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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파묻힌 수도사? 글 한번 시원하게 쓰네

[서평] 장정일의 통렬한 독서일기 <빌린 책/산 책/버린 책 2>

등록|2011.08.30 17:13 수정|2011.08.30 17:13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2> 표지 ⓒ 마티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죽은 것이다", "평생 놓쳐서는 안 될 한 권의 책"과 같은 광고성 서평을 보고 고른 책이 결국 '버린 책'이 돼버린 경험을 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주례사 서평'과 달리 "이 책을 땅바닥에 패대기치지 못한 것은 도서관에서 빌려왔기 때문이다"라고 혹평도 마다하지 않는 깐깐한 서평가 장정일의 서평집 <빌린 책/산 책/버린 책 2>이 나왔다.

그는 '서평자란 서평을 쓰는 동안 도덕성이 마비되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신랄한 서평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을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오웰의 작품이 3편이나 등장한다(<나는 왜 쓰는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코끼리를 쏘다>). 장정일의 서평집을 고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건, 장정일의 서평을 읽다보면 책을 보는 안목이 커질 뿐 아니라 더불어 '세상을 보는 눈'이 번쩍 떠지는 통렬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통렬함은 아래와 같이 전해진다.

언론에 CEO들이 인문학과 고전 읽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는 기사가 마치 '미담'처럼 소개되곤 한다. 그런데 그분들은 뭐하러 인문학을 배우고 고전을 읽으실까? 소비자와 피고용인을 더 효과적으로 쥐어짜기 위해? 노조와 공생하고, 비정규직을 차츰 줄이고, 하청 업체를 동반자로 대접하고, 입사와 진급에 있어 남녀와 지역을 차등하지 말고, 기부 문화에 앞장서며, 환경 기준 엄수를 지속가능경영의 원리로 삼고····. 뭐 이런 게 그대들의 인문학이고 고전 읽기일 텐데. - 본문 가운데


책을 읽는 데는 대략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별 생각 없이 글자를 따라가며 읽는 것이고, 둘째는 글의 내용을 '그런 건가' 하면서 그대로 수용하며 읽는 것이고, 셋째는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읽는 것이다. 이른바 비판적 글 읽기는 '장정일식 독서일기'의 최대 강점이 아닌가 싶다.

'까칠한 독서 가이드' 장정일이 읽은 100권의 책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문학작품 비평까지, 동서양을 망라하고 장르를 넘나드는 100여 권의 많은 책들이 그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독서'로 혹은 '쾌락의 독서'가 되기도 하면서 읽는 이에게 다가온다. 그 첫 포문을 연 것은 인권에 관한 책 이야기다.

이명박 정권 들어 인권 서적이 자꾸 나오는 것은 분배의 양극화와 복지 정책에 대한 홀대가 시민의 권리인 사회권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기 때문이고, 거기에 전선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권은 본래 정치적이다"는 앤드류 클래펌의 명제와 만난다. - 본문 가운데

우리는 보통 인권하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권리' 또는 '하늘이 부여한 권리' 따위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권은 정치적인 것으로, 하늘에서 저절로 부여받았다는 천부인권은 원래 없다, 현실에 바탕을 둔 시민권의 역사가 인권의 역사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인권은 정치적이다>(앤드류 클레펌)는 신선하고 공감이 많이 가는 책이다. 역시 장정일다운 책 선택과 서평이 흥미롭게 읽힌다.

인권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방자유주의 진영에서 나온 '자유권'과 옛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이 강조한 시민의 권리인 '사회권'이 있다는 사실. 노동할 권리와 노조를 결성한 권리에서 교육받고 치료받을 권리 등의 실질적인 삶을 돌보는 사회권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자유권이 곧 인권이라는 일방적 인식은 밖으로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오히려 사지로 몰아넣는가 하면 안으로도 비정규직에 대한 냉대와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의 주거권 투쟁을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감정노동'의 폐해를 다룬 <친절은 상대방을 베는 칼>, '코리아 인권'을 제시하는 <북한의 인권은 왜 선택적이어야 할까>, 교육 불평등의 심각성을 말하는 <콩 심은 데 콩만 나는 교육> 등 우리 사회에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불러내 그 거울 앞에 서게 하는 책들과 장정일만의 서평이 이어진다.

