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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분야에서 거짓말 안 하고 최고가 돼야죠!"

전북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농부 김영주씨를 만나다

등록|2011.09.14 16:02 수정|2011.09.14 16:02

김영주씨"나는 농부로서 내 분야에 최고가 될 것이고, 절대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 박병춘


2009년 전국 친환경 농산물 품평회 사과 부문 대상, 환경 농업 부문 국무총리상, 전라북도 도지사상, 새농민 상, 2010년 전국 친환경 농업인 대상 수상. 전북 무주 친환경농업반딧골 연합회 4년 연속 회장.

농부 김영주(60)씨의 이력이다. 스물일곱 총각 때 윗마을에 사는 스물한 살 처녀를 만나 결혼하여, 오직 농사만 짓고 사는 대한민국 토종 농부! 전북 무주군 친환경 농법 1호 농업인답게 '자연이 빚은 명품 사과'를 생산해내고 있는 그다.

사과주인님 정성에 우린 잘 익고 있습니다. ⓒ 박병춘


김영주씨는 자신의 이름에서 한 자, 아내 이경애(54)씨의 이름에서 한 자를 따 이름을 지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한평생 농업인의 길을 걷고 있는 김영주씨를 만나 35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난 주말 인터뷰를 했다. 그가 살아온 길과 유기농 사과의 생산 과정을 들어봤다.

김씨는 어려운 시절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시골을 떠나 객지 생활을 시도했으나 이내 좌절하고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정착했다. 김씨가 열심히 일해서 자금을 마련하여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시골 방앗간 운영이었다.

유기농 명품 사과농부 김영주씨의 땀방울이 빚은 사과 ⓒ 박병춘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금전 압박을 받고 누에 생산을 하게 됐는데, 뜻밖에 재미를 보고 일어설 수 있었다. 이어 김씨는 인삼 농사로 전환하여 20년 가량 인삼 경작을 하기도 했다. 이어서 사과 재배에 몰두했는데, 여러 가지 실험 정신이 빛나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김씨의 실험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사과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을 연구했던 것. 김씨의 과수원 안에 있는 대형 창고에 들어가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양한 용기와 농기구들이 즐비한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방 약재들이다.

농장 사과지극 정성으로 사과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주씨 ⓒ 박병춘


관중, 학술, 천남성, 고삼, 산호, 부자 등 한약재에 순도 99% 알코올을 넣어 6개월 이상 우려내어 완전 유기농법으로 해충을 잡는 것은 기본이다. 고삼, 계피, 박하, 울금, 송진, 은행잎을 같은 방법으로 우려내서 제2의 유기농 방제법을 개발하여 인정받았다.

그런가 하면 식용유, 유화제, 물을 혼합하여 고속 회전시켜 살충 효과를 내는 유기농법을 개발했고, 유황, 석회, 물을 섞어 끓인 후 맑은 융합제를 만들어 살충 살균 효과에 탁월한 식물성 방제법을 창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의 고민은 깊다. 농약을 사용하면 몇 시간 안에 방제를 끝낼 수 있지만, 유기농법으로 방제를 할 때마다 준비 기간만 이틀이 걸려 일손이 달리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씨는 힘주어 말한다.

김영주씨"최고의 명품 사과, 믿고 드세요" ⓒ 박병춘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없다면 이 일 못합니다. 주변에서 그만 하라고 반대도 하는 편이지만, 한번 빠져드니까 벗어날 수가 없네요. 완전 중독성입니다.(웃음) 생각해 보세요. 제가 생산한 사과를 먹고 소비자들이 건강할 수 있다면 농부로서 저는 행복한 사람 아닌가요? 어느 분야에 성심 성의껏 충실하고, 거짓말 안 하고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김씨가 추구하는 유기농법 철학은 아주 간단하다. 늙은 사과 나무를 없애고, 건강한 나무를 심어서 '안전한 먹거리 생산, 농약 절대 금지, 생물 자재로 병충해를 막는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래서 모두 만여 평 중 5천 평은 노목 갱신을 한 상태다.

