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들은 내 성기에 전기 고문을 했다"

<슈피겔> 보도를 통해 본 시리아의 오늘... "국민을 농장의 소처럼 취급"

등록|2011.08.26 13:09 수정|2011.08.27 14:59

▲ <슈피겔>은 시리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민주화 운동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실었다. ⓒ <슈피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독재자가 쫓겨난 데 이어, 42년 동안 리비아에서 군림한 카다피도 몰락 직전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랍의 봄'은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철권 통치를 하고 있는 시리아에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시민들은 3월 중순부터 여섯 달째 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는 핏빛 진압을 이어가며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고 있다.

독일 언론 <슈피겔>은 24일(현지 시각), '시리아의 핏빛 라마단'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탱크 등을 동원한 무력 진압,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저격수, 사람들을 공격하는 친정부 민병대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시리아 현지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는 민주화 운동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동안 시리아 상황에 관해 적잖은 보도가 나왔지만, 이 기사처럼 시리아 내부 모습을 구체적으로 담은 것은 많지 않았다. 시리아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기사이기에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중간 제목은 기자가 단 것이다.

소녀들 사살해 놓고 "심장마비였을 뿐"

매일 밤, "유령"이 찾아온다. 그들은 웃음 띤 얼굴로 견과류를 씹으며 곤봉을 들어올린다. 이들은 (친정부 민병대) 샤비하, 즉 "유령"이다(기자 : 샤비하는 유령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정권을 위해 일하는 폭력배다. 저녁 기도가 끝나는 밤 10시, 샤비하는 모스크(이슬람 사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감히 대통령이나 정권에 반대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 죽일 준비를 하고, 주차된 차들 사이에 무장을 한 채 숨어 있다.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무리 짓지 않고) 한 사람씩, 신속하게 그리고 조용히 모스크를 떠나 라마단 축제로 조명이 환한 거리로 자취를 감춘다.

통치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시리아에는 아무 일도 없다. (시리아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단지 시오니스트, 알 카에다 지지자, 아랍 위성 방송이 꾸며낸 음모일 뿐이다. 항구 도시 라타키아에서 소녀가 살해됐다는 소문? (통치자들의 말에 따르면) 단지 심장마비였을 뿐이다. 다마스쿠스 인근의 미단에서 몇 달 전 수천 명이 모여 (민주화) 시위를 했다? (통치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니다. 그들은 비가 내리자 감사 기도를 올리기 위해 모인 것일 뿐이다.

(기자 : 라타키아는 시리아 정부가 탱크 등을 동원해 시민들을 공격한 곳이다. 그 과정에서 열 살도 안 된 소녀들도 곳곳에서 사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탱크에 이어 군함까지... 움직이는 건 다 표적">, <누가 3세 여아 눈에 총탄을 쐈나> 참조. 그리고 시위가 아니라 일상적인 다른 행사일 뿐이라고 호도하는 일은 이집트에서도 일어났다. 무바라크를 몰아내기 위한 시위에 참가했던 한 이집트 시민은 '시위가 아니라 결혼식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것'이라고 국영방송이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친구는 비디오 찍다 죽고, 난 고무탄 50발 맞고"> 참조.)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사람은 이 도시가 겉으로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도심에 탱크도 없고 총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다마스쿠스에서 차로 40분 거리인 자바다니만 가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휴양 도시인 자바다니는 군대에 포위돼 있다. 몇 주 동안 거의 매일 밤, 500~4000명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했다. 시위가 일어나면 먼저 "유령"이 공격을 하고, 그 다음에 경찰이 최루가스를 쏘며, (마지막으로) 다양한 "보안 기관"의 요원들이 시위대를 죽이고 있다. 자바다니에 더 이상 여행객은 없다.

▲ CNN은 시리아군의 유혈 진압이 계속된 라타키아에서 살해된 세 살배기 여자아이 올라 자블라위에 관한 영상을 17일 게재했다. ⓒ CNN


가운뎃손가락 들었다 체포된 활동가 "성기에 전기 고문 당했다"

이 지역 민주화 운동 단체 중 하나에 선을 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몇 주 전 총에 맞아 죽은 한 친구의 ID로 인터넷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떤 교차로에 있는 야채 트럭에서 만나기로 했다. 트럭 운전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내했다. 그렇게 민주화 운동가들과 만나 어느 건물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민주화 운동가들은 시리아 사람들이 수만 명을 학살한 전력이 있는 독재 정권(<아버지는 2만 명 학살, 아들은 무차별 탱크 공격> 참조)에 맞서 싸울 용기를 내리라는 것을 처음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한 도처에 깔려 있고 심지어 가족 안에도 있는 시리아 당국의 정보원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들 중 알리는 정치안보부에 잡힌 적이 있다. 정치안보부는 17개로 전해지는 시리아의 첩보기관 중 빅4에 속한다. "그들은 내가 시위 현장에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행히) 나를 단순 가담자로 여겼다." 단순 가담자로 분류됐다고 해서 고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알리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패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고, 찬물을 부은 후 전기 충격기로 고문했다. 알리는 자신을 고문한 사람 중 하나가 이렇게 외쳤다고 말했다. "신이 널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신은 널 돕지 않아!" 3주 후 알리는 풀려났다. "그들에게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로 4미터, 세로 4미터짜리 감방 하나에 갇힌 사람이 이미 70명에 이른 상태였다."

