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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한곳이 튀었습니다, 천만 원 물렸어요

[공동기획] 세상을 바꾸는 안호덕의 제안

등록|2011.09.06 14:19 수정|2011.09.06 14:19
<오마이뉴스>는 2012년 총·대선을 앞두고 희망과 대안, 내가꿈꾸는 나라, 백만송이-국민의명령 등 3개 단체와 공동으로 'PT쇼! 세상을 바꾸는 나의 제안-정책만민공동회'(http://www.facebook.com/10000min)를 진행합니다. 시민들의 삶을 좌우하게 될 주요 정책을 여의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놓지 말고, 민생정책 제안운동을 벌이자는 취지입니다. 이에 앞서 <오마이뉴스>는 '세상을 바꾸는 000의 제안'을 기획 시리즈로 내보냅니다. [편집자말]
"사장님. 오늘 또 한군데 날랐습니다. 죽겠습니다"

여름휴가를 끝내고 인사차 들른 거래처 영업사업의 말.

"어디요? 얼마짜리래요? 그 집도 물렸어요?"

용산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업체가 미수금(물품 외상 대금)을 정리하고 새로이 물건을 주문해 보내 줬는데, 휴가 끝나고 돌아오니 연락이 안 된다는 거다. 새로 준 물건만 천여만 원. 피해자들이 서로 쉬쉬하고 있지만 자기가 파악한 피해업체만 10여곳 이상. 피해액도 2, 3억 원은 족히 넘을 거란다. 아침에 가서 잠겨있는 빈 매장만 확인하고 왔다고 한다.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하루 이틀 된 이야기도, 한 두번 있던 일도 아니다.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일. 긴 연휴나 명절이 끝나면, 이번에는 어디 도망(시장에서는 해먹고 날랐다는 표현을 쓴다)간 곳 없나 서로 정보교환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고, 도망간 업체가 자기와 관련이 없음에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왔다. 장사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한두번 겪게 되는 물건 주고 돈 떼이는 일. 오죽했으면 이런 일을 두고 '비싼 수업료 냈다'는 씁쓸한 농담이 통용 되겠는가?

오늘 또 한 군데 날랐습니다, 죽겠습니다

폐업처분 가게 간판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 박종국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업계에서 유통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 지방 상인들과 도매 거래를 주로 하다 보니 꽤나 많은 '수업료'도 냈고, 돈 받기 위해 법의 힘을 빌린 것도 수차례 된다. 지금도 진행형인 사건이 2건. 한 건은 2년이 지난 사건인데 거래하던 사장이 도박에 미쳐 아내 몰래 전세금마저 빼서 잠적했다고 한다.

그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나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 물건값, 빌린돈, 사채까지 합쳐 수억 원. 지금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고 그 아내의 친정집까지 돈 받을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한다. 또 다른 한 곳은 3년쯤 된 곳인데 물품 미수금 400만 원쯤 된다. 지방 소도시에서 컴퓨터 소매를 했던 그 업체는 나와 거래가 끊을 때쯤 폐업을 했다.

2002년부터 거래를 해온 그 업체는 관공서에 납품을 주로 하는 꽤 규모 있는 업체였다. 한달에 천여만 원 이상 주문을 했고 결제도 매달 15일이나 말일 약속한 금액만큼 꼬박꼬박 입금했다. 그러던 것이 2007년부터 주문이 줄어 들고 결제도 미뤄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안 받는 때가 많았고 약속한 결제일도 어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결제가 거의 안 들어오고 핸드폰도 내 매장전화 번호나 내 핸드폰 번호가 뜨면 받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전화를 빌려서 어렵사리 통화가 돼도 목소리를 듣고 끊어 버렸다. 더 이상 거래가 불가능한 상황. 직감적으로 법에 호소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다.

법원에 소액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그도 쉽지 않았다. 집에 우편물이 반려되었다고 보정서를 제출하고 거의 세 달 만에 승소 판결문을 받았다. 그러나 승소 판결문이 곧 미수금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법이 증명하는 것 뿐. 내가 아는 방법은 채무자에게 재산 상황을 제출하라는 것(재산명시신청)과 자가용이나 집에 동산을 압류하는 것(유체동산 압류 신청) 정도였다.

