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협하는 유럽 재정위기, 어디로 가나
유럽 재정 위기의 원인과 과제... 소득불균형 해소해야
"유로존 위기가 곪아 터지기 직전으로 악화되고 있다. 1~2년 뒤에 올 위기 정도가 아니라, 며칠 내에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기 상황이다." - 폴 크루그먼
"유로존 위기로 인해 세계경제가 새로운 위험지대(new danger zone)로 진입했다. 유럽, 일본, 미국 등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둔화를 가져올 것. 이들이 어려운 결정을 미루어 왔기 때문에 현재는 고통스러운 몇 개의 대안만이 남았다." -로버트 졸릭(세계은행 총재)
"우리는 위험한 위기 국면으로 진입했다. 집단적이고 과감하며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이런 조치 없이는 주요 경제국들이 앞으로 전진하기보다 후퇴할 위험이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국제통화기금 총재)
"현재의 글로벌 경제는 칼날 끝(Knife edge)에 선 상황." - 골드만 삭스
"일생 일대의 자본주의의 위기. 민간 부문은 과거 성장의 동력이 없어지면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이 심화됨에도 부채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고 공공부문은 재정 고갈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UBS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지 3년이 지난 2011년 9월에 나오고 있는 세계경제 진단들이다. 지난 8월 5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전후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까지도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더블 딥이 왔다고 확신하는 견해는 다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분위기는 훨씬 어두워졌고 특히 유럽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위험 신호는 사태를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번엔 8월과 달랐다. 8월처럼 단순히 주가만 급 변동 한 것이 아니다. 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민감한 지표이자 위험신호인 환율까지 급 변동한 것이다. 이틀 만에 환율이 40원 이상 오르면서 순식간에 1116원을 돌파했고 급기야 정부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위기의 충격이 더욱 커진다면 환율변동을 축으로 한국 금융시장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어디서 초래되었는가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가 전면화 되면서 남유럽 5개 국가가 직접적으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재정위기를 넘어 대외채무 불이행(디폴트)의 상황에 온 것은 분명하다. 특히 그리스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돌입했다고 평가된다. 1년 물 국채 금리가 무려 117%까지 급등한 것을 볼 때 명확하다. 더 이상 추가로 빚을 얻기도 어렵고 얻는다고 쳐도 원금을 능가하는 이자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뿐 아니라 구제 금융을 받은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이라는 유동성 공급으로 자금 경색을 일시 진정시키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기본적으로 같은 궤도 선상에 있다.
도대체 1100만 그리스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나라 재산을 팔고, 월급을 깎이고 일자리를 잃고 사회보장도 다 뺏겨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것도 모자라서, 전 세계 금융위기를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애물단지 국민이 되었는가. 더 나아가 그리스 1100만, 아일랜드 450만, 1000만 포르투갈, 1억이 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민은 무슨 원죄를 지은 것인가.
