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습 문제에 왜 정치권이 나설까
[주장] 전인교육의 토대는 입시경쟁교육의 완화로부터
"보충수업과 야자를 하지 않으면 벌점 받아요."
"0교시하느라 저희는 밥도 못 먹고 집을 나섭니다."
"공부 기초가 부족한 애들 아무리 잡아서 강제로 시켜보았자 혼자서 못한다는 것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육청 관계자 분들도 아실 겁니다."
"보충수업은 이해가 갑니다. 돈을 벌려는 속물 학교의 속셈이죠. 왜 학교의 돈 버는 욕심에 저희가 희생되어야 하나요?"
인천 관내 중 ․ 고등학교의 현실이거나 인천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제 야자, 보충' 관련 의견들이다. 시교육청은 '방과후학습'을 강제로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지도, 감독하겠다는 내용을 공문 시행, 교육감 취임 1주년 기자회견, 교육감 시정 질의 등을 통해 끊임없이 공표하고 있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이른바 야자, 보충, 0교시 등 정규교육과정 외 방과후학습(이하, '방과후학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제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전교조인천지부 등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지난 6월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 강제방과후학습 개선을 통한 공교육정상화'를 위한 2,841명의 인천중등교사의 개선요구 서명을 교육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 인천시민 2,838명의 서명을 받아, 9월 6일 '인천광역시 학생 정규교육과정외학습선택권 보장에 관한 조례 제정' 청원 서명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인천시의회 소속 노현경 의원은 의회소속 시의원 18명과 함께 9월 중하순에 개최될 임시회에 '인천광역시 학생 정규교육과정외학습선택권 보장에 관한 조례'를 발의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 시교육청은 겉으로는 '강제 교육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강제로 방과후학습을 실시하는 것이 인천 학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시교육청 담당 장학관이 지역언론을 통해 기고한 내용 일부를 보자.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안들은 강제적이라고 하면서 새로 만드는 것들은 다른 구성원에게는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이율배반적인 일은 없어야 한다." (인천신문, 2011.08.29일자)
'학생학습선택권보장 조례안'의 문제점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과후학습을 강제로는 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조례의 핵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시교육청과 동일한 내용임에도 조례안을 반대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생 선택의 자율성 보장 등 학교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시행하는 등 절차적 정당서을 확보하여 운영"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여 희망하는 학생에 한하여 시행" [인천광역시교육청 중고등학교 시행 공문 :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과정기획과-16426(2011.05.17)호]
위의 내용은 지난 5월, 인천시교육청이 인천 관내 전 중, 고등학교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학생학습선택권보장 조례안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조례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문을 받고 있는 교과 외의 학습과 관련해서 선택권 보장을 강화하겠다. 그리고 강제가 되지 않도록 적극 지도해 나가겠다." (인천시의회 시정질의 때 나근형 교육감의 발언)
이러한 이중적 입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나근형 교육감은 지난 6월 27일, 인천 교육감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강제방과후학습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이나 야간 자율학습이 강제적이라고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해야 한다. '일찍 집에 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가, "교육계 외부에서 '강제'라고 말이 많다. 공부는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스스로의 발언에 힘겨워해야 했다.
인천 관내 전체 중,고등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는 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문을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방과후학습을 강제로 시행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굳이 공문 시행을 통해 지침으로 각 학교에 내려보낼 필요가 없지 않았겠는가. '강제'가 아니었다면.
전교조인천지부 등이 지난 6월, 인천의 학생과 학부모 6,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천교육정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방과후학습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74.1%의 학생이 '학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강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때문' 이라고 답했고, '자녀가 이를 신청하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유효응답자 중 71.5%의 학부모가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해서'라고 답한 결과를 내놓았다.
방과후학습의 '강제'시행 여부가 이렇게 입장에 따라 상이한 것부터 분명하게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방과후학습이 강제적이고, 이를 기존의 규정 체계에서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합법적 움직임이 조례 제정 운동으로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논쟁에 정치권이 가세했다는 점이다. 정치조직이 의견을 개진하거나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을 문제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이에 대해 생산적 토론을 통해 새로운 교육 정책을 생성하기보다 이념 대결로 몰아가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 한나라당 인천광역시당은 7일, '학생학습선택권보장 조례'에 반대의 뜻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이 뽑은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권한은 "박탈"하며, 교사들을 징계와 평정으로 "협박"하는 무법적 조례를 만들겠다는 무모한 용기는 가상하나 법률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 부족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조례안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며, 동의할 수 없다면 시의원을 그만두고 시장이나 교육감 출마준비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나라당 인천광역시당 성명서, 2011.09.07)
인신공격성 언사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오히려, 훨씬 더 상위법이라 할,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나, '헌법 (제34조) 1항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는 달리, 현재 교육당국이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학생들을 헌법에 제시된대로 살지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직시하지 않는다. 또, 초중등교육법 (제18조) 4항의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한다'는 내용을 과연 학교의 장들은 실천하고 있긴 하나.
