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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희망버스'에 호주 진보 단체들 뭉쳤다

[해외리포트] "'희망버스'로 연대해 첫 해외동포 투표 지켜낸다"

등록|2011.08.28 15:11 수정|2011.08.28 15:11

▲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시드니 희망버스 ⓒ 윤여문


"호주에서 희망버스를 함께 타고 있는 우리는 정리해고로 고통 받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해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민노총 부산지역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을 적극 지지합니다."

'호주 시드니 희망버스'에 탑승한 승객 일동이 전하는 지지 메시지의 시작 문장이다. 서울에서 열린 4차 희망버스와 때를 맞춘 8월 27일 오후 7시, 시드니 희망버스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토론회와 문화제 형식으로 열린 시드니 희망버스에 탑승한 승객은 노동자·학자·정치인·목사·변호사·시인·영상문화운동가·노조활동가·사업가·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 등이 망라됐다.

시드니 항구에서 부산 항구로

▲ 인사말을 하는 권기범 전 시장 ⓒ 윤여문


부산과 시드니는 아름다운 물항(港)이다. 평화로운 바다 태평양이 두 항구를 이어준다. 8월 27일 밤, 그 바다를 건너간 버스가 있다. 시드니 희망버스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버스.

시드니 희망버스의 목적지는 부산항에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이다. 정리해고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35m 상공에서 234일째 농성 중인 김진숙 위원을 지지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승객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소수'였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진보를 표방하는 게 여의치 않은 해외동포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한인동포 진보단체 '시드니민족교육문화원'(윤종인 이사장) '호주한인포럼'(김학재 대표) '시나브로 독서포럼'(정창기 회장) 소속 회원들이 많이 참석했다. 특히 용접노동자들 다수가 한국 최초의 여성용접사인 김진숙 위원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진보단체들이 연대한 시드니 희망버스

▲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영상 상영 ⓒ 윤여문


시작노래로 '함께 가자, 이 길을'을 뜨겁게 부른 후에, 호주노동당(ALP) 소속 권기범 전 시장의 인사말로 행사가 열렸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그의 연설은 항상 짧고 강렬하다.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먼저, 우리가 호주에 살 수 있도록 해준 원주민(애버리진)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그리고 호주동포사회의 진보단체들이 희망버스를 계기로 다시 뭉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김진숙 위원님, 감사합니다."

이어서 영상문화운동가 한성주씨가 마련한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영상이 상영됐다. 김주익, 박창수, 곽재규 열사들의 목숨 건 투쟁의 역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 것, 특히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85호 크레인을 지켜보았다.

마지막 영상으로 한진중공업 사태 경과보고를 곁들인 김진숙 위원의 영상메시지가 상영됐다. 행사장에 다시 불이 켜진 다음, 사회자 김승일씨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꼭 살아서 내려오시라"고 말해 장내가 숙연해졌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비정규직 양산한다"

▲ 발제하는 신준식 박사 ⓒ 윤여문


토론 발제자로 나선 신준식 박사(UTS대학교 연구원)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분석한 한진중공업 사태'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가 20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노동시장의 붕괴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빌미로 하청, 재하청, 재재하청이 만연하고, 값싼 노동력을 찾아가는 아웃소싱과 공장이주 등이 노동자의 터전을 앗아갔다"면서 "한국보다는 훨씬 낫지만 호주도 상황이 많이 나빠졌다"고 말했다.

신준식 박사는 노동시장 유연화 하부정책으로 ▲ 수량적 유연화 정책 ▲  재정적(또는 임금) 유연화 정책 ▲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등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익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경영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노동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한인동포 노동자의 실태를 타일업종과 용접업종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노동단가 낮추기 식의 무한경쟁과 건설노조의 무능으로 몰락한 타일업종과 금속노조의 꾸준한 노력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용접업종을 비교한 것.

시드니 희망버스가 막차이기를...

▲ 김진숙 위원 지지 발언 한마디 ⓒ 윤여문


신 박사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경영전략으로 삼은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물량을 몰아주면서 부산 영도조선소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서 노동자들을 무차별 정리해고 한다"고 분석하면서 "그래서 혁명가 김진숙의 싸움이 위대하다"고 결론지었다.

신준식 박사의 발제에 이어서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 '시드니 운동권 노래패' 전천수, 권태원씨가 등장해서 노래공연을 펼쳤다. 두 사람은 '김진숙에게 보내는 응원가'를 열창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김진숙 위원에게 보내는 지지 메시지'와 '한국정부에 보내는 항의 메시지' 카드쓰기가 진행됐다. 그중에는 "시드니 희망버스가 부디 막차이기를 바란다"는 내용도 있었다.

'역사는 뒤풀이에서 일어난다'... 1박2일 된 시드니 희망버스

▲ 시드니 희망버스 1박2일 뒤풀이 ⓒ 윤여문


2시간 넘게 진행된 시드니 희망버스는 한성주씨의 카메라 앞을 지나면서 김진숙 위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화하는 순서로 갈무리됐다. 더러는 코믹하게, 더러는 진지하게, 더러는 애절하게, 더러는 침묵으로.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근처 생맥주 클럽으로 몰려가서 뒤풀이를 했다. 늦은 저녁식사를 먹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참석자들은 맥주잔을 부딪치면서 호주 진보단체들의 과거사를 회상했다. 그런 가운데 '연대를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자주 나왔다.

특히 호주한인포럼 유승도씨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추도식과 1, 2주기 추모식에서 연대했던 한인동포사회 진보단체들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박은덕 변호사와 강병조 그린카드 강사의 강력한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뒤풀이의 분위기가 '연대'라는 주제로 모이자 윤종인 이사장은 "대개 역사는 뒤풀이에서 일어난다. 기왕 시작했으니 1박2일로 가자"고 호기 있게 발언했다. 그런 다음 '호주동포사회 진보단체의 연합'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자정을 넘기며 이어졌다.

"해외동포 투표 제대로 감시하자"

진보단체 연대를 위한 건배가 한두 번 더 이어진 다음 구체적인 사안들이 논의됐다. 먼저 2011년이 가기 전에 연대 바비큐 모임을 갖자고 합의했다. 이어서 "2012년에 실시되는 해외동포 투표를 제대로 감시하자"는 의견이 개진됐다.

이와 관련하여 <호주한인포럼> 김학재 대표는 "첫 투표라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총선(지역구 제외)과 대선 모두 박빙의 승부라고 예상하면 해외동포의 표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참석자 모두 동의하는 가운데 권기범 변호사가 갈무리 발언을 했다.

"이런 계기를 마련해준 김진숙 위원이 열사가 되면 절대로 안 된다. 호주동포사회 진보단체들의 연대로 우리 조국에 더 이상 열사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

누구였을까.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으로 향하는 버스의 이름을 '희망버스'로 지은 사람은. 사회자 김승일씨가 화답했다.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꼭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김진숙 위원은 꼭 살아서 내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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