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은 그 선사에게 왜 뺨을 맞았을까?
시인 임효림 스님, 선을 빛낸 선사들 이야기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 펴내
▲ 효림 스님지난 겨울 세종시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는 경원사로 자리를 옮긴 시인 효림 스님이 펴낸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화남)를 펴냈다. ⓒ 이종찬
面上無瞋供養具 (면상무진공양구) /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口裏無瞋吐妙香 (구리무진토묘향) /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心裏無瞋是珍寶 (심리무진시진보) /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無染無垢是眞相 (무염무구시진상) / 언제나 한결 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게송을 일러주고 동자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 무착이 공양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동짓날이 되어 팥죽을 쑤고 있는데 그 팥죽 쑤는 솥에서 올라오는 김 속에 문수보살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 "무착 스님은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 그러자 무착 스님은 죽을 젓던 주걱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후려쳤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했습니다. / "문수는 문수이고, 무착은 무착이다." -295~296쪽
글쓴이는 지금도 식의주와 생활비 걱정에 마음이 뒤숭숭하거나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절을 자주 찾는다. 그래서일까. 글쓴이는 스님도 참 많이 알고 있다. 그 가운데 지금도 자주 뵙는 스님이 있다. 이번에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를 펴낸 시인 효림 스님이다. 이 책은 효림 스님이 불도를 이룬 선사들 '기이한' 삶을 통해 우리 시대에 다시 내던지는 화두다.
이 시대 화두 같은 염주알 또로록 또로록 굴리는 선사들 이야기
▲ 효림 스님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 이 책은 효림 스님이 내설악 무금선원에서 사부대중에게 수년 동안 강의한 내용을 주춧돌로 삼아 새롭게 손질해 엮은 선불교 길잡이다. ⓒ 화남
지난 겨울 세종시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는 경원사로 자리를 옮긴 시인 효림 스님이 펴낸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화남). 이 책은 효림 스님이 내설악 무금선원에서 사부대중(출가한 남녀 수행승인 비구·비구니와 재가 남녀 신도 우바새 우바이)에게 수년 동안 강의한 내용을 주춧돌로 삼아 새롭게 손질해 엮은 선불교 길잡이다.
이 책에는 그야말로 불심이란 손바닥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며 불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고 이끈 중국과 우리나라 선사들 이야기 51꼭지가 염주알을 또로록 또로록 굴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 선사들이 팥죽 쑤는 김 속에 나타난 문수보살 뺨을 진짜로 때린 것은 아니다. 선사들이 말하고자 하는 속내는 허상을 보지 말고 지금 나를 바르게 보라는 그런 뜻이다.
'모른다고 말한 초조 달마선사', '나무꾼 출신의 육조 혜능대사',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 임제 의현선사', '목불을 쪼개 군불을 지핀 단하 천연선사', '누구를 만나든지 몽둥이로 때리는 덕산 선감선사', '부처가 되는 것도 싫다고 한 앙산 혜적선사', '문수보살의 뺨을 때린 무착 문희선사', '사자를 놀린 운암 담성선사' 등이 그분들.
효림 스님은 10일(토) 문자 메시지에서 "어떻게 잘 지내요. 고생이 많지요. 추석 잘 보내고 놀러나 오소"라며 "모두 힘든 추석입니다. 그러나 송편 먹고 배탈이라도 한번 나봅시다"라고 남겼다. 이 글 또한 선문(禪文)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생'과 '놀러나 오소'를 잘 살펴보자. 이는 곧 어려운 때일수록 그 어려움에 얽매여 더 어렵게 살지 말고 "송편 먹고 배탈이나 한번 나"는 것쯤으로 이겨내자는 뜻 아니겠는가.
