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그 남자, 박경철은 왜 눈물 흘렸나

[오연호 칼럼] 3일이 3년 같아 3킬로그램 빠진 안철수의 선택

등록|2011.09.06 18:56 수정|2011.09.07 08:39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병원장에게 다가가 포옹하자 박 원장이 울먹이고 있다. ⓒ 유성호

한 남자가 울었다. 6일 오후 4시. 박원순-안철수 단일화가 발표되던 세종문화회관 현장.

안철수 교수는 불출마를 공식선언 한 후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 준 박경철 원장께도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자들 틈새에서 불출마선언을 지켜보고 있던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안동신세계클리닉)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남자와 남자의 뜨거운 포옹은 10여 초 이상 계속됐다. 그 순간을 생중계하던 TV카메라엔 박경철 원장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잡혔다.

박경철 원장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박 원장은 기자회견 직후,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우선 지난 며칠간의 힘들었던 과정에서 '해방'되면서 흘린 눈물이었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마이뉴스>(지난 1일)에 안철수 원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후 '한나라당 2중대'라는 등 수많은 조롱과 채찍을 받아야 했다. 안철수 원장도 나도 그 과정이 너무 너무 힘들었다. 그런 채찍이 단일화 하라는 압력이라는 것은 아는데 트위터 등에서 근거없는 사실까지 떠돌았다. 그것을 큰 대의를 위해 참아내야 했던 과정이 힘들었다. '단일화' 협상을 마치니 그런 힘들었던 순간순간들이 떠올라 울컥했다."


"남자 대 남자로서 아름다웠다"

▲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안철수 교수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을 지켜보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유성호


또 하나의 이유는? 안철수 원장이 단일화를 깨끗이 합의하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발표하는 순간 "남자 대 남자로서 아름다웠다"고 했다.

"안철수 원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깨끗하게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같은 남자로서 저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남자 대 남자로서 그 순간 아름다워 보였다. 안철수 원장은 내 선배이고, 형님이고, 친구이고, 동료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하는 그가 남을 위해, 대의를 위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을 보고 아름다워서 나도 몰래 눈물이 나왔다."

박경철 원장은 이 날의 20분간의 단일화 협상에도 참여했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 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3백여 명 되지만 유일하게 깊은 이야기를 나눠 온 사람은 박경철 원장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치고 가는 안철수 원장과 못다한 질문이 있어 이런 문답이 이메일로 오갔다.

- 정부부처 자문위원을 몇 개 맡고 계신 데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분이 많더군요.
"안 그래도 웃었습니다. 정부부처는 원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죠. 큰 의미는 없지만, 실제 많은 진보인사들이나, 심지어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다들 같은 역할을 맡고 계시죠. 박 원장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정권이나, 장관의 자문이 아니라, 오히려 가감없는 쓴소리 역할을 전하는 일종의 의무 같은 것입니다. 특히 민심수렴부서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래야하고요."

3일간이 3년 같아 3킬로그램 빠진 남자의 선택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밝힌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포옹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눈물을 흘린 사람은 박경철 원장이었지만 안철수 원장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안 원장은 지난 4일 인터뷰에서 "3일간이 3년 같았다, 하루에 1킬로씩 살이 빠졌다"고 했다.

안철수와 박경철. 두 사람은 스스로 "중도"라고 한다. 그 중도에 선 두 사람은 지난 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반한나라당 선언을 했고, 이날은 친시민사회 선언을 했다. 5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도 5%대의 지지율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그것은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핍박하고 무시하던 시민사회의 상징과 가치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었다.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커밍아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안철수의 선택과 박경철의 눈물에 감동 받았다는 사연들이 트윗 타임라인에 쉼 없이 흐르고 있다. 기자(@ohyeonho)도 한 줄 트윗에 흘려보낸다.

"여러분이 감동받았다며 ㅠㅠㅠ 하니 저도 ㅠㅠㅠ하네요ㅠㅠㅠ."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