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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여, 이 시집 아내한테는 보여주지 마라

[서평] 고은 시집 <상화시편>

등록|2011.08.22 09:08 수정|2011.08.22 09:08

▲ <상화시편> 표지 ⓒ 창비

시를 써보겠다고 까불기 시작한 게 벌써 13년 전인가.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동아리방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문예반에 가입했다. 시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다가 억지로 쓰게 된 시. 그런데 팍팍한 수험생 시절에 배설의 구멍이 생겼다는 데서 뜻밖의 쏠쏠한 재미를 맛본 뒤로는 시키지 않아도 시를 쓰게 됐다. 물론 신춘문예는커녕 변변한 문학상 하나 못 받고 13년째 '2군 유망주'로 살고 있지만.

시 쓰는 사람으로서 내 아킬레스건은 '사랑시'였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연애라면 참 지겹게 해봤는데, 그 흔한 사랑시를 나는 도무지 쓰지 못하는 거다. "넌 시 쓴다는 애가 왜 그러냐" 하는 타박에, 브레히트의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한 구절을 들려주거나 고은이나 박노해, 김남주 같은, 이른바 민족시, 민중시를 쓰는 시인들의 이름을 핑계로 댔다. 아, 그런데 이게 뭔가. '대민족시인' 고은이 사랑시로 시집을 내다니.

"고은의 53년 문학인생 최초의 사랑시집"이라는 카피를 달고 나온 <상화시편>(창비). '상화'가 무슨 뜻일까 싶었는데, 고은의 아내 이름이란다(중앙대 영문과 이상화 교수). 헐! '무뚝뚝'을 천명으로 여기며 사는 이 경상도 사내는 손발이 오글거린다. 내일모레 팔순을 바라보는 영감님(?)이 이래도 되는 건가. 표지를 날개를 보니 "표지화 고은"이라는 말이 선명하다. 표지 그림까지 직접 그렸다니. 그야말로 '대~박'이다.

고은은 9쪽에 달하는, 시집으로서는 꽤 긴 서문에 이 '오글거리는' 시집을 내는 까닭과 배경에 대해 말한다. 아내의 사랑 없이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고 1983년(결혼한 해) 이후의 문학적 결실조차 없었을 거라며, 아내는 "정신의 삶을 만들어주고 내 후반의 영감을 이끌어주는 영감의 화신"이라고 말이다.

고은이 시를 써온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시인에게 예술가가 아니라 '지사'의 삶을 강요해오지 않았나. 그동안 고은이 쓰지 못한, 또는 쓰고도 발표하지 못한 사랑시를 묶어내는 것으로, 고은은 그 세월 동안 자신을 '살려준' 아내한테 고마움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30년 동안이나 '까먹은' 점수를 이런 '폭풍고백'을 통해 만회하려는 '남편' 고은의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져서 씨익 웃게 된다.

30년 동안 참아온 사랑을 고백하는 '남편' 고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라는 아내의 시 이후에 고은의 사랑시 120여 편이 이어진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3년도 아니고 30년 동안이나 숨겨놓고 살았을까. "도저히 말할 수 없어서/ 참고 참았다가 천분의 일 실수로 나와버린"(<회상 이후>) 사랑이란 말 앞에서 수줍어하는 고은은, "사랑은 너무 늦게 내 몸에 박힌 화살들이었다"(<지각>)라며 이제사 이런 고백을 늘어놓는 자신을 반성한다.

고은에게 아내는 어머니, 하늘, 그리고 신이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고/ 그뒤로는 아내가 다시 낳았다"(<약력>)라며 아내를 어머니라 칭하더니, "푸른 하늘의 한 부위가/ 그의 몸으로 내려왔습니다"(<종각 앞에서>), "나의 신은 지극히 사적인 신이다" "세종/ 이상화 둘이다"(<사적인 신>라며 아내를 하늘과, 신과 하나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처음이다/ 아직도/ 처음의 처음이다// 삼십년의 삶 무효"(<아직도 처음이다>)라는 말로, 사랑을 말하는 일흔여덟의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선언을 한다.