또 다른 민주화 운동가는 60일 동안 갇혀 있었다. 이 사람은 시위 현장에서 대통령을 겨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가 체포됐다. 보안 당국은 이 사람의 (가운뎃)손가락을 둘 다 부러뜨렸다. 이 사람은 성기에 전기 고문을 받은 사실도 털어놓았다. 보안 기관 요원들이 자신의 고환에 전극을 댄 다음 소변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전류를 흘려보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60일의 구금 기간이 자신을 더 강하게 단련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커피를 따를 때 이 남자의 손은 흔들흔들했다.

갑자기 라디오에서 "그들이 오고 있다! 당신들 방향이다. 병력 수송차를 타고 있고 무장했고 하나, 둘, 다섯, 적어도 여덟은 된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알리는 몸을 수그리고 발코니로 가서 바깥을 살폈다. AK-47 소총을 멘 남자들이 저쪽 끝에 있는 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가자, 가자!" 민주화 운동가들은 다급히 라디오, 가방, 고가의 위성 전화를 챙겨 정원을 가로질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시의 다른 곳에 있던 사람 말로는 수백 명이 거리에 진입했고 기관총이 연속해서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알리는 군대의 근무 교대라고 설명했다.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군인들이 허공에 그냥 총을 쏴댄 것이다." 알리는 이것보다 킬러들이 개개인을 노려 쏘는 게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집회는 취소됐다.

시리아의 거의 전역에서 매일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바샤르 알 아사드(<안과의사 꿈꿨던 대통령, 국민을 쏘다> 참조)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들은 평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권이 반격할 구실을 찾으며 (폭력 시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전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다양한 종파를 부추겨 갈등을 부채질하는 한편, 자신들을 수니파 광신도에 맞서 소수자들을 보호하는 존재로 내세우고 있다.

시리아 제3의 도시인 홈즈는 (통합이) 깨지기 쉬운 상태로 여러 종파가 섞여 있는 이 나라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홈즈 주민의 다수는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알라위파(기자 : 시아파의 한 분파) 무슬림, 기독교인 등도 적지 않다.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3월 중순 이래 홈즈에서는 7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살해됐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홈즈와 관련해서는 <"카다피가 쫓겨났다, 다음은 바샤르 당신 차례"> 참조).

▲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 <알 자지라>


"비디오가 없으면 혁명도 없다"... 처절한 영상들

또 다른 민주화 운동 그룹을 만났다. 그 그룹에는 학생들(<코란>을 연구하는 학생도 있었다)과 기술자들, 옷감 판매상이 속해 있었다. 아와드(가명)는 "우리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뒤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와드가 말한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장을 촬영하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현장을 촬영한 덕분에 이 그룹은 <알 자지라>와 지속적으로 연락 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디오가 없으면 혁명도 없고, 우리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와드는 현장 화면이 없으면 "전 세계는 우리가 있는지조차 모른다"고 덧붙였다.

30분 후, 초인종이 울렸다. 암호를 주고받은 후 문이 열리고 카메라맨과 그의 두 친구가 들어섰다. 시위 현장을 담은 영상을 편집하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24명이 정오에 플래카드를 펼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한 시위였다. 아와드가 물었다. "얼마나 지속됐어?" "10분." "말도 안 돼!"

온화한 성품의 내빌(이 남자는 자기를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은 20대 중반으로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다리 근육이 잘 발달해 있었다. 내빌은 지금까지 운이 엄청나게 좋았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뭔가 촬영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내빌에게 연락했다. 내빌은 이 나라를 뒤덮은 공포의 현장을 촬영한 필름들을 담은 하드드라이브를, 숨겨뒀던 장소에서 회수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내빌은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담은 일련의 영상을 보여줬다. 그중에는 4월 18일 연좌농성을 담은 화면이 있었다. 이날 시리아 보안군은 군중에게 발포했다. 고문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시신을 담은 화면도 있었다. 새벽에 거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약대생 자말 알 파트와, 교사이던 칼리드 무라트, 택시 운전사 뭄타즈 할루의 시신이었다.

