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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잃은 멧비둘기, 홀로 자식 어찌 키울꼬

등록|2011.09.22 18:59 수정|2011.09.22 19:02
9월초 멧비둘기가 모티프원의 2층 발코니 난간에서 포란을 시작했습니다. 이른 봄, 초여름에 이어 올해 들어 세 번째 번식입니다.

▲ 9월초에 다시 번식을 시작한 모티프원 2층 난간의 멧비둘기 부부 ⓒ 이안수


보통 7월쯤 산란을 마치는 멧비둘기 습성을 고려하면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에 다시 번식을 시작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종족번식에 대한 집착은 지구 생물 다양성의 지속에 대한 숭고한 사명이기도 하므로 이 멧비둘기의 육추에 대한 노고를 또다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멧비둘기의 구애와 짝짓기

ⓒ 이안수


지금까지 3년에 걸쳐 총 7번의 멧비둘기 번식을 지켜본 저로서는 알 품기와 육추가 얼마나 고되며 인내를 필요로 하는 과정인지를 잘 압니다. 사람이나 멧비둘기나 농사 중에 가장 힘겨운 농사가 자식농사이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멧비둘기의 자식농사

ⓒ 이안수


산란을 위해 이틀, 알품기를 위해 18일, 다시 이소까지 육추기간과 이소 후 야생의 적응훈련에 20~25일이 소요됩니다.

알을 품을 시에는 온도의 유지를 위해 부부가 교대로 자리를 지켜야 하며, 교대를 위해 둥지를 방문할 때도 나뭇가지를 물어와 집을 보강합니다.

부화 후 새끼들을 키우는 과정은 희생으로 점철됩니다.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5~6일은 위에 모인 피전밀크(Pgeon Milk)를 먹이고 그 후로도 먹이를 위에서 불린 후에 게워서 먹이기 때문에 어미의 고통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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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비둘기 어미의 고통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5~6일은 위에 모인 피전밀크Pgeon Milk을 먹이고 그 후로도 먹이를 위에서 불린 후에 게워서 먹이기 때문에 어미의 고통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 이안수


두 마리의 새끼는 부화시부터 부리가 특별히 발달되어있습니다. 그 큰 부리를 두 마리가 동시에 어미의 목구멍 속으로 넣어 먹이를 취합니다.

갓 깨어난 멧비둘기 새끼의 부리. ⓒ 이안수


9월에 시작한 번식이 아무 탈이 없이 진행되어야 10월 중순에 새끼들을 독립시킬 수 있게 됩니다. 추위가 오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을 마쳐야하므로 일정이 빠듯합니다.

9월 14일 날 아침, 저는 정원으로 나갔다가 기겁을 하고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버드나무 아래에 멧비둘기 한마리가 머리를 땅으로 박고 죽어있는 것입니다. 살펴보니 입에 출혈이 있고, 그 피가 완전히 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지난밤에 불행을 당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의심의 여지없이 지금 알을 품고 있는 부부 중의 한 마리일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난밤이나 이른 아침에 교대를 위해 왔다가 어떤 이유로 변고를 당한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2층 난간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불행을 알 바 없는 한 마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짝을 잃은 한 마리가 어찌 알품기를 끝내고 새끼를 기를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리를 비울 수 없을 테니 먹이는 언제 먹을 것이며, 굶다시피 하면서 부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두 마리의 새끼를 홀로 먹이를 감당할 재간이 없을 듯싶었습니다.

저는 번식 실패가 자명한 비둘기 가족의 불행을 가슴아파하며 죽은 비둘기를 땅에 묻었습니다. 땅을 파면서 나온 자갈로 성글게 십자가를 만들고 주위의 들꽃 한 송이도 꺾어놓아 이 가족의 불행을 진심으로 애도했습니다.

▲ 영문도 모른 채 죽은 비둘기와 난간위에서 알을 품고 있는 다른 비둘기 ⓒ 이안수


저는 포란 중인 비둘기가 포란을 포기할지 아니면 짝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허기를 참지 못하고 먹이활동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포란을 계속할지 궁금해 하며 둥지 위의 비둘기를 좀 더 자주 바라보았습니다.

울음소리로 교대음을 내어도 교대해줄 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틀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굶고도 포란을 포기하지 않는 비둘기가 애처로웠습니다.

16일 오후, 이층에서 빨래를 정리하던 처가 정원에 비둘기가 서성인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하는 바람을 가지고 저는 이층으로 뛰어올라갔습니다. 정원의 비둘기는 마침내 날아올라 둥지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입에는 나뭇가지도 하나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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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는 마침내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비둘기는 포란 중인 비둘기의 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를 애타게 했던 그 멧비둘기의 새끼가 어제(9월 21일) 아침에 태어났습니다. 어미는 흔적을 없애기 위해 갓 깨고 나온 새끼를 두고 알 껍질을 물어서 멀리 내다버렸습니다. 이어서 짝이 나타났습니다.

갓 알을 깨고 나온 멧비둘기 새끼

ⓒ 이안수


부부의 교대는 더욱 빈번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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