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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이 사춘기라니!

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등록|2011.09.22 20:10 수정|2011.09.22 20:20
거짓말이 습관인 아이, 걱정입니다

요즈음 나의 고민은 우리 반 아이들의 거짓말과 싸우기랍니다. 숙제를 해 오지 않고도 모른 척 앉아서 숙제를 찾는 시늉을 하는 모습에 마음이 상하곤 합니다. 일부러 재촉을 하지 않고 다른 아이의 숙제를 검사한 후, 공부 시간에 그 숙제를 발표할 때 자기 차례가 되면 뭉기적거리며 시간을 끌면, 그때서야,

"00야, 네 차례인데 실물화상기 위에 올려 놓고 발표를 해야지. 어서 나오세요. 뭘 그렇게 꾸물대고 있어요?"
하고 짐짓 모른 체 나도 딴전을 피웁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 00는 숙제를 하지 않았답니다. "
"그러니? 00야, 그런데 아침에 숙제 검사를 할 때는 왜 아무말도 안한 거지? 그때 미리 말했더라면 이해해 줄 수 있었는데. 지금 알게 되니 선생님 기분이 참 좋지 않구나. 이게 벌써 몇 번째인 줄 아니? 숙제를 못했을 때는 미리 말하고 다음에는 잘해 오겠다고 해야지."

그래도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고 그냥 서 있습니다. 그것도 반에서 가장 똑똑하고 재주도 많고 영리한 아이가 잔머리를 굴리는 모습에는 정말 기가 질려버립니다. 그런 아이들이 꼭 있지요. 상위 10%에 드는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 용서가 된다는 분위기에서 자란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똑똑한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령부터 배운 것같아 마음이 씁슬해집니다. 그런 아이의 머릿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고 아홉 살 아이다운 순수함마저 결여된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사춘기가 5년이나 빨라져서 3학년 아이들까지 삐딱하게 말대꾸를 하거나 이죽거린다는 말을 들으면 답답해집니다. 심한 경우에는 2학년 아이에게도 사춘기의 부정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하니 걱정입니다.

귀차니즘에 물든 아이, 치료가 필요해요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반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얘들아, 교실의 화장지는 생활부 담당입니다. 생활부는 행정실에 가서 화장지를 가져다가 교실에 걸어 주면 좋겠어요."
했을 때, 한 아이가

"와, 나는 생활부 하지 않기를 참 잘했다."
라며 실망스런 말을 아주 자랑스럽게 하는 아이는 벌써부터 자기만 생각하는 사춘기의 부정적인 모습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홉 살 아이답지 않은 발언에 놀랍니다. 그건 솔직한 말이 아니라 자신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열매만 따 먹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생각이 나쁜 말을 하게 하니까요.

그 아인 뭐든지 귀찮아하는데 노는 데는 일등입니다. 자치 활동 부서를 고를 때에도 학급을 위해 돌아가면서 하는 자잘한 봉사활동을 스스로 하는 법이 없어서 정나미가 떨어지게 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부모님과 상담해 보면 자기 방조차 청소를 하지 못하고 물건을 챙기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는다는 하소연을 듣습니다.

이미 가정에서부터 포기한 상태로 학교에 의존하고 있는 아이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학급 분위기를 깡그리 망가지게 하니 단단히 살피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아이에 대한 신뢰감도 낮아져서 담임된 자로서 고민까지 생겨서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진정한 사춘기는 자아를 찾아야 하는 시기

진정한 사춘기의 모습은 건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부모에게 대들거나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모습, 이성에 눈뜬 모습이 사춘기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자기 인생의 푯대를 세우는 사춘기가 되어야 할 텐데,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한거나 삐뚤어진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사춘기의 자랑인 것처럼 생각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변명과 핑계를 대거나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아이, 아무 데서나 큰 소리를 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공공장소이건 버스 속이건 제 멋대로인 학생들은 바로 제대로 된 사춘기를 보내지 못한 채 덩치만 커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최악의 경우는 그런 상태로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숙한 자아상을 확립하지도 못하고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아 책임감 있게 길러서 사회로 내보내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겨납니다.

오늘은 그런 아이가 9명 중에서 둘이나 있어서 말로 이해시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성까지 했으니 내일부터는 그러지 않으리라 긍정적인 기대를 해봅니다. 앞으로 꾸준히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꼼꼼하게 책임을 다하는 학생으로 자랄 수 있도록 숙제 한 줄이라도 빠뜨리고 일부러 빼먹고 쓰는지 확인하는 일을 늦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부정직과 불성실의 댓가는 언제나 손해 보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심어줄 생각입니다. 한 번 써야 할 숙제를 빼먹고 일부러 안 해오면 10번을 쓰게 합니다. 잔머리를 굴려서 지혜가 아닌 꾀를 부리면 몸이 고생하고 손이 고생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신뢰를 받을 수 없어 인기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버릇을 잡지 못하면 즐거운 교실이 아니라 어두운 교실이 되고 맙니다. 누군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질긴 잡초의 뿌리를 뽑아내줘야 3학년 이후의 학교 생활을 잘 지내게 됩니다. 숙제의 양이 많건 적건 불성실한 아이들은 늘 불성실하고 정직하지 못합니다.

핀란드에서 배우는 인성교육

세계적인 교육복지 국가로서 부러움을 받는 핀란드 교육의 골격은 인성과 자활정신입니다. 핀란드의 인성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킵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정직합니다. 자신들이 정직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정직할 거라고 믿습니다. 인성교육의 성공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의 뿌리가 튼실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에 실업률이 19%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나 청소부나 휴가 기간이 똑같은 평등 사상이 지배하는 나라, 핀란드는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거두면서도 복지정책 모델을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 가며 어느 곳에서나 원칙과 소신을 중시하는 풍토를  갖추고 있습니다. 올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상을 받고, 잘못하는 사람은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배우게 하는 교육 풍토를 소중히 한 결과입니다.

적당주의나 기회주의, 온정주의, 탈법과 위법을 저지르고도 다른 사람을 부리는 자리에 얼마든지 앉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본다면 핀란드 교육의 성공 모델은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기에 이제부터 하나씩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서 하고 싶습니다. 교육자적 양심과 철학에 비추어 올바른 가르침이라면, 내 반 아이가 가는 길이 바르지 못한 길임을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다면, 훈계하고 가지치는 가위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생각합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제 가진 것까지 빼앗긴다는 마태복음의 경제 논리가 교실에도 있는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오지만 백 번 찍어서라도 좋은 나무로 키우고 말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일 숙제 검사 시간을 기다려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교닷컴, 전남인터넷 교육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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