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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이몽룡과 성춘향의 연애코치입니다

[인터뷰] 박상률, <춘향전> 방자 눈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방자 왈왈> 펴내

등록|2011.08.30 17:37 수정|2011.08.30 17:38

작가 박상률이 책은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 고전 <춘향전>을 방자가 바라보는 눈으로 그려낸 21세기 판 <춘향전>이자 해학과 풍자가 ‘왈왈’거리고 있는 새롭게 읽는 <춘향전>이다. ⓒ 박상률

작가 박상률. 그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글쟁이다. 그에게 붙는 글쟁이 직업(?)이 숱하기 때문이다. 시인, 희곡작가, 동화작가, 소설가 등 그가 지닌 눈길이 닿으면 곧 바로 시가 되고, 희곡이 되고, 동화가 되고, 소설이 된다. 아니, 시, 희곡, 동화, 소설 등이 그가 싫다, 싫다 해도 그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이번에 우리 고전 <춘향전>을 크게 뜯어 고쳤다. 장편소설 <방자 왈왈>이 그 책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나누는 '뜨거운 사랑' 쯤으로, 춘향이를 어떻게 해보려는 변사또, 즉 잘못된 정치인을 혼내주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이 소설은 180도 다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이몽룡과 성춘향이 아니라 이몽룡 노리개쯤으로 나오는 방자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방자가 연애코치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조선시대가 낳은 억압과 신분이 낳은 양반과 상놈,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조차도 방자가 왈왈(?)거리며 무너뜨린다.

박상률은 이 소설에 대해 "방자의 자유로움과 당당함, 그리고 방자라는 다리를 통해 이몽룡과 성춘향이 서로에게 한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라고 귀띔했다. 이 소설이 지닌 또 하나 맛깔스러움은 자유스럽게 늘어놓는 전라도 사투리다.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방자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배꼽 잡게 펼친다.

조선시대 청춘들이 앓았던 성장통

"소설은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춘향전>은 조선시대 청춘들의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조선시대에 그토록 '뜨거우면서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우리 시대의 열여섯은 '청소년 취급'을 받지만, 조선시대의 열여섯은 '어른 대접'을 받았다. 취급과 대접 사이에는 '책임'이 있다." -'작가의 말' 몇 토막

시인이자 희곡작가 박상률(53)이 펴낸 거꾸로 읽는 <춘향전>이라 할 수 있는 장편소설 <방자 왈왈>(사계절). 이 책은 누구나 알고 있는 우리 고전 <춘향전>을 방자가 바라보는 눈으로 그려낸 21세기 판 <춘향전>이자 해학과 풍자가 '왈왈'거리고 있는 새롭게 읽는 <춘향전>이다. 그동안 조연이었던 방자가 주연으로, 성춘향과 이몽룡이 조연으로 나온다는 그 말이다.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왈왈'거리고 있다. '고두쇠, 방자가 되어 성현의 반열에 오르다', '야외수업 좋을시고', '새끼 사또가 춘향이를 데려오라 하니', '새끼 사또가 방자 모시고 왔다', '좋을 호(好)가 만든 사랑', '방자가 기가 막혀', '미꾸라지가 용이 되어 물을 흐리다', '방자 가라사대 사랑의 시작은 곧 사랑의 완성이라'가 그것.

박상률은 29일(월) 낮 전화통화를 통해 "사람들은 이몽룡과 성춘향에게만 관심을 두지, 방자나 향단이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내 보기에 <춘향전>을 통틀어 가장 매력 있는 인물은 방자"라며 "춘향이 아주 개성 있는 인물이긴 하나, 그는 이미 개성을 넘어 전형화한 인물이 된 까닭에 더 발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박상률은 "나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된, 이몽룡이 성춘향을 좋아했다는 것은 <춘향전>에서 가져왔지만 <춘향전>에 없던 많은 이야기는 방자한테서 '들었다'"라며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조선시대 청춘들 또한 우리 시대 청춘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안고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말은 곧 이 장편소설이 조선시대 청춘들이 알았던 성장통이라는 얘기다.

