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계에 이상한 아이들이 떴다...볼래?
[우리는 피겨 국가대표다2] 14살 국가대표 박연준 선수의 태릉 적응기
▲ 대한민국 피겨 선수들은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앞에 이호정, 뒤에 오른쪽부터 이태연, 김해진, 조경아 선수 ⓒ 곽진성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는 97년생 국가대표 4인방, 김해진, 박소연, 이호정, 조경아 선수. 이들은 피겨계에서 '이상한 아이들'로 통한다. 경쟁이 치열한 피겨 스케이팅계에서 유난히 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피겨 국가대표팀의 막내이기도 한 4인방의 우정은, 상상 그 이상. 이들은 힘든 태릉 국가대표 훈련 속에서 서로를 챙겨주고 있다. 훈련이 없는 일요일에는 또래 피겨스케이터 (김진서, 이태연등)들과 빙상장에서 '러닝맨 게임'을 즐기며 친목을 다진다. 팀은 달랐지만, 이들의 우정은 한결 같았다.
이런 훈훈한 우정은 서로에 대한 탄탄한 신뢰가 바탕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스케이팅을 배운 국가대표 주니어 4인방은, 그 속에서 경쟁이 아닌 우정을 배웠다. 어린 선수들은 긴장감 넘치는 시합에서도, 소리높여 친구의 이름을 연호하고 진심으로 박수를 보냈다. 14살 어린 선수들이 만들어가는 우정의 은반이 아름다웠다.
2011년 7월. 그리고 또 한명의 14살 피겨스케이터가 '우정의 은반'에 합류했다. 국가대표 박연준(14) 선수였다. 처음 태릉 훈련에 합류한 후, 어색함을 느꼈던 연준이. 하지만 국가대표 맏언니인 김연아, 곽민정 선수와 솔직 담백한 동생들의 도움으로 행복한 태릉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정의 은반, 국가대표 박연준 선수의 태릉 적응기
▲ 7월, 태릉 국가대표 훈련에 합류한 14살 박연준 선수, 조성만 코치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 ⓒ 곽진성
7월 중순, 박연준(14. 이하 연준)선수가 피겨 국가대표 훈련에 합류했다. 그동안 집인 인천과 태릉이 너무 멀어 태릉 훈련 참여에 어려움을 겪었던 연준이는 학교 방학을 맞아 비로소 태릉 국가대표 훈련에 함께 할 수 있었다.
▲ 국가대표 박연준 선수, 태릉 첫 연습때는 서먹함이 느껴졌다 ⓒ 곽진성
연준이는 '나이'가 같은 막내 4인방과는 '학년'이 달랐고, '학년'이 같은 15살 동원이와는 '나이'가 달랐다. 이런 애매함은 또래 선수들끼리 친해지는 것을 어렵게 했다. 누가 위고 아래인지, 구분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준이는 그동안, 태릉 훈련에 자주 참여하지 못해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친해질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국가대표팀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불과 며칠 후, 연준이의 얼굴에선 자연스런 웃음이 묻어났다. 거리감이 있어 보였던 97년생 4인방과도, 국가대표 맏언니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대체, 며칠 사이 피겨 국가대표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4살 박연준 "연아. 민정 언니 고마워요!"
7월 중순, 태릉에 도착한 연준이의 손에 두 개의 종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김연아, 곽민정 선수 주위를 맴돈 연준이는 두 언니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부끄러운 듯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결국 코치 조성만씨가 대신했다.
"연아, 민정아! 연준이가 고맙다고 선물을 가져왔어! (웃음) (조성만 코치)"
조성만 코치의 말에, 지상 훈련에 열중하고 있던 김연아 선수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러닝 중이던 곽민정 선수도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 국가대표 박연준 선수가 곽민정 선수에게 '날집' 선물을 건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곽민정 선수도 밝게 웃었다. ⓒ 곽진성
"네? 선물이요? (김연아)"
"앗, 제 것도 있어요? (곽민정)"
조 코치는, '연준이가 두 선수에게 선물을 가져온 이유'를 사람들 앞에서 들려줬다. 이유를 듣고 난, 김연아, 곽민정 선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연준이가 처음 태릉 훈련을 할 때, 서먹함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아, 민정 두 선수가 잘 챙겨줘서 또래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하네요. 감사하다고 선물을 전하고 싶대요."
▲ 김연아 선수에게 '날집' 선물을 전하는 박연준 선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김연아 선수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지켜보는 김해진, 이동원, 이호정 선수도 즐겁게 웃었다. ⓒ 곽진성
그날 훈련이 끝난 후, 연준이는 대표팀 락커룸에서 고마운 마음이 담긴 선물을 전했다. 김연아, 곽민정 선수에게 선물을 전하는 14살 국가대표 스케이터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 있었다. 선물은 피겨 스케이터들에게 꼭 필요한 '날커버'였다.
