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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다시 만날 날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소선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등록|2011.09.04 09:15 수정|2011.09.04 09:15
어머니, 저예요. 저 기억나세요? 일주일 전인가, 어머니 누워계시던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어머니 작은 발 손에 쥐고 사도신경 외우던 아름이에요. 빨간색 실크 브라우스 입고 갔던 아름이에요. 제 손에 들어오는 작은 어머니 발, 조금 차갑긴 했지만 깨끗하고 고운 발에 눈물이 날 뻔했던 아름이에요.

제 발은 어느새 굳고 갈라져 거칠어졌어요. 매일같이 신는 높은 구두가 주는 피로감, 그리고 그 구두를 신고 하루종일 지하철을, 버스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고됨. 어떤 날은 발이 구두를 버티지 못하고 넘어지는 날도 있었고 어떤 밤에는 영등포구와 마포구 사이에 놓은 한강 다리를 걷다 무엇때문인지 눈물이 나 구두를 손에 들고 강길 따라 걷던 날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여 제 발은 아주 못생겨졌어요.

매일 밤 그 못난 발을 주무르며 아직 반백년도 살지 못한 것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제가 어머니 작은 발, 내 손가락에 감기는 어머니 발 보고, 평생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셨을 어머니, 그리고 모든 고되고 무거운 짐진자들의 '어머니'를 자처하며 가난하고 힘든 길, 그 괴롭고 슬픈 길, 함께 걷고, 함께 울어주마 하시며 어머니 살아온 날들의 하루만큼 마음에 대못을 박고 사셨을, 그  발을 보니 제가 얼마나 부끄럽고 슬퍼졌는지 몰라요.

어머니,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 못되었어요. 대학 등록금을 벌려고 냉동창고에서 일 하다가 사망한 나의 친구, 그마저도 이겨내기 힘들어 대학입학 고지서를 유서 대신 놓고
저 하늘로 가버린 친구, 가난한 집에 태어나 대학진학 대신 반도체 공장에 가서 일하다가 암으로 죽어버린 나의 친구, 자본은 노동자의 잠과 밥을 빼앗고, 국가는 사람들의 집과 삶을 빼앗네요.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40년 전보다 이 세상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네요. 어머니.

어머니, 그렇지만 어머니가 그래왔듯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며 살아갈게요.
흉과 악이 가득한 이 암흑 속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둠이 찾아오면 곁을 내어주신 어머니, 그 곁에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밝은 빛을 내어주신 어머니가 있었던 덕분이었어요.

어머니의 삶에는, 어머니의 운동에는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어떤 공학적 계산도 없었지요. 노동권을 존중하라며 제 몸을 태운 아들대신 이 땅의 노동자들을 아들로, 딸로 가슴에 안았던, 그것이 어머니가 하는 '노동운동'의 이유였고 전부였어요. 어머니의 운동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늘어진 어머니 젖가슴처럼 포근했습니다. 따뜻했어요.

밤낮없이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몸은 몸대로 상하며, 밤이면 피곤에 지쳐 닦지도 못하고 곯아떨어지는 새끼들 보며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안쓰러운 내 새끼"하며 땀에 젖은 앞머리 쓸어올려주던 그 따뜻함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우리가 어머니를 가슴에 묻습니다.
유령도시마냥 쓸쓸해진 내 마음이지만 그래도 그 중 가장 볕이 잘들고 따신 곳에 어머니를 묻을게요.
그리고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살아 볼게요.  치열하고 뜨겁게 어머니 사신 생애처럼 살아볼게요. 나의 슬픔이나 결핍이 처량해서, 내가 갖고 있는 가난이 힘들어서 포기하거나 나를 버리지 않고 어머니가 지켜주신 이 세상 만큼 저 역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도우며 함께 갈게요. 함께 살게요.

그래서 언젠가 어머니 다시 만날 날, "어머니. 세상이 참 좋아졌어요. 이제 더 이상 가난하고 없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없어졌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할게요.

어머니, 밤이 됐어요. 어둑해진 거리를 비추는 것은 전기불이지만 결국 세상을 밝히는 것은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지켜보고 계시지요 어머니?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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