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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어떻게 더 나은 '판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합시다

안철수-박원순 두 분의 출마 논란에 부쳐.

등록|2011.09.04 11:29 수정|2011.09.04 11:29
안철수, 박원순 두 분이 서울 시장에 출마하신다고 합니다.
두분 모두 아직 확실한 입장 표명을 자신의 입으로 하지 않았지만, '출마 가능성'만으로 사람들이 술렁입니다.
그간 두 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었고 그만큼 우리 정치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뢰를 잃고 있고, 기대감을 주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분들의 '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보수 성향을 가진 분들의 생각은 일단 제하기로 하고, 진보진영 혹은 반 한나라당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만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두 분의 출마 가능성을 반기는 분도 많습니다만, 분열로 인한 패배 가능성을 미리 점치며 '우려된다', '출마하지 마라', '출마는 하되 후보 단일화하라'는 말들이 벌써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들은 지지층이 겹치는 반 한나라당 후보들이 여럿 출마할 경우, 서울시를 다시 한나라당에 넘겨주는 어부지리가 될 것을 경계하는 말들일 겁니다. 그 심정이 이해가 되고, 이제는 서울시민이 아니지만 저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그 정권의 성격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말은 이미 넘칠 정도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후퇴라든가, 도덕적 불감증 같은 말을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명박 정권이 대표하는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에 대해 굉장히 실망했고, 그 능력과 도덕성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수 있겠지요.

기존 권력이 실망스럽고, 희망도 가능성도 주지 못하는 현실은 상당히 안타깝고 때로는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권력도 '선거'를 통해 구성되었고,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혀 차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세상이 잘못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람들이 모아진 우려가, 현실적으로 권력을 저지하지 못하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지요.

이것은 대의민주주의 사회의 현실적 한계입니다.
'민의'라는 것이 실시간으로 행정과 권력 집행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권력 행사의 권한을 인정받은 권력을 제어하기 상당히 어렵다는 것,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아마, 대학생들이 대표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값 등록금, 지난 대선때 적지 않게 이슈가 되었지만, 현 권력자는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했다고 기억합니다. 그래도 당장 비난은 할 수 있을망정, 책임은 묻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정치'라는 시스템의 한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정치라는 시스템은 나름의 구조와 영역, 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 정치 그 자체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를 비판하려면 이 판 안에 들어와서 하라'는 정치인들, 정치 그 자체의 이상한 선입관 같은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한나라당이 싫으면 민주당 및 기타 반 한나라 진영과 함께 논의해야 하고 반 한나라 진영이 싫으면 한나라당과 논의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력같은 것이 있다 이런 이야기죠.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민주당-공화당의 거대 양대 정당 외에 다른 정치 세력이 현실적으로 등장하기가 어렵습니다. 간혹 이 틀에서 벗어나는 참신한 인물이 등장할 때가 없지는 않지만, 그들은 파편화된 개인이거나 소수집단이지 하나의 대안으로 인정받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지요.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정치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습니다만, 민주당-한나라당의 거대 정당은 이미 '정치'라는 시스템 안에서 기득권자이자 권력자입니다. 이념적, 정책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실, 정권이 바뀌고 상황이 바뀔 때마다 소신이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내팽개치는 한국의 기존 정치 시스템에 '질리고 물린'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겁니다.
'현실적 차선'이라는 말로 현실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비록 유권자에게는 선거에서 '차선'을 선택하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 차선에 흥미를 잃은 사람이라면 과연 그 시스템 자체에 관심이 갈까요?

지금도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 혹은 '보수 세력의 재집권 방지' 등이라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아마 안철수-박원순 이 두 분이 출마를 고민하는 것도 이런 점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미 존재하는 '판'을 염려하여 '기존'이 아닌 새로운 생각, 정책, 사람의 등장을 걱정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판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노력하면 됩니다. 왜 반 한나라당의 현실적 대안이 꼭 '민주당', '참여당', '민노당' 등이 되어야 합니까? 왜 보수의 대안이 항상 한나라당이어야만 합니까?

정치라는 것은 원래 '구분'하고 '가르는 것'이 아닌 '통합'하고 '모으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하신다는 분들 중에서 이 말에 반대하실 분 아마 한 분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모습을 잘 보고 있지는 못하지만요.

현실적 대안을 고려하여 새로운 인물, 생각, 정책 등이 등장하는 것을 우려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 새로운 인물, 생각, 정책이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근본적 발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민노당이 처음 각 지역구의 선거에 등장했을 때, 표를 분산시킨다며 욕하는 사람들 굉장히 많았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권영길 의원이 대선에 출마할 때마다 그분은 '될까?'를 고민하지 말고, 자신을 지지하면 그만큼 대한민국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의 선거가 이어지며 표가 나뉜다,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말을 듣던 민노당은 이미 어엿한 '기존 정치'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민노당이 갖는 한계가 분명 있긴 합니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 '기존 정치판' 안에서, 민주당 안에서 절대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마이너였던 그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고,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에서도 승리하더니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당시 기존 정치판 안에서 '현실적 대안'만을 걱정했지만, 그를 민주당 후보, 단일화 후보 그리고 결국 대통령까지 만든 것은 그 정치 시스템이 아닌 놀랍게 모여진 일단의 '민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분과 그분의 지지자들을 모독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 자체가 기존 정치판의 현실적 대안이었던 면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지요.

잡설이 길었지만,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왜 사람들이 안철수-박원순 이 두 분의 출마 가능성에 흥분할까요?
그것은 기존의 '판'에 실망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고, 그들의 기대가 이 두 분에게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사람들이 안철수-박원순 이 두 분의 출마를 우려할까요?
그것은 기존의 '판'에 실망한 사람들이 절실하게 기존의 권력자들의 교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참신하고 깨끗하며 열의있고 소신있는 정치인.
대한민국 유권자라면 마다할 사람이 없겠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정치인은 언제나 신인입니다. 신인이 기존 정치판이 원하는 길을 통해 그 '판'에 개입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돈도 많이 들 테고, 조직력도 필요할 테고 말입니다.

정치 비평가들 중 많은 분이 참신하고 열정을 가진 신인의 등장이 보다 쉽도록, 기존의 시스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주장한 것은 이미 굉장히 오래 전부터의 일입니다.

'결선 투표'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참신한 신인에게 보다 공정한 민의가 반영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결선 투표와 같은 제도라면 얼마 전의 무상급식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자신의 의사를 개진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판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어떻게 그 판을 잘 깨버리고 새로운 판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하시는 분, '정치'에 대해 말하는 분 즉, 그 시스템에 한발을 걸친 분들의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한번에 확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노력하여 실험한 성과를 쌓아가지 않는다면 언제나 능력있고 열정적인 정치 신인들에게 '현실적 대안'을 강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만, 저는 지금의 논란이 보다 근본적인 변화와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변화와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몇 년마다 한번씩 '비교 선택'을 강요당하는 단순한 거수기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참여'도 중요하지만, 그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력은 단순히 참여를 호소하는 것뿐이 아닌 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오늘의 논란이 그만큼 중요하다 생각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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