<춘향전> 통해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 모습 비추다

"방자야, 날씨가 너무 좋아 환장하겠구나. 이런 날엔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
"뭔 소리라요? 내 사는 이날 여태껏 날씨 때문에 환장한 사람 보덜 못했소. 뻥도 어지간히 치슈. 그라고 관아 안에도 바람이 분께 여그서 그냥 바람 쐬믄 되았제, 꼭 바깥까지 나가서 바람을 쐬야겄소?"
방자는 짐짓 헛기침까지 해 가며 몽룡을 을러댔지만 몽룡도 물러서지 않는구나.
"바람이라고 다 같은 바람이 아니어서 그런다."
"바람이 다 거그서 거그제, 안 바람 바깥바람 뭐가 다르다고 그러슈?"
"관아 안에선 뻣뻣한 사람 콧바람밖에 쐴 게 더 없지 않느냐. 나 같은 청춘은 나가서 보들보들하고 야들야들한 인간들 분 바람도 좀 쐬어야 숨이 쉬어지거든."-29~30쪽

이 소설은 <춘향전>이라는 우리 고전을 통해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 모습을 비춘다. 어느 시대든 십대들은 고민이 많다. 박상률은 새롭게 쓴 <춘향전>, 거꾸로 읽는 <춘향전>을 통해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참으로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그 열쇠를 쥐어준다. 이 소설에서 사랑에 웃고 삶에 우는 조선시대 청소년들이 지닌 꿈과 사랑, 성장통을 들추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방자의 본명은 고두쇠였다. 성춘향은 밀땅(밀고 당기기)에 능한 여우였다. 이몽룡 부모님 태몽은 용이 아닌 지렁이였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몽룡은 과거 급제에는 통 관심이 없다.  원전에 따르면 몽룡과 춘향은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마음을 울린다. 또 하나는 암행어가가 되어 돌아와 춘향을 구하는 이몽룡 성공신화다.

<방자 왈왈>에서는 이몽룡이 과거에 떨어지는 것으로 재치 있게 비튼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나누었던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도 방자가 아니었으면 이루지 못할 꿈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이몽룡 성공신화를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물질'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어쩔 수 없는 속물근성으로 그려낸다. 

방자가 연애코치로 나오는 까닭도 남녀칠세부동석이던 조선시대 남녀, 그것도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십대 소년 소녀가 스치듯 인연이 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일이 어려웠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자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스를 수 없는 '신분의 한계'. 방자도 이몽룡처럼 큰소리치며 아랫사람 부리고 싶었을 것이다. 방자 또한 춘향을 좋아했던 때가 있었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이기에 단념했다.

"세상 성질 뻗치는 대로 살려 하지 마슈"

박상률 장편소설 <방자 왈왈>조연이었던 방자가 주연으로, 성춘향과 이몽룡이 조연으로 나온다 ⓒ 사계절

"에이, 씨! 내가 정말 성질 뻗쳐서……. 그런 소리 하려면 책방 방자 노릇 그만하고 당장 주막으로 돌아가!"
"그 말 시방 참말이우? 이래서 하늘 아래 머리 검은 짐승은 넘의 공을 모른다는 소리가 나왔구만!"
방자가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서 몽룡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것다. 몽룡은 오금이 저리며 아차 싶었지만 그냥 있을 수밖에.

