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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vs 대구, '언론싸움'으로 번진 대구세계육상대회

[지역언론 별곡 347]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언론보도가 남긴 것

등록|2011.09.03 15:49 수정|2011.09.04 17:45
[#사례 1] 서울

'아마추어' 대구
대구육상 기록 흉년 왜?…신바람 막은 앞바람
최고 시설 무색케 하는 '구민체육대회급' 운영 능력
올림픽·월드컵처럼 대구는 '위대한 유산' 남길 수 있을까
"교통 너무 불편하고 운영도 미숙…빠른 인터넷 외엔 준비가 덜 돼 있다"

[#사례 2] 대구

서울 언론, 지방 무시병 또 도지나
서울언론의 '꼬투리잡기' 왜 이러나?
대구 세계육상대회, 욕먹을 대회 아니다
서울언론 깎아내려도… 대구 자존심 스스로 지킨다
"대회 품격 올렸다 " "운영·준비 금메달 "…스포츠계 거물들 칭찬 일색

신문 제목들이 두 부류다. 지난달 27일 화려하게 개막한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폐막을 하루 앞둔 3일까지 세계신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언론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대회 개최지인 대구 언론과 서울 언론으로 나뉘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가 볼썽사납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해 놓고 옥신각신 집안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참가 선수단과 외국 기자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많은 외국 기자들은 경기에 대한 것만 취재하는 게 아니라 대회를 소개하면서 한국에 대한 문화를 알리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초라한 기록과 미숙한 대회운영 등을 놓고 국내 언론들은 '서울 탓'-'지방 탓', '옳다'-'틀리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으니 참으로 민망하다. 그들 눈에도 황당하고 희한하게 비쳐졌을 것이다. 

지난 2006년 대구시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많은 투자와 준비가 진행돼왔다. 지역에선 큰 기대와 관심을 모아왔던 국제대회다. 그런데 202개국에서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1945명의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자신의 기록에 도전했지만 기록들이 신통치 않았다. 폐막을 하루 앞둔 3일까지 세계신기록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저조했다. 

개최 전과 대회 초반만 해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부으며 큰 기대를 모으게 했던 언론은 점점 비판적 시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들은 대회운영의 미숙한 점을 지면과 영상에 연일 부각시켰다. 이럴 땐 진보와 보수 구분이 사라진다. 이에 대해 대구지역 일간지들이 불편한 심기를 지면에 노출시켰다. '서울언론',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언론사들', '지방무시', '꼬투리잡기' 등의 선정적인 표현들로 지역과 선을 그었다.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보도를 위한 접근보다는 감정이 다분히 개입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스포츠조선> "신바람 막은 앞바람...'구민체육대회'급"

▲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특집으로 내보낸 <조선일보> 관련 기사. ⓒ 조선닷컴


<스포츠조선>은 8월 31일 '최고 시설 무색케 하는 '구민체육대회급' 운영 능력'이란 선정적인 제목을 뽑으면서 불씨를 던졌다. 기사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6000여 자원봉사자들의 활동과 유무선 인터넷이 어디서나 가능하다는 점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며 "오히려 '최악'을 꼽으라면 무더기로 튀어나온다"고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문제점들을 많은 지면에 할애했다.  

기사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최악은 '구민체육대회'에나 어울릴 법한 대회조직위원회의 운영능력"이라며 "탁상행정과 운영미숙으로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들과 최고의 시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례로 "27일 여자 마라톤이 사상 초유의 마라톤 재출발사태였다"며 "꼼수도 등장했다"고 기사는 지적했다.

이어 "6만5000석이 만석인 대구스타디움은 대회기간 중에는 3만5000석으로 정원을 3만 명 가까이 줄였다. 경기장 2층 C석 구역은 개회식 이후 대형현수막으로 덮어버렸다"면서 "어떻게든 사람들이 많아 보이게 하려는 의도다"고 기사는 풀이했다. 이밖에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 4일째인 30일 대구스타디움 외곽에 '외국인만 공짜물을 드린다'는 피켓을 내건 자원봉사 부스가 있어 눈살을 찌뿌리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날 <조선일보>는 기록흉년을 문제 삼았다. 1일 '대구육상 기록 흉년 왜?…신바람 막은 앞바람'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기록 흉년'에 시달리고 있다"며 "대회 5일째인 31일까지 나온 세계신기록은 0개. 아직 대회신기록도 없다"고 전하면서 날씨 탓으로 돌렸다.