독자를 거울 앞에 서게 하는 장정일만의 서평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권해도 불안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현명한 것으로 통하고 "손해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은 순진한 어리석음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아이들이 커가는 일을 차마 지켜볼 자신이 없다. (줄임)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 본문 가운데

이어지는 2부와 나머지에서는 기업과 권력, 언론, 도시, 전작에는 없었던 문학에 관한 영역까지 탐색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당시 발언으로 마치 회색빛의 암담한 묵시록처럼 들렸던 말이었다.

대통령도 CEO 출신을 뽑더니 일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 기업국가 한국은 이미 그들만의 파라다이스가 되버렸다(요즘에는 아예 교과서에 '민주주의 국가'란 표현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말로 바꾸려는 태세다, 물론 여기에서 자유는 구속의 반대말이 아닌, '자유시장경제'의 탈을 쓴 줄임말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즉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재벌들에게 넘어감으로서 생기는 문제를 다룬 책들을 장정일이 놓칠 리 없다.

예전처럼 권력이 재벌에게 '삥'을 뜯는 게 아니라 이젠 역으로 재벌이 비자금으로 권력을 '섭외'(영향력 있는 인사에게 뇌물을 주는 일을 말하는 삼성만의 용어란다)하고 장학생으로 관리하게 되면서 법조계, 언론계, 학계, 공공기관 등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한다는 김용철의 양심선언 책 <삼성을 생각한다>와 <굿바이 삼성>(김상봉 외),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이병천 외) 등에서 장정일은 "이 책을 읽고 삼성을 생각한 당신이 과거의 조명자일 뿐 아니라 미래의 선구자"라고 말한다. 장정일이 전작에 이어 또 한 번 삼성을 거론하는건 그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심각성을 절실하게 느껴서겠다. 재벌의 세습경영을 따라하여 현대차 노조가 이루어낸 '세습취업'을 떠올려보라.

권력이 재벌에게 넘어가고부터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중의 하나가 대학이다. 시장과 기업의 하수인이 된 지 오래인 미국 대학들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 <대학 주식회사>(제니퍼 위시번)는 기업이 대학의 학문적 자유를 어떻게 자신의 이익에 맞게 유린하는지를 풍부한 사례로 설명한다. 문제는 미국이나 우리의 대학은 기업보다 국가로부터 더 많은 보조비를 받고 있는 때문에, 이런 현상은 공유재를 탈취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책으로 사는 사람...다음 서평집이 기대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궁전을 뜻하는 팰리스(palace)나 성을 뜻하는 캐슬(castle)로 명명되는 것은 현대의 특권층이 단순한 부자에 머무르지 않고 '중세의 귀족'처럼 차별화 하려는 전세계적 징후임을 말하는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마이크 데이비스 외), <포스트 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움베르트 에코) 등은 모순을 향해 치닫는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뛰어나지만 종으로서의 인간은 우둔하다'는 잠언을 실감하게 하는 원전 이야기 <켤 수는 있어도 끌 수는 없는 불> 편도 빼놓을 수 없다. 장정일은 여러 책들을 빌어 네 개의 원전신화(청정신화, 가격신화, 안전신화, 대체불가능 신화)를 조목조목 해체해버린다. 지구 온난화와 공동체의 삶을 걱정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당장의 이익에만 충실한 기업과 결탁한 정치 엘리트를 향해 '너 그만해!'라고 소리칠 수 있는 힘과 용기로 화하는 날이 어서 오길.

이외에도 평소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볼때마다 혁명은 왜 성공하는 순간 폭력이나 독재에 빠지고 마는지 궁금했었는데, 내 속을 알기라도 하듯 <혁명은 왜 괴물을 낳는가>라는 부제의 서평글이 등장한다. 이 부분이 더욱 흥미로운 건 이명박 대통령이 시민사회와 종교계, 많은 사람들의 숱한 반대와 이견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4대강 개발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답이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장정일, 그에게 묻는다면 단연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한 건 책 표지와 저자 소개란에 나온 빡빡 민 머리를 하고 수북히 쌓아놓은 책을 읽는 수도사 같은 지은이의 사진 때문이다. 그의 치열한 독서관이 느껴지기도 하고 다음 서평집을 기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에이미 굿맨 외)를 논하며 'G20 홍보물'에 쥐 그림으로 그라피티 작업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정수를 위한 장정일의 탄원서 형식의 글이 책에 나온다. 내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곱씹게 한 문장을 소개한다. "'G20'행사가 선진조국 창조에 필요불가결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 장정일 씀, 마티 펴냄, 2011년 8월, 424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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