사람의 체력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학습량의 상징이자 소모적 교육시스템임을 알면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강제 야자, 보충'. 보수 정치세력이 의도하고 있는 이념적 대결의 틀에서 한발짝 벗어나 학교 현장의 사례로부터 방과후학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자.
학생 입장에서는 인성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 측면에서의 비교육성을 일단 논외로 한다고 해도, '강제 야자, 보충'을 하는 것이 개인에 따라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라는 것이 문제다. 지식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으로서의 진정한 가르침보다 '공부를 통한 출세'를 꿈꾸는 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엇나간 인식과 이 험한 시국에 거대한 교육 구조를 바꾸려 굳이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교사들의 현실 안주 태도가 맞물려 애꿎은 학생들만 왜곡된 교육현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 측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 야자, 보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울상을 짓는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 개인이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학내 문제가 해결된다 해서 바로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학교 현장에서 실현가능한 정책들부터 차근차근히 시행해 나간다면 이 또한 학벌사회를 핑계로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을 수 있고 전인교육의 장을 열어나갈 교육적 기회가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을까.
교수-학습과정도 일종의 클리닉이다. 정규교육과정에 의거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의 학습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학습 과정을 메워주는 것이 지식교육 차원에서는 일반적으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교육활동이 될 것이다. 또, 이를 충분히 충족한 학생들에게는 개인의 수용정도에 따라 수월성교육을 더 진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규교육과정이 제시해 놓은 일련의 교육과정에 한참 못미치는 학생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사회에서 원만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학습내용들에 대해 반드시 가르치도록 제도적 장치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성적, 학습동기, 이해 수준 등에 따라 다양한 '맞춤식 교육'은 교수-학습에 필수적인 조건이라 하겠다.
한편, 중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이른바 주요교과 담당교사들이 모두 보충수업 강사가 되다보니, 이들 교과목 교사가 교육청 출장 등이 있는 경우에는 도덕, 기술가정 교사 등 관련이 전혀 없는 교사들이 영어나 수학 보충수업에 들어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어나 수학을 국어나 음악교사가 가르칠 수는 없지 않는가. 궁여지책으로 학생들에게 유인물만 나누어주고 문제를 풀게 한다지만, 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 시간에 해당되는 수강료도 고스란히 학교에 내야 한다는 부조리에 가까운 이러한 현실이 인천 중학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충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학습을 운영한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지만, 이는 모든 학생들에게 이른바 주요교과를 중심으로 보충수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병폐의 상징적 사례 중의 하나다.
0교시도 모자라 9~10교시를 하는 중학교도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 후에는 학원으로 또 향해야 하며, 자정이 넘어서 집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람의 체력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건강권이라는 개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즉 학습 효율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효율성이 굉장히 낮을 수밖에 없는 소모적 학습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만 죽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습선택권보장 조례' 역시 교육의 만병통치약일리는 만무하다. 이 조례가 제정되고 나면 사교육 문제나 학생들이 유흥문화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등의 우려가 충분히 현실로 나타나는 등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조례 제정 여부에만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학생들이 진정한 교육을 받기 위한 토대이자 시발점으로서 조례안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그러고 나면 궁극적으로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완화할 수 있는 지역 교육 정책들을 생산해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벌사회의 현실이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은 사실일지라도,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인교육에 대한 교육의 진정성을 포기하는 것이 교육자나 책임있는 관련 기관의 사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 경기에서 새롭게 추진되어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혁신학교 운동', 사교육 억제를 위해 학원 교습시간을 조례로서 일정 정도 제한하는 법안, 이른바 '창의적체험활동'으로 불리는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학생 진로체험활동 중심의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인천교육문화회관이나 지역도서관과 연계하여 학생들의 청소년 문화, 여가 활동 프로그램을 강화한다는지 하는 다양한 교육적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교육적 '이상'에 대한 접근을 접고 오로지 현실 속에서 서바이벌 경쟁의 대열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헌법에서 말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는 거리가 멀 뿐이다. 또, 그 법전에서 말하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말이 유효하다면, 공교육기관은 학생들에게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마련하고 실천할 의무가 있다.
"0교시하느라 저희는 밥도 못 먹고 집을 나섭니다."
"공부 기초가 부족한 애들 아무리 잡아서 강제로 시켜보았자 혼자서 못한다는 것은 선생님뿐만 아니라 교육청 관계자 분들도 아실 겁니다."
