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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한테 미안하지만, 죽어도 못 떠나요

[2011 지역투어-강원①] 평창올림픽 앞둔 가리왕산 주민의 복잡한 마음

등록|2011.08.26 16:00 수정|2011.10.10 11:45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8월 지역투어 지역은 강원도입니다. [편집자말]

▲ 2018 평창동계올림 중봉지구 실사단이 머물렀던 자리. 들깨밭이었으며, 활강 경기장 건설 예정지인 가리왕산이 보인다 ⓒ 강기희


높이가 1561m나 되는 가리왕산은 정선군과 평창군 등 산이 많은 강원 남부 내륙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는 산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산의 반열에 들자면 깎아지른 기암에다 천년고찰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만 가리왕산에는 그 비슷한 풍경조차 없다. 그래서 가리왕산은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산으로 조용히 지내왔다. 그 때문에 가리왕산은 전국의 다른 명산에 비해 자연생태계만큼은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넉넉한 품처럼 여러 산을 거느리고 있는 가리왕산은 정선군과 평창군을 아우르며 숱한 계곡과 마을을 만들어냈다. 가리왕산은 강원도의 지리산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면적이 넓고,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고대 부족국가였던 고대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피난처로 삼았기에 붙여진 이름 '갈왕산'은 일제 때 가리왕산으로 바뀌었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빨치산들의 주요한 진퇴로였다.

조선시대엔 산삼봉표비(궁중에 진상하는 산삼을 캐던 곳을 알리는 비)를 세워 백성의 출입을 금하기도 했던 가리왕산은 현재 국가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가리왕산을 보호해 왔고, 그래서 생태계는 더욱 잘 보존된 셈이다.

환경단체 "환경올림픽? 특별법이 통과되면 대응하겠다"

그런 가리왕산을 두고 최근 말이 부쩍 많아졌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활강 경기장이 가리왕산 중봉(1343m)과 하봉(1380m) 일대에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녹색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동계올림픽이 유치되자 일제히 가리왕산의 환경파괴를 걱정했다. 가리왕산은 담비, 삵, 하늘다람쥐, 한계령풀,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등 희귀동식물과 주목군락지 등이 있을 정도로 환경보존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공사를 한다 하더라도 환경파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현재는 법으로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가리왕산을 손댈 수 없다. 가리왕산에 경기장을 지으려면 동계올림픽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이 특별법은 오는 8월 말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자희 녹색연합 활동가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가리왕산은 인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대표적인 생태보존지역이다. 정부와 강원도가 환경올림픽을 지향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는 확신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 볼 수만도 없다"며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용을 검토한 후 공식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 지난 2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실사단을 환영하고 있는 주민들 ⓒ 강기희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중봉지구 실사단을 태운 차량이 숙암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 강기희


"개발? 우린 죽어도 못 떠나" - "이참에 강원도 길 확 뚫어야"

동계올림픽 경기 중 활강 경기장과 각종 부대시설이 들어서는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24일 숙암마을을 찾았다. 마을은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마을답지 않게 조용했다. '동계올림픽 유치 확정'이라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날릴 뿐 숙암마을이 활강경기가 열리는 중봉지구라는 사실을 알리는 입간판 하나 없다. 그 때문인지 가리왕산을 찾는 외지 등산객들도 숙암마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줄 모른 채 지나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고요한 마을 숙암. 59번 국도가 지나가는 숙암마을은 가리왕산과 오대천이 합작해 만든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리 전체를 따져도 100가구가 되지 않는다. 한때는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을 정도로 많은 주민이 살았지만 분교로 전락한 뒤 몇 해 전엔 그마저 폐교되고 말았다.

경기장 시설이 들어서는 곳은 숙암리 본동마을이다. 15여 호 남짓한 집들은 저마다 작은 농토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 집 마당에는 건조하기 위해 펼쳐놓은 고추와 산나물이 많았고, 집주변으로는 봉숭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지난 2월 동계올림픽 실사를 앞두고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던 밭엔 들깨가 가득 자라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잘 손질된 들깨밭이 언제까지 농민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지 기자 역시 가늠할 수 없다.