손에 쥐고 있는 구슬도 가짜가 많다
"제자 마조가 좌선만 하는 것을 보고 남악 회양선사가 하루는 벽돌을 가지고 좌선을 하고 있는 그 앞에서 갈고 있었습니다. 마조가 물었습니다. / '화상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벽돌을 갈고 있다.' /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 '벽돌을 간다고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습니까?'" - 58~59쪽
'제자 앞에서 벽돌을 간 남악 회양선사'(677~744) 이야기다. 선사는 육조 혜능 문하에서 청원 행사 스님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룬 분이다. 그는 "담 너머에 있는 뿔만 보고 소가 있다고 지레 짐작"하면 안 된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속아 넘어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을 공짜로 준다고 마구 떠들지만 사실은 공짜가 아니다. 당장은 공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매달 내는 요금에 그 기계 값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있지 아니한가. 선사는 이처럼 "손에 쥐고 있는 구슬도 가짜가 많고, 어젯밤에 먹은 술도 가짜일 수 있다"고 꼬집는다. 무늬가 화려하다고 다 비단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은 형식에 치우치고 흉내만 내지 말라는 것이다. 진주가 돼지 목에 걸려 있으면 어찌 진주라 할 수 있겠는가. "허구헌 날 젊은 선객들을 붙들고 엉덩이 살이 물러 터지고 무릎 관절에 고름이 차도록 앉아 있는 것만을 고집"하면 안 된다. 수레가 굴러가지 않는다고 채찍으로 수레를 때리면 수레가 굴러가겠는가.
목불인데 무슨 놈의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도를 닦는 이들이여! 불법이란 공을 들일 것도 없고, 단지 평소대로 아무런 일 없이 똥 누고, 오줌 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서 자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알 수 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바깥으로 공부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126~127쪽
임제 의현선사(?~866)는 임제종을 이룬 증조이다. 임제 선사는 우리나라 현대 고승들 가운데 성철, 향곡, 서옹 같은 분들이 한결 같이 좋아하신 분이다. 그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라."는 말을 남긴 이름 높은 선사다. 이 말은 곧 경계를 두지 말라는 뜻이다.
'목불을 쪼개 군불을 지핀 단하 천연선사' 이야기에도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매우 추운 겨울날, 그 절 원주가 나무를 아끼느라 단하선사 방에 군불을 떼지 않자 선사는 불당에 있는 목불을 쪼개 군불을 뗐다. 이를 알게 된 원주가 달려와 팔짝 뛰는 것은 물론 고함을 치면서 노발대발 선사에게 대들었다.
단하선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나는 부처님을 태워서 사리를 얻고자 함이네."라고 말했다. 원주가 다시 "목불인데 무슨 놈의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선사는 오히려 큰소리로 따졌다. "사리도 없다면 무슨 부처님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미 부처님이 아닌데 불을 뗐다고 해서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라고.
효림 스님은 "입만 열면 모두가 부처님은 밖에서 찾자 말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스스로가 부처님으로 행동하는 이는 흔하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밖으로 부처님을 찾고 밖으로 도를 구하는 사람은 몇 천겁을 예불해도 소용없다"라며 "뛰어난 선사가 주석하는 선종 사찰은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각자가 다 부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우리 시대 '가짜의 뺨을 때리다'
"어느 날 법안 선사가 대나무를 가리키며 공부하는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 '보이느냐?' / '예! 보입니다.' / '그렇다면 대나무가 눈으로 들어왔느냐? 눈이 대나무에게로 갔느냐?' / '둘 다 아닙니다.' / 이에 선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 '무슨 숨넘어가는 소리냐?'"-260~261쪽.
시인 임효림 스님이 펴낸 <문수보살의 뺨을 때리다>는 우리 시대를 휘젓고 다니는 '가짜의 뺨을 때리다'란 말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은 한 시대 탁월한 선사들이 툭툭 내던진 말과 기기묘묘한 행동을 통해 우리 시대 곳곳에 진실처럼 떠도는 거짓, 실상처럼 떠도는 허상에 그 잣대를 들이댄다. 마치 회초리처럼 그렇게.
시인 임효림 스님은 친구와 여름 방학에 절에 갔다가 '도(道)를 닦아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말씀을 듣고 출가하여 1968년도에 출가했다. 범어사, 해인사, 봉암사 등 전국선원에서 선객으로 수행했으며, 6월 항쟁 때부터 재야시민운동을 했다.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 불교신문사 사장,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등을 맡았다.
무산 오현선사에게 동천(洞天)이란 호를 받고, 2002년 불교 잡지 <유심> 봄호에 '한 그루 나무올시다' 등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는 나무> <꽃향기에 취하여> <그늘도 꽃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 산에 스님이 있었네> <그 곳에 스님이 있었네>가 있다. 그밖에 <만해 한용운의 풀뿌리 이야기> <사십구재란 무엇인가> <행복으로 가는 기도> <자유로 가는 길 道> 등을 펴냈다. 지금은 백담사 무금선원에서 교선사를 하면서 세종시 경원사에서 수행하고 있다. 전태일 문학상 특별상 받음.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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