사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남유럽 5개국가의 재정수지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평균 5%내외의 적자를 이어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국가채무 비율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도가 GDP대비 100%전후의 부채가 있었다.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는 영국이나 일본에 비해 특별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그림1 참조) 그런데 재정적자와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악화된 것은 남유럽 5개국의 국내 경제운용 실패가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가장 주된 책임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가와 유럽의 금융회사들에게 있다. 이들이 2008년 모기지 파생상품을 매개로 신용경색을 일으켰고 세계적인 실물경기 침체를 초래한 결과, 그 충격을 남유럽 국가들이 유로화를 쓰고 있다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가장 크게 받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킨 이들 금융회사들이 남유럽 국가의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들 금융회사 부실을 막기 위해 남유럽 국가들이 국가 재산을 팔고, 비싼 이자를 물고 소득감소와 사회보장 축소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남유럽 5개국도 외부 충격에 약한 자체적인 내부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들 5개국은 공통적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간 지속되어 대외채무 부담이 기본적으로 큰 나라들이다. 개별적인 취약성들도 있다.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성장률, 실업률, 재정수지가 매우 양호했던 아일랜드가 위기 이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국가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금융화의 길을 가장 심하게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꾸준히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경제의 기반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번에 충격을 키웠던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부분의 평가들은, 이들 국가들이 방만한 재정운영과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을 늘려서 재정위기를 자초했다는 결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따라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므로 강도 높은 긴축을 해야 하고 국가재산 매각을 통해서라도 채무 상환비용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채무조정(부채 탕감)과 채권을 쥐고 있는 금융회사의 손실 분담에 대해서는 모럴 헤저드 우려를 들어 반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객관적 지표들은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부도 위기가 기본적으로 월가와 유럽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채권을 보유한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금융회사 손실을 우려하여 그 부담을 오직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에게 전담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만약 국제적 금융거래세가 실시되었다면 가장 먼저 이들 국가의 회생을 지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은행들이 더 큰 규모의 손실 분담을 하고 채권 만기연장에 협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유럽 국가들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
유독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또 다른 이유로 유로 통화권에 속해 있다는 것이 작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남유럽 5개국은 과거 아시아나 아르헨티나 등에서 발생했던 일반적인 외채위기를 푸는 해법과 유로 통화권의 원천적인 문제를 푸는 해법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당장 위기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국가 부도사태에 대응하여 이제까지 IMF식의 해법은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리스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재정안정기금(EFSF)의 구제금융 방식 역시 과거 아시아나 남미 등에서 적용한 IMF 해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10년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시작된 이래 1년 반 동안 사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비록 사태가 악화되면서 요구조건을 완화시키기는 했지만, 까다로운 대출조건과 강도 높은 긴축 요구 등이 오히려 구제 금융을 받은 나라의 실물경제 사정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2002년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에 중앙은행 총재를 했던 블레저 전 총재도 9월 13일, "IMF 등이 그리스에 주문하는 긴축 프로그램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그리스가 긴축 안이든 민영화든 구제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이행한다고 해도 내년 말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올해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의 실물경제 상황은 2008년 위기 이후 거의 호전되지 않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상태가 심각한 그리스는 2009년 -2.0%, 2010년 -4.5%를 넘어 올해에는 -5%이상 성장률이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빠지고 있으며 실업률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유로 존 국가들 평균 실업률 10%를 훨씬 뛰어넘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2011년 1분기 기준으로 포르투갈은 12.5%, 아일랜드는 14.2%, 그리스는 15.0%, 그리고 스페인은 무려 20.6%까지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그림 2 참조)
이같은 상황에서 구제 금융 조건으로 내건 긴축재정은 성장률 추락과 실업률 폭증을 가속화시키고 GDP감소와 세수 감소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부채/GDP비율을 오히려 더 끌어올릴 것이 명확하다. 완전한 부채 상환 능력의 상실, 지급 불능의 위기로 빠져들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책은 전면적으로 국가 부채상환 유예, 즉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함으로써, 빚을 얻어 빚을 갚는 남유럽 국가들의 부채 악순환을 중단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미 1998년 러시아, 2000년 브라질, 2001년 아르헨티나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전례가 있고 앞서 언급한 아르헨티나 블레저 전 중앙은행 총재의 주장도 동일하다. 이 조건아래에서 유로권이 자국 은행의 부실에 대처함과 동시에 이들 나라의 경제회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남유럽 국가들이 채무 지불 유예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러시아나 아르헨티나와 달리 직면한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이들이 유로 통화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경우라면, 경기침체시기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지면 금리 정책이나 유동성 공급을 통해 경기를 부양을 지원할 수 있다. 또는 자국 통화를 절하시켜 수출에 유리한 여건을 확보하고 경상수지를 개선하여 대외채무 상환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남유럽 5개국은 유로화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통화, 환율 정책을 사용할 수가 없고 오직 재정정책으로 경제난을 타개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로 통화체제의 근본적 제약, 특히 유로 존 17개국 사이에는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에 비견되는 유로 존 내부의 불균형이 구조화되어 있다. 독일로 대표되는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과, 남유럽 5개국으로 대표되는 만성적인 적자 국가들의 구조적 재생산이 그것이다.
