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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도 불안한데 '자녀 채용' 가능하겠어?

현대차 노사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 혜택' 합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어떻게 볼까

등록|2011.08.29 16:27 수정|2011.08.29 16:27
지난 24일 수요일 오후 5시 30분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 가보았습니다. 비정규직노조에서 불법파견 관련 집중 집회를 한다고 했거든요.

저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정리해고를 당한 상태입니다. 2000년 7월 7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업체를 통해 들어가 일해 왔습니다. 잘릴까 싶어 시키는 대로 일 잘하고 주는 대로 받으며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안 잘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2010년 3월 중순, 공장라인을 새로 설치한다는 이유로 정규직에겐 1년간의 유급휴직이, 그 공정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에겐 '정리해고'가 통보됐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억울했지만 힘 없는 저는 업자가 내민 강제사직서 용지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직장을 잃고 4개월 후인 7월 22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최병승 비정규직 노조원이 낸 부당해고 소송에서 대법원은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후 저는 제 경우가 불법파견에 해당하는지, 부당해고에 해당하는지 변호사 간담회 때 물어보니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하청업체 쪽에서 받은 사직서는 무효가 되므로 불법파견과 부당해고에 해당된다"고 답해줬습니다.

저는 당장 다시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에 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정생활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사정상 노조활동은 못하지만 돈을 빌려 비정규직 노조에서 진행한 집단소송에 참여했고 틈틈이 시간이 되면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장기근속자 자녀 가산점 부여',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24일 수요집회에 참석했을 때 큰 전단지 하나를 입수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발행한 잠정합의안 내용을 담은 소식지였습니다.

쟁대위속보.
2011년 임단협 잠정합의 현명한 선택만 남아.
알토란 같은 성과로 조합원 권익을 확보하였습니다.
기본급 9만3000원 성과급 300% 일시금 700만 원 주식 35주

4절지 크기의 큰 용지 안에는 잠정합의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이 가득했습니다. 위쪽엔 주요 임금성 부분을, 아래 쪽엔 주요쟁취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30개의 내용 중 비정규직 부분은 딱 하나 '비정규직 차량 DC(할인) 3% 적용'뿐이었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터진 불법파견 문제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대신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현대차노조에서 발행한 쟁대위속보 2011년 임단협 잠정합의안 주요쟁취 내용 중에 있는 30여개 중 2가지 사항이 눈에 확 띄었습니다. 그건, '신규 인원 합의'와 '장기 근속자 자녀 우선채용기회 부여'였습니다. 물론 '가산점'을 주는 것이고, 세부사항은 더 논의해봐야 한다고 하지만, 저에겐 '현대차 신규채용 시 장기근속자 조합원 자녀 우선채용'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앞서 지난 16일 현대차노조는 전체 노조원 보고대회를 열었습니다. 집회 말미에 이경훈 조합장이 갑자기 손도끼를 꺼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사실 저는 그 상황에서 꼭 그래야만 했는지 의문이 생겼고, 다른 조합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싶었습니다. 또 조합원 자녀 세습 이야기까지 나오는 '장기 근속자 자녀 우선채용기회 부여'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4일과 25일 이틀간 현대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이라 그런 이야기 나눌 정규직 노동자를 찾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무거운 사안이라서 그런지, 이야기 해주기를 꺼려했습니다. 어렵사리 만난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보았습니다.

손가락 자른 이경훈 위원장..."동정 받으려 한 것 같다"

▲ 23일 금속노조 현대차 이경훈 지부장(가운데) 등 노조 간부들이 노사 협상장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하청업체에 9년째 다닌다는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40)씨는 '장기근속 자녀 혜택'에 대해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산재 사망자나 조기 퇴직 자녀에 대해 채용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기회 부여는 완전 다른 문제죠. 이는 실리주의를 표방하는 현자노조 이경훈 집행부가 실리 집행부를 넘어서 민주노조 딱지 떼자는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죠.

이번 잠정합의 안은 정규직의 고용보장 방패막을 구체적으로 만든 것으로 불법파견을 철저히 외면한 작태로 우리로선 많이 억울합니다. 우리는 이번 불법파견 투쟁으로 엄청난 해고자, 정직자가 생기고 수백억의 손배가압류를 맞고 있어요. 이번 일은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고 정말 이기적인 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동투쟁이 상식 아닙니까? 이경훈 집행부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문제를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다만 비정규직 처우개선 중재자 역할만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씨는 이경훈 위원장의 새끼손가락 절단 사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씨는 "그 이야기 듣는 순간 '파업 안 하려고 별 수작 다 부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사람은 우리가 지난해 25일간 공장점거 파업 할 때 김밥 가지고 장난친 적도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또 "(이경훈 위원장 행동에선) 전혀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조합원이 그렇게 많이 모인 곳에서 그런 행위를 한 것은 조폭 수준이지 노조 수준이 아니다"라며 "이번에 그런 일을 자행한 것은 무파업 기조로 가자는 것이고 그 일로 정치생명 걸겠다는 의도로 해석 할 수 밖에 없다, 두고봐라. 차기 집행부 또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하청업체에 11년째 다닌다는 또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54)씨도 "비정규직 불법파견은 해결 못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거 같다, 욕먹어도 싸다"고 일갈했습니다. 이어 "한마디로 쇼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많이 하고 있다"며 "회사는 그 사람이 다시 되기를 바라고 정규직 노조원이 자신을 떠날 거 같으니까 동정 받으려고 한 행위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은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장 정서를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정규직으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34)씨는 이번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과 관련해서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김씨는 "그동안 비정규직만 늘려왔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 정년보장도 될지 의문인데 자녀 채용이 가능할까"라며 "비정규직 계속 늘어나는 판에 자식의 정규직 채용 희망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는 이어 "현장 정서를 보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그래서 일 있을 때 벌어 먹자고 지원도 마다치 않고 특근을 하는 정규직이 많다"며 "그동안 우리는 지켜보아 잘 안다, 있는 임단협도 지켜지지 않는 판국인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부산 한진중공업 정규직이 400명이나 정리해고 당한 거 봐라, 우리도 98년에 1만여 명이 정리해고 당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 있나?"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씨 역시 지난 16일 이경훈 위원장이 한 행동에 대해 큰 반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조합장이 정말 노동자 입장에서 잘 풀 마음이 있었다면 조합원 앞에서 그럴 게 아니라 현장에서 보여줘야 맞지 않나? 그게 더 결연한 의지 보여 주는 게 아닌가?"라며 "그 많은 조합원 앞에서 그런 짓 한다는 건 조합원에 대한 협박이고 모독이다, 조합장 연설 말미에 갑자기 손도끼 꺼내더니 3번 내리쳤다, 한번은 단상을 찍고 한번은 손등을 찍고 세 번째 새끼 손가락 7mm 날렸다, 너무 어처구니없어 더이상 말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6일 2011 잠정합의안 투표를 한 결과 54.19%로 가결처리 되었다 합니다. 29일,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인식이 진행됩니다. 그 뜨거웠던 2011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아무 성과 없이 끝나나 봅니다. 아니 어쩌면 '비정규직 없는 공장 만들자'는 노력은 정치권과 업계와 정규직 노조운동에 가로막힌 상태로, 오랜 세월 숙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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