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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안방엔 호랑이가 있지요"

할머니들이 지은 노래가사들

등록|2011.09.06 15:05 수정|2011.09.06 18:24

내 마음의 노래가사 만들기음악여행수업때 내 마음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 불러보는 장면 ⓒ 이영미


'실버들의 살맛나는 음악여행'이란 악기연주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해 운영한 지 꽤 되었다. 이제 상반기가 지나고 하반기에 접어들고 있다. 아직 기량이 초보수준이지만 그래도 열의는 대단하고 그 열의가 알려지다보니 지역사회 주민들 행사에는 더러 오프닝 공연요청도 들어온다.

며칠 전에는 잠시 악기를 손에서 놓고, 마음의 노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직접 노래가사를 개사하거나 작사해보는 작업이다. 기본 곡은 제주민요인 '영 나영과 나뭇잎 배'다. 노래를 몇 번 불러본 후 그 노래곡에 맞는 가사를 붙여봤다.

처음에는 "어떻게 우리가 노래가사를 만드느냐"며 의아해 하셨지만 곧 열중하여 진지하게
가사를 붙였는데, 대부분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현재 어르신들의 삶의 기쁨이 손주들인 모양인지 손주들에 대한 할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이 담긴 이야기가 많았다.
네 분의 할머니들의 손주 사랑 가사를 소개 해 본다

우리 집 손녀딸은 너무 너무 예뻐요.
떼쓰는 것 밥 먹는 것 모두 모두 예뻐요.

반짝 반짝 방실방실 하하하하 상큼하게 웃어주는
네에 모습에 네 마음 즐겁게 해주는 너였기에 언제나 즐거운 우리집 이란다.
반짝 반짝 방실방실 하하하하 상큼하게 웃어주는 네에 모습 즐거웁구나

밝은 세상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아가야 빨리 태어나서 사랑을 노래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행복이 무엇인지를 나는 네에게 알려주고 싶고 전해주고 싶구나.

걷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뒤뚱 뒤뚱 오리걸음 너무 귀여워
하루종일 놀다가 지친 아기는
엄마춤에 코-코 잠이드네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집에서는 소심하게 남편을 섬기던 할머니가 그 마음을 노래에 표현 한 가사이다. 남편을 호랑이에 비유한 분도 있고, 남편분이 담배태워 얄밉다고 쓰신 분도 있다. 우리는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우-리집 안-방엔 호랑이가 -있-지요.
날만 새면 으--렁 나를 힘들게 하지요.

우리집 남 남편은 낳이 갈수록 얄미워
담배를 태우면 정말 짜증이나요.

남편에 잔-소리 귀에 딱지 않고요
손자에 사랑노래 입이 절로 웃네

그리고 손주를 사랑하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한 할머니도 있었다.

우리집 손자손녀 많이 보고 싶어요.
재롱둥이 예쁜모습 정말 보고 싶어요.
샛별같이 빛나는 우리 지훈이 왜 못 만나나
길이멀고 공부하느라 시간 없어 못 만난다.

샛별처럼 빛나는 우리 지훈이
왜 못 만나는지 생각해보니 시간이 없어
길이 멀고 공부하느라 못 만나지요
올 여름방학때 꼭 만나보자 보고싶구나

나이를 먹어서 몸이 늙어도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맑다. 남편과 가족들을 해처럼 달처럼 바람처럼 느끼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모습이 노래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 옮기지 못했지만 아침에는 벽 보고 혼자 밥을 먹고, 저녁에는 텔레비전를 보다 잠이 든다는 쓸쓸한 독거할머니의 가사도 있었다. 혼자 밥먹는 게 가끔은 힘이 들어 숟가락을 하나 더 상에 놓고 밥을 먹는다는 분도 있었다.

손주사랑 노래도 남의 마음이 아니고, 남편이 호랑이 같다는 느낌도 남의 느낌만이 아닐 것이며 벽을 보고 밥을 먹는 것도 결국 혼자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담담하게 생의 애환을 노래가사에 담아서 불러보는 아름다운 황혼... 해 중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것이 지는 석양인 것처럼 아름다운 황혼의 정서가 내 마음을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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