"보충수업은 이해가 갑니다. 돈을 벌려는 속물 학교의 속셈이죠. 왜 학교의 돈 버는 욕심에 저희가 희생되어야 하나요?"
▲ 인천시교육청 홈페이지 참여마당강제방과후학습 관련 민원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 인천시교육청 홈페이지
인천 관내 중 ․ 고등학교의 현실이거나 인천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제 야자, 보충' 관련 의견들이다. 시교육청은 '방과후학습'을 강제로는 실시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지도, 감독하겠다는 내용을 공문 시행, 교육감 취임 1주년 기자회견, 교육감 시정 질의 등을 통해 끊임없이 공표하고 있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이른바 야자, 보충, 0교시 등 정규교육과정 외 방과후학습(이하, '방과후학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제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 학생학습선택권 보장 조례 청원서 전달전교조인천지부 등이 학생학습선택권 보장 조례 청원서명을 인천시의회에 전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광국
이에 앞서, 인천시의회 소속 노현경 의원은 의회소속 시의원 18명과 함께 9월 중하순에 개최될 임시회에 '인천광역시 학생 정규교육과정외학습선택권 보장에 관한 조례'를 발의해 놓은 상태다.
그런데 시교육청은 겉으로는 '강제 교육은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상 강제로 방과후학습을 실시하는 것이 인천 학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시교육청 담당 장학관이 지역언론을 통해 기고한 내용 일부를 보자.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안들은 강제적이라고 하면서 새로 만드는 것들은 다른 구성원에게는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이율배반적인 일은 없어야 한다." (인천신문, 2011.08.29일자)
'학생학습선택권보장 조례안'의 문제점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과후학습을 강제로는 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조례의 핵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시교육청과 동일한 내용임에도 조례안을 반대하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생 선택의 자율성 보장 등 학교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시행하는 등 절차적 정당서을 확보하여 운영"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여 희망하는 학생에 한하여 시행" [인천광역시교육청 중고등학교 시행 공문 :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과정기획과-16426(2011.05.17)호]
위의 내용은 지난 5월, 인천시교육청이 인천 관내 전 중, 고등학교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학생학습선택권보장 조례안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조례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강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문을 받고 있는 교과 외의 학습과 관련해서 선택권 보장을 강화하겠다. 그리고 강제가 되지 않도록 적극 지도해 나가겠다." (인천시의회 시정질의 때 나근형 교육감의 발언)
이러한 이중적 입장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나근형 교육감은 지난 6월 27일, 인천 교육감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강제방과후학습 관련 기자들의 질문에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이나 야간 자율학습이 강제적이라고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해야 한다. '일찍 집에 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가, "교육계 외부에서 '강제'라고 말이 많다. 공부는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스스로의 발언에 힘겨워해야 했다.
인천 관내 전체 중,고등학교에, 야간자율학습을 강제로는 시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문을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학교 현장에서는 이미 방과후학습을 강제로 시행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굳이 공문 시행을 통해 지침으로 각 학교에 내려보낼 필요가 없지 않았겠는가. '강제'가 아니었다면.
전교조인천지부 등이 지난 6월, 인천의 학생과 학부모 6,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천교육정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방과후학습에 참여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74.1%의 학생이 '학교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강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때문' 이라고 답했고, '자녀가 이를 신청하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유효응답자 중 71.5%의 학부모가 '학교에서 해야 한다고 해서'라고 답한 결과를 내놓았다.
방과후학습의 '강제'시행 여부가 이렇게 입장에 따라 상이한 것부터 분명하게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방과후학습이 강제적이고, 이를 기존의 규정 체계에서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합법적 움직임이 조례 제정 운동으로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논쟁에 정치권이 가세했다는 점이다. 정치조직이 의견을 개진하거나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것을 문제시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이에 대해 생산적 토론을 통해 새로운 교육 정책을 생성하기보다 이념 대결로 몰아가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 한나라당 인천광역시당은 7일, '학생학습선택권보장 조례'에 반대의 뜻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 성명을 발표했다.
"시민이 뽑은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권한은 "박탈"하며, 교사들을 징계와 평정으로 "협박"하는 무법적 조례를 만들겠다는 무모한 용기는 가상하나 법률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 부족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조례안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며, 동의할 수 없다면 시의원을 그만두고 시장이나 교육감 출마준비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나라당 인천광역시당 성명서, 2011.09.07)
인신공격성 언사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오히려, 훨씬 더 상위법이라 할,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나, '헌법 (제34조) 1항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와는 달리, 현재 교육당국이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학생들을 헌법에 제시된대로 살지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직시하지 않는다. 또, 초중등교육법 (제18조) 4항의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한다'는 내용을 과연 학교의 장들은 실천하고 있긴 하나.
