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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교육감, 절대 사퇴말고 '사자굴'에서 싸우라

[주장] 진보개혁진영, 좌고우면 말고 진실찾기에 총력 기울여야

등록|2011.09.10 11:23 수정|2011.09.10 17:57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9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이른바 '곽노현 사건'에 대해 1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사퇴해서는 안된다는 내 입장에 수긍하는 한 친한 친구가 검찰의 구속영장청구, 법원의 영장발부 가능성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검찰의 영장청구 가능성은 100%, 법원의 발부 가능성은 50%라고 딱 부러지게 답했다.

검찰은, 법원이 이 사건 혐의사실의 경중,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등을 따져 영장발부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고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다. '강력한 처벌의지'를 과시하며 무조건 사건을 키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영장발부가 거부될 경우 수사담당검사가 인사불이익을 당할 걱정도 없다. 이 사건은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내세운 한상대 검찰총장 체제가 집단적으로 기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창피해 하지도 않는다. 원래가 '목적은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인생철학을 내면화한 얼굴 두꺼운 사람들이니까. 검찰의 영장청구 가능성을 100%로 단정한 이유다.

곽노현의 무죄를 확신하면서도 법원의 영장발부 가능성을 50%나 높이 예상한 것은 다소 모순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대 대한민국의 법관에 대한 믿음이 그 정도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법원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는 별도로, 신영철같은 이가 대법관으로 버젓이 버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과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법관을 만날 확률은 절반도 안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이번 경우엔 운이 더 나빴다.

힘에 논리에 굴복한 법관

수사검사는 이 사건의 본질을 "다른 사람 집에서 물건을 훔친 뒤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으니 절도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고 비유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관 수준이, 그런 정도의 저급한 논리를 바탕으로 구성됐을 검사의 소장에 "범죄사실이 소명됐다"고 고개를 끄덕일 만큼 한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유를 하려면 최소한 "돈을 주러 담을 넘어 간 것이라고 하는데, 액수가 너무 큰데다 담을 넘어 들어 간 것에 '합리적 의심'이 든다"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법관마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진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밝힐 것 다 밝히고, 뒤질 것 다 뒤지고, 거기에 없는 사실까지 붙이고 초쳐서 조중동 등을 통해 여론재판까지 다 끝낸 마당 아닌가. 검찰 뿐 아니라 언론들까지 눈 부라리고 곽노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는 상황이다. 새삼스럽게 무슨 증거인멸 우려인가.

그러므로 법관이 영장발부를 결정한 것은 객관적이고도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같은 정치적 사건에서 늘 그렇듯, 힘의 논리에 굴복한 것일 따름이다. 검찰에 대해 항상 수동적 입장일 수밖에 없는 법관이, 조중동까지 동원된 막강한 위세 앞에 무너진 것이 아닐까?  진보개혁진영마저도 우왕좌왕하지 않던가.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것은 진실만을 기준으로 무게를 달고 칼로 자르라는 얘기일 텐데, 이 법관은 실눈을 뜨고 이런 주변정황을 살핀 것 아닐까? 아예 눈 질끈 감고 잽싸게 힘센 편에 착 달라붙은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솔직한 공상훈 검사

이제 법원이 '검찰과 함께 춤을' 춤으로써 곽노현의 방어권은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극도로 제한받게 됐다. 구속 자체를 유죄로 받아 들이기 쉬운 일반정서와도 맞서야 한다. 그의 죄없음을 믿는 지자자들이 극도의 좌절감에 빠질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그가 스스로 자리를 물러남으로써, 싸우지도 않고 이겨보려는 저들의 악랄한 의도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공상훈 검사가, 논리는 빈약해도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든다. 그는 영장청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거액으로 후보자를 매수한 사람, 낙선됐어야 할 사람이 그 직에 있는 것 아니냐"며 "수사와 재판을 받느라고 검찰과 법원을 오가야 한다면 오히려 그 직에 있는 것이 업무에 더 방해가 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구속상태가 장기화되면 서울 교육행정이 엉망이 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지 진실을 밝히고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교육에 유익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유익할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는 또 "유권자 매수는 표 하나를 사는 것이지만 후보자 매수는 그 후보자가 얻을 표를 통째로 사는 범죄"라며 "만일 매수해 사퇴시킨 후보자가 4~5%를 득표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의 표를 산 것이며, 지난 선거에서 1위와 2위의 표 차이가 1%포인트 내외였는데 실제 그 일(후보자 매수)이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도 했다. 검사가 이처럼 선거결과를 멋대로 재단하고 나서는 것은 그 상대가 진보개혁진영이 낸 교육감후보이기 때문일 터다.

진보개혁진영, 진실찾기에 총력 기울여야

그래서다. 앞으로 검찰과 수구언론은 재판과정에서 오가는 말들을 늘리고 줄이고 비틀어서, 다가오는 서울시장 등 재보선을 앞두고 진보개혁진영을 움츠러들게 하고 야권 후보 단일화과정을 흠집내는 작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곽 교육감이 이를 악물고 싸워 '사자굴'에서 살아 나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또한 이제라도 개혁진보진영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총력으로 곽노현의 진실찾기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곽노현의 전쟁'은 정치로부터 교육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동시에 정치싸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며, 현재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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