통화가 통합됨으로 해서 독일 등 수출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자국 환율이 저평가 되는 이익을 누리는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반대로 고평가 되면서 수출이 더욱 어렵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어 온 것이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고 오늘의 국가 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의 유로 통화 통합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유력한 근거의 하나다.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적자국가인 미국이 질 책임이 있지만 흑자국인 중국의 책임 역시 있는 것처럼, 유로 존에서 불균형 해소를 위한 독일의 책임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시점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략 3가지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통화통합 - 재정분리 아래 남유럽 국가들을 유로 존에 남기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유럽 중앙은행(ECB)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하고 대출을 확대하는 한편, 유로 재정안정기금(EFSF)은 구제 금융을 실시하여 남유럽 국가의 경제회복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방안이다. 구제 금융 여력을 키우기 위해 유로 재정안정기금(ESFS)을 기존 2250억 유로에서 4400억 유로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심지어 유럽 중앙은행은 지난 8월까지 남유럽 국가에서 1105억 유로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했으며 스페인 은행에 699억 유로, 이탈리아 은행에 851억 유로를 대출해주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일시적으로 호전되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형편이다. 위기 해법으로서의 효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둘째 방안은 남유럽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유로 존을 탈퇴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채무 지불 유예를 선언하고 유로 존을 스스로 탈퇴하여 원래 통화인 드라크마(drachma)체제로 돌아가 통화 절하를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현재까지는 긍정적 측면 보다 탈퇴로 인한 절차와 혼란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선택 가능한 해법으로서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셋째 방안은 통화 통합 - 재정분리라고 하는 현 체제 모순을 깨고 과감히 재정 통합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각국의 조세 제도 차이나 유로 존 전체에 걸친 부의 재분배 문제 등 엄청난 현실적인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고려될 수는 있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림없다. 때문에 재정통합의 차선으로 나오고 있는 방안이 바로 '유로 본드' 도입에 의한 자금 조달 방안이다.
유로 본드의 채권 신용도가 유로 존의 중간 수준으로 결정되면, 남유럽 국가 입장에서는 지금 보다 훨씬 저금리 채권 발행이 가능하지만, 독일 등 국가에서는 오히려 기존보다 조달 금리가 올라가는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어 독일 등의 반대가 강력하고 이 역시 도입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위기가 악화되면서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 유로 집행위원회에서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 존의 탈퇴로 가든 아니면 재정통합까지 발전하든 점점 더 구조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소득 불균형 해소라는 장기적 구조개혁 과제
미국의 경제위기는 재정수지 적자에서 온 것이 아니라 2008년 이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 온 경기침체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심지어는 재정위기 국가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리스 등 남유럽 5개 국가들도 당장 재정위기 해결 이전에, 또는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경기회복이 절실함을 확인 하였다. 지금은 '재정위기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 모든 경제적 난제를 재정위기를 푸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사실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 재정문제는 그 자체의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제도와 성장률, 그리고 그 근저의 고용과 소득 향상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하는 1950~60년대에 재정수지와 국가부채를 점진적으로 개선했던 것은 높은 조세율과 높은 성장률, 그리고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상황에 따른 소득향상과 불평등 완화 때문이었다.
