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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교육개혁, 대통령 선거 때 제시하고 동의 얻어야"

경상대 국제지역연구원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 강연 ... "국립대 법인화 반대"

등록|2011.09.06 10:26 수정|2011.09.06 10:26

▲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5일 오후 경상대학교에서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 윤성효


"교육 문제가 나오면 모든 국민이 전문가다. 교육개혁을 하려면 대통령이 선거 유세 때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대학을 암기력으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한다. 보통교육은 교육감한테 맡기고, 대학 교육은 대통령 직속 고등교육위원회를 만들어서 해야 한다. 교육개혁은 국무위원 하나로 안된다. 대통령이 교육정책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서 수임해야만 제대로 된다."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가 강조했다. 그는 5일 오후 경상대학교 남명학관에서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에 대해 강연했다. 경상대 국제지역연구원(원장 백종국)이 '대학의 미래 시리즈'의 하나로 마련한 자리.

그는 "21세기 들어온 지 11년이 됐지만 한국 위상은 굉장히 달라졌다"면서 "20세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진다. 우리나라는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 통일된 자주 국가로 우뚝 서지 못하고, 해방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금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보화와 한류 열풍을 소개한 그는 "인문학 상상력이 중요하다. 우리 문화에 대해 세계가 주목하는 게 제 생애에는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저는 후진국의 젊은이와 중년, 대학교수로 살았다. 과연 한국이 지금 평가받고 있는, 고급문화까지 선도할 수 있는 저력이 한국의 공교육에서 가능한가"라며 "요즘 젊은세대는 우리가 갖고 있었던 문화적 열등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큰 자산이다"고 말했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관 문제... 일류대학이 출세라는 등식 고쳐야"

▲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5일 오후 경상대학교에서 강연했다. ⓒ 경상대학교 홍보실

한 전 부총리는 "교육은 수요자 중심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수요자의 주체가 학생이라기보다 부모다"면서 "한국 부모들의 교육관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미국 오마바 대통령은 한국 교육을 칭찬하는 모양인데,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기 자녀의 출세를 위해서, 사회적 신분상승 이동을 위해 온갖 힘을 다 기울인다. 부모가 출세하지 못했다고 생각할수록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사교육을 굉장히 강요한다. 일류대학에 자녀를 보내야 신분 상승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류대학 진학은 곧 출세라고 생각하는데, 이 등식을 뜯어 고쳐야 한다. 학벌사회를 폐지해야 한다."

이어 한 전 부총리는 암기식 교육을 비난했다. 그는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가정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암기력으로 학생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이라며 "암기를 통해 학생을 서열화 한다. 암기력은 학습자의 창의력이나 상상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암기력은 텍스트, 즉 교과서를 외우는 것이다. 교과서는 신성 불가침하기에 담긴 내용은 진리 자체라고 여긴다. 그래서 텍스트는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다. 텍스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창조는 텍스트가 잘못됐다고, 틀렸다고 고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일류대학이 암기력으로 평가하는데, 그렇게 하면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고 한 그는 미국 유학시절을 떠올렸다.

"1962년 미국 유학했다. 그 때 미국은 천국같이 보였다. <관료제> 시간에 과제물에 대해 정리해서 30분 동안 발표했다. 교수가 뭍었다. '그래서 네 생각이 뭐냐'고. 세계 학자들의 이론은 잘 정리가 됐는데, 저의 생각이 없었던 것 이다. 교수는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다닌 모양인데, 네 생각을 가르치지 않았구나'고 하더라. 우리는 누구나 튀는 행동을 칭찬하지 않고 잘라버렸다. 작가는 서울대 출신이 거의 없고 평론가는 서울대 출신이 많다."

"미국 대학은 수능 성적으로 학생을 뽑지 않는다. 한 고등학교에서 하버드 대학에 2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시험 성적은 1600점 만점인데, 1380점과 1520점 학생이 신청했다. 그런데 1380점 학생이 입학했다. 우리 같으면 수능성적 1점 차이에서 그런 결과가 나오면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1520점 학생측이 왜 떨어졌는지 물었다고 한다. 대학은 편지를 통해 '우리는 공부벌레를 뽑는 대학이 아니고 인류와 나라,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를 뽑는 학교다'고 했다고 한다. 멋있다."

그는 대학 서열화를 깨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암기를 잘해 서울대 가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1등 대학이 갖는 지배권은 다른 어느 나라의 1등 대학이 갖는 지배권보다 굉장히 높다. 고3 60만 명이 서울대 앞에 한 줄로 선 것이다. 한 줄로 서서 가니까 대학들이 서열화된다. 그것은 창의성의 서열화와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립대 법인화 해선 안 돼... 자유를 억압하면 창의력은 죽어"

▲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5일 오후 경상대학교에서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강연회는 경상대 국제지역연구원 초청으로 열렸는데, 한 전 부총리가 백종국 교수와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 윤성효


한 전 부총리는 창의력 있는 대학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방향에 대해서도 제시했다. 그는 "사립대학은 공익적 가치를 가르치지 않을 때만 국가가 모니터 해서 어느 정도 관여하고, 사립대 경영은 사립에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기여입학제를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국립대는 수가 많다. 각 도에 하나씩 있는 거점대학을 확실하게 특성화 시켜야 한다. 거점대학마다 다른 대학이 추종할 수 없는 내실을 기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전국에 10개 정도의 좋은 대학이 생겨난다. 그렇게 되면 고3 학생이 서울대 앞에만 한 줄로 서지 않을 것이다."

그는 국립대학 법인화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한 전 부총리는 "국립대를 법인화 하면 안 된다. 법인화는 국립대를 사립대로 만드는 것"이라며 "진짜 실력 있는 학자는 자기가 쓴 교과서를 외워서 쓰는 학생을 좋아 하지 않는다. 미국은 교과서 안에서 강의하는 교수는 실력 없다고 한다. 교과서는 참고 자료다"고 말했다.

교육부총리로 있으면서 핀란드를 방문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2001년 파리에서 OECD 교육부장관회의가 열렸다. 귀국하는 길에 핀란드의 교육 현장을 보기 위해 갔다. 고등학교 3학년 반에 들어갔는데 학생 30명이 있었다. 한 여학생한테 몇 학년이냐고 물었더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학년'이란 말을 몰랐던 것이다. 우리와 같은 1학년, 2학년, 3학년의 개념이 없다. 그 학생은 예술은 3학년 급인데, 수학은 1학년 급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한테 부모가 수학 1학년 반에 들어가는 것에 뭐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예술을 잘하는 것에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신다'고 답했다. 친구들이 놀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친구들은 예술을 잘하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대답했다. 수학 못해도 예술대학 가는 데 지장이 없다고 했다. 고3 학과 과목이 10개인데, 평균 95점이면 1등할 것이다. 그런 학생은 천재가 아니다. 공부벌레다. 천재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잘하는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은 꼴찌해도 된다."

"국격을 높인 것은 정치인들이 한 게 아니다. 젊은이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부터 생긴 것이다. 자유를 억압하면 창의력이 다 죽는다. 대학은 자유가 절대 보장돼야 한다. 신성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를 선도하는 인물이 나온다. 표현의 자유를 권력이 박탈하면 창의력이 죽는다."

▲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5일 오후 경상대학교에서 "한국 고등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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