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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SLS그룹 회장 누나 일기장까지 압수?

이국철 회장쪽 "별건수사 위해 무리한 압수수색"... 해경쪽 "표적수사 아니다"

등록|2011.08.23 11:11 수정|2011.08.23 11:11
지난 3월 16일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누나인 이아무개씨가 살고 있는 부산시 해운대구 소재 아파트에 통영해양경찰청 소속 경찰관 2명이 들이닥쳤다. '압수수색'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씨는 이들은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이씨의 일기장과 차량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반발했다.  

결국 압수수색을 진행했던 경찰관 2명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일기장 등은 해경의 수사방향이던 '유조선 인허가 서류조작'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경찰은 왜 수사방향과 무관한 일기장(비망록 형식)을 압수수색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이국철 회장 주변을 수사하고 나선 것일까? 벌써부터 그 최종 목표가 이 회장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이미 지난 2009년 9월부터 수개월간 창원지검 특수부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돼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래서 애초 검찰이 겨냥했던 '비자금 조성-정관계 로비'를 캐지 못하고 이 회장마저 구속시키지 못하자 추가혐의를 잡아내기 위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하지만 통영해경 쪽은 "이씨의 일기장을 압수수색한 적 없다"며 "표적수사도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비자금 의혹을 받고 있는 350만 달러와 관련해서는 "혐의점을 찾을 수 없어 수사종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이국철 SLS그룹 회장 매형인 황아무개 SP해양 대표 자택 압수수색영장과 압수목록. ⓒ 오마이뉴스


"일기장 읽으며 키득키득... 모멸감 안겨준 압수수색"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법원의 압수수색영장과 해경의 압수목록, 이씨의 고소장, 탄원서 등에 따르면, 이씨의 남편이자 이국철 회장의 매형인 황아무개 SP해양 대표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이 발부된 것은 지난 3월 15일이었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SP 해양호 수입신고필증 원본 ▲수입통관된 업무와 관련된 자료 ▲회계장부 ▲내항화물운송사업 신청 관련자료 ▲SP 해양호 해상화물운송 사업 관련자료 ▲SP 해양호 구입과 운영관련 예금통장, 컴퓨터, 메모지, 수첩 등을 '압수대상'으로 적시했다. 또 '압수수색 장소'는 황 대표의 부산 해운대구 자택과 SP해양 사무실, 법인․개인 차량 등으로 한정했다.

당시 경찰은 SP해양이 일본에서 구입한 중고 유조선의 인허가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1월부터 내사를 벌였다. 선령(선박의 나이)이 15년 이상이면 연안운항을 할 수 없는데, SP해양이 서류를 조작해 15년을 넘긴 중고 유조선의 운항허가를 받아냈다는 것이 첩보의 핵심내용이었다.    

'SP해양 유조선 인허가 서류조작건'을 내사하던 통영해경 소속 경찰관 2명은 다음날(3월 16일) 오전 10시 황 대표의 부산 해운대구 자택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1시간여 동안 수색한 뒤 노트북 1대와 4개의 통장 등을 압수해갔다. '압수목록'에는 '노트북 1대와 4개의 통장'만 압수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황 대표의 부인인 이씨는 자신이 작성한 일기장의 일부를 압수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비망록 형식의 일기장에는 금전 출납뿐만 아니라 제 개인 감정을 적은 메모까지 들어 있다"며 "경찰관들이 몇 권 분량의 일기장을 압수수색했는데 압수수색이 다 끝난 뒤 확인해 보니 한 권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압수수색이 이루어진 바로 직후에 해경에 항의했지만 '압수하지 않았다'는 얘기만 돌아와 검찰에 고소하고 통영해경 감찰팀과 해양경찰청장, 청와대 신문고 등에 탄원서를 냈다"며 "과잉수사나 표적수사가 아니라면 이렇게 압수수색할 수는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한 이씨는 검찰에 낸 고소장에서 "피내사자 신분이었던 남편이나 내사사실과 관계없는, 저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겨 있는 일기장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키득키득거렸다"며 "SP해양은 2007년 1월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작성된 고소인의 일기장을 압수수색한 것은 압수수색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저는 '남편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일기장이고, 이것은 이 사건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항의했지만 경찰관들은 '억울하면 변호사에게 전화하라'면서 으름장을 놓거나 소리를 질렀다"며 "(특히) 이 사건과 전혀 관련없는, 아들이 군대에서 보낸 편지, 10년이 지난 가계부, 남편의 족보 등을 하나하나 읽으며 모멸감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했다.

압수수색 이후 이씨는 모강인 해양경찰청장에게 보낸 탄원서에서도 "판사가 발부한 수색영장에는 분명히 SP해양호 선박관련 문서와 통장 등만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색영장과 전혀 상관없는 제 일기장 등 무려 10년 전 개인사물까지 뒤졌다"며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무시한 일련의 압수수색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둔 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조선 인허가 서류 조작' 확인하고도 계속 수사하는 이유

압수수색의 범위를 벗어난 수사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압수수색영장에 적시돼 있지 않는 이씨 소유 차량도 압수수색했다. 법원에서는 SP해양 법인과 황 대표의 차량에 한해 압수수색하라고 적시했지만 이씨의 차량까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씨는 "경찰관들은 압수수색 대상도 아닌 제 소나타 차량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차 열쇠를 달라고 다그쳤다"며 "제가 '왜 압수수색 영장대로 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막무가내여서 압수수색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압수수색을 하기 이전에는 이씨의 남편인 황 대표가 다니던 치과병원 원장까지 조사했다. 황 대표가 경찰의 소환조사에 '치근단 종양 제거 수술'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하자 경찰이 치과병원 원장에게 전화해서 수술여부 등을 확인하고 사실확인서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는 것. 

