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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성곽보다 카우 퍼레이드가 좋아

[발칸에서 진주 찾기 ⑪]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2

등록|2011.08.22 09:57 수정|2011.08.22 09:57
칼레메그단과 성곽

▲ 군사박물관 ⓒ 이상기


칼레메그단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곳 있지만 우리는 타데우샤 거리에서 들어간다. 북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니 성곽 바깥 담장과 문이 나타난다. 문 위에는 7월 15일부터 8월 7일까지 베오그라드 여름 축제가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 문을 지나니 외성곽과 그 안으로 내성곽이 나타난다. 이들 성곽 사이에는 해자 형태의 저지대가 있다. 과거에는 물이 흘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잔디밭으로 변해 있다.

외성곽의 문을 지나 나무다리를 통해 내성곽 문으로 들어가면, 칼레메그단의 중심영역인 고르니그라드가 나온다. 그렇지만 나는 외성곽 문 안으로 들어간 다음 계단을 통해 외성곽 위로 올라간다. 이 성곽 위를 걸어 봐야 칼레메그단의 진면모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곽 위에 오르니 해자와 내성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 외성곽 밖에 자리한 군사박물관의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있다. 군사박물관 앞과 해자에는 과거 세르비아군이 사용하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 성벽과 탑 ⓒ 이상기


외성곽과 내성곽은 모두 10m는 되는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들어가는 문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바깥에 철문이 달려 있다. 전시에는 이 문을 닫아 외적의 침입을 막았을 것이다. 내성곽 문 위에는 첨탑이 있는데, 후대에 만들어 관측소 겸 경비소로 사용한 것 같다. 하얀색 건물로 첨탑 장식과 시계까지 만들어 실용성과 예술성을 더했다. 이 문을 들어가야만 고르니그라드를 볼 수 있다.

칼레메그단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이 되는 지역이 고르니그라드로 성안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승리자 동상, 로마의 샘, 문화재 보호재단, 천문대, 테니스장과 농구장, 산책로와 공원 등이 있다. 그리고 승리자 동상으로부터 강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역을 도니그라드라 부른다. 칼레메그단 동쪽을 일반적으로 말리 칼레메그단이라 부르는데, 동물원과 야외 예술공연장이 있다. 칼레메그단의 남쪽은 벨리키 칼레메그단으로, 군사박물관과 새롭게 조성된 정원 그리고 기념물이 있다.

▲ 승리자의 동상 ⓒ 이상기


우리는 고르니그라드를 산책하며 성곽 내부를 살펴본다. 산책로를 따라 강쪽으로 다가가니 도나우강과 사바강의 합류 지점이 보인다. 강변에는 난공불락의 탑으로 불리는 쿨라 네보이샤가 있다. 그 옆으로는 철도가 지나고, 그 밖 강변으로는 도로가 지나간다. 성벽 아래는 낭떠러지여서 외적의 접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강을 건너고, 성벽을 넘어야 하니 난공불락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성벽은 많이 훼손되어 있다.

베오그라드 도심은 도나우강 남쪽 사바강을 끼고 동쪽에 있으며, 서쪽으로 신도시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이곳 성곽에서는 사바강 서쪽의 신도시가 잘 보인다. 우리는 성곽의 서쪽 끝에 있는 승리자의 동상(Pobednik)으로 간다. 이 동상은 세르비아가 오스만 터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제1차 세계대전 후 세워졌다. 조각가 이반 메쉬트로비치의 작품으로 칼레메그단의 상징조형물이 되었다.

▲ 사바강과 성벽 ⓒ 이상기


승리자 동상 옆으로는 성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중간에 성문이 있다. 우리는 그곳으로 내려가지 않고, 문화재 보호재단 쪽으로 간다. 이 건물은 2층의 전통건축인데, 독일과 오스트리아 건축양식을 따른 것 같다. 특히 2층에 기둥과 뼈대를 나무로 하고, 그 사이에 창과 벽을 낸 것이 그렇다. 지붕도 적갈색을 띠고 있는데, 흰 벽, 검은 기둥과 잘 어울린다. 산책로 주변에는 몇 개 건물이 더 있는데, 이들 모두 나름대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고르니그라드를 한 바퀴 돌고 나서 군사박물관을 지나 벨리키 칼레메그단 지역을 살펴본다. 다른 지역보다 조경이 잘 되어 있고 인공적인 요소가 많다. 정원의 나무들도 원통형으로 다듬었고, 잔디와 꽃밭도 잘 가꾸었다. 이곳에는 프랑스로부터 받은 전승기념 조형물이 서 있다. 이곳을 보고 숲길을 빠져 나오니 다시 타데우샤 거리다. 이제 우리는 가로수와 카페가 잘 어울리는 스카달리야 거리로 간다.  

스카달리야 거리

▲ 꽃장식 카페 ⓒ 이상기


스카달리야 거리는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1830년대 예술가와 집시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카페와 술집이 늘어났고, 한때 구시가지의 시청이 있기도 했다. 거리에는 자갈이 깔려 있고, 길가에 가로수들이 심어져 있는 완전한 보행자 도로다. 건물도 오래되었고, 길가의 카페와 레스토랑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렇지만 식탁과 마루 위에 화분을 배치해 화사한 느낌을 준다.

