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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와 예수형상, 찾아보세요"

40년 박물관 건립 위해 수집해 온 이색수집가 유윤상씨를 만나다

등록|2011.09.07 10:35 수정|2011.09.07 10:37

달마예수 형상 돌달마와 예수 형상이 한 돌에 새겨져 있는 이 돌은 사람이 그려넣거나, 어떤 트릭도 숨어 있지 않다. 골동품 감정 전문가이기도한 유윤상 수집가가 수집한 순수 자연 석에 새겨진 자연 형상이다. 40년 수집 역사 최초로 대중매체에 공개하는 것이다. ⓒ 송상호



세상엔 이색형상 돌이 많지만,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아기주먹만한 돌에 예수 형상과 달마 형상이 함께 있다니. 누군가 그린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된 거라니. 이건 트릭도 '낚시질'도 아니다. 국내 최초로 대중매체에 공개되는 신비한 자연석 그대로의 모양이다.

40년 넘게 이색수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윤상씨는 그 방면에서 '골동품 감정전문가'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런 그가 이 돌을 수집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그는 며칠 밤을 설레어 잠을 못 이루었단다.

'달마예수 형상' 돌은 '빙산에 일각'

그가 보여준 '달마예수 형상' 돌은 사실 '빙산에 일각', '새 발의 피'다. '성모 마리아 형상'을 한 자연석, 한 폭의 자연수묵화 같은 형상의 자연석, 기암절벽 산을 축소한 모양의 바위 등 신비한 형상을 한 돌들이 집안 곳곳에 숨어있다.

또한 진품 고려청자, 조선시대 궁중 병풍,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 백범 김구의 친필, 김정희의 '죽로지실'을 판각한 현판 등 세상에 하나 뿐인 진품명품들이 가득하다. 그밖에도 조선시대 갓, 족두리, 신발, 상 등 서민들이 쓰던 것들이 방마다 가득이다. 40년 넘게 100년 전 것이면 뭐든 모아온 결과다. 사실 한정된 지면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것들은 태산을 이룬다.

달마예수 형상 돌과 나무십자가달마예수 형상 돌을 나무십자가 중앙에 박아넣어 그동안 보관해온 유윤상 수집가가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뒤로 수백개의 고가 진품명품들이 방안에 가득하다. ⓒ 송상호



그가 이렇게 수집하는 일에 미치기 시작한 것은 17세 때 였다. 책이 귀하던 시절, 우연히 접한 고서들을 보고 수집에 매력을 느꼈다는 것. 엿장수가 추사 김정희의 현판을 싣고 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서 수집한 것이 첫 짜릿함이었단다. 

전국은 물론 세계 각국 돌며 수집하다

이렇게 시작한 '수집 습관'은 멈출 줄 몰랐다. 어디에 진귀한 것이 있다면, 꼭 찾아 갔다. 오래된 것이 있다면, 꼭 손에 넣고 말았다. 이런 것을 모으기 위해 그동안 만난 사람만 해도 수천 명은 족히 넘는다. 대한민국 곳곳은 기본이고, 이색적인 돌 수집과 골동품 공부를 위해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와 유럽 각국을 돌아다녔다.

수집하러 갔다가 그 주인이 바로 승낙하면 다행이지만, 몇 날 며칠을 조르고 조르기도 했다. 결국 구입하기도 하지만, 승낙받지 못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초창기에는 천만 원 상당의 고가를 지불하고 집에 가져왔다가 가짜라는 것을 발견하고 땅을 치고 후회한 적도 있다. 몇 날며칠 '이 길을 내가 왜 택했던가'며 자괴감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비싼 인생수업료라 생각하며 한 번도 다시 물린 적이 없다니 그의 자존심도 대단하다.

성모마리아 형상 돌이것은 성모마리아 형상을 한 마노석이다. 이것도 세계 하나뿐인 자연석이며, 형상은 자연에서 저절로 새겨진 것이다. ⓒ 송상호



서울에서 부산으로 달려가 고가의 물건을 수집하려다 퇴짜를 맞고 서울로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다시 그 주인의 승낙전화가 오면 다시 부산으로 달려가 그 물건을 수집했다. 그렇게 가져간 현금으로 물건을 구입하는데 다 쓰고 나니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 상에서 연료가 바닥이나 차가 멈추어 섰던 것. 통으로 고속도로주유소에서 기름을 사서 겨우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물론 밥을 굶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오기에 그가 흘린 땀과 속으로 흘린 눈물은 그가 모아온 수집품만큼이나 많다.

이렇게 열정을 다하다보니 주위에선 "미쳤어, 돌았어.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돈이 어려우면 그런 거 팔아서 보태지 뭐하는 짓이냐"며 만류 했다고.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을 다잡았다. '나에게 꿈이 있다'며. 또한 평생 옆에서 함께 한 아내의 수고를 떠올렸다.

40년 꿈, 아내의 이름으로 박물관 건립하는 것

그는 요즘 안성 보개면 남사당 공연장 가는 길 즈음에 산다. 서울에서 귀향한 지 3년이다. '옛날마당 구경자리'란 조그만 전시장을 운영한다. 거기서 골동품 마니아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지금도 거의 매일 무언가를 모으고 있다.

수묵화 형상이 수묵화 형상이 자연이 저절로 새겨 넣은 거라면 믿겠는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과 빗물 등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석이다. 신기하게도 앞뒤가 모두 이런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다. ⓒ 송상호



자신이 모은 물건을 팔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옛날마당 구경자리'엔 '옛날 것이면 무엇이든 삽니다'란 문구가 눈에 띄게 걸려있다. 이제 환갑이 다된 노구에도 그의 열정은 이팔청춘이다.

40년을 꾸어온 그의 꿈은 단 한 가지. 박물관을 내는 것. 그것도 자신과 함께 해준 아내의 이름으로. 주위에서 돌았다고 미쳤다고 할 때,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새울 때, 고가를 주고 사온 짝퉁으로 인해 속이 쓰릴 때도 말없이 함께 해준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이다.

이 모든 것을 지난 6일 그의 자택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람으로서 그의 꿈이 이젠 꿈으로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면 나의 지나친 바람일까.

골동품 가득그가 사는 집엔 방마다 이러한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고려청자, 조선시대 궁중 병풍 등의 고가의 물건부터 서민들이 쓰던 각종 생활용 골동품들이다. 대부분이 100년을 넘긴 것이며 40년 넘게 그가 직접 발로 뛰어 모은 것들이다. 보안상 자세한 사진이나 고가의 진품들은 공개하지 않았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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