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 정문앞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가 공동개최한 '9.19 반값등록금 연고제/고연제 선포 기자회견'에서 비싼 등록금 관련한 망언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우정과 화합의 장>을 뛰어 넘어 서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의 장으로 '연고제/고연제' 본연의 의미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오는 19일 오후 7시 청계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연고제/고연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권우성
지난 14일 신촌 연세대 캠퍼스에서는 전국등록금네트워크 주최로 반값등록금 고연전/연고제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기사를 접한 뒤 나는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감정은 매년 커다란 종합경기장에서 열리는 정식 고연전을 바라볼 때의 느낌보다 더한 무엇이었다. 나는 반값등록금을 지지한다. 아니 반값등록금보다 더 나아가 대학에서 전면적 무상교육이 실시되길 원한다. 그러나 기사를 보았을 때 반값등록금 쟁취를 위한 움직임이 다시 일어난 것에 대해 반가움을 느끼기는커녕 불편함을 느꼈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양 대학 총학생회의 주장은 이렇다. 반값등록금을 위한 고연전은 기존의 "고연전"과 달리 단순히 스포츠와 운동경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반값등록금 문제를 외치는 자리가 될 것이며 더불어 - 고연전을 바라보는 세간의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을 의식한 듯- 시민들과 다른 대학생들도 함께 참여하는 자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고연전=학벌의식=애교심
알다시피 고연전은 연세대와 고려대가 매해 개최하는 친선경기대회다. 매년 이맘 때면 신촌과 안암 일대에는 각 학교를 응원하는 펼침막이 넘쳐나고 자신이 속한 대학을 나타내는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흥에 겨운 채 무리 지어 다닌다.
이렇듯 상점을 돌아다니며 공짜 술을 아무렇게나 요구하고, 연대! 고대!를 당당히 외치며 기차놀이를 하는 식의 행동은 다름 아닌 대학서열의 상위를 점한 명문사학의 구성원이라는 학벌의식의 발현이다. 일부에서는 단지 애교심의 표현일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교심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의식이라면 거리상으로 가깝지도 않은 신촌 소재의 연세대와 안암동의 고려대가 서로 자웅을 겨룰 필요가 있을까? 또한 이 두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 간의 친선경기를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외서전(한국외대와 서강대) 이야기가 잠시 흘러나왔다가 소리 소문 없이 들어간 것처럼(이들은 왜 애교심이 없어서 얘기만 하고 말았을까?) 대학 서열과 위계가 존재하는 한, 그 안에서 고만고만한 위치를 차지한 대학 간의 신경전은 늘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울대(성골이라 신경전에 낄 필요 없음)를 제외하고 부동의 서열 2,3위를 다투는 연세대와 고려대만이 고연전을 통해 애교심을 펼칠 자격을 얻었다. 결국 이 애교심은 학벌서열에서 나오는 자부심과 우월의식일 뿐이다. 그리고 이 학벌의식은 애교심과 대학 간 우애 및 친선도모로 한껏 치장한 뒤 고연전을 통해 표출되고 다시 학벌주의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배제된 주변부의 문제
학벌을 획득함으로써 얻게 되는 사회적 이득이 아니고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입시위주의 경쟁교육과 출신대학으로 인해 받는 차별을 설명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 수능점수가 이십대 이후의 삶을 결정짓고 그로 인해 사회구성원 모두를 경쟁에 몰아넣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은 반값등록금 고연제를 계획한 이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달리 보면 스카이(SKY) 학생이든, 지잡대(지방대) 학생이든 입시경쟁교육과 학벌체제의 피해자다. 그러나 이미 한번 획득한 학벌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에 익숙해지고 나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분리하여 사고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이는 고연제에 참여하여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외치지 않더라도 대부분 대학생들의 과제여야 할 반값등록금에 단 두 개의 대학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씁쓸한 결과를 낳게 했다.