유체동산 압류는 채무자 연고지에 가서 신청을 해야 했다. 받을 수 있는 확신도 없이 이십여만 원의 경비를 쓰고 하루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유체동산 압류 신청을 했더라도 압류집행시 참관. 압류 물품 경매시 참관. 몇 번 오가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우선 우편으로 접수가 가능한 재산명시신청을 했다. 그러나 채무자 집에 송달(법원에서 우편물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여 재산명시신청이 기각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의도적으로 우편물을 받지 않거나,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채무자가 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채권자가 확인할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

전화 안 받고 폐업하고... 내 돈 어떻게 받나요?

이도 저도 여의치 않아 채권추심업체에 의뢰하기로 했다. '돈 받아 드립니다. 후불 가능. 100% 만족' 이런 전단지가 아침이면 매장 문 앞에 수북이 쌓이는데도 혹여 '불법 추심. 채무자 협박. 감금' 이런 좋지 못한 일에 연루될까 봐 인터넷에서 꽤 규모 있다는 추심업체를 알아봤다. 그리고 금감원에 연락해서 이 추심업체가 합법적인 업체인지 물어도 보았다. 합법적인 업체라는 대답을 듣고 추심업체에 연락을 하니 다음날 수석팀장 명함을 가진 사람이 출근 전부터 찾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실 소요경비 20만 원 선입금에 돈을 받으면 20%는 회수수수료로 준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나 금방 해결될 것 같이 호언장담하던 채권추심업체에서는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어렵게 전화를 하면 멀리 지방에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 쪽일 몇 건을 모아 같이 간다'고도 하고, '지방지사에서 일처리가 늦어 진다'고도 했다. 그리고 계약기간 1년이 다 되어 또 전화를 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수석팀장이라는 사람은 자기는 퇴사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계약했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신용평가정보(주)가 ××신용정보(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홈페이지 구성이나 대표 전화번호도 똑같다. 더욱 가관인 것은 홈페이지 대표전화로 전화를 하면 퇴사했다던 수석팀장의 핸드폰으로 연결된다는 거다.

그까짓 선금 20만 원 날린 셈 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계약서상 1년 안에 추심이 완료되지 못하고 계약자가 계약파기를 요청하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연장되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방법으로 채무자에게 돈을 받더라도 계약서상 20%는 채권추심업체 수수료였다.

그런데 채권추심업체 이름이 바뀌어 계약파기 통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금감원에 의뢰를 했다. 이런 이런 사정으로 채권추심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고 싶은데 연락도 안되고 주소도 알 수 없다고 하니까, 금감원 담당자가 그 업체는 자기들로서도 골치아픈 업체라고 했다.

'1년 전에는 합법적인 업체라고 상담해 줄 때는 언제고'라는 항의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참았다. 대신 지금도 홈페이지에서 이름만 바꾸어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데 제재해야 냐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그 추심업체에서 고의적으로 금감원 전화를 안 받고 자기는 그 해당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민원을 다시 제기해 담당자를 재배정 받으라 했다. 어처구니 없는 처사에 혀를 내둘렀다. 아직도 그 추심업체는 똑같은 도메인을 쓰고 똑같은 전화번호로 영업을 하고 있다.

법의 도움도 경찰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소규모 자영업자들

▲ 채권추심절차 ⓒ


유통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물건을 파는 것보다 수금하는 일이 더 힘들다. 유통업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용거래(외상거래)를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상거래 특히 도매업자와 소매업자 간의 상거래는 신용거래가 일반화되어 있다. 나 혼자 '외상 사절, 현금 거래'만 고집한다는 건 시장을 떠나야 된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도매에서 물건을 구입하여 소비자나 관공서에 납품하고 나서 돈을 주겠다는데 이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 물론 처음부터 외상거래를 하지는 않는다. 처음에 현금거래를 하면서 신용이 쌓이고 거래가 많아지면 외상거래가 늘어나는 것이다.

