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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품이 시간 따라 변하고 행위예술까지

'오늘의 프랑스미술'전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10월 16일까지

등록|2011.08.21 14:46 수정|2011.08.21 14:46

▲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가방 닫은 사이즈)' 39.1×34.9×7.6cm 혼합재료 1941. 뒤샹은 오브제미술을 창시한 현대미술의 거장.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김형순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배순훈)은 10월 16일까지 과천본관에서 '오늘의 프랑스 미술: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전을 연다. 이번 전은 세계미술전 시리즈의 하나로 2009년부터 스페인, 인도, 오스트리아, 미국, 호주 현대미술전에 이은 것이다.

이번 전에는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수상자(4명) 및 최종후보자(12명) 16명 작가가 참여한다. 국제적으로도 지명도가 높은 작가들이다. 클로드 레베크(Claude Lévêque)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작가이기도 하다. 작가마다 개성이 강해 다른 나라 작품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지호 학예연구1팀장도 이번 전 인사말에서 "프랑스는 새로운 것, 기발한 것에 집착하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다르게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한다."며 "예술가란 창조자보다는 새로운 걸 발굴, 모색, 연구하는 자로 보는 관점이 크다"고 소개한다.

문화민주주의, 우리시대의 화두

▲ '프랑스 현대미술 국제화 추진회'(아디아프 ADIAF) 질 퓌슈(Gilles Fuchs) 회장의 기자회견 장면 ⓒ 김형순


이번 전은 1994년 창립한 '프랑스 현대미술 국제화 추진회'(아디아프 ADIAF)와 함께 기획되었다. 이 단체가 2000년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Le Prix Marcel Duchamp)'를 제정 매년 4명의 후보자를 뽑고 그 중 1명을 최종수상자로 정하고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를 연다.

아디아프 질 퓌슈(Gilles Fuchs)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단체의 성격과 특징을 "아디아프는 개인소장가 중심으로 회원은 300여명이고 나이와 사회계층도 다양하고 미술전문가 만이 아니라 애호가 많다"며 "예술이 지금까지 소수 엘리트층집단이 향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는 문호를 개방하여 누구나 참여케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18세기 프랑스사회에서 지성을 몸소 실천한 '신사도'(Honnête Homme)의 전통을 살려 문화향유의 대중화와 문화민주화에 힘쓴다."고 말한다. 또한 "지금 일본도 모리미술관에서 프랑스현대전이 열리고 있는데 양국의 관점과 시각이 반영됐다"고 전한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전시작품

▲ 미셸 블라지(Michel Blazy 1966-) I '거품 샘' 쓰레기통, 거품액 압축기, 플라스틱, 튜브 변화는 물질 2007 ⓒ 김형순


우선 못 말라지는 설치미술가이자 화학자인 미셸 블라지의 작품을 보자. 그는 부패균의 증식과 같은 화학작용과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매시간 작품의 모양이 변하고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선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전시작품 스스로 행위예술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도 "잃어버리는 것도 창조되는 것도 없으며 모든 건 변한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점을 구현한 셈이다. 뒤샹도 그랬지만 이렇게 주변에 일시적이고 하찮고 흔한 물질도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다면 기존의 예술체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술을 탄생시킬 수 있다니 놀랍다.

파리 거리에 갑자기 나타난 구름떼

▲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1972-) I '프로젝션' 베타 비디오, 컬러 비디오작품, 설치미술 3분 2003-2005 ⓒ 김형순


2008년 마르셀 뒤샹 수장자인 로랑 그라소, 이번에 선보인 '프로젝트 연작'은 파리 거리에 갑자기 몰려온 구름떼가 소재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격한 운동감이 강력한 인상을 준다. 관객은 눈앞에서 구름떼가 가져다주는 위력에 넋을 놀 정도로 압도되면서 몸으로 전해지는 묘한 쾌감을 맛보게 된다.

그는 이렇게 빛, 소리, 전기, 자기장처럼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은 요소를 상상하고 시각화하는 작가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주변엔 예술로 가득 차 있다. 작가의 몫이란 역시 보이지 않는 것에서 뭔가 새로운 걸 찾고 평범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굴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작곡가에서 설치미술가로 변신

▲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Celeste Boursier-Mougenot 1961-) I '무제' 나무 바닥, 블루 라이너, 펌프, 히터 기더그린 사의 도자그릇 750cm(지름) 2009-2011. 국립현대미술관 설치작품(오른쪽 상단) ⓒ Celeste Boursier-Mougenot ⓒ Celeste Boursier-Mougenot


이번에 1990년까지 주로 작곡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설치미술가로 변식한 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 작가의 작품을 보자. 그의 실험적 작품은 소리와 형태의 상호작용 속에 생성된다. 이런 작품은 장소 특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내는 커다란 공명에 만족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작가의 독창성은 여러 물체와 오브제를 악기의 형태로 변형시켜 거기에서 음악적 잠재력을 축출하고 이를 확장시키는 데 있다. 위 작품은 펌프에 의해 생성되는 전류효과로 회전하고 저수조 안에서 도자기가 부딪치면서 땡그랑 소리를 낸다.