30년 동안 익어오다 이제사 폭발하는 대시인의 사랑 앞에 내가 점점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내가 사랑시를 쓰지 못하는 것은 서정시를 허락하지 않은 엄혹한 세상 탓도 아니고 내가 사랑에 관한 낱말들을 잘 몰라서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사랑이 부족해서였다. '나는 이런 사랑 해본 적 있나', '나는 이런 사랑 하고 있나' 자꾸 되묻게 된다. "사랑은 지금이다/ 사랑은 '하였다'도 '하리라'도 아니다. 언제나 사랑은 '한다'이다"라는 말이 가슴을 콕콕 찔러서 영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런데 시가 좀 어렵다. 그동안 <만인보> 등에서 본 문장과 달라서일까, '이거 어디 대학 안 나온 사람은 읽기나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시인과 영문학 교수님 사이에 오고가는 말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사랑도 꼭 이렇게 유식하게 해야 하나 싶다.

요즘 시인들이 낯선 외국 지명이나 인명을 맥락 없이 자주 쓰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낱말들이 툭툭 튀어나오면 '아, 이 시는 나 같은 무식한 사람이 읽는 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책장을 덮게 된다. 이 시집에도 그런 시가 가끔 보였다. 꼭 뭔지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낌으로 읽고 넘어가라면 할 말 없지만, 느낌도 뭘 알아야 느끼지. 인터넷 검색까지 해가며 시를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묵히지 말고 지금 말하자, "사랑한다, ○○아!"

그래서 이 시집에서 내가 제일 좋게 읽은 시는 <자전거>다.

빈털터리인데/ 창비에서 원고료가 왔다/ 살았다/ 살았다/ 무턱대고 자전거 한 틀을 샀다/ 자전거에/ 상화를 태우고/ 상화 남편은 견마 잡혔다/ 삼단 자전거 바큇살이 찬란했다/ 오르막 허위허위 올랐다/ 내리막 어질어질 내려갔다/ (줄임) 상화는 누이인 듯 누나인 듯/ 상화 남편의 서투른 이야기를 듣는다/ 자전거 바큇살에 끼인 풀이 떨어져나갔다/ 해가 구름 속에서 나온다 - <자전거> 가운데
 
가난한 전업시인의 삶인데, 절절하지만 불쌍하지는 않다. 간만에 생긴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자전거를 사서, 퇴근하는 아내를 태우고 두런두런 오늘 쓴 시 이야기를 하는 시인. 자신을 '견마'라 하면서 아내에 대한 존경을 말하는 남편. 내 여자친구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아, 오해하지 마라. 마누라 '등쳐먹고' 살겠다는 게 아니라 외제차가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도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말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나니 아내나 여자친구한테 절대 선물해선 안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낭만적으로 보이겠다고 선물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이 확실하다. 분명 감동을 주는 데는 성공하겠지만 이내 "팔십 노인도 이렇게 로맨틱한데 새파랗게 젊은 당신은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 좀 보고 배워!" 하는 소리가 따라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품 구두나 가방이 아니라 이런 시에 감동받는 여자라면 훌륭한 건가?

문득 고은의 아내, 이상화는 이 시집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진다. 남편이 30년 동안 쓴 사랑시를 백 편이 넘게 모아서 표지 그림도 직접 그리고 제목에도 아내의 이름을 넣어서 펴낸 시집을 받아든 아내의 기분이라. 감동에 '폭풍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진작 이렇게 좀 하지, 왜 30년이나 참았냐?" 하고 눈을 흘겼을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이여, 이 시집, 아내나 여자친구한테는 보여주지 말고 혼자 몰래 몰래 읽자. 그리고 30년이나 지나 말하지 말고 지금 말하자. "사랑한다, ○○아!"라고.
덧붙이는 글 <상화시편>(고은 씀, 창비 펴냄, 2011년, 292쪽,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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