9월에 접어들면서 경기 침체 악화 정도가 뚜렷해지자 재정적자 긴축을 강조했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UBS 수석 경제자문역인 조지 매그너스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소득원을 강화하지 못하는 현재 시스템의 역량 부족을 포함해 문제를 좀 더 광범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요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공공부채를 줄여 나가면서 동시에 단기적으로 일자리 확대와 소득 증대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활용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재 역시 과도한 국가부채를 줄일 필요성을 지적하면서도 너무 빠른 속도의 부채 감축조치는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아 이전과 달라진 논조를 펴고 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연구원 역시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위기가 시사하는 것은 적절한 규제를 수반하지 않는 시장자본주의는 그 아킬레스건인 소득 불평등 문제의 심화를 통해서 자기 파괴적으로 폭주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시장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치적 타협 내지 조정 장치를 통한 제어시스템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지금의 세계경제 현실과 위의 주장들이 함축하는 바는, 장기 침체에 대비해서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특히 재정과 부채만 독립변수로 삼아서 단기적으로 해결하려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경기회복을 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이를 받침하기 위해 기업과 고소득층의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정건전성 목표는 국민경제 성장 동력을 살려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장기 구조개혁 과정에서 풀려나가야 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특히 근원적으로 고용창출로 소득개선을 꾀하는 가운데 불평등을 완화하여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개혁이 없이는 장기침체를 벗어날 방도가 없으며 재정건전성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주장을 다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앞서 매그너스는 "우리 경제 모델과 정치구조가 지속 가능한 성장세와 적절한 소득 형성 또는 일자리 창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맞는 얘기다. 클린턴 미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는 소득 불평등 개선을 강조하면서, 부의 편중을 해결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제가 서서히 1930년대 대공황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심지어 대공황을 기화로 독일에서 히틀러가 발호했듯 경제적 어려움과 불평등 확대로 인해 사회 불안이 고조되면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보수들도 지난 8월, 2차 경제위기가 발발할 조짐을 보이자 재빠르게 재정위기와 과잉 복지 지출을 연계시켜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억누르고 재정위험을 과대 포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앞으로 닥쳐올 장기적인 실물경제 침체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고 이를 위해 정부와 국가의 역할, 그리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유로존 위기로 인해 세계경제가 새로운 위험지대(new danger zone)로 진입했다. 유럽, 일본, 미국 등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자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둔화를 가져올 것. 이들이 어려운 결정을 미루어 왔기 때문에 현재는 고통스러운 몇 개의 대안만이 남았다." -로버트 졸릭(세계은행 총재)
"우리는 위험한 위기 국면으로 진입했다. 집단적이고 과감하며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이런 조치 없이는 주요 경제국들이 앞으로 전진하기보다 후퇴할 위험이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국제통화기금 총재)
"현재의 글로벌 경제는 칼날 끝(Knife edge)에 선 상황." - 골드만 삭스
"일생 일대의 자본주의의 위기. 민간 부문은 과거 성장의 동력이 없어지면서 발생한 경제적 충격이 심화됨에도 부채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고 공공부문은 재정 고갈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UBS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지 3년이 지난 2011년 9월에 나오고 있는 세계경제 진단들이다. 지난 8월 5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전후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까지도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더블 딥이 왔다고 확신하는 견해는 다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분위기는 훨씬 어두워졌고 특히 유럽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위험 신호는 사태를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번엔 8월과 달랐다. 8월처럼 단순히 주가만 급 변동 한 것이 아니다. 한국 금융시장의 가장 민감한 지표이자 위험신호인 환율까지 급 변동한 것이다. 이틀 만에 환율이 40원 이상 오르면서 순식간에 1116원을 돌파했고 급기야 정부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위기의 충격이 더욱 커진다면 환율변동을 축으로 한국 금융시장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어디서 초래되었는가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가 전면화 되면서 남유럽 5개 국가가 직접적으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재정위기를 넘어 대외채무 불이행(디폴트)의 상황에 온 것은 분명하다. 특히 그리스는 사실상 파산 상태에 돌입했다고 평가된다. 1년 물 국채 금리가 무려 117%까지 급등한 것을 볼 때 명확하다. 더 이상 추가로 빚을 얻기도 어렵고 얻는다고 쳐도 원금을 능가하는 이자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뿐 아니라 구제 금융을 받은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이라는 유동성 공급으로 자금 경색을 일시 진정시키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기본적으로 같은 궤도 선상에 있다.
