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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행복, 숙성시켜 줄 가마솥은 '이것'

[서평] 붓다의 행복한 인생법, <42장경> 읽기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등록|2011.09.05 09:40 수정|2011.09.05 09:40

▲ 저자인 보경스님이 책에서 생전에 자실인의(慈室忍衣)를 즐겨 쓰셨다는 석주 큰스님께서는 글을 쓰고 나면 낙관까지 꼼꼼히 찍어 주셨습니다. ⓒ 임윤수


디지털 시대입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휴대전화기의 기능에 의존해 사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리도 많지만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횡횡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천리 밖 소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보여주고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게 요즘의 디지털 세상이지만 정작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펼쳐들면 더 큰 경외감에 젖어듭니다.

대부분의 경전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

'여시아문(如是我聞)', 부처님의 경전은 대부분이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됩니다. 아난의 기억,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해석되는 이 '여시아문'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경전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이 배우고 들었던 것을 기억으로 꺼내놓고, 논의와 검증으로 확립해 정리 된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5백 명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으로부터 듣고 외웠던 말씀을 이야기하고,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논의하여 부처님의 말씀으로 편집한 것이 경전입니다.

숫자 몇 개의 조합인 전화번호조차 깜빡거리는 시대에 광대무변한 부처님의 경전 대부분이 기억을 바탕으로 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 경이로움이 저절로 경외심에 젖게 합니다. 

불어(佛語), '부처님이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 <42장경>

대부분의 경전들이 이렇듯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42장경>, 송광사 서울분원 법련사 주지이며 (사)생명실천나눔본부 이사인 보경 스님의 글을 <조계종출판사>에서 펴낸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는 여느 경전들처럼 '여시아문'으로 시작하지 않고 '불어(佛語),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2장경>은 인도에서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2∼3세기에 처음 선을 보인 경전으로 경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의 말씀 42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주제를 놓고 길게 설한 내용이 아니라 짤막한 그때그때의 단편적 이야기를 모아놓은 단편집 같은 구성입니다.

유교, 도교, 기독교의 가르침 까지 수용한 깊은 해설

'억불정책'이나 '숭유배불' 이라는 용어가 발현할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 그런지 부처님의 경을 설명하는데 공자나, 노자, 장자 등의 가르침이나 말씀이 직접 거론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의 저자인 보경 스님은 유가의 공자, 도가의 노자와 장자는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까지도 도입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 글·보경 / 펴낸곳·(주)조계종출판사 / 2011. 08. 16 / 13,000원 ⓒ (주)조계종출판사

경전을 해석할 책들 대부분이 원문을 싣고 해석을 하고 있지만 저자인 보경 스님은 각 장에 앞에 '이끄는 말'을 넣어 경전을 읽는 재미를 입맛 다시게 하고 있습니다.

올 봄에 자주했던 법문은 '시숙時熟'이다. '시간을 익힌다'는 말이다. 시간을 어떻게 익힐까? '숙熟'은 '익힌다', '이루다'의 뜻이다. 숙성이 잘 되면 맛이 좋아진다.

잘 익은 과일이 꼭지까지 달듯이 수행의 완성에 이르면 걸림이 없다. 삶의 완성을 바라거든 시간을 잘 익혀보라. 모든 일이 좋아질 것이다. -99쪽-

13장 '맑은 물은 얼지 않는다'를 '이끄는 말'입니다. 표현은 감미롭고, 내용엔 깊이가 있습니다. 어떤 페이지는 한편의 시를 읽는 것 같고, 어떤 페이지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듯이 날카롭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설명이지만 머리에서 맴돌고 가슴에서 울리니 느낌은 깊고 여운은 깁니다.

불교의 궁극이 깨달음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어떤 사유나 존재법칙에는 순환구조가 있는 것이지, '그것으로 끝났다'고 한다면, 그랬다면 누가 기억하며 알아볼 것인가.

부처님이 깨달음 후에 45년간의 교화에 오르고 공자님이 천하를 주유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예수님이 사막에서 돌아온 것은 오직 하나, 사랑 때문이다. 당신들은 결코 완성에 머물지 않았다. 완성은 세상 속에서 추구되는 영원한 과정에 있지 어떤 끝이 아니다. 순환이다. 먼저 눈 떴기에 눈먼 군중을 가르쳐야 한다. -185쪽-

장의 제목들, '나는 강인가, 둑인가, 맑은 물은 얼지 않는다, 숲을 벗어나야 숲을 볼 수 있다, 흐린 물에는 달이 뜨지 않는다'에서 읽고 느낄 수 있듯이 내용은 익어있고  느낌은 깔끔합니다.   

예를 들면, 재화는 유통되고 움직이는 가운데 가치가 있다. 세상 속에 흐르지 않는 재화는 가치를 상실한다. 행복도 재투자의 속성이 있다. 복을 짓지 않으면 서서히 소멸된다. 보시는 복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잘살고 싶으면 더 베풀어야 한다. 잘 베풀면 복의 흐름이 원활하겠지만 움켜쥐면 생명력이 사라진다. 결국 복은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52쪽-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 인생과 행복을 숙성 시켜 줄 활자로 된 가마솥

경을 해석한 글이니 난해하고 상투적일 거라고 짐작한다면 그거야 말로 섣부른 선입견이 될 것입니다. 아침이슬에 젖어있는 풀을 헤치며 걷는 청량함이 있고, 명경지수에 동동 떠있는 단풍잎 하나를 보았을 때의 감흥 같은 설명입니다.

맑은 물로 입을 잘 헹구어야 제 맛의 깊이와 그림자 같은 감칠맛조차 느낄 수 있듯이 '이끄는 말'을 올려놓고 있는 배경사진은 기교 없는 연둣빛으로 순수하기만하니 마음을 헹구는 청수입니다.   

▲ 저자인 보경스님이 33장에서 석주 큰스님세서는 자실인의(慈室忍衣)를 즐겨 쓰셨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 임윤수


저자인 보경 스님께서는 '세상은 잠시 머물러가는 여인숙일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숙에 투숙한 나그네의 마음으로 읽고 새긴다면 해결하지 못할 고뇌가 없는 것이 불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經'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읽을거리로 읽어도 마음을 살찌우는 우량도서, 온통이 행복이지만 미혹에 가려 느끼지 못하고 있는 행복을 실감하게 하는 지혜의 눈을 밝혀 주리라 생각됩니다.

보경 스님이 쓰고 <조계종출판사>에서 펴낸 <슬픔에 더 깊숙이 젖어라>는 님의 인생을 숙성 시켜주고, 님이 갈구하는 행복을 숙성시켜 줄 활자로 된 가마솥입니다. 
덧붙이는 글 <슬품에 더 깊숙이 젖어라> / 글·보경 / 펴낸곳·(주)조계종출판사 / 2011. 08. 16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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