▲ 약쉬치 동상 ⓒ 이상기


이곳에서 지금도 운영되는 유명한 여관 겸 식당으로는 '모자 세 개', '두 마리 사슴', '황금 성배' 등이 있다. 이곳을 드나들었던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작가 겸 화가였던 쥬라 약쉬치(đura Jaksic: 1832-1878)다. 그는 이곳 스카달리야 거리에 살면서 저녁에 시인들과 예술가들을 자기 집에 초청, 모임을 주도하곤 했다. 그는 빈과 뮌헨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세르비아에 낭만주의를 전파한 사람이다. 현재 그의 집 앞에는 1990년에 세운 그의 청동좌상이 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낭만주의자들이 먼 곳의 이상향을 지향한 것처럼.

▲ 온천수 ⓒ 이상기


스카달리야 거리에는 또한 유명한 샘이 있다. 이곳에서는 따뜻한 온천수가 나온다. 이 물은 체코 출신의 바이로니 가에 의해 발견되어 알렉산드라 맥주의 원수로 사용되었다. 지하 200m에서 용출되며, 2000년대 초까지 이곳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이 맥주공장이 폐쇄되면서 더 이상 맥주 원수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는 이곳 주민이나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물을 식수 또는 약수로 마신다.      

공화국 광장의 건물들

스카달리야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데스포타 스테파나 대로가 동서로 이어진다. 이 대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국립극장이 있고, 그 건너에 공화국 광장이 있다. 공화국 광장 옆에는 원래 베오그라드를 상징하는 스탐볼(Stambol) 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 문이 1866년 독립운동 과정에서 파괴되자, 1869년 그 옆에 국립극장을 지었다.

▲ 오브레노비치와 국립박물관 ⓒ 이상기


그리고 1882년에는 광장에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1823-1868)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는 1860년 국왕이 되었고, 정치개혁과 군사력 확장을 꾀했다. 그리고 1867년에는 발칸의 여러 나라와 연합해 터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868년 죽었다. 그는 세르비아 근대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래서 1882년 그의 청동기마상이 공화국 광장에 세워지게 되었다.

광장에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건물은 1902년에 세워진 국립박물관이다. 1930년에는 건물의 일부와 정원이 확장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건물이 파괴되었다. 전후 다시 복원하였으며, 60년대 돔과 내부 공간을 개조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공화국 광장에서 미하일로바 거리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현대적인 모습의 베오그라드 문화센터를 볼 수 있다. 이처럼 공화국 광장은 베오그라드 구시가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카우 퍼레이드로 불리는 젖소들의 행진

카우 퍼레이드

ⓒ 이상기


그런데 이곳 공화국 광장에서 나는 카우 퍼레이드(Cow Parade)를 만나게 되었다. 카우 퍼레이드로 불리는 젖소들의 행진은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이루어지는 공공 전시다. 대개 시내 중심 광장이나 거리, 공원, 기차역 등에서 열린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보르도에서 전시행사가 열렸다. 이 젖소들은 유리섬유로 만든 예술품이다.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파스칼 크납이 세 가지 유형(풀을 뜯는, 서 있는, 앉아 있는)의 젖소를 만든다. 그리고 채색은 전시국가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지방의 자연과 문화, 도시생활 등을 표현한다.

이 프로젝트는 1998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미술감독인 발터 크납에 의해 처음 수행되었다. 당시 제목은 젖소들의 행진이 아니라 '그 지역 들여다보기'였다. 1999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두 번째 퍼레이드가 열렸고, 그를 계기로 '젖소를 가지고 다니는 퍼레이드 회사(CowHoldingParade AG.)'가 생기게 되었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서 카우 퍼레이드는 이후 전 세계 도시로 퍼져 나갔다. 대개 전시는 몇 개월 동안 계속되며, 전시 후 젖소는 경매를 통해 팔려나간다. 그리고 경매로 얻은 수익금은 자선사업에 쓰인다.

▲ 연을 따라가는 아이들 ⓒ 이상기


이 젖소를 가장 좋아하고 유심히 쳐다보는 것은 역시 애들이다. 애들은 젖소를 만지려고 하고 젖을 관찰하려고 한다. 또 어떤 애는 젖소를 타고 싶어 한다. 그러고 보니 애들에게 아주 좋은 교육 자료인 것 같다. 소를 보면서 미하일로바 거리로 들어서니 아케이드 형식의 상가가 길게 뻗어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애들이 즐겁게 뛰어논다. 연을 따라 가는 녀석도 보이고, 수돗가에서 물장난치는 녀석도 보인다.

어른들은 벤치에 앉아 쉬거나 카페에 앉아 차나 맥주를 마시며 담소한다. 길가에는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고, 그림이 팔려나간다. 문화의 거리답게 세르반테스 연구소도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연구소가 아니라, 에스파냐 문화를 외국에 전파하는 베오그라드 주재 에스파냐 문화원이다. 여기를 우리의 명동거리 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거리를 끝까지 가기 전에 우리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음 행선지인 사르보나 성당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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