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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지게' 맑은 가을하늘, 맘껏 즐겨라

날씨는 문명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성격까지 지배한다.

등록|2011.09.07 18:15 수정|2011.09.07 18:15

▲ 소나무 숲 위로 펼쳐진 맑은 가을하늘. 오전 8시 촬영 ⓒ 허관



"9월 7일 수요일 맑음"이라고만 일기장에 기록하기에는 미안한 청명한 가을하늘이다. 이웃집 소녀의 하얀 목덜미를 보고 뭐라 설명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그 설렘을 글로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늘이 빨개 벗고 말갛게 씻은 듯 깨끗하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 이해별 작사 동요 <아기염소> 중에서

동요에서처럼 하늘은 파랗고 들은 푸르다. 푸른색과 파란색은 다르지 않다. 푸른색 속에 파란색이 있다. 푸른색은 녹색, 파란색, 새파란 색까지 아우르는 색으로, 숲과 들의 색이다. 초가을의 들은 다양하기에 푸른색이고, 하늘은 선명한 단색인 파란색이다.

왜 가을 하늘이 유독 파랗고 맑을까
여름이나 봄에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을하늘이 유독 파란 이유는 하늘이 깨끗해서이다. 그렇다면 하늘이 깨끗하면 무색이어야 하는데 왜 파란색일까. 하늘의 색은 파란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붉은 저녁노을이 있고, 태양 주변은 하얀색이고, 짓은 먹구름은 거무스름한 색이다. 하늘의 색은 빛의 산란 때문에 생긴다. 산란이란 빛이 물체에 부딪히고 흩어지는 현상이다. 긴 파장을 산란시키면 적색계열이, 짧은 파장을 산란시키면 청색계열의 색이 하늘을 덮는다. 짧은 파장을 산란시키기 위해서는 산란매체가 작아야함은 당연하다. 즉 산란시키는 입자가 전혀 없다면 하늘은 흰색이어야 한다. 가을하늘이 파란 것은 산란을 시키는 입자가 작다는 것이고, 드높고 맑은 것은 입자의 개수가 적다는, 다시 말해 하늘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5일 후면 추석이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배고픈 시절 가을의 풍성한 먹거리 때문에 이런 말이 생겼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고, 당연히 흐린 날이 많았다. 반갑기 그지없는 맑은 가을 하늘과 신선한 바람이다. 저절로 "더도 말도 덜도 말고 요즘 같이 하늘이 맑고 높아라"라고 중얼거려지는 날씨다.

그런데 사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같이' 하늘이 맑고 높으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반도는 사하라사막보다 더 척박한 땅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은 물론 동물조차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자연 현상은 무엇일까. 한반도 전체를 휩쓸고 가는 태풍도,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드는 집중호우도 아니다. 그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은밀한 살인자"란 별명의 주인공 가뭄이다.

▲ 적도와 극지역의 온도차로 발생한 지구 대기대순환. 우리나라를 비롯한 편서풍지대는 남쪽의 아열대고압대와 북쪽의 한대전선대 사이에 있다 ⓒ 디르케 세계지도(1998)

우리나라 남쪽 위도 약 30도 부근에 띠 모양으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아열대고기압대가 있다. 아열대고기압대는 적도와 극 지역의 에너지 차이로 생기는 지구 대기대순환에 의해 생긴다. 즉 적도지역의 편동풍과 중위도 지역의 편서풍 사이에 거대한 고기압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열대고기압대는 사철 하늘이 맑고 높다. 당연히 사하라 사막을 비롯하여 세계의 대부분 사막은 이 고압대의 영향권에서 형성되었다. 지구가 따뜻해진다고 지구촌이 난리법석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반도에 아열대성 과일을 재배하여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농사꾼들을 언론에서 접하는 것이 그리 신기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열대고기압대가 북상하여 한반도를 덮으면 어떻게 될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인류의 문명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서, 자연의 손아귀에 벗어난 적이 없다. 인류의 객체인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이스터 섬의 문명 붕괴에서 찾을 수 있다.

지구가 오늘날 우주에서 고립된 것처럼 폴리네시아의 이스터 섬은 태평양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은 곤경에 빠졌지만 피신할 곳이 없었다. 구원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오늘날 우리 지구인이 곤경에 빠진다면 어디에,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 <문명의 붕괴> 169쪽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날씨를 보이는 나라다. 아열대고압대와 한대전선대 사이에 형성된 편서풍을 타고 지나가는 저기압의 길목이며, 아시아대륙 서쪽 끝에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대륙과 해양의 공기성질은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성질이 다른 공기가 만나면 대기가 불안정하여 날씨가 나쁘다.

다이나믹한 날씨에 덧붙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특징을 보인다. 봄인가 하면 여름이고, 또 금방 가을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농업기반 국가였다. 봄에 씨앗을 뿌리지 못하면 가을에 거두지 못하고, 겨울나기 힘들었다. 사계절 중 한 시기라도 훌쩍 지나칠 수 없었다. 계절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구분되었다.

삶이 어땠을까. 당연히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좋은 날을 골라 봄에 빨리 씨앗을 뿌려야 했고, 여름에는 웃자라는 잡초들을 빨리 제거해야 했을 것이고, 가을에는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빨리 수확을 해야 했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특징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이는 기후의 영향으로 생겨난 현상이다.

날씨를 지배하는 것은 기압이다. 기압은 상대적이다. 즉 주변에 비해 기압이 높으면 고기압이고, 반대로 낮으면 저기압이다.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압 뿐 만아니라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혼자 존재하는 것은 없다. 빛과 그림자, 여자와 남자, 겨울과 여름, 남극과 북극, 사랑과 미움, 네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듯이.

모든 사물은 흐르고 지나가고 사라진다.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우라지게 맑은 가을하늘, 맘껏 즐겨라. 미안해하지마라. 곧 비구름에 가려질 하늘이다. 대륙에서 넘어온 먼지에 탁하게 흐려질 하늘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씨를 뿌리는 일도, 수확해야 할 일도 아니다. 고개 들어 하늘이 만들어 놓은 진수성찬을 눈으로 거하게 들이키는 일이다.

▲ 소나무 숲 위로 펼쳐진 파란 가을하늘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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