"세상 성질 뻗치는 대로 살려 하지 마슈. 큰 바가지 작은 바가지 다 따로 쓰일 디가 있듯이 아랫것도 다 쓰일 디가 있는 법이오. 이 몸이 어쩌다가 책방 방자 노릇 한다고 되련님 맘대로 함부로 내치고 들이고 하는 것 아니우. 사람 버릴 것 없고, 그릇 버릴 것 하나 없소. 사람이고 그릇이고 있는 대로 다 저마다 쓸 디가 있다 이 말이우. 되련님이 아직 어려서 뭘 몰라 그러는디, 꽃도 피어야 나비가 찾아가고 물도 차야 기러기가 날아가는 법이우." -74~75쪽

이 소설에서 방자는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스스로 삶을 차분하게 끌어안는다. 참다운 행복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방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방자가 이몽룡 앞에서 당당한 것도 굴곡 많은 성장기를 통해 '인생 공부'를 스스로 깨쳤기 때문이다.

몽룡은 방자를 형님으로 믿고 따른다. 방자 마음을 잘못 툭 건드리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이론에만 명석한 '한양 샌님' 몽룡과 밀땅에 능한 '여우' 춘향"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고리가 방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몽룡은 관심도 없는 과거 공부 때문에 죽을 맛이다. 공부에 매달리지 않는 방자가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몽룡은 체면상 거스를 게 없어 밤 외출마저 자유로운 방자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하루라도 빨리 춘향을 만나서 '역사'를 이루고도 싶다. 작가는 이몽룡 사생활에 대해서도 '정말 그랬을까?' 딴지를 건다. 특히 아들 수룡이 방자와 주먹질을 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변사또가 방자를 찾아가 해코지하는 부분에서는 몇 년 앞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한 대기업 회장이 저지른 폭행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거꾸로 읽는 <춘향전>, 방자가 있어 그 사랑 이루었다

"'도련님,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춘향이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도련님이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그만이어요. 어쩌면 과거가 안 되었으니까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는지도 몰라요.'
몽룡은 춘향이 뜻밖에도 화를 내지 않고 되레 다독거려 주자 힘이 솟았다. 그랬다. 애초에 과거 공부는 몽룡이 몫이 아니었다. 공부 말고 다른 방법이 없어 거기에 매달렸을 뿐이었다. 방자처럼 이런저런 재주와 요령이 있었다면 과거 공부는 진즉에 때려치웠을 것이었다." -204쪽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해설'에서 "21세기 오늘, 우리 청소년들은 더욱 심한 압박을 받고 있고 교육 모순은 그때보다 극심하다"며 "그러기에 이 작품에는 조선조 청춘만이 아니라 입시 지옥, 경쟁 위주와 승자 독식 교육의 희생자인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겪는 한과 풀이가 겹쳐진다"고 되짚는다.

그는 "과거에 거듭 떨어지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이 도령이 춘향과 해후하여 외려 행복하게 잘 사는 대목에서 함께 한을 풀고 신명에 들떴으리라"라며 "<방자 왈왈>은 조선조 청년들의 다양한 한과 갈등이 방자를 중심으로 한데 어우러진 서사이다. 더엉― 더엉― 덩더쿵! 신명 나게 방자와 시방 춤을 추지 않을랑가?"라고 적었다.

박상률 장편소설 <방자 왈왈>은 성춘향과 이몽룡 사이를 오가는 방자가 왈왈거리는 풍자와 해학이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보가 터지게 만든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춘향전>을 거꾸로 읽는다. 왕이 있어 백성이 있는 게 아니라 백성이 있어 왕이 있는 것처럼 성춘향과 이 도령 사이에도 방자란 디딤돌이 있어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는 그 말이다. 

시인이자 희곡작가 박상률은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1990년 <한길문학>에 시'진도아리랑'을,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가 있으며, 희곡집 <풍경소리>, 소설집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나를 위한 연구>가 있다.

동화책으로는 <바람으로 남은 엄마> <까치학교> <구멍 속 나라> <미리 쓰는 방학일기>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도마 이발소의 생선들> 등이 있고, 그림책 <애국가를 부르는 진돗개> <아빠의 봄날>을 썼다. 이 가운데 특히 소설 <봄바람>은 청소년문학이란 물꼬를 튼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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