이 작가에게 음악과 미술의 관계를 물었더니 "전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이젠 관객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적 향유도 이젠 시각예술과 접목할 때 상생하죠. 콘서트홀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많은 관객이 넓은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예술적 감각을 잃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봐요"라고 답한다.

엉뚱하게 생각하고 뒤집어 상상하기

▲ 필립 라메트(Philippe Ramette 1961-) I '비이성적 걸음' 컬러사진 100×80 Photo Marc Domage ⓒ Philippe Ramette Courtesy : Galerie Xippas ⓒ Philippe Ramette


필립 라메트는 설치미술가, 조각가, 행위예술가이면서 또한 사진작가다. 그의 사진작업은 스스로가 모델이 되기에 동료인 마르크 도마주(Marc Domage)의 도움을 받는다. '비이성적 걸음'은 그 제목처럼 엉뚱하게 생각하고 뒤집어 상상하기의 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사진의 상상력에서 인공보철구 등을 사용해야 하는 신체적 제약과 위험한 장벽이 많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일러준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도 속임수가 아닌 사진의 상상력을 통해 가시화해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이 세상을 보다 넓게 보다 멀리 보게 한다.

산업과 예술의 경계 허물기

▲ 마티유 메르시에(Mathieu Mercier 1970-) I '드럼과 베이스(Drum and Bass-Eco Box)' Mixed media objects on laminated wooden shelving 2003 ⓒ 김형순


마티유 메르시에가 즐겨 사용하는 작업방식은 예술과 산업을 뒤섞는 것이다. 위 작품은 그도 직접 설명했지만 몬드리안의 추상과 뒤샹의 오브제미술에 팝아트적 요소를 합쳐진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적 추상성과 산업적 실용성을 재구성하여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이렇게 미술, 건축, 인테리어, 산업디자인 등 여러 조형요소가 합쳐진 토털 아트(total art)라 할 수 있다. 음악으로 치면 합주곡이라 할 수 있는데 위 제목인 '드럼과 베이스'와 어울리게 강렬한 리듬의 재즈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다.

베르사유 전으로 명성 날린 차세대유망주

▲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1963-) I '안 라카통(Anne Lacaton)' 폴리우레탄 페인트, 에폭시 수지 2009 ⓒ 김형순


▲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 1963-) I '화려한 사륜마차(Le Carrossee)' 베이앙 베르사유(Veilhan Versailles)전시 2009. ⓒ Xavier Veilhan Courtesy: Galerie Perrotin, Paris. 흥국생명 빌딩 앞 다른 버전작품도 설치(2011년5월) ⓒ Xavier Veilhan


차세대 유망주 자비에 베이앙은 실험성이 강한 사진, 회화, 비디오 혹은 설치미술 등에 도전해왔다. 주변의 실존인물인 지인이나 동료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모델로 삼는다. 이를 3D로 스캔으로 디지털화하여 폴리우레탄 등을 소재로 공장의 자동화로 찍어낸다.

그의 조형은 사람, 동물, 사물 등 오브제의 질감과 시각적 미감과 그런 요소를 중시하면서 묘사에서는 비율도 바꾸면서 단순화, 최소화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안 라카통' 같은 평범해 보이나 특별한 인물도 낳고 '사륜마차'처럼 절대왕조시대의 위용도 빛낸다.

그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유수미술관에 소장되고 있다. 2009년 베르사유 전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야외에서 벌리는 고전적이면서도 스펙터클한 대작으로 이곳 방문객이 공공미술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경험하게 된다.

인간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성찰

▲ 발레리 주브(Valerie Jouve 1964-) I '무제' C-프린트 80×53cm 2006 ⓒ 김형순


끝으로 사진작가 발레리 주브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자. 그는 모든 걸 인류학적 시선으로 보고, 도시를 사진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현상학적으로 접근한다. 사진으로 정치사회적 권력구조를 읽어내는데 W. 에번스의 다큐정신은 물론이고 연출사진도 마다 않는다.

이런 면에서 주브가 비인간화되어 가는 도시와 숨 막히는 공간, 빽빽한 건물로 포화상태가 돼버린 교외풍경을 인간과 도시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그는 이렇게 도시를 주시하며 한 시대를 읽어내는 증언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덧붙이는 글 '과천_오늘의 프랑스미술전' 협찬:Adiaf 일반설명: 매일1시,3시 주말:1시,3시,5시 www.moca.go.kr [큐레이터 토크] 강사:박미화(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2011년9월2일 오후2-3시 소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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