처럼 되어서는 안 되며 잘 사는 사람의 복지 때문에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해서 안된다는 요지의 8.15 광복절 경축사를 했다. 복지 포퓰리즘 논쟁의 또 다른 불씨를 지핀 것이다.

같은 날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찬반에 대한 투려 독려를 위해 광화문 일대를 돌며 일인시위를 했고 거리 곳곳에는 '전면 무상급식 NO'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진수희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원회 사무소가 있는 성수동 건물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어 입각한 지역구 후원회 사무소에도 '전면 무상급식 NO'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 육아 복지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는 진수희 국회의원, 그리고 현 보건복지부장관. 그의 지역 후원회 사무소에 걸린 전면 무상급식 반대 플래카드.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어이없다고 해야 할까?

탐욕스런 대형 자본과 부화뇌동한 무능한 정부

미국발 경제위기 소식에 세계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는 국가부도 사태에 처하기도 했다. 이 어두운 소식은 가득이나 움츠린 서민들의 마음을 더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일부 보수 신문이나 정권은 이런 경제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경제를 진단해야할 의무는 뒤로한 채, 때 아닌 복지망국론을 들먹이고 있다. '봐라. 저렇게 퍼주니 나라가 망하지 않느냐? 무상급식, 무상교육과 같은 복지 포퓰리즘에 휘둘려 나라가 거지꼴이 되어서 되겠느냐?'는 것이 정도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너무나 판박이처럼 똑같은 그들의 논리이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 미국. 이 나라가 경제적 패권을 위협받고, GDP 대비 국가 채무가 100%를 상회, 디폴트 위협에 내몰린 이유는 한가지로 요약하기 힘들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아 넣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일말의 답을 찾을 수 있다. 금융이자 제로 시대.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쉽게 돈빌려 집 사고 차 사고 소비를 부추겨 경제의 거품을 만들었던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있기 전 미국의 모습이었다.

정부는 끊임없이 대출을 알선했고 은행은 정부의 담보로 신용 상태도 확인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돈을 풀었다. 그러나 파티는 계속될 수 없는 법.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고 은행이 더 이상 돈을 빌려줄 수 없을 때 파티는 끝났다. 파티의 계산서를 받아든 수많은 국민들이 파산했고 은행들은 줄줄이 도산했고 국가는 수천억의 파티대금을 대납했다. 이른바 공적자금 투입.

지금 미국이 채무국으로 부상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나라의 너무나 비슷한 일자리 창출 없는 대출의 사탕발림. 일자리 없이도 신용 카드 한 장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최면을 건 탐욕스런 대형자본과 부화뇌동했던 무능한 정부. 빈부의 격차는 더 커지고 홈리스와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나는 미국 사회. 기존을 복지 정책마저 존폐를 기약할 수 없는 미국의 모습이다.

복지 때문에 망했다? 아전인수도 분수가 있지

그리스는 어떠한가?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후 1시에 퇴근하는 나라. 출근 후 1,2시간 티타임을 가지는 직장인들. 공무원들이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면 '정시출근 수당'까지 받을 수 있는 나라. 퇴직하면 자신이 받았던 가장 높은 연봉의 95%를 받을 수 있는 퇴직자들. 전체 인구의 23%인 260만명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고 GDP 12%가 연금으로 지출되는 나라. 이런 복지 과잉이 그리스를 국가 부도 위기로 몰아 넣었다고 한다.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지 않고 쓰기만 하는 소비문화는 개인이든 국가든,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영원을 기약할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경제 원칙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가 그리스와 비교해서 망국을 운운할 만치 복지 정책이 과한 나라인가?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비정규직, 야근에 철야에 24시간 맞교대가 관행처럼 자리잡은 노동 시간, 퇴직금 한 푼 챙길 수 없는 사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퀵서비스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사회보장 비용은 GDP 대비 20%를 넘는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5% 수준이다. 노인 자살율 세계 1위. 출생율 세계 최저. 이런 객관적인 통계를 두고도 과잉 복지 운운하는 처사는 너무 속보인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서구의 경제위기를 복지망국론과 연결 짓고자 혈안이 된 정부와 보수 언론들. 경제적 지표도 보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것인가? 아니면 비열한 것인가?          