이는 학생운동 내에서도 학벌의식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곱씹게 만든다. 이 행사를 주관한 단체가 연세대와 고려대를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곡해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사회 이 곳 저 곳에서 출신 학교에 따라 받는 대우가 다르고 심지어 학생운동 내부의 의견마저 출신 대학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르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번 반값등록금 고연전이 기존의 맥락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반값등록금 고연제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던 와중에 이와 관련된 질문을 여러 개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을 고려대 서창캠퍼스 학생으로 밝힌 한 대학생은 반값등록금을 지지하는데 '고연전'에 참여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는 고민을 남겼다. 또 다른 게시판에서는 연세대도, 고려대도 아닌 학생이 던진 '정말 가도 되겠냐'는 질문에 "가도 되지 않을까요..?"라는 소심한 댓글이 달려있었다.
물론 사안이 사안인 만큼, 고연제가 대수인가! 하는 굳은 의지로 반값등록금 행사에 기꺼이 참여할 시민들과 대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반값등록금을 위한 행사에 초를 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고연제라는 행사가 위에 인터넷 댓글처럼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면 이는 절대 외면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대학등록금이 비단 대학사회 내부의 문제만은 아니며 고연제 역시 학벌구조 안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대학사회 바깥의 사람들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반값등록금과 학벌의식의 발현인 고연제를 한데 묶어 내세웠으니, 누구를 설득할 것인지 묻고 싶다.
학벌구조 내에서 매일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너희 미래의 모습이니 고연전에 동참해달라고 얘기할 것인가, 아니면 돈이 없어 대학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이에게 비싼 등록금이 문제이니 고연전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진정 주최 측이 언급한 '참여'가 가능한 시민은 명문대학 졸업자이거나 미래에 연대/고대생이 될 가능성이 높은 청소년인 것인가?
결국 반값등록금 고연제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높은 등록금과 학벌서열로 인해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을 더욱 배제시키고 있다.
대학등록금과 학벌, 전혀 다른 문제인가?
반값등록금 고연제. 이 N극, S극의 이상한 조합의 원인은 지금까지 누누이 얘기했듯이 고연제가 가진 사회적 맥락에 대한 성찰이 없던 것과 더불어 대학등록금과 학벌을 별개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고연제를 주관한 단체 역시 그간 반값등록금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등록금이 비싼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보다는 등록금이 적거나 거의 없는 유럽식 대학 모델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미권의 명문사립대학의 등록금은 매우 비싼 데 비해, 유럽 대학들 간의 서열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학공공성에 입각한 대학체계는 주로 대학평준화 체제를 근간으로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통계가 드러냈듯이, 학벌서열이 높은 대학생들 가운데 사회경제적 능력을 가진 부모들의 비율이 점차 올라가고 있다. 물론 스카이 소속 대학생들 상당수가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최근 들어 더욱 학벌의 격차가 경제적 격차와 맞물려가고 있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곧 자식의 학업 능력으로 변환되기 때문에 학벌 위계에서 상층부를 점하려는 계급적 욕구와 요새 반값등록금으로 상징되는 교육의 공공성은 결코 상반될 수 없다.
어쨌든 9월 19일이 돌아왔고 예정대로 반값등록금을 위한 고연제는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연고전/고연전을 크게 내걸고 반값등록금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니 함께 하자고 외치기 전에, 아래의 몇 가지를 더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대학에 가길 원하는 사람은 많으나 학교들이 줄 세워져 있는 관계로 대학에 진학했어도 어떤 이들은 평생을 열등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대학을 다니지 않고 일을 하려 해도 사회 차별 때문에 취업을 할 수가 없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까맣게 잊어버렸을 청소년. 그들이 매일 문제집에 시달려도 그중 연/고대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학벌이 낮다하여 등록금이 반값인 것은 아니다.
과연 이 목소리들을 반값등록금 고연제라는 이름 아래 한데 모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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