황 대표는 "해경이 원장에게 '진료 사실이 있느냐, 진료 사실 확인서를 6하 원칙에 따라 작성해 제출하라'로 요구했다"며 "나중에 진료 확인서를 보내긴 했는데 원장은 제가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일기장과 차량 등까지 압수수색한 것일까? 일기장 등은 경찰이 최초 수사방향으로 내세운 '유조선 인허가 서류조작'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수사목적'을 가지고 내사와 수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황 대표는 "유조선 인허가 서류 조작이 수사방향이었다면 항만청에 가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며 "하지만 경찰은 이국철 회장이 SP해양에 비자금을 은닉했다고 보고 유조선 인허가 서류조작 수사를 빌미로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SLS그룹 관계사 중에서 SP해양이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비자금 은닉처'로 보고 개인 메모지까지 10상자를 압수해갔다"며 "SP해양을 뒤지면 은닉자금이나 비자금이 나올 것이고 이것을 가지고 이 회장을 엮을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결국 지난 2009년 창원지검 특수부 수사에도 구속되지 않았던 이국철 회장을 잡으려고 한 것 같다"며 "하지만 지난 1월부터 내사해 7월까지 수사했는데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7월말에 수사자료들이 검찰(통영지청)로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SP해양의 전직 고위임원인 K씨도 "'유조선 인허가 서류 조작' 여부는 운항허가신청서와 선박등록증 등을 확인하면 금방 드러나는 문제"라며 "내사를 통해 사문서 조작을 확인한 경찰이 무리하게 자택까지 압수수색한 것은 수사의 초점이 이국철 회장에게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별건수사를 통해 '비자금 조성'을 확인하려 했다"

▲ 지난 3월 16일 황아무개 SP해양 대표 자택을 압수수색중인 통영해경 소속 경찰관들. ⓒ 오마이뉴스

경찰은 싱가포르로부터 350만 달러(약 40억원)의 선박 매각대금이 SP해양으로 들어온 것에 주목했다.

SLS중공업은 지난 2009년 예인선 한척을 건조하기로 SP해양으로부터 40억 원에 이르는 선박대금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의 SLS그룹 수사 등으로 인해 SLS중공업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SP해양에 예인선을 인도하지 못했다.

이에 SP해양은 선박을 빨리 인도하든지 미리 지급한 선박대금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SLS중공업은 자신과 거래하던 싱가포르의 한 선사에 예인선 매각을 중개했다. 이 과정에서 350만 달러가 지난 2010년 3-4월께 SP해양으로 입금됐다.

경찰은 SP해양이 '불필요한 선박'을 SLS중공업에 주문한 뒤 매각대금을 미리 지급함으로써 이국철 회장의 비자금을 조성해주었다고 보고 있었다. 이것이 '유조선 인허가 서류 조작'을 확인하고도 수개월 동안 계속 수사를 진행해온 이유다.

앞서 언급한 A씨는 "350만 달러는 부산은행으로 입금돼 수표로 모두 출금됐기 때문에 그 수표를 추적하면 사용처가 다 드러난다"며 "이 돈은 경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회장에게 가지 않고 SP해양 회사자금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은 저를 참고인으로 불러 '유조선 인허가 서류 조작'과는 상관없는 '350만 달러' 거래 의혹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 돈과 이 회장의 연관성을 끌어내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다"며 "이에 제가 '이 회장에 안간 돈을 어떻게 갔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A씨는 "경찰이 내사를 통해 '유조선 인허가 서류 조작'을 사실로 확인했으면 그것을 검찰로 송치하면 되는데 수사를 질질 끌고 있다"며 "'350만 달러'라는 별건수사를 통해 이 회장을 비자금 조성으로 엮으려는 의도가 없다면 이렇게 장기간 수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은 SLS그룹이 정관계 로비로 급성장했다는 판단 아래 SLS그룹을 수사했지만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며 "그로 인해 대대적인 '토착비리 수사'에 나선 대검 중수부의 자존심과 체면이 깎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창원지검 특수부는 지난 2009년 9월 '400억 배당한 뒤 횡령해 열린우리당 자금책 역할 및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를 한 혐의'로 SLS그룹을 압수수색하고 같은해 11월 이 회장을 소환조사했다. 하지만 검찰의 강도높은 수사에도 이 회장에게 떨어진 최종 혐의는 두 건의 '허위공시'가 전부였다. 창원지검에서 7명의 검사를 동원하고 대검에서 3명의 검사를 파견한 수사치고는 아주 초라한 성과였다.

이 회장은 주변의 권유를 받고 자신이 '열린우리당 자금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현 정권 실세와 연관된 폭로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통영해경쪽 "350만 달러 혐의점 못찾아 수사종결 예정"

하지만 황 대표의 자택 압수수색에 참여했단 통영해경의 한 관계자는 "이씨의 일기장을 압수수색한 적 없다"며 "검찰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의 추가질의에 "공보담당을 통해서 하라"고 전화를 끊었다.

통영해경 지능수사팀의 한 간부는 "유조선 인허가 서류조작은 사실을 확인했고 7월 말쯤에 검찰로 송치했다"며 "하지만 350만 달러건은 혐의점을 찾지 못해 검찰지휘를 받아서 종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50만 달러 별건수사'와 관련, 이 간부는 "(별건수사가) 안 되는 게 있나?"라며 "혐의점이 나오면 검사 지휘를 받아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350만 달러건은 아직 종결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간부는 "표적수사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내사는 1월부터 했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3월부터 시작했다"고 '장기수사'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간부는 "본인은 압수수색과정에서 일기장을 압수해 갔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수사팀원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며 "검찰에 고소돼 있으니까 그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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