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노짱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현장]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돌 봉하마을 축제 현장
위의 노랫말은 한영애가 부른 '조율'의 그것이 아니다. 바로 한명숙 전 총리가 부른 '조율'의 노랫말이다. 한 전 총리는 생애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한영애의 '조율'을 깨알차게 불렀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돌 기념 봉하음악회에서다.
▲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길봉하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노란색 바람개비와 노란 현수막이 방문객을 맞는다. 저 멀리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친구가 노랑 풍선을 들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강신우
올해 2회 째를 맞은 봉하음악회는 해마다 노 전 대통령의 생일인 9월 1일에 맞춰 열린다. 봉하마을 방문객이 여유있게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보통 9월 1일 전 주의 주말(토요일)에 연다. 방문객들은 승용차, 대형버스, 대중교통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전국 각지에서 봉하마을로 찾아왔다. 유모차에 아이를 앉히고 걸어가는 가족들도 있었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연인들도 보였다.
▲ 8월 27일 봉하마을의 모습8월 27일 봉하마을 관광안내소 앞 모습이다. 저 멀리 대형버스가 몇 대 보인다. 버스를 빌려 단체로 봉하마을에 들린 방문객들이 많았다. ⓒ 강신우
8월 27일 낮 4시께, 시내버스를 타고 다다른 봉하마을은 의외로 차분했다. 2009년 그 날 이후로 처음 찾은 봉하마을이었다. 기억 속 그 날의 복잡하고 스산한 분위기는 모습을 감추고 소박한 시골마을의 평화로움과 포근함만이 있었다. 고향은 아니지만 마치 고향집에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 노무현 대통령과 사진촬영을봉하마을 입구 관광안내소에 설치된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방문객들. 저들의 표정만큼이나 이 곳 봉하마을에 온 방문객들의 표정은 밝고 즐거웠다. ⓒ 강신우
봉하마을 입구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 사저와 대통령 묘역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니 오른쪽에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이 있었다. 추모의 집 앞의 크지 않은 마당에서는 '청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20대 청년들이 각자 꿈꾸는 '사람사는 세상'을 고하는 '청년 컨퍼런스 SARAM 2011 발표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은 비록 5분 동안의 발표였지만 그 안에 하고싶은 말을 다 담아 발표했고, 이들의 발언을 듣는 청중들도 진지하게 귀담아 듣는 표정이었다.
20대의 마지막인 29살의 나이로 참가해 작은 화제가 된 최도식씨는 이 날 발표에서 당찬 목소리와 유쾌한 말재주로 관객석을 휘어잡았다. 처음에 최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발표를 시작했다. "이 지구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입지면적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0.067%입니다. 1%도 되지않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우리 국민들은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 29살 청년 최도식 씨의 발표 모습이 날 SARAM 2011 행사에서는 20대의 마지막 29살 최도식 씨가 나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 강신우
최 씨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대한민국의 다양한 나눔의 사례를 들었다. "품앗이와 두레의 문화가 있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던 대한민국입니다. 지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영남과 호남, 보수와 진보 등 이념이 나뉘고, 또 고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간제와 시간제 등 임금이 나뉩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뉩니다."
▲ 청년컨퍼런스 SARAM 2011 현장노무현 대통령 추모의집 앞마당에서는 청년컨퍼런스 SARAM 2011 본선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20대 청년들답게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당차게 자신들이 꿈꾸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고함치고 있었다. ⓒ 강신우
▲ 추모의 집 벽에 기대어추모의 집 벽에 기대 앉아 SARAM 2011에 참가한 청년들의 발표를 듣고 있는 사람들. 추모의 집 벽에는 방문객들이 색색깔의 스티커에 남긴 수많은 추모글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있다. ⓒ 강신우
▲ SARAM 2011 행사장 풍경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벽에는 봉하마을 방문객들이 남긴 추모의 글들이 색색깔의 종이 위에 남겨져 있다. 그 너머로 청년컨퍼런스 SARAM 2011 발표대회에 참가한 29살 최도식 씨의 역동적인 발표 모습이 보인다. ⓒ 강신우
본론에서 최 씨는 "더불어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정(情)'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씨는 "서로 우정을 나눌 시간"이라며 관객들에게 팔을 들어 서로 어깨동무할 것을 요구한 뒤,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상록수'를 다같이 부르자"며 큰 소리로 외쳤다. 노래가 나오자 서로 어깨동무를 한 관객들은 큰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 추모의 집 앞에 마련된 추모 사진전SARAM 2011 대회가 진행된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앞마당 한 쪽에는 노무현 대통령 생전의 다양한 모습들이 담긴 사진과 글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 전시물들은 9월 25일까지 전시된다. ⓒ 강신우
▲ 추모의 집 앞에 마련된 추모 사진전봉화산 사자바위와 부엉이바위가 올려다보이는 추모의 집 앞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이 담긴 전시물들이 걸려있다. ⓒ 강신우
▲ 어린 소녀의 호기심어린 소녀가 지나가며 전시된 그림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고 있다. ⓒ 강신우
▲ 어린 소녀의 호기심이 소녀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 강신우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곳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들을 사진과 짧은 글로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고인이 즐겨 사용하셨던 자전거, 밀짚모자 등 유품들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추모 1주기 때 국민들이 남긴 노란 리본으로 만들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들어오는 이들의 시선을 한동안 머물게 한다.
