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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김대중!"... 그땐 그랬지

[사진] '1995년 6·27 지자제선거' 때 유종근 후보 지지 유세 펼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등록|2011.08.18 18:10 수정|2011.08.18 18:10

▲ 아태재단 이사장 시절 구 군산역 광장에서 유종근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김대중 ⓒ 조종안


오늘(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2주기. 자료를 정리하다 16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군산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에 가게도 비운 채 쫓아나가 촬영해놓았던 사진 30여 장을 발견했다. 보고 또 보고, 혼자만 보기 그래서 2주기를 맞아 당시 상황설명과 함께 사진을 공개한다.

김대중 대통령(이하 김대중)은 남북통일, 아시아 민주화 등과 관련된 연구 학술활동 지원을 위해 1994년 자신이 세운 '아세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 시절인 1995년 6월 18일 군산에 온다. 전북 도지사에 출마한 민주당 유종근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서였다.

유종근은 미국생활을 하던 1983년 1월 김대중과 첫 만남이 이루어진 후 '김대중 팬'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김대중 선생 안전귀국 촉구대회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1987년 과1992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최측근에서 도우며 신임을 얻었다.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90년대 초에 귀국한 유종근 후보는 군산 출신이며 농림수산부 장관(1992년)을 지낸 강현욱 후보가 '인물론'을 내세우며 예상 밖의 선전을 계속하자 김대중에게 집중적인 지원유세를 요청했다.

1995년 구 군산역 광장으로 구름처럼 밀려든 시민들

▲ 도로변 건물 옥상까지 가득 메운 군산 시민 ⓒ 조종안


▲ 유세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의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인도까지 들어선 시민 ⓒ 조종안


익산(이리)에 들렀다가 오후 3시쯤 군산에 도착한 김대중은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거리에는 각 사회단체 이름의 환영 현수막이 넘쳐났고, 시민들은 김대중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구 군산역 광장 부근 건물의 옥상까지 가득 메웠다.

조금 일찍 현장에 나가 현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보니 수많은 사람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역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순간, 박정희가 유세장에 나오라며 비누, 설탕, 돈 봉투 등을 돌렸던 1971년 대선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 승용차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시민에게 에워싸인 김대중 ⓒ 조종안


김대중이 탑승한 승용차가 군산역 로터리에 도착하자 몰려든 시민들이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차가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김옥두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행비서들이 앞으로 나와 길을 터달라고 사정했으나 헛수고. 구름처럼 밀려오는 군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 규탄 구호를 외치는 시민단체 회원도 보였다. 승용차 차창을 때리면서 통곡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는데, '오송회 사건', '임피 간첩 사건' 등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치하에서 용공조작으로 억울하게 피해당한 가족으로 보였다.

시민들은 차에서 내려 연단을 향해 걸어가는 김대중을 에워싸고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했으며 간혹 눈물을 흘리는 노인도 있었다. 외국인 모습도 보였다. 김대중은 손을 들어 답례하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으나 사람들에게 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 연단에 오르는 김대중을 맞이하는 김길준 군산 시장과 채영석 국회의원 ⓒ 조종안


채영석 의원, 강근호 전 의원, 엄대우 연청부회장, 김길준 군산 시장 등의 인사를 받으며 연단에 오른 김대중은 김영삼 정부의 실정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경제전문가 유종근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김대중 나이는 71세. 그러나 그의 비판은 날카로웠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열망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그가 간절해진다

▲ 유세 중간에 손을 들어 환호하는 시민들. ⓒ 조종안


초여름 날씨가 심술(?)을 부리는 가운데 김대중의 유세는 30분 가량 이어졌다. 햇볕이 따가우면 신문지로 모자를 만들어 머리에 얹고, 비가 오면 우산을 받았다. 유도하는 이도 없는데 중간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울먹이는 아주머니, 심각한 표정을 짓은 아저씨, 무거운 표정으로 유세를 귀담아듣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가슴이 찡해지면서 감동이 벅차올랐다. 잠시 사진촬영을 멈추고 상념에 잠겼다. 시민들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광하면서 눈물을 보이는지 답을 찾고 싶어서였다.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기려고 가게를 비워두고 나왔는지도 생각했으나 시원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민자당은 '전북 2중대론', '전북 홀로서기론' 등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또한, 김대중을 향해 지역감정촉발 책임자라고 비난하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는 세대교체가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대선을 의식한 유치한 정치공세였다.

유종근 후보는 결국 1995년 '6·27 지자제 선거'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강현욱 후보를 제치고 전북 도지사에 당선된다. 그는 후보 출마선언에서부터 도지사 본선에 이르기까지 숱한 화재를 남기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1998년 선거에서도 승리, 연임도지사 기록을 세웠다.

김대중유세

ⓒ 조종안


잠시 16년 전에 촬영한 사진을 보며 추억을 더듬어봤다. 생전에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등 3대 위기를 주장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할 때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더욱 간절해지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3대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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