기사는 "대구의 여름 날씨는 무덥고 습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올해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열흘 가까이 비가 내려 습도가 높아진데다가 개막 이후로는 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며 "바람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대구 스타디움에서는 100m 트랙을 기준으로 아침에는 뒷바람이, 밤에는 앞바람이 불고 있다"고 원인으로 내세웠다.

<중앙>,<한국> "대구 실패 평창 교훈 되어야... 교통 너무 불편, 운영도 미숙"

<중앙일보>도 1일 '올림픽·월드컵처럼 대구는 '위대한 유산' 남길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기자칼럼에서 "한국 스포츠는 2018 평창겨울올림픽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이런 마당에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사는 점은 유감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런 뒤 칼럼은 "만약 대구가 실패한다면 평창에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며 "체육계, 지자체의 준비 없이 그저 대회를 유치했다는 사실만으로 성공을 기대한다면 욕심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국일보>도 이날 "교통 너무 불편하고 운영도 미숙…빠른 인터넷 외엔 준비가 덜 돼 있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외국 기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다뤘다. '준비가 덜 돼 있다'란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그런데 주로 부정적인 측면이 기사에서 많이 부각됐다. "인터넷은 정말 빠르다. 그 외의 것은 준비가 덜 돼 있다. 특히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란 기사 리드만 봐도 그렇다.

<한겨레>,<스포츠경향>  "'개밥' 소리 나올 정도... 한국 브랜드 가치 갉아 먹어"

▲ <한겨레>가 내보낸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관련 기사. ⓒ 한겨레


<한겨레>는 지난달 31일 '2011대구세계육상' 특집면 머리기사 제목을 "'아마추어' 대구"로 뽑았다. 기사는 "대구스타디움은 지금 먹거리와 전쟁 중"이라며 "구내식당의 음식값은 비싸고 질은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사는 덧붙여 "일반 관중 식당도 자장면과 덮밥류가 6천 원~1만 원이지만 '개밥' 소리가 나올 정도다"면서 "미디어 뷔페는 고작 4가지 음식에 1만3000원을 받는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이보다 질이 훨씬 좋은 식단이 10위안(1700원) 정도였다"고 비교했다. "숙박과 교통 문제도 심각하다"는 기사는 "경기 운영도 수준 이하"라고 평가했다.

<스포츠경향>도 1일 '대구육상 운영 미숙 낙제점'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걸친 옷은 '세계대회'였지만 운영수준은 '구민체육대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대회 운영·숙박·교통 등 총체적인 부실"이라고 꼬집었다.

기사는 그 이유를 ▲ 운영보다 이벤트에 목메는 조직위 ▲ 허술한 보안, 밤에는 놀이터 된 트랙 ▲ 바가지 상혼에 교통대책 우왕좌왕 ▲ 미디어 비판에 적반하장 등으로 내세웠다. 특히 기사는 "국내 미디어의 비판에도 반성은 없었다"며 "조직위 미디어 국장은 썰렁한 관중석을 스케치하는 한 방송사 기자에게 '취재 허가구역이 아닌 곳이라 취재할 수 없다'면서 '경찰을 불러 내쫓겠다. 방송사 스티커를 떼버리겠다'며 막말을 쏟아냈다"고 덧붙였다.

<경향>은 이마저 부족했던지 기사에서 "지난 4년 동안 준비한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갉아먹고 있다"고 혹평을 날렸다. 

<매일> "서울 언론, 지방 무시병 또 도지나?... 욕먹을 대회 아니다"

▲ <매일신문>이 서울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한 기사들. ⓒ 매일신문


대구의 지역 일간지들이 즉각 반격에 나섰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모양이다. 서울에서 발행된 일간지들과 방송사들을 싸잡아 비난한 기사를 연일 내보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쪽은 대구지역 보수 일간지인 <매일신문>.  1일 '서울 언론, 지방 무시병 또 도지나'란 제목의 사나운 기사를 1면 톱으로 올렸다. 