도대체 1100만 그리스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나라 재산을 팔고, 월급을 깎이고 일자리를 잃고 사회보장도 다 뺏겨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것도 모자라서, 전 세계 금융위기를 몰아넣을지도 모르는 애물단지 국민이 되었는가. 더 나아가 그리스 1100만, 아일랜드 450만, 1000만 포르투갈, 1억이 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민은 무슨 원죄를 지은 것인가.
사실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남유럽 5개국가의 재정수지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평균 5%내외의 적자를 이어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국가채무 비율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도가 GDP대비 100%전후의 부채가 있었다.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는 영국이나 일본에 비해 특별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그림1 참조) 그런데 재정적자와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문제가 악화된 것은 남유럽 5개국의 국내 경제운용 실패가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 그림1유럽 재정위기 국가 국가채무비율(GDP대비) 변화 추이(euro stat) ⓒ 새사연
따라서, 가장 주된 책임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가와 유럽의 금융회사들에게 있다. 이들이 2008년 모기지 파생상품을 매개로 신용경색을 일으켰고 세계적인 실물경기 침체를 초래한 결과, 그 충격을 남유럽 국가들이 유로화를 쓰고 있다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가장 크게 받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킨 이들 금융회사들이 남유럽 국가의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들 금융회사 부실을 막기 위해 남유럽 국가들이 국가 재산을 팔고, 비싼 이자를 물고 소득감소와 사회보장 축소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남유럽 5개국도 외부 충격에 약한 자체적인 내부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들 5개국은 공통적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장기간 지속되어 대외채무 부담이 기본적으로 큰 나라들이다. 개별적인 취약성들도 있다.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성장률, 실업률, 재정수지가 매우 양호했던 아일랜드가 위기 이후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 국가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금융화의 길을 가장 심하게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꾸준히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경제의 기반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번에 충격을 키웠던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부분의 평가들은, 이들 국가들이 방만한 재정운영과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을 늘려서 재정위기를 자초했다는 결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따라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으므로 강도 높은 긴축을 해야 하고 국가재산 매각을 통해서라도 채무 상환비용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채무조정(부채 탕감)과 채권을 쥐고 있는 금융회사의 손실 분담에 대해서는 모럴 헤저드 우려를 들어 반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객관적 지표들은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부도 위기가 기본적으로 월가와 유럽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채권을 보유한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의 금융회사 손실을 우려하여 그 부담을 오직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에게 전담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만약 국제적 금융거래세가 실시되었다면 가장 먼저 이들 국가의 회생을 지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은행들이 더 큰 규모의 손실 분담을 하고 채권 만기연장에 협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유럽 국가들의 성장 동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
유독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이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또 다른 이유로 유로 통화권에 속해 있다는 것이 작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남유럽 5개국은 과거 아시아나 아르헨티나 등에서 발생했던 일반적인 외채위기를 푸는 해법과 유로 통화권의 원천적인 문제를 푸는 해법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당장 위기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국가 부도사태에 대응하여 이제까지 IMF식의 해법은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그리스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재정안정기금(EFSF)의 구제금융 방식 역시 과거 아시아나 남미 등에서 적용한 IMF 해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10년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시작된 이래 1년 반 동안 사태가 전혀 호전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비록 사태가 악화되면서 요구조건을 완화시키기는 했지만, 까다로운 대출조건과 강도 높은 긴축 요구 등이 오히려 구제 금융을 받은 나라의 실물경제 사정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2002년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에 중앙은행 총재를 했던 블레저 전 총재도 9월 13일, "IMF 등이 그리스에 주문하는 긴축 프로그램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그리스가 긴축 안이든 민영화든 구제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이행한다고 해도 내년 말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올해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 국가들의 실물경제 상황은 2008년 위기 이후 거의 호전되지 않고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상태가 심각한 그리스는 2009년 -2.0%, 2010년 -4.5%를 넘어 올해에는 -5%이상 성장률이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빠지고 있으며 실업률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는 유로 존 국가들 평균 실업률 10%를 훨씬 뛰어넘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2011년 1분기 기준으로 포르투갈은 12.5%, 아일랜드는 14.2%, 그리스는 15.0%, 그리고 스페인은 무려 20.6%까지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그림 2 참조)
이같은 상황에서 구제 금융 조건으로 내건 긴축재정은 성장률 추락과 실업률 폭증을 가속화시키고 GDP감소와 세수 감소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부채/GDP비율을 오히려 더 끌어올릴 것이 명확하다. 완전한 부채 상환 능력의 상실, 지급 불능의 위기로 빠져들 것이라는 얘기다.
