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언제부턴가 '출근길'이 불편해졌습니다

남한강가를 오가며 본 '한강 살리기 사업' 현장 모습

등록|2011.09.13 16:41 수정|2011.09.13 16:41
저는 집이 양평에 있고, 직장이 서울에 있습니다. 날마다 양평에서 서울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합니다. '양평'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부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도시 사는 사람들이 1년에 한번 큰 맘 먹고 휴가 오는 휴가지를 저는 날마다 오고가고 있으니, 그렇게 보면 저는 날마다 휴가지에 살고 있는 부러운 사람 맞습니다.

실제로 우리 동네는 눈 뜨면 초록이고, 공기 맑고, 햇볕 따뜻하고, 조용하고, 밤이면 마당에서 반딧불이가 춤을 추고, 산토끼와 노루가 내려와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곳입니다. 온갖 풀꽃들이 제 맘대로 피었다 지는 곳입니다.

출퇴근할 때는 산 허리를 지나 꼬불꼬불 언덕을 넘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를 지나서 남한강가를 오래 달립니다. 계절마다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색깔과 느낌이 다른, 갈대와 수양버들 사이로 물새들이 노니는 강가를 지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강가를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마음이 물빛처럼 맑아집니다.

뭉개진 갈대밭과 잘린 나무들... 누구를 위한 사업인가요?

강가에 여기저기 걸려있는 '한강 살리기' 공사 현수막 '한강살리기 사업을 통해 깨끗하고 행복한 강을 만들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 사업이 '한강 살리기'일까요? ⓒ 이부영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강가를 지나는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강가에 다음과 같은 현수막이 걸리고부터입니다.



갈대와 수양버들이 가득했던 강가에 굴착기와 불도저, 덤프트럭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갈대밭을 깔아뭉개고 수양버들을 뽑아내더니 그 자리에 흙을 쏟아붓고, 시멘트 길을 만들고, 잔디와 느티나무를 심고, 방부목으로 난간을 설치했습니다. 느티나무는 말라 가고 고목이 된 수양버들은 마구 잘려 나갔습니다.

▲ 갈대밭을 흙으로 메우고 강가에 길을 냈습니다. ⓒ 이부영

▲ 갈대밭이 무성하던 자리입니다. ⓒ 이부영

▲ 강가에 시멘트로 자전거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 이부영

▲ 갈대밭과 수양버들을 없앤 뒤 시멘트길을 내고, 나무를 사다 심어 놓았습니다. 누가 이곳에 놀러올지 궁금합니다. ⓒ 이부영

팔당대교 아래에 만든 자전거 길시멘트로 길을 만들고 잔디를 심고 느티나무를 심었지만, 잔디와 느티나무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 이부영

▲ 고목이 된 수양버들은 부러지고 상처나고, 새로 심은 느티나무도 시들합니다. ⓒ 이부영

▲ 이곳도 갈대와 수양버들이 무성했던 곳입니다. ⓒ 이부영

▲ 갈대밭을 없애고, 시멘트 길을 만들고, 방부목으로 난간을 만들고, 흙이 쓸려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마끈망을 씌웠는데, 초록색 비닐로 된 그늘망도 흙 사이에 보입니다. ⓒ 이부영



이 길은 누구를 위해 만든 길일까요? 누가 걸으라고 만든 길일까요? 농촌 사람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이 길을 걸을 일이 없습니다. 논이 없는 이 길을 걸을 일이 없습니다. 일하는 데 힘을 다 써서 비싼 자전거를 타고 따로 운동할 일도 없습니다. 원래 있던 갈대밭을 뒤엎고 만든 이 길이 정말 '한강 살리기 사업'인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길은 누구를 위한 길?갈대밭을 메워 강가에 만들어놓은 시멘트길,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길인가요? ⓒ 이부영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