숙암마을에는 부동산 사무실이 두 개 있다. 여기서도 의견이 각각 달랐다. 누구는 "본동마을 전체가 올림픽 개발을 위해 수용될 것"이라 하고 누구는 "경기장 시설이 들어서는 곳만 수용될 것"이라 말하는 실정이다. 마을 주민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짐작도,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오랜 세월 잘바위(숙암)로 있었던 숙암마을이 긴 잠에서 깨어나 상전벽해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는 크다.

마을 주민은 경기장이 들어서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허리가 굽은 나이 많은 주민들은 경기장이 들어설 땅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농사를 여전히 짓고 있다. 젊은 사람을 손으로 꼽는 게 민망할 정도로 숙암마을 주민 대부분은 노령층으로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이들이다. 그래서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그 할애비가 와도 숙암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누구보다 환영하지만 막상 유치가 확정되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애요."

환갑을 바라보는 한 주민의 말이다. 작은 농토지만 밥 굶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집과 땅을 내어주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밥도 넘어가지 않는단다. 토지 보상비도 주변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고, 목돈을 받는다고 해도 살던 곳만큼 편안한 터를 잡기도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선읍내나 도시로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숙암리 주민의 복잡한 심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들은 토지가 어디까지 수용될 것이며, 보상가는 얼마고, 떠나지 않을 주민들에 대한 이주 대책은 있는지, 올림픽이 끝난 후 숙암에 찬바람만 불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등.      

"보상 몇 푼 받고 떠나라고 하면 누가 떠나겠어요. 그거 가지고 딴 데 가서 살 수도 없는 세상인데. 에이, 우린 죽어도 여길 안 떠나요."

숙암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땅이 수용된다 해도 숙암은 떠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 활강 경기가 열릴 가리왕산 중봉지구 ⓒ 강기희


▲ 숙암마을 주민들은 둘만 모여도 동계올림픽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강기희


담비, 하늘다람쥐, 금강제비꽃은 어디로 가나

주민들에게 동계올림픽 유치 기쁨은 잠시였다. 돈이고 뭐고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자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아졌다. 걱정은 대부분 생존권과 관련이 있다. 그런 이유로 숙암마을은 다음 주 화요일(30일) 마을 총회를 열어 '동계올림픽 중봉지구 숙암마을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위원회가 구성되면 "생존권을 건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경기장이 들어설 곳에 땅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은 동계올림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은 "땅값 상승은 물론이고 문화시설이나 스포츠 시설이 들어서면 숙암리가 개벽을 하게 되어 주민들 삶의 질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정선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산골에 속하고 교통마저 불편해 찾아오는 관광객 수가 타 지역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참에 길을 확 뚫어야 합니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길을 가진 지역이 어디 있겠어요. 서울 사람들 여기 한 번 다녀가면 길이 얼매나 꼬불꼬불한지 멀미가 다 난다고 합디다."

주민의 말처럼 정선의 길은 정선아리랑을 닮아 느릿느릿 가야 할 정도로 고개와 굽이가 많다. 정선군도 주민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정선군은 올림픽 유치를 기점으로 정선의 열악한 도로 교통망을 몇십 년 앞당길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더불어 대한민국 아리랑의 시원으로 평가받는 정선아리랑을 이번 기회에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문화올림픽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강원도 어느 지역이나 다르지 않다. 동계올림픽 경기와 연관이 없는 인근 지역인 영월·횡성·원주·양양·동해 등도 올림픽 특수를 노려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강원도로서는 처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2018 평창동계올림픽. 이 국제 스포츠이벤트 평창 유치가 확정됐을 때 김연아 선수는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많은 강원도민도 환호했다. 그렇지만 숙암마을 주민의 속내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주민은 생존권 확보를 위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무조건 떠나야 하는 가리왕산의 희귀동식물 담비, 하늘다람쥐, 삵, 금강제비꽃 등은 어디로 이사를 가야할까.

▲ 아름다운 숙암마을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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