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미국서 사온 파란 구두를 신었습니다
남양마을 할머니의 활기찬 시골동네 마실 이야기
남양마을로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를 만났다. 이름이 독특해서 머리에 깊이 박혔다. 예전부터 단골이었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그녀의 이름은 조점심. 남양마을에 사는 할머니다.
한의과대학을 다니면서 이름 속 한자를 분석하는 습관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었다. '조점심, 조점심'. 내 멋대로 분석한 결과는 '이른 점심'. 매번 오전에 진료실을 찾아오는 걸 보면 뜻이 얼추 들어맞는다. 걸걸한 목소리와 수다로 무장한 점심 할머니가 어쩌다 하루 안 오는 날에는 뭔가 빼먹은 기분이 들 정도가 되었다.
같은 시골에 산다 해도 나와 동네 어르신들의 동선이 일치하기는 어렵다. 어르신들이 일 나가는 낮에는 내가 보건지소에 있고, 내가 산책하는 밤에는 어르신들이 집 안에 계시기 때문. 허나 조점심 할머니의 활달한 성격 덕에 나는 그녀를 두 번이나 만날 수 있었다.
집집마다 가정방문을 다니던 금요일, 그녀와 마주쳤다. '돌돌돌돌' 보행기를 끌며 길을 내려가는 할머니. 가시는 곳을 묻자 계모임을 간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동갑내기들의 계모임. 동갑내기 친구를 '갑장'이라고 부르는데, 근처 동강, 죽산, 망주, 중산, 남양 등지에서 8-9명 정도가 모임에 나온다고 했다. 왠지 신기해서 할머니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계모임 하면 뭐 하세요? 술도 드시나?"
"술은 안 먹어. 사이다 시키제. 낮에 모여. 모여서 점심 먹고 서너시에 가지."
각자 만 원씩 각출해서 밥을 먹는 할머니들 모습이 연상돼서 웃음이 나왔다. 두번째 만남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다음 날 진료를 위해 미리 들어와 있던 일요일 밤. 체력 유지를 위해 달리기를 하던 중이었다. 내 앞에서 멈추는 버스 한 대. 차에서 내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다들 손에서 꺼내는 물건. 지팡이다. '딱 딱 따악'. 지팡이를 짚으며 네 명의 할머니들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자 걸걸한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나 점심이네. 점심. 내일 치료받으러 갈라네."
서로 바빴던 나와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 날 약속을 지킨 그녀에게 전 날 다녀온 곳을 물었다. 야바위꾼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있단다. 오만가지 물건이 다 있다는 그 곳을 구경하러 갔다 온 할머니. 버스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을 태운다는 걸 보면 규모가 크긴 큰가 보다. 더 자세히 얘기를 나눠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르신들이 거기서 강매를 당하는 모양이다. 동네 이쁜이 할머니는 전기장판 비스무리한 물건을 60만 원이 넘는 고가에 샀다고 했다.
"어머님도 거기서 물건 샀어요?"
"나는 암것도 안 사. 저녁마다 사면 돈이 을매나 들어가라고. 싱크대 냄새 없애는 거. 유리 닦는 거. 솥단지도 샀네. 국도 끓애먹고, 찌개도 해 묵고."
아무것도 안 샀다더니 목록이 계속 늘어난다. 어르신 지갑이 줄줄 샐까봐 가지 말라고 말렸다. 어르신은 내 말을 듣더니 비싸지 않다고 옹호한다. 인정하기 싫은 눈치다. '여우와 신포도'에서 포도를 못 먹은 여우에게 포도가 달다고 아무리 말해주어도 고개를 가로젓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산 비개가 어찌나 좋은지 세 개 남은 걸 다 사가더만."
그 분들도 다 속으신 거라고 말해도, 자기 합리화의 장벽은 강건하다. 옆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가 가지 말라고 해보지만 계속 갈 기세다. 볼 거리, 놀 거리 없는 시골에서 그런데 가는 것도 낙이겠다 싶어서 더 말려볼려다 관두었다.
바깥 마실을 자주 다니는 점심 할머니에게 요즈음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파란 구두. 색깔 뿐만 아니라 모양도 곱다. 가죽도 좋고 마감처리도 잘 되어있는 제품. 못 보던 구두가 언제 생겼을까? 물 건너 미국에서 생활하는 딸이 어머니를 찾아왔던 것이다. 딸을 보러 어머니는 서울로, 어머니를 보러 딸은 한국으로. 두 모녀의 상봉, 그리고 구두 선물. 어머니를 위한 미국산 구두. 침상에 올라가려고 벗어놓은 구두가 한켠에 가지런하다.