떼인 돈 때문에 주변 많은 상인들이 경찰서에 찾아가 고소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고소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민사소송을 강요받는다. 경찰측의 주장은 처음부터 돈을 주지 않으면 '사기죄'에 해당되지만 수차례 거래를 하면서 발생한 미수금은 거래 당사자 간의 금전거래이며 돈을 떼어 먹을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형사사건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판단의 근거가 현재 상거래로 보면 부당한 측면이 있다. 누가 처음부터 외상거래를 하겠는가? 당연히 현금거래로 시작해서 외상 거래를 하고, 거래가 많아지면 많은 물건을 외상으로 가져간 뒤 도주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현실인데, 거래가 이루어지다가 발생한 미수금 사건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TV나 신문을 보다보면 불법 추심에 대한 문제가 많이 보도된다. 감금, 폭행, 장기매매 듣기에도 끔직한 이런 사건을 보다 보면 채권자와 불법추심업체의 잔혹한 면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야간추심 금지, 밤에 전화로 독촉하는 일의 금지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어 채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법제화하려고 노력중이다.

물론 올바른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권을 유린하고 채무자에게 신체적 물리적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채권자의 입장에 서보면 채무자가 전화 안 받고 시쳇말로 '배째라'식으로 나오면 불법추심업체에 의뢰라도 하고픈 충동이 생기는 것이 어쩔 수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담이 있다. 주먹이 가까운 줄은 모르겠지만 법은 확실히 서민들에게 너무 멀리 있다. 이제는 수업료 많이 내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지만 처음 법원의 문턱을 넘었을 때는 서류 한 장 꾸미는 데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무엇을 물어봐도 법원은 일방을 위한 상담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변호사나 법무사를 찾아 가란다.

변호사나 법무사는 수임료로 내가 받을 외상값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수백만 원 소액 외상대금은 법무사에서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찰서에서는 민사사건이라고 고소 접수 안 된다고 하고, 법원에서 서류 잘못 되었다고 몇 번 퇴짜 맞고, 변호사나 법무사를 찾으면 수백만 원 수임료 요구하고, 이렇게 한바퀴 돌고나면 받을 돈 포기하거나 불법추심업체를 노크할 수 밖에 없다.

채무자는 보호받을 사람이고 채권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맞지않다. 고의로 부도를 내고,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보라고 막무가내인 채무자가 너무 많다. 채무자가 보호받을 권리는 인권의 권리이지 채무 자체는 아니다. 또 채권자는 당당히 돈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호해야 한다.

문제는 법의 정의와 형평성 문제이며 법의 용이(容易:어렵지 아니하고 매우 쉽다)함과 접근성의 문제다. 불법 추심업체가 판 칠 수 있는 것도 법보다는 주먹이 빠르고, 법의 절차를 통한 해결보다 다른 방법이 용이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의적인 악성채무 형사사건으로 다루고, 소액사건 법률 자문 받을 수 있었으면

소규모 자영업자로서 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고의부도나 미수금 미청산 폐업 문제를 겪어 오면서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소비자와의 거래는 관두고서라도 상인들 간의 거래 즉, 사업자 간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은 정당한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악성채권이나 고의부도 사건은 형사사건으로 다뤄 달라는 것이다.

수차례 거래로 신용을 쌓아 많은 물품을 외상구매 후 도주하는 것은 사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충분한 여력이 있는데도 '받을 수 있으면 받아보라'식으로 수년째 대금지금을 거부하는 것도 사기라고 볼 정황은 충분하다. 사업자 간 이뤄지고 있는 거래에서 '사기죄'를 좀더 폭넓게 해석하여 대체한다면 소액 미수금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소액사건(법률상 2천만 원 이하의 소송사건)에 대해 법률 자문과 도움을 받을 수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액사건의 경우 변호사나 법무사는 아예 사건 수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다고 불법 추심업체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찾아가 무료나 실비로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영업자 법률 지원센터가 있었으면 한다.

서울만 보더라도 많은 도매상가들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마트와 쇼핑몰에 예전 명성을 내어주고 있다. 그 대형 자본들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소규모 자영업자들. 법과 국가가 그들의 편에 서서 고의 부도와 악성 채무 문제만이라도 손쉽게 해결할 길을 열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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