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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 동굴속의 탱고 (85)

85. 채움

등록|2011.08.30 09:58 수정|2011.08.30 09:58

.. ⓒ 일러스트-조을영




와이너리 투어와 더불어서 우리는 올리브유 제조 공장도 방문했다. 그럴때면 그곳 직원이 해 주는 뭔 소린지 감도 안잡히는 영어 설명을 들으며, 동시에 가이드가 속닥거리며 읊어대는 부가 설명을 들어야 했기에 꽤 괴로운 감도 있었다. 

내가 마구 인상을 써대면 그녀는 여행자 에세이를 틈틈이 발송해야 한다며, 들은 게 있어야 글도 나올 거 아니냐고 윽박질러댔다. 그리곤 일기같은 우스꽝스런 글로 대충 둘러치지 말고, 정보가 빼곡히 들어찬 가운데 스마트한 감성도 스치는 그런 글을 써야 한다며 왁왁거렸다.

"그럼 당신이 쓰면 될 거 아뇨?우리 따위한테 왜 자꾸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아? 완전 별꼴이야!"

조제가 심통이 잔뜩 난 얼굴로 대꾸하면 가이드는 눈을 흘기며 고함을 질러대며 다른 관광객들이 그 '라이브 쇼'를 공짜로 구경하는 영광을 누리게도 해주었다. 하여간 올리브는 아르헨티나의 대표식인 엔파나다에도 듬뿍 들어갈 만큼 이곳에선 굉장히 풍부한 식재료인 건 분명했다. 동부 지중해 연안지역에서 기원전 3000년경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던 올리브는 세계적 주재배지인 이태리, 스페인 그리스 외에도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호주, 미국 그리고 일본 등지에서도 재배된다고 가이드는 통역해 주었다. 게다가 올리브 열매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되고 나무는 정원수, 고급 가구재로 이용되고 있어 재배자에게 큰 소득을 준다는 것이었다.

지긋지긋한 설명이 끝나고 나자 바삭한 바게트를 갓 짠 올리브유에다 찍어먹는 그 투어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론 자체 전시장으로 옮겨서 노란색과 흰색의 층이 확연히 나눠진 올리브유나 절임같은 걸 사는 그날의 수순을 밟으면 됐는데, 투어 주최 측이나 공장 관련자들에겐 오히려 이게 하이라이트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관광지건 물건을 팔아야만 투어라는 것을 존속시킬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물건을 떠넘기는 몰상식을 범하지는 않았고 그저 좋은 물건이 있단 걸 슬쩍 흘려주는 식이었다.

때마침 그곳에 와 있던 '빨간 하이힐'과 할머니가 우릴 발견하곤 다가왔다. 두 여자는 병에 든 올리브 절임과 몇 병의 올리브유가 든 꾸러미를 양 손 가득 든 채,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선 '이런 행복한 걸 왜 이제야  대령 시킨거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피디는 여전히 관광객들을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틈을 탄 두 여자들의 자유 시간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어서 이것저것 쇼핑을 한 것도 모자라서 차고 넘치는 행복을 우리 한테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행복하신가 봐요?"

조제는 시큰둥한 소리로 두 여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소 정리된 표정으로 바꾸곤 말했다.

"작은 거 하나에도 이렇게 기분이 새로워지는 걸 보니 나도 별 수 없는 여잔가 보구나. 그러고 보니 다음 코스는 너희들이 너무 좋아할 만한 곳이겠는 걸? 초콜릿 공장인거 다들 알지?"

할머니는 주름살 골속 까지 웃음을 가득 담은 채로 말했다. 그러자 조제는 초콜릿 따위는 이미 옛날에 졸업했노라며 삐죽거렸다. '빨간 하이힐'은 온화한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아르헨티나는 초콜릿술과 캔디도 듬뿍 맛볼 수 있는 곳이죠'하고 말했다.

나와 조제는 배낭을 열어 그 안에다 할머니가 선물로 내민 물건들을 집어넣었다. 아르헨티나에 온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 속의 배낭은 언제나 텅빈 기분이었다. 아무리 채워도 어딘가에 구멍이 나 있어서 그리로 모든 게 다 빠져나가버리는 기분이라고 하면 제일 적합할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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