▲ 그림2유럽 재정위기 5개국 실업률(계절조정) 변동 추이(euro stat) ⓒ 새사연
결국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책은 전면적으로 국가 부채상환 유예, 즉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함으로써, 빚을 얻어 빚을 갚는 남유럽 국가들의 부채 악순환을 중단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미 1998년 러시아, 2000년 브라질, 2001년 아르헨티나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전례가 있고 앞서 언급한 아르헨티나 블레저 전 중앙은행 총재의 주장도 동일하다. 이 조건아래에서 유로권이 자국 은행의 부실에 대처함과 동시에 이들 나라의 경제회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남유럽 국가들이 채무 지불 유예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러시아나 아르헨티나와 달리 직면한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이들이 유로 통화권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의 경우라면, 경기침체시기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지면 금리 정책이나 유동성 공급을 통해 경기를 부양을 지원할 수 있다. 또는 자국 통화를 절하시켜 수출에 유리한 여건을 확보하고 경상수지를 개선하여 대외채무 상환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남유럽 5개국은 유로화에 속해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통화, 환율 정책을 사용할 수가 없고 오직 재정정책으로 경제난을 타개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로 통화체제의 근본적 제약, 특히 유로 존 17개국 사이에는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에 비견되는 유로 존 내부의 불균형이 구조화되어 있다. 독일로 대표되는 경상수지 흑자 국가들과, 남유럽 5개국으로 대표되는 만성적인 적자 국가들의 구조적 재생산이 그것이다.
통화가 통합됨으로 해서 독일 등 수출 경쟁력을 갖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자국 환율이 저평가 되는 이익을 누리는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반대로 고평가 되면서 수출이 더욱 어렵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어 온 것이다. 그 결과 남유럽 국가들의 대외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고 오늘의 국가 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의 유로 통화 통합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유력한 근거의 하나다. 글로벌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적자국가인 미국이 질 책임이 있지만 흑자국인 중국의 책임 역시 있는 것처럼, 유로 존에서 불균형 해소를 위한 독일의 책임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시점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략 3가지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통화통합 - 재정분리 아래 남유럽 국가들을 유로 존에 남기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유럽 중앙은행(ECB)이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하고 대출을 확대하는 한편, 유로 재정안정기금(EFSF)은 구제 금융을 실시하여 남유럽 국가의 경제회복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이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방안이다. 구제 금융 여력을 키우기 위해 유로 재정안정기금(ESFS)을 기존 2250억 유로에서 4400억 유로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심지어 유럽 중앙은행은 지난 8월까지 남유럽 국가에서 1105억 유로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했으며 스페인 은행에 699억 유로, 이탈리아 은행에 851억 유로를 대출해주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일시적으로 호전되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하고 있는 형편이다. 위기 해법으로서의 효력을 점점 상실해 가고 있다.
둘째 방안은 남유럽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유로 존을 탈퇴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채무 지불 유예를 선언하고 유로 존을 스스로 탈퇴하여 원래 통화인 드라크마(drachma)체제로 돌아가 통화 절하를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현재까지는 긍정적 측면 보다 탈퇴로 인한 절차와 혼란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선택 가능한 해법으로서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셋째 방안은 통화 통합 - 재정분리라고 하는 현 체제 모순을 깨고 과감히 재정 통합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각국의 조세 제도 차이나 유로 존 전체에 걸친 부의 재분배 문제 등 엄청난 현실적인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고려될 수는 있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림없다. 때문에 재정통합의 차선으로 나오고 있는 방안이 바로 '유로 본드' 도입에 의한 자금 조달 방안이다.