▲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안에는 고인의 살아 생전 업적들을 사진과 짧은 글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놓고 있다. ⓒ 강신우
▲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추모 1주기 때 국민들이 남긴 추모 리본으로 만든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바람이 나오는 장치가 돼 있어 '영원을 흐르는 바람으로 오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 강신우
추모의 집을 나와 노무현 대통령 묘역으로 향했다. 저녁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도시와는 달리 벌써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봉하마을의 다른 곳이 흥겨운 축제의 장이었다면, 묘역 주변은 조용하고 경건했다. 멋 모르고 뛰어다니던 어린 아이도 이 곳에서는 얌전해졌다.
▲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어둑어둑해진 봉하마을의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안. 한 부부가 너럭바위를 멀리 두고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 강신우
▲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주위로 국민들이 남긴 추모와 애도의 글이 새겨진 1만 5천여 개의 국민참여 박석들이 자리하고 있다. ⓒ 강신우
▲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바람에 날려온 건지 아니면 누군가가 남기고 간 건지 조그마한 나뭇잎 하나가 한 박석 위에 놓여 있었다. ⓒ 강신우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묘역 뒤 잔디밭 특설무대로 향했다.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순식간에 길게 늘어졌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길 옆에는 봉하마을의 상징이 돼버린 노랑개비(노란 바람개비)가 설치돼 있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저 멀리 특설무대에서는 리허설을 하고 있는듯 음악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노랑개비 안에서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곤 했다.
▲ 잔디밭으로 향하는 길목의 노랑개비들잔디밭 특설무대로 향하는 길목에 설치된 노란 바람개비들. 노랑개비는 어느새 봉하마을의 상징이 됐다. ⓒ 강신우
저녁 7시 봉하음악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자리가 없으면 양보를 하기도 하고, 조금 좁더라도 같이 앉아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 잔디밭 특설무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번 행사의 절정인 제2회 봉하음악회를 보러 온 수많은 사람들. ⓒ 강신우
이날 무대에 선 가수 권진원은 "그 분의 따뜻한 목소리가 너무 그립습니다. 앞자리 어딘가에 앉아계신 것 같아요. 그 분께 바칩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노래 '해피벌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를 불렀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는 <캐논 연주곡>과 <쇼팽 즉흥 환상곡>을 선보였다. 네 손가락으로 연주했다고 보기 힘든 연주 솜씨에 사람들은 감탄했고, 또 아름다운 노래 선율에 감동받기도 했다. 공연 중간에 이희아는 "마음 속에 늘 아버지 같으셨던 분이신데... 다음 대통령은 꼭 노무현 대통령님 같은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해 청중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이날 음악회의 절정은 바로 한명숙 전 총리의 특별 무대였다. 사회자인 정은숙 전 국립오페라단 단장이 한 총리의 이름을 언급하자 청중들은 기대에 차 큰 박수를 보내며 무대 위로 올라오는 한 총리를 맞았다. 한 총리는 몇 달 전 MBC의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JK김동욱이 불러 화제가 됐던 노래 '조율'을 불렀다. 노랫말이 시대 상황과 딱 맞아 골랐고, 노래방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왔다고 했다.
"잠자는 노짱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그 옛날 사람사는 세상으로 조율 한 번 해주세요."
한 총리는 노래 끝에 가사를 위와 같이 바꿔 불렀다. 노래가 끝난 뒤 한 총리는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람사는 세상으로 만들 것인가를 다짐하게 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청중들의 재청을 받고 "잠자는..." 부분을 다시 불렀다. 이번엔 청중들도 같이 따라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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