"연준아, 선물 고마워! (곽민정)
"우와,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네, 고마워!" (김연아)
곽민정 선수는 활짝 웃으며, 자신이 받은 분홍빛 날커버를 바라봤다. 선물이 마음에 든 듯, 흐뭇하게 웃었다.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는 '나, 선물 받았어~'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받은 선물을 국가대표 막내들을 향해 흔들었다.
▲ 박연준 선수가 마음이 담긴 선물을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에게 건넸다. ⓒ 곽진성
▲ 받은 날집 선물을 김연아 선수가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보여주자, 박연준 선수가 부끄러운듯 얼굴을 가렸다. ⓒ 곽진성
그 모습을 본 연준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아아, 부끄러워!"라고 소리쳤다. 재밌는 광경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부모님들의 웃음소리가 대표팀 락커룸에 가득했다. 덕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던, 박연준 선수의 태릉 적응은 단 며칠 만에 해결됐다.
성격 좋은 해진, 호정, 경아도 일찌감치 '동갑내기 언니'에게 마음을 열었다. 동갑 연준이에게 꼬박꼬박 "언니"란 호칭을 빼먹지 않는 국가대표 막내들은, 또 한명의 국가대표 언니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기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든든했다. '어느 나라 피겨 국가대표팀이 이런 즐거운 연습 분위기를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부심 가득한 하루였다.
97년생 국가대표 "요즘 애들, 정말 무서워!"
▲ 같이 훈련을 하며 친해진 박연준 선수와 조경아 선수가 지상훈련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곽진성
그로부터 며칠 뒤인 7월 22일, 태릉에서 아침 지상 훈련중인 연준이와 경아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새 절친이 된 두 선수의 대화 내용은 '요즘 애들'에 관한 것이었다. 14살, 국가대표 스케이터들의 눈에 '요즘 어린 스케이터'들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요즘 애들, 실력이 장난 아니야! (박연준)"
"언니, 트리플 점프 뛰는 애들 몇 명 있지?(조경아)
"잠깐 XX이, XX이....음, 여섯 명 정도?(박연준)
"와, 많다. 그러고보니 4학년에도 트리플 뛰는 애 있어! 개 벌써 토 뛰고 있대!" (조경아)
"우와~진짜? 이제, 아이들 경기 떨려서 못 보겠다. 요즘 애들 정말 무서워!" (박연준)
요즘 애들의 기량이 무섭다고 말하는 14살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주니어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피겨 기대주'로 성장해 가고 있다. 2011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기량은 기대를 갖게 하기 충분했다.
▲ 국가대표 이호정 선수와 김해진 선수, 세계 무대를 향해 무럭무럭 성장중이다 ⓒ 곽진성
트리플 5종과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완성도 있게 구사하는 김해진 선수는 14살의 나이에 세계 상위권 클래스에 근접하고 있었다. 이호정 선수도 트리플 점프 5종 점프 완성에 심혈을 기울이며,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연기력이 특출해 호평 받고 있는 박연준, 점프가 뛰어난 조경아 선수도 국제무대에서 더 나은 도약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7월, 태릉에서 국가대표 주니어들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다가오는 8월, 9월은 약속의 시간이었다. 각자 목표로 한 무대에서 자신이 갈고 닦은 연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주니어들이 먼저 8월3, 4일 <주니어 대표 선발전>를 시작하고, 이후, 국제대회인 <환태평양대회>, <아시안트로피2011>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무대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은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꿈의 대회를 한 달여 앞둔, 7월. 곽민정 선수와 피겨 주니어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2010 밴쿠버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 선수도 8월에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13, 14, 15일. 펼쳐지는 아이스쇼 무대가 바로 그것이었다. 완성도 높은 연기를 펼쳐 보이기 위해, 김연아 선수는 남아공 더반에서 귀국 후, 3일 만에 태릉 훈련에 돌입했다.
▲ 만나면 즐거운 국가대표 곽민정(오른쪽)과 이호정 선수 ⓒ 곽진성
"내 다리가 최강이야!(김해진)
"아냐, 내 다리가 최강이야!(이호정)"
"무슨 소리, 내 다리가 최강이지!(곽민정)"
대표팀 훈련의 밝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민정이는, 어린 후배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며 훈련장 분위기를 밝게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만은 해진이와 호정이가 반기를 들었다. '자신의 다리가 최강이다.'라는 민정이의 말에 볼멘소리를 한 것이다.
"치, 민정 언닌 말랐잖아요!(웃음) 우리 다리가 완전 최강이에요. (해진, 호정)"
훈련으로 굵어진 다리가 못내 속상한 듯, 국가대표 주니어들이 푸념했다. 하지만 그 속상함은 '반어법' 농담으로 훌훌 털고 버렸다.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 동계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곽민정과 함께하는 국가대표 피겨 주니어들의 여름 은반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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