이들의 친구인 아드난 아브드 알 다임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아드난 아브드 알 다임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던 학생으로 8월 1일 "평화적으로", "모든 시리아 사람을 위한 시리아"라고 적힌 작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 속에서 아드난 아브드 알 다임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달아나고 있었다. 물대포를 장착한 소방차가 지나간 후, 아드난 아브드 알 다임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아드난 아브드 알 다임은 플래카드를 높이 든 채 여전히 서 있었다. 잠시 후 총성이 크게 울렸다.

▲ 시리아 정부가 민주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매도하자 한 시위 참가자가 '시리아 시민이 테러리스트란 말인가?'라는 내용의 문구를 들고 있다. ⓒ <알 자지라>


"해외에서 시리아 정부 압박하길... 무력 개입은 원치 않는다"

두 시간 동안 내빌은 수십 개의 영상을 보여줬다. 이 중에는 머리가 갈가리 찢기고, 몸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발이 잘리고, 조준 사격으로 귀와 눈, 이마가 엉망이 된 모습 등 <알 자지라>조차 보여주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심하게 다쳤는데도 임시응급센터에서 기초적인 치료만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병원에 갔다가 보안 기관에 납치되는 일이 때때로 발생했기 때문에 임시응급센터를 이용해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구급차에서 (뜻밖에도) 무장한 남자들이 뛰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샤비하 아니면 보안군이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해, 사람들은 부상자를 병원에 데려가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홈즈에서 샤비하가 시위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때때로 보안군이 탄환이 엄지손가락만한 대구경포까지 사용해 아무런 경고 없이 사람들에게 발포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구경포가 사용됐다는 것은 현장 곳곳에 떨어져 있는 탄피뿐만 아니라, 표적이 된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한 영상에는 턱의 일부분 및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피부 몇 조각을 빼고는 머리 부분에 남은 게 없는 남자의 모습이 있었다.

바브 사바 인근에서 보안군이 파티마 모스크를 급습해 그곳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또 다른 부대는 라우다 모스크 부근에서 발포했다. "여기 오지 마라! 군인들이 병원을 습격하고 있다"고 외치는 소리도 영상에서 흘러나왔다.

아와드는 무릎이 심하게 흔들거려 누워야 했다. "아사드 정권은 이 나라를 자신들의 농장처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농장의) 소다."

그러나 저항 운동가들조차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민주화 운동 조직은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데, 이들은 해외에서 시리아 정부를 압박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무력 개입을 원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2200명 넘게 죽고 1만5000명이 체포됐지만 아와드는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며 두려워했다.

▲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탱크로 진압하는 시리아군. ⓒ BBC


탈영하는 병사들... "정부, 군대에 대해 점점 더 걱정"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최근 탱크와 군대를 동원해 도시를 하나하나 짓밟았다. 7월 31일 하마에서 시작해 다이르 앗 자우르, 라타키아를 짓밟았고 지난주부터는 탱크들이 홈즈 외곽에 집결해 있다(<"저격수, 아홉 살 소녀 사살... 곳곳에 시신 더미"> 참조).

시리아군 중 많은 이들은 의무 복무를 하기 위해 징집된 장병이다. 이들 중 수백 명이 주검으로 변해 가족에게 돌아갔다. 주검에는 총상이 있었지만, 이들의 죽음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탈영한 군인도 1000명 정도 된다. 다이르 앗 자우르에서는 한 대령이 휘하 병력 일부를 데리고 탈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마스쿠스의 한 군인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군대에 대해 점점 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군인은 "5주 전까지만 해도 군인 신분증만 있으면 이 나라 어디서든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구간별 여행 허가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탈영병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징집병의 의무 복무 기간을 3개월 연장하는 법령이 발표됐다. 그렇지만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지탱하는 중추는 보안군과 첩보 기관들이다. 보안군과 첩보 기관의 요원들은 모두 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기관들은 고문과 살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퍽! 퍽! "네 주인이 누구냐"... "대통령입니다">, <성기 잘린 13세 이어 눈이 사라진 15세 주검> 참조).

이러한 보안군과 첩보기관들을 만든 건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다. 하페즈 알 아사드가 죽은 후, 수명을 연장해온 이 괴물 같은 기관들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바샤르 알 아사드는 장군들의 변덕에 휘둘리는 인물로 전해지고 있고, 바샤르의 폭력적인 동생 마헤르(공화국수비대 사령관)는 군사 관련 세부 사항을 챙기기보다는 밤에 카드놀이를 하느라 바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 최고위층의 어느 누구도 시민 봉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마스쿠스의 한 엘리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체제는 개혁될 수 없다. 이건 체제도 아니다. 부패와 공포로 권력을 유지하는 마피아다. 어떤 종류의 변화든 일어나기만 하면 이 체제는 몰락할 것이다. 저들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무슨 짓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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