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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불러주는 내 이름은 '여자 6호님'

[TV 프로그램 비평] SBS <짝>

등록|2011.09.08 18:23 수정|2011.09.08 18:23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런데, 그 이름이 '남자4호', '여자6호'라면? 누군가의 꽃이 되고자 혹은 나의 꽃을 찾고자 12명의 남녀가 모이는 SBS <짝>의 '애정촌'에선 서로를 부르는 사랑스러운 이름 따윈 없다. 기껏해야 상냥함과 친절의 의미로 '님'을 붙여, '남자○호님'과 '여자○호님'정도만 있을 뿐이다.

▲ SBS <짝> ⓒ SBS


매주 방영 뒤 출연진과 관련한 각종 루머나 과거논란 후폭풍으로 더 주목받는 <짝>은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오로지 짝 찾는 일에만 몰두하기 위해 모인 일주일, 168시간을 기록한다.

지난 31일은 과거 애정촌을 찾았지만 짝 없이 돌아갔던 12명이 재도전하고 짝을 결정했던 11기 '한 번 더 특집'과 함께, 애정촌을 찾은 새로운 12기 14명의 이야기가 일부 방영됐다. 이후 12기 여자 6호는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역대 출연자들 중 가장 선한 이미지와 행동으로 단연 '천사표' 이미지를 보여준 6호가 불륜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욕도 참 잘했던 그 분이, 제 신혼 침대에서도 주무시고 가셨던 그 분이 떡하니 천사표로 등장했다"며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 폭로한 누리꾼의 열혈시청 덕분이었을까. 8월 31일 <짝>은 AGB닐슨리서치 조사 수도권 기준 10.7% 시청률을 기록했다.

계산기를 다 두드리고 나서야 감정은 시작된다

▲ SBS <짝> ⓒ SBS


서두에서 꺼낸 김춘수의 시 '꽃'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의 꽃이 되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기에 일주일이란 시간은 다소 무리였던 걸까. 지금까지 총 11기수가 거쳐 가고 현재 12기가 생활하고 있는 애정촌에서는 상대의 조건을 모두 계산하고 따져 물은 뒤, 스스로 몇○호가 자신과 어울린다고 '계산이 난' 뒤에야 감정이 시작된다.

물론 매번 다수의 커플이 탄생하고 그 중 한 두 쌍이 실제 연인으로도 발전했으니, 모든 출연진이 속물적으로 애정촌 생활을 했다고 매도할 순 없다. 허나 역으로 생각하면, 방송 말미에 그렇게 많이 탄생한 커플이 실제로 이어진 경우는 한 두 건에 그치는 걸 보면 애정촌에서는 마음이 가는 것보다 계산기 두드리는 속도가 조금(?) 더 빠르지 않나 싶다. 이는 짝찾기마저 완벽하게 '시장'이 되어버린 현 세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물론 결혼을 전제로 짝을 찾으러 온 출연진들이 직업과 능력, 성격과 스타일, 외모 등을 꼼꼼히 따지는 걸 두고 도의에 어긋난다며 나무랄 의도는 없다. 사실 안면부지의 남녀 14명을 제한된 공간에 밀어 넣고, 기본 신상정보조차 만남이 하루가 지난 뒤에서야 이뤄지는 자기소개로 파악하는 상황이니 애정 없는 행위들의 연속을 탓해 뭣하겠는가.

▲ SBS <짝>화면 캡쳐 ⓒ SBS


다만 이를 십분 이해한다 하더라도, 제작진이 제시하는 각종 게임이나 룰의 작위성은 봐주기 힘들다. 이번 주 역시 제작진은 여느 때와 비슷하게 함께 도시락을 먹고 싶은 남자를 향해 여성이 수영장을 건너가는 볼거리를 주문했다. 이를 두고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작용한 행동이라는 둥, 사랑을 위해선 기꺼이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둥, 온갖 미사여구가 다 나온다. 기껏해야 보폭으로 스무 걸음 남짓 거리의 수영장을 허리춤까지 오는 물을 건너는 것을 가지고 말이다. 호들갑도 이런 호들갑이 없다.