농장 명품 사과이런 사과 대통령도 못 먹습니다. ⓒ 박병춘


김씨의 사과는 주로 유기농산물센터와 흙살림 공동체 등에 출하된다. 아무리 유기농 사과임을 강조해도 일반 소비자들이 믿지 않는 경향이 있어 김씨는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일반 사과의 경우 농약 잔류 기간조차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경우가 있다며 김씨는 탄식한다.

김씨의 트럭을 타고 과수원이 있는 산자락에 올랐다. 차 안에서 농사 철학을 전하신다.

"농약이 미워서 산자락에 과수원을 만들었어요. 과수원이 밭농사, 논농사 짓는 곳 옆에 있으면 안 돼죠. 혹시라도 바람에 맹독성 농약이 과수원에 날아와서 먹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김씨에게 이번에는 농부로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 물었다.

"재배 과정이지요. 단기 작물이나 하우스 농사에 비하면 너무나 어려운 과정입니다. 사과는 기본적으로 일 년 농사입니다. 노지의 경우 병해충에 완전 노출돼서 농약 아닌 다른 자재로 병해충을 막기란 힘든 노릇이지요. 유기농법의 경우 농가에서 직접 병해충 자재를 직접 제조하는데, 제조 과정에서 관이나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요. 구호만 요란한 느낌이 들고 실질적 지원은 부족한 형편이거든요."

명품 사과전국 친환경 농산물 사과부분 대상을 차지한 바 있는 김영주씨의 명품 사과 ⓒ 박병춘


김씨는 유기농법을 지원하는 공공 기관을 질타한다. 보다 실질적으로 정책을 펴야 하며 공무원들이 진지한 마음으로 지속적인 관리를 하여 생산자 농민들을 대할 것을 요구한다. 소비자들도 재배 과정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고 유기농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믿고 먹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농산물은 깨끗하고 이쁜 것이 반드시 좋은 게 아니라, 비록 벌레가 먹었어도 자기 몸을 생각해서 유기농 과실을 먹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농부 김씨에게 시련이 닥쳤다. 삶의 역경을 수없이 거쳐 왔지만 태풍 '매미'와 '루사'의 폭격을 받아 과수원에 산사태가 나면서 마치 바람에 벼가 쓰러지듯 사과 나무 전체가 쓰러지고 뽑히고 말았던 것.

특히 태풍 루사가 왔을 때는 창고 전체가 수백 미터 아래로 떠내려 갔다. 그 안에 있던 고가 농사 장비와 농업 자재는 폭격을 맞은 듯 망가져 폐기 처분했다. 배운 것, 물려받은 것 없이 자수성가하여 일궈낸 모든 결과물을 자연 재해로 날려버린 김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고 한다.

관에서 복구비 일부와 잃어버린 창고 하나만 달랑 지어주었지만, 김씨는 곧바로 일어나 이를 악물고 재도전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전국 친환경 농업인 대상을 수상하며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에게 농부로서 자부심은 무엇인지 물었다.

"농민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입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지요.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친환경 유기농법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선 힘이 들고 수입에 차질이 있다 해도, 우리 농민 전체가 유기 농법을 정착하면 좋겠습니다."  

김씨에게 또 하나의 희망이 있다. 사과 농장 일만 평 중 2천 평과 인근 블루배리 농장을 큰아들이 맡아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주군 친환경 농법 1호 농민으로서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믿고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농부 김영주씨! 농부로서 그 분야에 최고가 되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사과보다 새콤달콤하게 가슴에 담아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과 세 상자를 사고 나오는데, 함께 일하던 이웃 아주머니가 한 말씀 건네신다.

"여기 이 사과요? 이 사과 아무나 못 먹는 사과여요~ 살짝 닦아서 껍질째 다 먹어요. 이런 사과 대통령도 못 먹는 사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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