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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국방부와 그런 관계였나요?

'안보 타령'으로 병역거부자들 인권 저버린 헌법재판소

등록|2011.08.31 14:23 수정|2011.08.31 14:23

▲ 30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병역법에 대해 7-2 합헌 결정을 내린 후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병역을 거부한 이준규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임재성


8월 30일 오후 3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 청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직후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7대 2의 합헌 결정.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정당하다는 결정. 눈물을 흘리던 이준규란 청년은 다른 사람을 해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이제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

이준규는 자신의 학창시절 당했던 체벌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때리지 않는 교사가 되겠다고 교육대학에 진학했다. 다른 이를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자신의 군대 문제로 번졌다. 총을 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죽이는 훈련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한국 사회의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을 마음이지만, 이 청년에게는 20대를 바쳐가며 고민했던 신념이었다. 1년 6월의 형을 받고 전과자가 되면 꿈꾸던 선생님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양심이었다.

지난 5월 2일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재판이 진행 중인 그였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이 아닌 다른 기회를 주지 않을까. 현역 복무보다 더 길고 힘든 일이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복무라면 기꺼이 하겠다는 그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에 대한 7년 만의 결정에서 그 어떤 가능성도 닫아버렸다.

언제까지 젊은이들의 감옥행이 이어져야 하는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1만6천 명에 달하는 이들이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지금 수감된 젊은이들의 숫자는 800명이 넘는다. 그 누구의 것을 빼앗지도, 그 누구를 다치게 하지도 않은 이들이다.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대체복무제는 흔히 아는 것처럼 특권이나 면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권 말기 국방부가 제시했던 안을 보면 대체복무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현역복무의 2배 기간 동안 합숙복무. 24시간 근접관찰을 요하는 최고난이도 시설에서 복무. 21개월 기준으로 하면 42개월 동안의 합숙복무이다. 감옥은 아니지만 또 다른 처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이 대체복무를 인정하면 과연 군대가 무너질까. 너도나도 대체복무를 한다고 할까.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군사훈련이 배제된 복무라면 비록 길고 힘들어도 기꺼이 수행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9년 3월부터 대체복무제 시행을 목표로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이후 이러한 국방부의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보수정당이 국회 의석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를 통한 법 개정의 가능성 역시 희박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결정만이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7년 만의 결정, 한참을 후퇴한 결정

헌법재판소의 병역거부에 대한 결정은 2004년 이후 7년 만의 결정이었다. 2004년은 우리 사회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논쟁이 한참 뜨거울 때여서 최고법원의 판단이 요구될 때였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7대 2 합헌으로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고 결정했지만 그 결정문에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우리 사회가 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이해와 관용을 보일 정도로 성숙한 사회가 되었는지 진지하게 검토하여야 할 것"이라며 국회의 논의를 요구했다.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구 중 최초로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2006년도부터 유엔에서는 한국 정부가 병역거부자들의 처벌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권고가 쏟아져 나온다. 2007년 국방부가 "전과자를 양산하는 현재의 제도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겠다는 발표까지 이루어졌다. 비록 정권이 바뀌고 병역거부에 대한 조치들이 백지화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이렇게 쌓여온 역사들의 전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2011년, 7년 만의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2004년 결정보다 훨씬 더 후퇴한 결정을 내렸다. 비단 7대 2 합헌이라는 재판과 숫자와 결과의 문제만은 아니다. 결정문의 내용을 보면, 2004년도 결정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고민과 조심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소수자의 인권 수호를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안보재판소가 되었다고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이다.

언제부터 헌법재판관들은 국제정치학자가 되었나

인권은 침해될 수 없는 권리이다. 경제상황이 안 좋아도 노동자들의 인권은 지켜져야 하고, 재개발이 아무리 중요해도 철거민들의 인권은 지켜져야 한다. 군부독재 시절, "안보상황이 좋지 않다"는 논리로 수많은 인권이 유보되었다. 돌아보면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의 정당화 논리였을 뿐이다. 권력이 이런 상황논리로 인권을 침해하려고 해도, 헌법재판소는 엄정한 논리로 인권을 옹호해야 한다. 이것이 본연의 임무이다.

그러나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보면 마치 보수적인 국제정치학자들의, 혹은 국방부의 의견서를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발사 등으로 초래되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외교 · 안보적 상황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최근 각종의 무력 도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이제 간접적 · 잠재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 · 현실적인 것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특유한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병역의무의 예외를 인정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경우 국민들 사이에 이념적인 대립을 촉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북한의 도발과 위기관리 문제는 분명 대한민국의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정치적인 판단의 문제이며,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몇 년 안에 북한이 미국과 수교를 맺고, 6자 회담에서 북핵문제가 급속도로 풀릴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국제정치의 상황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다고 결정할 것인가.

양심의 자유와 같은 최상위급의 인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헌법재판관들의 입에서 우리 사회가 듣기를 기대하는 이야기다. 천안함과 연평도 이후 한국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으며, 군사주의가 판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우경화 속에서도 인권이라는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임무다. 그러나 헌법재판관은 국제정치학자 행세를 하면서 본연의 자세를 저버린 결정을 내렸다.

국제인권규약의 해석은 엿장수 마음대로인가

더욱 참담한 것은 병역거부를 인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수차례 결정을 내린 국제인권규약과 규약기구의 결정을 따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무지에 가까운 "변명"이다. 이미 유엔은 1990년대 후반부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국제인권의 주요한 권리로서 명시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는 훨씬 더 강력해서 유럽연합에 가입하고자 하는 국가는 병역거부를 인정해야 할 정도다. 최근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아르메니아 정부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런 국제사회의 수준에서 본다면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가 매해 천여 명의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고 있으니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2011년에만 해도 유엔 자유권 규약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즉각 100명의 한국 병역거부자들의 권리 구제를 해야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우리나라가 가입한 자유권 규약에 병역거부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으며, 자유권 규약 위원회 등의 국제기구가 구속력이 없는 기구라고 말하면서 병역거부가 국제 인권 규약에서 도출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제인권조약의 구체적인 해석이나 적용은 개별 국가의 상황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논리다. 모든 구체적·개별적 권리들이 일일이 명분화 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명문화가 되어 있지 않다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조약 해석, 집행 기구의 결정을 구속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국제 인권 규약의 해석이 개별 국가의 몫이라면 그 어떤 독재정권도 국제 인권 규약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이제는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할 인권

한국 사회에서 병역, 징병제만큼 뜨거운 이슈도 없을 것이다. 뺑소니, 마약, 불법도박 연예인도 복귀할 수 있지만 병역기피 연예인은 그 자체로 사회적 사형선고다. 사실 몇 명 혜택을 보지도 않는, 그것도 다른 이들에게 불이익을 가하면서 얻는 혜택일 뿐인 군가산점제는 등장할 때마다 이슈가 된다. 열악한 군대 인권, 특권층의 병역기피, 취약하기 그지없던 군복무에 대한 보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한국 사회의 '뇌관'을 만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바로 그 '뇌관'에 놓여 있다. 병역거부가 이렇게 첨예한 사안이 되어왔던 이유다.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본다면 이들은 특권을 이용해 병역을 기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로 감옥에서 신념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고통이 차고 넘쳐 멈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한국사회에 등장한 지 이제 10년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제도 변화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9명 법관들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에서 다시 병역거부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제는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할 인권이라고 믿는다.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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