사람의 체력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학습량의 상징이자 소모적 교육시스템임을 알면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강제 야자, 보충'. 보수 정치세력이 의도하고 있는 이념적 대결의 틀에서 한발짝 벗어나 학교 현장의 사례로부터 방과후학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자.
학생 입장에서는 인성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 측면에서의 비교육성을 일단 논외로 한다고 해도, '강제 야자, 보충'을 하는 것이 개인에 따라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라는 것이 문제다. 지식교육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스승으로서의 진정한 가르침보다 '공부를 통한 출세'를 꿈꾸는 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엇나간 인식과 이 험한 시국에 거대한 교육 구조를 바꾸려 굳이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교사들의 현실 안주 태도가 맞물려 애꿎은 학생들만 왜곡된 교육현실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 방과후수업의 효과? 조사학생 중 54.4%가 '방과후수업을 어쩔 수 없이 참가하고 효과는 별로 없음' 답을 했다 ⓒ 전교조인천지부 제공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 측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 야자, 보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울상을 짓는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 개인이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학내 문제가 해결된다 해서 바로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학교 현장에서 실현가능한 정책들부터 차근차근히 시행해 나간다면 이 또한 학벌사회를 핑계로 학생들을 괴롭히지 않을 수 있고 전인교육의 장을 열어나갈 교육적 기회가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을까.
교수-학습과정도 일종의 클리닉이다. 정규교육과정에 의거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학생들의 학습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학습 과정을 메워주는 것이 지식교육 차원에서는 일반적으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교육활동이 될 것이다. 또, 이를 충분히 충족한 학생들에게는 개인의 수용정도에 따라 수월성교육을 더 진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규교육과정이 제시해 놓은 일련의 교육과정에 한참 못미치는 학생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사회에서 원만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학습내용들에 대해 반드시 가르치도록 제도적 장치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학생들의 성적, 학습동기, 이해 수준 등에 따라 다양한 '맞춤식 교육'은 교수-학습에 필수적인 조건이라 하겠다.
한편, 중학교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등 이른바 주요교과 담당교사들이 모두 보충수업 강사가 되다보니, 이들 교과목 교사가 교육청 출장 등이 있는 경우에는 도덕, 기술가정 교사 등 관련이 전혀 없는 교사들이 영어나 수학 보충수업에 들어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영어나 수학을 국어나 음악교사가 가르칠 수는 없지 않는가. 궁여지책으로 학생들에게 유인물만 나누어주고 문제를 풀게 한다지만, 학생,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 시간에 해당되는 수강료도 고스란히 학교에 내야 한다는 부조리에 가까운 이러한 현실이 인천 중학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충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학습을 운영한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지만, 이는 모든 학생들에게 이른바 주요교과를 중심으로 보충수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하는 병폐의 상징적 사례 중의 하나다.
0교시도 모자라 9~10교시를 하는 중학교도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 후에는 학원으로 또 향해야 하며, 자정이 넘어서 집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사람의 체력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건강권이라는 개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즉 학습 효율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효율성이 굉장히 낮을 수밖에 없는 소모적 학습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만 죽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습선택권보장 조례' 역시 교육의 만병통치약일리는 만무하다. 이 조례가 제정되고 나면 사교육 문제나 학생들이 유흥문화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등의 우려가 충분히 현실로 나타나는 등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조례 제정 여부에만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학생들이 진정한 교육을 받기 위한 토대이자 시발점으로서 조례안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그러고 나면 궁극적으로 입시경쟁과 학벌사회를 완화할 수 있는 지역 교육 정책들을 생산해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벌사회의 현실이 결코 녹록치 않은 것은 사실일지라도,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인교육에 대한 교육의 진정성을 포기하는 것이 교육자나 책임있는 관련 기관의 사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 경기에서 새롭게 추진되어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혁신학교 운동', 사교육 억제를 위해 학원 교습시간을 조례로서 일정 정도 제한하는 법안, 이른바 '창의적체험활동'으로 불리는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학생 진로체험활동 중심의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 인천교육문화회관이나 지역도서관과 연계하여 학생들의 청소년 문화, 여가 활동 프로그램을 강화한다는지 하는 다양한 교육적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교육적 '이상'에 대한 접근을 접고 오로지 현실 속에서 서바이벌 경쟁의 대열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헌법에서 말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는 거리가 멀 뿐이다. 또, 그 법전에서 말하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말이 유효하다면, 공교육기관은 학생들에게 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마련하고 실천할 의무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인천교사신문에 실린 글을 보완하였으며, 9월 16일 개최되는 '학생학습선택권 보장 조례안' 토론회 자료집에 송고할 원고로서 토론회 발제시 활용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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