기사는 리드에서 "서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언론사들의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한 악의적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면서 "이 같은 행태는 언론사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수위가 다르지만 '지방정부가 준비한 대회'라는 선입견을 공통으로 깔고 있어 지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기사는 "31일 한 스포츠신문은 '(이번 대구 대회에서)단연 최악은 구민체육대회에서나 어울릴 법한 대회 조직위원회의 운영능력'이라고 비판했다"며 "다른 한 일간지는 스타디움 구내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의 질을 문제 삼아 '개밥 소리가 나올 정도'라면서 '아마추어' 대구라는 자극적 제목을 뽑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사는 또 "다른 한 신문은 교통 숙박 등의 불편을 비판하면서 '총체적 부실' '운영 실격'이라고 맹비난했다"며 "심지어 한 언론사는 대회가 겨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벌써부터 '대구의 실패가 평창에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고, 일부 방송사들은 '선수들이 내년 런던올림픽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기록이 저조하다'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고 일일이 보도사례를 열거했다.  

그러더니 기사는 "철부지 어린아이라도 잔칫상에 이처럼 고춧가루를 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역의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을 인용해 부각시키면서 서울 언론의 보도와 관련된 대구 대회 조직위 관계자의 화난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분이 덜 삭았던지 다음 날에도 계속 문제 삼았다. 2일 사설 '대구 세계육상대회, 욕먹을 대회 아니다'에서 "서울 지역 언론사들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일부 운영 미숙과 교통식단 문제를 들어 과도하게 비판한 것은 누워서 침 뱉기"라고 재차 강조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마땅히 개선해야 하지만 사소한 부분을 침소봉대해 비난부터 하는 것은 대회는 물론 대구시, 나아가 대한민국 이미지에 먹칠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사설은 "수도권 언론들이 이처럼 대구 대회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지방에 대한 무시이자 서울 중심주의 사고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준다"고 꼬집었다.

"쥐꼬리만 한 정부 지원과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도 고군분투해온 대구를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찬물이나 끼얹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사설에선 서울 또는 수도권 언론들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묻어났다. 

<영남> "서울언론의 '꼬투리잡기'왜 이러나?"

▲ <영남일보>가 2일자 내보낸 서울언론 비판기사. ⓒ 영남일보


2일 <영남일보>도 가세했다. 2면 박스기사로 다뤘다. '서울언론의 '꼬투리잡기' 왜 이러나?'란 제목의 기사는 "서울지역 언론들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악의적으로 저평가하자, 우리나라 전체를 망신시키는 행태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리드부터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기사는 더 나아가 "서울지역 언론들은 확인되지 않거나 부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여느 대회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운영상의 차질을 침소봉대해 대회 전체를 깎아내리고 있다"면서 "특히 이번 대회가 '대구'라는 이름으로 대구시민이 함께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축제여서, 서울지역 언론의 이 같은 행태는 대구시민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도 높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지방공항의 문제점만을 부각시켜 결국 영남지역민들의 숙원인 허브공항의 꿈을 앗아가는 데 선봉에 섰던 서울지역 언론들이 세계3대 스포츠 이벤트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마저 깎아내리자 서울개최 국제대회에 전폭적인 지원이나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지역민들은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고 분개했다.

또한 기사는 "이번 대회의 주연배우 격인 외국 선수들은 대구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볼트는 최근 모 언론을 통해 '선수촌이 환상적이고 매우 편안하다'고 말했으며, 이신바예바나 피스토리우스는 아쉬운 경기결과에도 아낌없는 환호와 응원을 보내준 한국 관중들의 태도를 특히 높이 평가했다"고 에둘러 두둔했다.

기사는 덧붙여 "더욱이 라민 디악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회장은 "파리와 헬싱키, 오사카, 베를린 대회를 다 다녀봤다. 그 곳들에 비해 대구의 준비 상황이 더 낫고 완벽하다. 관중들의 매너 또한 수준급"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서울 언론들과 다른 모습을 부각시켜 대조를 이룬다.

과연 누가 진실 보도를 하고 있는 걸까. 양 지역 언론들의 감정대립이 사실과 진실의 전달보다는 지역갈등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좀 더 신중하고 성숙한 보도태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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