"잘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느라,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됩니다." (815 경축사 중).

대통령의 경축사를 듣다가 갑자기 이건희 손자 생각이 났다. 대통령의 이 말은 수도 없이 반복되던 말이다. 정몽구 손자, 이건희 손자도 무상급식이 필요한가? 말은 '보편적 복지= 과도한 복지'를 설명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잘못 사용했다가 된서리를 맞는 경우도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취임초기 "돈 있는 노인들까지 무임승차 혜택을 주는 것은 문제"라는 발언을 했다가 노인회회장에게 직접 전화해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잘사는 사람들에게 공짜 점심을 주고 지하철 무임 승차를 하는 대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지를 집중하여 예산 낭비를 막고 효과를 높이자는 맞춤형 복지. 대통령의 발언도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맞춤형 복지.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예비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해 온 말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누구에게 맞추어 복지 정책을 펼치겠다는 건지 아직까지 예측조차 쉽지 않다. 없는 사람들에게 맞춤형 복지를 하겠다는데 저소득형 자녀들은 왜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열악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죽어가야 하나. 자식들에게 짐되기 싫다고 병든 노부부가 같은 목숨을 끊은 참담함을 두고 언제까지 '맞춤형 복지'라고 이야기 할런지. 이건희 손자만 쏙 빼서 급식비 받으려고 무려 182억 들여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해야 하는지? 잘사는 사람 그만두고 못하는 사람들만 복지 혜택을 주겠다는데 잘사는 사람은 아무 말이 없고 못사는 사람은 날마다 죽어 나간다. 참 희한한 복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늙어가는 대한민국, 복지를 성장 동력 최우선에 둬라

그렇다고 야당의 복지 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기도 힘들다. 아무 준비 없이 반값 등록금 집회에 나서서 반값 등록금 단계별 추진을 이야기했다가 곤욕을 치른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보면서 민주당이나 야당의 복지 정책 수준 또한 이 정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에 대한 철학이나 차별화된 정책도 없이 민심의 동향에 따라 급조해 내는 복지 정책. 포퓰리즘 논쟁을 만들어내는 것은 비열한 보수 언론이라도 일말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책임은 면키 어렵다. 육아, 교육, 노인 등등 그 많은 복지의 논쟁들 중 이슈를 선점하고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복지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된 것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과잉 복지 =국가 부도 사태'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한쪽에서는 0세부터 무상교육 운운하고 또 한쪽에서는 해당행위라고 치고 받는 한나라당. 민심을 저울질하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가기조차 벅찬 야당. 수도 서울 시장이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웃지 못할 풍경들. 이 코미디 같은 복지 논쟁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서민들은 삶은 참 팍팍하다. 국제적 조롱거리가 될 법한 투표를 앞둔 8월. 대학생들이 받아 든 5백만원 등록금 고지서를 보면서 복지를 위한 한걸음조차 앞으로 옮겨 놓지 못하는 이 정부, 이 정치권이 원망스럽다. 그리고 절망스럽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한 말처럼 복지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다. 출생율의 극감은 나라의 닥쳐올 재앙이다. 산업 인구와 소비 인구의 급격한 저하는 국가의 존립에 관계된 중차대한 문제이다. 복지가 소비가 아니라 투자가 되려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과잉 복지·맞춤형 복지 운운하며 고집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고 대학생들이 배움의 길을 잃고 있다. 결혼하기를 포기하고 애 낳기를 주저하고, 노인들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시간은 대한민국의 편이 아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이 성장동력의 최우선 순위로 복지를 놓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고 긴박하다. 정부와 여당, 야당 머리를 맞대라.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