한번 시작된 따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자식 자랑은 하지 말래도 한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몇 년 안에 따님이 한국 모 대학교에 교수로 들어오게 된다. 그 날이 오면 딸이랑 같이 지낼거라 했다. 옆에 가만히 있던 동갑내기 친구가 구두 신은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런 두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의과대학을 다니면서 이름 속 한자를 분석하는 습관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었다. '조점심, 조점심'. 내 멋대로 분석한 결과는 '이른 점심'. 매번 오전에 진료실을 찾아오는 걸 보면 뜻이 얼추 들어맞는다. 걸걸한 목소리와 수다로 무장한 점심 할머니가 어쩌다 하루 안 오는 날에는 뭔가 빼먹은 기분이 들 정도가 되었다.
같은 시골에 산다 해도 나와 동네 어르신들의 동선이 일치하기는 어렵다. 어르신들이 일 나가는 낮에는 내가 보건지소에 있고, 내가 산책하는 밤에는 어르신들이 집 안에 계시기 때문. 허나 조점심 할머니의 활달한 성격 덕에 나는 그녀를 두 번이나 만날 수 있었다.
집집마다 가정방문을 다니던 금요일, 그녀와 마주쳤다. '돌돌돌돌' 보행기를 끌며 길을 내려가는 할머니. 가시는 곳을 묻자 계모임을 간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동갑내기들의 계모임. 동갑내기 친구를 '갑장'이라고 부르는데, 근처 동강, 죽산, 망주, 중산, 남양 등지에서 8-9명 정도가 모임에 나온다고 했다. 왠지 신기해서 할머니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계모임 하면 뭐 하세요? 술도 드시나?"
"술은 안 먹어. 사이다 시키제. 낮에 모여. 모여서 점심 먹고 서너시에 가지."
각자 만 원씩 각출해서 밥을 먹는 할머니들 모습이 연상돼서 웃음이 나왔다. 두번째 만남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다음 날 진료를 위해 미리 들어와 있던 일요일 밤. 체력 유지를 위해 달리기를 하던 중이었다. 내 앞에서 멈추는 버스 한 대. 차에서 내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다들 손에서 꺼내는 물건. 지팡이다. '딱 딱 따악'. 지팡이를 짚으며 네 명의 할머니들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자 걸걸한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나 점심이네. 점심. 내일 치료받으러 갈라네."
서로 바빴던 나와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 날 약속을 지킨 그녀에게 전 날 다녀온 곳을 물었다. 야바위꾼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있단다. 오만가지 물건이 다 있다는 그 곳을 구경하러 갔다 온 할머니. 버스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을 태운다는 걸 보면 규모가 크긴 큰가 보다. 더 자세히 얘기를 나눠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어르신들이 거기서 강매를 당하는 모양이다. 동네 이쁜이 할머니는 전기장판 비스무리한 물건을 60만 원이 넘는 고가에 샀다고 했다.
"어머님도 거기서 물건 샀어요?"
"나는 암것도 안 사. 저녁마다 사면 돈이 을매나 들어가라고. 싱크대 냄새 없애는 거. 유리 닦는 거. 솥단지도 샀네. 국도 끓애먹고, 찌개도 해 묵고."
아무것도 안 샀다더니 목록이 계속 늘어난다. 어르신 지갑이 줄줄 샐까봐 가지 말라고 말렸다. 어르신은 내 말을 듣더니 비싸지 않다고 옹호한다. 인정하기 싫은 눈치다. '여우와 신포도'에서 포도를 못 먹은 여우에게 포도가 달다고 아무리 말해주어도 고개를 가로젓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산 비개가 어찌나 좋은지 세 개 남은 걸 다 사가더만."
그 분들도 다 속으신 거라고 말해도, 자기 합리화의 장벽은 강건하다. 옆에 있던 동갑내기 친구가 가지 말라고 해보지만 계속 갈 기세다. 볼 거리, 놀 거리 없는 시골에서 그런데 가는 것도 낙이겠다 싶어서 더 말려볼려다 관두었다.
▲ 구두 신은 할머니딸이 사준 구두를 신고 좋아하시는 할머니 ⓒ 최성규
바깥 마실을 자주 다니는 점심 할머니에게 요즈음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시골에서 보기 드문 파란 구두. 색깔 뿐만 아니라 모양도 곱다. 가죽도 좋고 마감처리도 잘 되어있는 제품. 못 보던 구두가 언제 생겼을까? 물 건너 미국에서 생활하는 딸이 어머니를 찾아왔던 것이다. 딸을 보러 어머니는 서울로, 어머니를 보러 딸은 한국으로. 두 모녀의 상봉, 그리고 구두 선물. 어머니를 위한 미국산 구두. 침상에 올라가려고 벗어놓은 구두가 한켠에 가지런하다.
한번 시작된 따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자식 자랑은 하지 말래도 한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몇 년 안에 따님이 한국 모 대학교에 교수로 들어오게 된다. 그 날이 오면 딸이랑 같이 지낼거라 했다. 옆에 가만히 있던 동갑내기 친구가 구두 신은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런 두 할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