'유치 찬란' 애정촌을 '훔쳐'보다

남녀 여럿이 오롯이 서로만 쳐다볼 수 있는 공간에서 좋아하고 시기하고 실연하거나 맺어지는 애정촌. 그 속에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건, 원하는 이성과 짝이 되기 위해 때론 치열하고 살벌한, 또 때론 한없이 유치찬란한 광경이 연출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애정촌의 짝짓기 과정을 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훔쳐본다. 연애나 실연 혹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고군분투는 어쩌면 가장 사적인 부분이다. <짝>은 그 은밀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카메라가 속마음까지 교묘히 읽어주니, 그 자극성이야말로 시청자를 불러 모으는 핵심 에너지다.

▲ SBS <짝> ⓒ SBS


거기다 똑같이 남의 연애구경을 오락화한 MBC 예능 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와 달리 <짝>은 일반인이 출현하는 '리얼'이라는 점은 훔쳐보기의 카타르시스를 최고조로 높이는 요소다. <우결>이 '쟤네 혹시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라는 옅은 의심을 품고 보는 재미라면, <짝>은 실제 커플이 돼도 거리낄 게 없는 일반인들 간의 미묘한 감정 흐름을 보면서 '리얼같은'이 아니라 '리얼'이라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는 항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짝>의 프로그램 장르 논란과 맞닿아있다.

<짝>은 초창기 파일럿 프로그램 당시의 영향이 반영됐기도 했고, 또 일반인들이 출연해 특정 상황에서 겪는 심리적 반응이나 행동의 변화 등을 허구의 첨가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교양다큐'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프로그램의 기능이나 효과는 '예능'과 다를 바 없어 논란이 되는 것이다.

리얼이 가미된 애정촌 훔쳐보기를 부추기는 것은 시선을 끌 만한 상황을 중계하는 내레이션과 의미심장한(?) 교차편집, 그리고 매기수마다 특정인물을 부각해 그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가는 프로그램 내부적 요소들이다. <짝>은 "여자 6호는 남자의 사랑을 얻고 싶다"나 "여자 ○호가 아프다. 울고 있다", "남자○호는 여자○호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등 제3자인 제작진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 배제시킨 듯한 느낌의 상황 중계를 계속했다.

또 많은 여자들의 선택을 받은 남자의 표정과 나머지 남자들의 시선을 교차 편집하는가 하면 남자의 마음을 확인한 여자가 다른 여자 경쟁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당황해 하는 표정을 클로즈업 하는 식의 화면을 자주 잡는다.

거기다 이번 방송 이후 불륜논란에 휩싸인 여자 6호의 경우 제작진이 부각시킨 애정촌 안에서의 천사표, 평강공주 이미지와 함께 다른 출연진을 배려하는 모습,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데서 오는 부재의식과 그에 대한 연민 등이 사건을 키운 측면도 있지만 매 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을 설정한다는 측면에서 <짝> 훔쳐보기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SBS <짝> ⓒ SBS


매주 수요일 <짝>이 방송된 뒤에는 출연진의 과거에 대한 루머가 올라오거나 주거지, 집안 배경 등 이른바 '신상털기', '마녀사냥'이 이뤄진다. 지난주 '여자6호'의 경우뿐만 아니라 '애로배우 출신 여자○호', '해운회사 사장 딸 여자○호' 등 출연자들은 학력, 재산, 미모 등의 외적인 조건으로 불리고, 한번 찍히면 제대로 털린다. 여기에는 제작진이 자의적으로 출연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 모습대로 카메라에 담고 집중한다는 점에서, 일반인 출연자를 데리고 '쇼'를 펼침과 동시에 '내기'를 하고 있다. 짝을 찾아준다는 미명하에.

"남녀가 짝을 찾아가는 실제 만남 과정을 통해 한국인의 사랑을 살펴보고자 한다". <짝> 애정촌에서 펼쳐지는 저게 한국인의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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