유로 본드의 채권 신용도가 유로 존의 중간 수준으로 결정되면, 남유럽 국가 입장에서는 지금 보다 훨씬 저금리 채권 발행이 가능하지만, 독일 등 국가에서는 오히려 기존보다 조달 금리가 올라가는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어 독일 등의 반대가 강력하고 이 역시 도입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위기가 악화되면서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 유로 집행위원회에서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 존의 탈퇴로 가든 아니면 재정통합까지 발전하든 점점 더 구조적인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소득 불균형 해소라는 장기적 구조개혁 과제
미국의 경제위기는 재정수지 적자에서 온 것이 아니라 2008년 이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 온 경기침체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심지어는 재정위기 국가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그리스 등 남유럽 5개 국가들도 당장 재정위기 해결 이전에, 또는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경기회복이 절실함을 확인 하였다. 지금은 '재정위기라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 모든 경제적 난제를 재정위기를 푸는 것으로 시작해서는 안 될 시점이다.
사실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 재정문제는 그 자체의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조세제도와 성장률, 그리고 그 근저의 고용과 소득 향상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하는 1950~60년대에 재정수지와 국가부채를 점진적으로 개선했던 것은 높은 조세율과 높은 성장률, 그리고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상황에 따른 소득향상과 불평등 완화 때문이었다.
9월에 접어들면서 경기 침체 악화 정도가 뚜렷해지자 재정적자 긴축을 강조했던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UBS 수석 경제자문역인 조지 매그너스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소득원을 강화하지 못하는 현재 시스템의 역량 부족을 포함해 문제를 좀 더 광범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요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공공부채를 줄여 나가면서 동시에 단기적으로 일자리 확대와 소득 증대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활용할 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총재 역시 과도한 국가부채를 줄일 필요성을 지적하면서도 너무 빠른 속도의 부채 감축조치는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아 이전과 달라진 논조를 펴고 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연구원 역시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위기가 시사하는 것은 적절한 규제를 수반하지 않는 시장자본주의는 그 아킬레스건인 소득 불평등 문제의 심화를 통해서 자기 파괴적으로 폭주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시장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치적 타협 내지 조정 장치를 통한 제어시스템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
지금의 세계경제 현실과 위의 주장들이 함축하는 바는, 장기 침체에 대비해서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특히 재정과 부채만 독립변수로 삼아서 단기적으로 해결하려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경기회복을 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이를 받침하기 위해 기업과 고소득층의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정건전성 목표는 국민경제 성장 동력을 살려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장기 구조개혁 과정에서 풀려나가야 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특히 근원적으로 고용창출로 소득개선을 꾀하는 가운데 불평등을 완화하여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개혁이 없이는 장기침체를 벗어날 방도가 없으며 재정건전성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원론적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주장을 다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앞서 매그너스는 "우리 경제 모델과 정치구조가 지속 가능한 성장세와 적절한 소득 형성 또는 일자리 창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맞는 얘기다. 클린턴 미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는 소득 불평등 개선을 강조하면서, 부의 편중을 해결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제가 서서히 1930년대 대공황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심지어 대공황을 기화로 독일에서 히틀러가 발호했듯 경제적 어려움과 불평등 확대로 인해 사회 불안이 고조되면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보수들도 지난 8월, 2차 경제위기가 발발할 조짐을 보이자 재빠르게 재정위기와 과잉 복지 지출을 연계시켜 국민들의 복지 요구를 억누르고 재정위험을 과대 포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앞으로 닥쳐올 장기적인 실물경제 침체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고 이를 위해 정부와 국가의 역할, 그리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새사연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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